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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자기계발 II
시크 : 하다 - 조승연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8-08-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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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크 : 하다

조승연 저
와이즈베리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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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땐 부모님들이 "얘가 다 클 무렵엔 추석이니 설이니 하는 전통 풍습이 다 사라지고 없을 거야." 같은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제 추석을 고작 몇 주 남긴 시점이고,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 같은 게 한반도의 늦여름, 초가을 분위기를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이 풍기긴 합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 대다수 사회인들은, 여튼 어떤 전통적 방식 같은 걸 서서히 잊거나 자진해서 버려 가는 중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근래는 옷 입는 스타일이나 먹거리 등의 취향, 몸 담는 회사 조직 등의 구조뿐 아니라, 유머의 개성이나 대인 관계 등의 패턴(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그 DNA의 특질에 밀접히 기대고 의존할, 어떤 정신 심층의 개성)도 미국인들의 그것을 너무도 닮아가는 추세가 확연합니다.

조승연 작가는 프랑스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신간에서는 "프랑스식 삶"의 짙고 독특한, 그러면서도 어쩌면 전세계가 선망의 눈길로 볼지도 모르는 "모두스 비벤디"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그가 프랑스인들의 모두스 비벤디에 대해 규정한 한 마디 키워드는 "시크:하다"입니다. 잘 아는 주제일 듯하지만, 날카로운 지성, 유독 교육에 열성이었던(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한국 중산층 평균을 감안하더라도) 집안 분위기, 작가 특유의 사회 계층 구조에 대한 관심, 통찰 등을 우리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으므로 책에 대한 기대를 좀 높이고 읽어 나갔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시크한 삶"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정말 뭘 잘 안다기보다는 그들 민족이 오래 전부터 잘 가꿔 온 (어찌보면 대외용 같기도 한) 자유롭고 우아하며 세계 동시대의 트렌드를 멀찌감치 앞서가는 그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 우리는 정작 실체와 내력과 구체적인 양상을 이해도 별반 못하면서 지레 찬사부터 베풀고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프랑스다운 게 뭔지도 모르고 솔직히 뭐가 "시크"한 건지도 모르면서, 여튼 프랑스인들은 시크하다고 "인정"부터 하고 봅니다. 자기 관점 뚜렷하고 실제 오랜 기간 현지에서 살아도 봤으며 똑똑한 한국인이기까지 한 저자의 설명과 논평이라면 한번 따라가 볼 만하죠.

요즘은 우리도 "나는 자유연애주의자"란 표방을 주위에서 아주 드물지는 않게 듣습니다. 부모님이 정혼해 준 상대방과 맺어져야만 한다는 관념과 반대인 "연애결혼" 등을 뜻하는 게 아니고요. 애초에 결혼도 안 하고, 사귄다고 공인된 상대와 만나는 중에도 다른 상대가 나타나면 거리낌 없이 잠자리도 함께하는 풍조를 그리 부른다고 하는군요. 아직 중매결혼이 대세였던 세대 어르신들이 버젓이 살아계신 현대 한국에 대놓고 이런 풍조가 생긴다는 게 좀 충격이기도 합니다. 헌데 이 책에서, 조승연 작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유연애주의자들이었던" 프랑스인들의 시크함을 좀 길게, 또 작가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곁들여 우리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조승연 작가의 책 장점 중 하나는, 어느 한 가지 주제를 벼락치기로 공부하여 그야말로 책 쓰기 책 내기를 위한 단발성 주제를 얕은 지식으로 (짜깁기 포함) 논하는 게 아니라, 비교적 긴 숙고를 거치고, 사실(fact)를 깊이 공부한(=직접 체험한) 후, 여러 다른 논자들의 견해를 충분히 공부한 후에 한 마디를 꺼내어도 꺼내는 데에 있습니다. 성(性)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언제나 관대했는데, 그 배경을 저자는 풍요로운 삶, 경제 여건 등에서 찾습니다.

본래 유럽은 여러 작은 소국, 공령 따위의 모임이었습니다. 독일만 해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듯 무려 300개가 넘는 작은 정치 단위들이 모인 영방(領邦)체였고, 이탈리아 반도에 십 수개의 공국, 공화국, 자치도시 등이 모여 옥신각신해 온 내역은 천 수백 년이 넘습니다. 스페인? "두 가톨릭 군주"의 치세 수십 년을 제외하면 각 주(州)가 내내 분열에 가까운 자치를 누려 왔으며, 그 극단적 취약상이 20세기 전반에 노정되었고, 지금도 까딸루냐가 독립해 나간다고 아우성입니다. 영국은 18세기 초에서야 스코틀랜드와의 물적 통합이 간신히 완료되었지만 다시 심각한 분열을 마주합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그저 한 유서 깊은 가문의 개인 영지에 불과했습니다. 영토, 인구 면에서 그나마 큰 덩치를 이루고 통합 국가 단위를 오랜 동안 일궈 온 나라는 서유럽에서 프랑스가 거의 유일합니다.

