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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배움의 주인이 되는가 | My Reviews & etc 2021-08-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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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배움의 주인이 되는가

정기효 저
비비투(VIVI2)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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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목적은 창의적이고 주체적이며 사회에 건설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도덕적 인간을 길러 내는 데 있겠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지식을 기계적으로 주입하는 데 그친다거나, 지식만 잔뜩 외울 뿐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모른다거나, 반대로 자신만의 아집에 사로잡혀 이 이상은 알 필요 없다며 자기 합리화의 덫에 빠진 인간만을 길러낸다면 그 교육은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학교라는 곳이 좀비처럼 획일화한 유령 같은 인간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한다면 이미 교육은 사회에 해악을 끼침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만큼 풍요롭게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 제도의 건강성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가 제기됩니다. 이 책은 실용적으로 쉽게 저 난제에 접근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교육학 전문가의 고견을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인용함으로써 학문적 엄정성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20세기는 전체주의를 낳은 시대다.(p29)" 후지타 쇼조라는 일본 사상가의 말입니다. 소련, 나치 독일 등 세계를 전화로 몰아넣은 서방의 풍조뿐 아니라, 바로 동아시아에 커다란 비극을 부른 모국 일본의 죄과 역시 상기시키는 준엄한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체주의는 다양성을 배제하며, 어떤 불쾌감을 부르는 타자를 모조리 제거하려 드는(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존마저 담보 못하는) 위험한 시스템입니다. 이런 전체주의를 공고화하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 중 하나가 (잘못 형성된) 교육 제도였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말살하려 드는 혐오, 이것을 낳은 온상이 바로 파시즘 등의 전체주의입니다. 단일한 주파수에 공명하기를 거부하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도우려면 올바로 선 교육 시스템의 원활한 기능이 필수적입니다. "있지도 않은 평균의 허상"을 과감하게 깨부수는 것이 또한 교육의 사명입니다. 


 

배움의 과정을 거치면 사람은 종전의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다 큰 자아를 의식하고 사회에 올바른 방향으로 통합됩니다. 배움의 전과 후가 같다면 이는 바른 배움이 아닙니다. 나아가 책에서는 "배움의 탈영토화"를 강조합니다. 개인 단위에서는 종전의 협소한 인식과 마음가짐을 탈피해야 하며, 더 넓은 평면에서는 자신의 가족, 고향, 또래 집단, 혹은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비 보편적 지식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의학, 자연과학, 언어학 등은 모든 인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어떤 보편의 진리를 담을 뿐,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의 진리와 명제가 서로 다를 수 없습니다. 과거 편협한 자국 이익 우선주의만을 주입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교육이 실패작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유일체제 고유의 진리 체계를 강요하는 북한의 교육은 또 어떻습니까. 

 

책에서는 들뢰즈의 개념을 인용하며 앎과 신체를 일체화하는(따라서 지필고사 위주의 방식을 지양하는) 교육이 이상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신체에도 위도와 경도가 있는데 위도는 욕망이요 경도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욕망만 하늘을 찌르고 올바른 능력이 결여된 상태나, 반대로 능력은 출중하지만 욕망의 방향이 잘못된 경우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스칼라량과 달리 벡터는 방향성 차원이 하나 추가됩니다. 교육은 바로 이 방향성을 올바로 함양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이 두 차원 외에, 맥락이라는 제3의 차원이 올바로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맥락은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뜻한다고 하며, 독자인 제가 해석하기로는 "사회"라고도 파악이 됩니다. 방향도 건강하게 설정되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이를 구체적인 사회 안에서 올바른 포지셔닝까지 마쳐야 비로소 개인이 온전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고 이것이 바로 교육의 목표입니다. 

 

개별 지식에 매몰되면 안 됩니다. 학습은 이산적이기보다는 연속적이어야 하며, 단편적이기보다는 포괄적이어야 하며, 기술적이기보다는 전인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학습을 저자는 "긴 호흡의 학습(p105)"이라 부릅니다. 또한 교육은 획일화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되고, "학습 공원(p120)" 안에서 모든 학생이 자신만의 개성과 잠재력을 발휘하여 고유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바탕을 둔 행위주체성, 혹은 학습의 주도성을 강조합니다. 이때 주도성이라 함은, 자의성(恣意性) 내지 방종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주도성이라 해도 그것이 "교육"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이상 수동성을 전제로 한 제한된 능동성(p135)이라야 하죠. 가능성에 머물러 후행적 깨달음을 강조할 뿐인 결과론과는 달리 들뢰즈는 잠재성의 현행(顯行)화를 강조하는데(p135) 이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주도성의 본체입니다. 이 주도성은 일회적이고 고정적인 결론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 진화합니다. 또 고립적이지 않고 공동의 집단이 가지는 특성을 공유합니다.(p137)

 

이러한 교육은 고정된 체계를 전승하지 않고 "생성"의 본성을 가집니다. p150에는 이런 교육의 특성으로 산각 구조가 도시되는데 각 꼭지점에는 학습자, 새로운 가치, 탐구가 상호 작용을 이루며 서로를 뒷받침합니다. "생성의 학습자는 방랑자도 표류자도 아니다(p151)." 왜냐하면 이제부터 그가 가는 모든 항로는 다른 사람에게 참고가 될 수 있는 독창적인 해도의 구성 부분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도, 그가 간 궤적을 기계적으로 따라 밟을 필요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다만 타인들이 그들 고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경험이 가치에 선행한다.(p169)" 왜냐하면, 경험에 선행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획일성의 추구일 가능성이 높겠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제시하는 목표와, 그것의 성취를 표시하는 모든 탬플릿은 교과서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또 이를 바탕으로 한 수업 에세이 쓰기(p194) 역시 주도성 학습의 핵심 과정입니다. 앞에서 벡터의 세번째 차원으로 "맥락"이 제시되었는데, p211에는 "배움은 맥락에서 비롯하지만 맥락을 넘어서야 한다"고 합니다. 종전의 맥락에 배움이 머물러 있으면 그건 이미 "생성"이 아닌 "정체(停滯)"이기 때문이죠. 

 

"나를 따라 하시오(뻬 꼼 무아)"는 동일성의 재현이요, "나와 함께 하시오(뻬 아베끄 무아)"는 차이의 생성을 말한다고 들뢰즈는 표명합니다(p129). 여기서 차이라 함은 민주사회 교육의 핵심 지표 중 하나인 다양성 지향을 뜻하겠습니다. 절대적 진리에 매몰되지 않고 항상 그것의 타당성과 자신의 인지 정합성 여부를 의심해 보는 데에서 메타인지(p142) 능력이 자라납니다. 배우되 의심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결론을 향헤 도약하려는 생성의 의지와 능력이 자리한 정신(그리고 이와 통합된 신체)이야말로 21세기 교육의 궁극적 목표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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