이런 프랑스였기에, 산업 혁명 이후 간신히 일정한 경제적 풍요를 이루고 생경한 성 윤리를 정립한(그나마 오래 가지도 못한), 예컨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사회 같은 (급조된 엄숙, 경건) 분위기를 프랑스인들은 아주 우습게 봅니다. "졸부의 호들갑" 정도로 폄하하는 겁니다. 과연 그런 통찰이 옳았는지, 영국 사회는 이른바 "서프라지" 운동 등을 계기로 여권의 범위 획정을 두고 큰 내홍을 겪었으나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이 이슈에 대한 갈등이 덜했습니다. 프랑스는 1968년 이른바 "5월 위기(이것은 보수 매체에서 부르던 명칭이고, 현대 프랑스인들은 자랑스럽게 "68혁명"을 논합니다)"를 통해 사회 구조의 적폐를 꽤 큰 폭으로 떨궈 내었는데, 이때 이 거대한 "실험장"에서 시도된 건 정치 형태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정의 족쇄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부정, 회의였습니다. 작가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을 잠시 인용하는데, 여기서 다뤄진 "남매 간 연애"는 그저 감독 개인의 추잡한 소재 터치가 아니라 실제로 근친 상간의 금기에 도전한 "68세대의 미친 모험"을 실사(實寫)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p80에서 저자는 폴 클로델의 시 한 편을 인용합니다. "와인은 세 가지 성찬식이다..." 태양과 땅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인 와인(이하 이 단락 대부분의 특이 표현은 모두 이 책 pp.80~81에서 인용한 것입니다)은, 유독 프랑스가 세계에 높이 자랑하는 특산물인데(물론 다른 나라 와인도 좋은 게 많고 우리 한국인들도 슬슬맛을 들여가지만요), 이 중에서 '코미뇽"에 대해 저자는 그 어원을 거론하며 성찬식 외에 "하나됨"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영어에서도 가톨릭을 신앙 배경으로 삼는 이들(미국 이민자들 중)은, "퍼스트 커뮤니언"을 매우 중시하는데 한국말로 옮기면 "첫영성체"입니다. 어디 성찬식뿐이겠습니까? 공산주의를 뜻하는 "커뮤니즘", 공동체인 "커뮤니티" 등 이 계열의 어휘 대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축복받은 대지를 일구고 자라난 프랑스인들이 음식 문화에 각별히 긍지를 가지는 건 사실 당연합니다. 식재 혹은 메뉴 간의 조화, 궁합을 뜻하는 "마리아주(mariage. 영어와는 철자 하나가 다른)" 역시 본래는 결혼이란 뜻이며, 바로 위 문단 인용 "태양이 땅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 같은 표현에서 그 연유와 맥락이 너무도 잘 이해됩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적응시켜 살아가는 삶이 한편으로는 성실하고 올곧고 질박하며 도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특히나 한국처럼 인간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사회에서는 종종 "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복해지는 대로 살면 안 될까?" 같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삶은 물론 우리네 한국인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과 큰 차이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 방향, 기계적 성과 수치만 추종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의 한 대척, 대안이기도 해서 새삼 우리들의 주목을 끕니다. 명절도 다가오는 이 시점에,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지 이 책을 읽고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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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8-08-0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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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이승희,정혜윤,손하빈,이육헌 공저
bookbyPUBLY(북바이퍼블리)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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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 브랜드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남이 아니라)의 기호를 정확히 깨닫고 정작 필요한 아이템만 소비하면서 산다면 브랜드란 건 일찍부터 사라졌을 겁니다. 진실이 중요하고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이 중요하지 브랜드 따위가 다 뭐겠습니까?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 아니 절대 다수의 경제 활동 인구라면 브랜드 같은 것에 실제 효용 이상의 가치를 투영하고 삽니다.

브랜드로부터 "과장 혹은 압축된" 정보를 얻고 살며, 최소한 이 브랜드로부터 상당수의 집단, 그룹이 이런 만족을 끌어내고 일정 공감대를 이루는구나 하는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명품이면 다인 줄 아는 실업자 멍청이가 되라는 게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브랜드는 소비와 문화 영역에서 강렬한 표지, 텍스트, 기호 구실을 하며, 때로는 매우 경제적인 가치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집단에 속했는지 타인들에게 어필하려면 브랜드들의 효과적인 착용과 교체만큼 강렬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 또 없겠습니다. 비록 그 브랜드야 나한테 눈곱만큼의 관심도 주건 말건 무관하게 말입니다. 본디 보답 없는 짝사랑이란 참 서글프게 마련인데, 여튼 세상 사는 룰이 그리 짜여져 있으니 달리 방법도 없습니다.

한편으로, 세상 사는 룰이 어차피 그리 짜여져 있다면 수동적으로 그저 최소한의 남들 할 만큼만 하고 말 게 아니라, 혹은 그저 시장과 브랜드의 지시와 강권에 길들게 아니라, 브랜드의 생리와 작동 원리에 대해 그 나름 깊이 있게 관찰, 성찰, 통찰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작게는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크게는 내 조직, 내 회사(우리는 누구든 간에, 작든 크든 어디에든 속해 있기 마련이죠)에서 생산해 내는 상품과 서비스의 어필을 위해, 지금 이 사회에서,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태어나고 크고, 외면당하거나 혹은 잘나가고, 마침내 세상의 상징 중 하나로 우뚝 서거나 조용히 퇴장하는지를 관찰하는 건 곧 세상 작동 원리의 축소판 공부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나가는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건 무척이나 뜻깊은 일입니다.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지만 우리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게 체질입니다." 이 말은 배달의민족 대표 김봉진 씨가 새로운 비전과 프로젝트를 선포할 때(p140) 특히 세 가지 강조 사항을 전달 받은 해당 회사 마케터들의 고백입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 음식을 많이 만들어 볼 것
둘째 음식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 것
셋째 관련 서적이나 영화를 많이 볼 것

물론 해당 회사(어느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의 마케터들에게 이런 지시를 할 단계라면 대표인 자신은 몇 배, 아니 몇 천 배는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린 결론, 확신이 그 동기로 자리잡은 후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저런 회사를 보며, 더 갈등하고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조직이 그저 한번 만들어 놓은 시스템, 혹은 타성에 젖어 직원들만 굴리고 쥐어짜내는 구태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으려는 걸 보고 아직도 저런 이들이 있으니 과연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사는 건지 회의가 들 때가 많았습니다.

배민은 빙금 제가 예로 든 저 업종과 전혀 무관한데, 오히려 여기는 한번 잘 깔아놓은 플랫폼으로 평생 자릿세만 받아먹으면 그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책의 이 구절을 보고 정신이 버쩍 나는 것 같더군요. 사실 저는 배달통이 갠적으로 더 편해서 거길 주로 이용하는데(ㅋㅋ 죄송합니다), 이런 곳은 B와 C를 연결해 주는 미디어에 불과하지 본인들이 직접 뭘 생산하는 업체가 아닌데도 CEO가 이런 고민까지 하며, 동시에 마케터들이 그런 대표의 고민을 이식, 공감, 복제, 확장까지 해서 최상의 브랜딩을 이뤄내야 하는 그 조직의 구조, 체질에 감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십 년 전에 모 백화점(식품 회사가 아니라)에서 자사 푸드코트를 더 잘 꾸미기 위해 재래시장까지 찾아와 맛과 레시피에 대한 조언, 체험을 거쳤다는 에피소드도 들었으나, 지금 이 경우는 그것보다 몇 십 배는 더한 거죠. 요즘 뭐 남들 하는 대로 시늉만 내어서야 일이 어디 되겠습니까. 몇 푼 안 되는 시청료나 횡령할 궁리만 머리 속에 가득한, 늙고 한심한 밑바닥 체질 도둑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범죄가 체질이니 수감 생활도 체질이겠죠?). 여튼 배민 같은 중개 앱 역시, 맛과 풍미와 미학에 독자 철학을 확립해야 소비자들 사이에 적실한 이미지를 심고 오래 살아남는다는, 이런 진리, 이치가 어느 업종이라고 통하지 않으라는 법이 또 없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이 격언이 우리 동아시아, 즉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뜻하는 바와, 저 구미에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우리는 이끼를 긍정적인 뜻으로 보아, 한 곳에서 진득히 자리를 지키는 인재라야 대성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새기지만, 저쪽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 곳에만 집착하는 인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근데 사실 저는 요즘 들어 두 가지 방향 모두에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 조직에서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며, 프로 스포츠에서도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을 안 옮기고 오래 사랑받는 건 당연히 레전드로 대접 받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 능력 있는 플레이어라면 서로 이곳저곳에서 모셔 가려 들 테니 경력에 다양한 "브랜드"가 훈장처럼 따라붙기도 하겠죠. 이상은, 책 프롤로그 p11과 본문 pp.60~80에 걸쳐 당찬 소신을 피력하는 정혜윤 스페이스오디티 브랜드 마케터(의 말)를 접하고 한 독자로서 든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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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觀點) - 쑹훙빙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8-07-2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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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점

쑹훙빙 저/차혜정 역
와이즈베리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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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달라지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도 합니다. 올바른 관점이 자리잡히면 여태 잘못 봐 왔던 현상과 사물이 비로소 바른 실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국제 정세와 경제는 너무도 많은 당사자가 참여하는 거대한 게임이며, 이 복잡다단한 현상 중에 무엇이 우리의 생존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끼치는지, 무엇이 그저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지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관점"의 장착은 이런 이유에서 너무도 중요하며, 믿을 만한 저자(혹은 팟 캐스터)의 관점은 적어도 진지한 참고 대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 쑹훙빙은 십여 년 전 <화폐전쟁>을 저술하여 중국 본토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며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유명인입니다. 중국에서는 재치 있는 표현과 독특한 프레임으로 많은 고정 독자를 몰고 다니는 지식인들이 여럿 있으나, 쑹훙빙처럼 그 유명세와 영향력의 범위가 한국에까지 두루 미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경제경영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물론, 세계 곳곳을 휘어잡는 이면의 트렌드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관점, 그 관점의 독창성이야말로 많은 구독자들이 그의 컨텐츠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전작 <화폐전쟁>이 상당 부분 미국과 유럽의 정치사에 치중했다면(물론 대개는 유대자본의 헤게모니 성립 과정을 다루는 내용이었으나, 특히 이 신저와 비교하면 정치사회 섹터 서술에 더 많이 치중했었음이 두드러집니다), 이 책은 에너지 자원 확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치열한 막후 쟁투에 보다 초점을 두었다고 하겠습니다. 세월이 십 년 가까이 지났으니 그간 급변한 국제 정세도 쑹훙빙의 독특한 "관점"에 의해 업데이트 된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자원 확보라는 글로벌 경쟁의 다양한 국면을 세세히 기술한 점이 돋보입니다.

쑹훙빙의 책은, 그의 책을 집어 든 독자가 기존에 어떤 관점을 가졌든 무관하게,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힌다는 게 최고의 장점입니다. 이 책 역시 분명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잡고 심각한 국제 정세의 각축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책이나 읽는 듯 흥미롭게 책장이 넘어갑니다. 에너지 자원의 집중 분포는 지구상 어디에 이뤄져 있을까요? 초등학생도 무리 없이 대답할 수 있을 만큼, 화석 에너지 자원이란 바로 중동 땅에 묻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이 세계 어느 민족, 인종보다도 독실히 믿고 있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교입니다. 이뿐 아니라 그들은 종족, 부족의 공감대에 기반한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따라서 향후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쟁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에측하려면 바로 이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능한 자기계발서 저자, 모티베이터, 강연가 들은 뻔하고 익숙한 이야기도 새로운 재미를 불어 넣으며 청중, 독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쑹훙빙은 중국 현지에서 엄청난 수의 구독자를 거느린 크리에이터이기도 한데, 그는 이 책 중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며,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서남아시아 일대의 역사를 최대한 간략하고 흥미롭게, 맥락을 잡아 가며 쉬운 말로 풀어 줍니다. 이 책은 당초의 의도가 에너지 자원 쟁탈의 국제 구도를 설명하는 데 놓였겠으나, 이슬람과 서남 아시아의 정치, 문화사를 이해하는 개론서로 쓰여도 될 만큼 포괄적이고도 쉬운 필치로 까다로운 주제가 잘 소화되어 있습니다.

저자 쑹훙빙은 수시로, 피와 살을 갖춘 실존 인물로서 이 책 중에 등장합니다. "내가 특별히 연구하고 수십 권의 책을 읽어 본 결과..."라든가, "이스라엘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이스라엘 당국에서 내게 연락을 취해 와 이런저런 주의 사항이나 팁을 알려 주었다" 같은 대목이 특히 그렇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십여 년 전 <화폐전쟁>이 대 히트를 쳤을 때 많은 네티즌들이 "쑹훙빙은 실존 인물이 아니며 중국 당국에서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 위해 세팅한 가공의 저자 명의에 불과하다"란 주장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의 실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없지만(강연, 팟캐스트 등을 실제로 보았기에), 그로서는 이런 루머들이 적잖이 부담스러웠었는지 책 곳곳에 이런 흔적을 남겨 두었더군요.

쑹훙빙의 "관점"은 지나치게 중국에 치우친 게 아닌지 예전부터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비판도 의식했는지, 곳곳에서 "중국"을 "조국"이 아닌 게임의 당사자 중 하나로 설정한 듯한 말투, 분석이 눈에 띕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관점의 중립화, 객관화가 이뤄진 건 아닙니다. 여튼 한국 독자 관점에선, 이런 견해가 현재 표준적이고 유력한 "중국 여론 지도층"의 스탠스를 분명히 대변한다고 보고, 꼼꼼히 읽고 숙려를 거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쑹훙빙은 그저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스토리, 프레임, 관점의 전달과 교조화에만 몰두하는 저자가 아닙니다. 이 점은 그가 지나가듯 흘리는 단어 속에서 오히려 확인 가능했는데, 예컨대 앞에서 잠시 언급한 "이스라엘 당국에서 어찌 알고..." 같은 에피소드에서도 그렇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터넷에 오가는 사소한 정보를 통해서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사건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는 듯 보였다" 같은 분석 중에, 그가 단지 시사경제 분석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보 당국이 기술적으로 어떤 수단과 시스템에 의존하는지 메타적으로 부지런히 파악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이 AI를 활용하는 방식도 놀랍지만, 무심히 흘려 보내지 않고 이런 사소한 경험을 통해서도 각국 정보 당국의 활동 방식 이면을 추측하는 그의 내공 역시 놀라운 면이 있습니다.

이 신저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서남아시아 일대에서 에너지 수출입의 주요 허브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암투과 각축전을 상세히 설명한 대목들입니다. 특히 파키스탄의 서남쪽 발루치스탄의 과다르 항은 중국이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많은 자본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입 때문에 번번히 좌절을 맛보다가 근래 들어서야 중국 손에 경영권이 넘어온 경우입니다. 책에서는 애초부터 적임자에 관할이 넘어왔어야 할 항구가 미국의 방해 때문에 헛돌고 있었던 듯 서술하지만, 사실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국제 무대에서 책략을 부리는 건 마찬가지이며, 결국 승자가 중국이 된 과정만 봐도 사정이 짐작 가능하다고 봅니다.

책에서는 또한 중국의 외환 보유고 규모,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는 중국의 자세 등을 냉철히 살피고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사실 타국에서는 우리처럼 그리 자주 쓰이는 어휘는 아닙니다. 이 책은 그에 해당하는 말로 "공업 4.0"이란 개념이 주로 인용됩니다. 이 말은 독일에서 신 산업 플랫폼으로 자리해 가는 "Industrie 4.0"의 번역어로 보입니다. 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대한 설명(적어도 중국 측의  "관점")이 아주 소상하지는 않아 그 부분이 다소 아쉬웠지만, 다른 대목이 워낙 재미있어 그리 큰 단점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책의 원제는 "鴻觀"인데, 이는 저자 쑹훙빙의 팟캐스트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딴 브랜드이기도 하고, 혹은 "燕雀安知(연작안지) 鴻鵠之志哉(홍곡지지재)"를 출전으로 삼은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합니다. 관점도 범용한 관점이 있고, 탁월하여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처럼이나 세계가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타는 지금, 과연 우리만의 관점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볼 국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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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결혼했을까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7-06-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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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쩌자고 결혼했을까

오카다 다카시 저/유미진 역
와이즈베리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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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학생 시절 공부할 때는 공부가 가장 어렵습니다("공부가 가장 쉽다"고 하는 분은 특별한 분이겠고요). 사회로 나와 조직에 몸 담고 일할 때는 일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공부를 수월하게 한 사람도 반드시 직장 생활 성공적으로 해 나간다는 보장 없습니다. 공부하는 머리와 일하는 머리가 다르기 때문이죠. 여기 대해서는 학창 시절 공부깨나 한 사람이건 아니건, 직장에서만 유독 고전하는 사람이건 반대로 비로소 늦게 제 물 만난 사람이건, 다 동의합니다. 여태 개인적으로 만난 이들 모두가 다 그러더군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제3의 과제랄까, 만만치 않은 영역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가정 생활, 부부 생활"이라고나 해야겠는데요. 참고로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며, 밖에서 모질게 시달린 마음을 달래고 치유하는 곳은 가정이 아닐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해선 여전히, 쾌히 긍정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다행스럽게도요). 저도 그런 줄로만 알았고, 나 역시 그런 장래를 갖겠거니 낙관했더랬습니다. 헌데 이 책을 읽어 보니(이런 책은 특히나 대강 볼 수가 없더군요), 저자분이 그간 상담하고 겪은 21가지 사례(아마도 몇몇은 둘 이상의 사례가 융합되기도 했을 겁니다)들은, 뭐랄까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나 볼 법한, 각각 희한한 방식으로 불행한 부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드라마와 차이가 있다면, 저자께서는 "왜 그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지, 대체 성장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심리학 이론을 동원하여 쉽고도 적실한 분석을 행한다는 데에 있습니다(드라마는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고 안도하는 거지 교훈, 발전을 못 챙기죠).



대체로 집안이 가난하다거나 하면 화목을 못 찾고 내내 표류하기가 쉽습니다(아, 물론 안 그런 훌륭한 분들도 많으시죠. 혹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부부의 직업도 번듯하고 외견상 아무 문제 없는 환경에서 자란 분들이, 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탄지경인 결혼 생활을 마지못해 이어가는 딱한 경우가, 이 책에 소개된 대로 이처럼이나 많다는 게 현대인들에게는 충격입니다. 이건 남들의 사례를 봐도 충격인데, 이렇게 말하면 "너의 일이 아니고 남 일인데 니가 충격 받을 게 뭐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 답은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주저없이 나올 겁니다. "나도 혹시 결혼하면 이렇게 되는 것 아닐까?" 혹은,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우리 부부도 저런 결과로 치닫는 중 아닐까?" 좋지 못한 남 일이 얼마든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각성이 올 때, 누구라도 충격을 받는 게 당연하죠.

저자는 이런 위기의 부부들을 분석하며, 우선 애착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하며 논의를 시작합니다. 아마 이 용어(좀 뒤에 나올 개념들도 그렇고)는 요즘 자계서(꼭 부부 관계 주제가 아니라도)에 많이들 나오기 때문에 귀에들 익을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게 성장과정에서 무난하게 애저을 받고, 받은 만큼 남에게 베풀 줄도 아는 "안정형 애착 유형"입니다. 옥시토신이 생애 전 구간에 걸쳐 내내 고르게 분비되는 게 그 본체적 특성이죠.



문제는 바로 불안정형 애착 유형입니다. 여기서 용어를 좀 유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 유형이 둘로 갈립니다. ①회피형, ②불안형. 후자는 그 상위개념인 "불안정형"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을 수 있는데요. 다릅니다. 확실히요. ②는 말 그대로 자신의 감정과 위상과 미래와 관계에 대해 불안해서 못 견디는 유형입니다. 그래서 쉴새없이 남들에게 들이대고 안기도 애정과 인정을 받아내려 몸부림칩니다. 반면 ①은 겉보기에 쿨해서 절대 남에게 폐 안끼칩니다. 그럼 ①은 무슨 문제인가? 자신이 진짜 책임을 지고 진득하니 보살펴야 하는 관계에까지 무책임하고 소홀하다는 겁니다. ②와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결국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파탄에 이른다는 거죠. 그래서 ①과 ②는 서로 반대, 모순처럼 보여도 그 상위개념인 "불안정형 애착 유형"에 다 포함되는 겁니다. 결귀결점이 같으니까요.



이 책의 사례들 중 대체로는 고생하는 쪽이 아내들입니다. 남편들은 분명 자신이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왜 내 아내는 저렇게 반응, 행동하냐며 책임을 다 씌우려 드는 게 보통이더군요. 한국 같으면 어떨까요? 뭐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무책임하며 강압적인 남편, 아버지들이 많긴 합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이 책에 나온 사례들처럼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고생하는 구조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도, 성장과정에서 문제가 있거나 해서 여성들이 남편들을 지옥으로 몰고가는 경우도 보입니다. 다만 그런 경우, 여성들은 일단 자신을 한번 반성하는 기제를 갖긴 합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닐까?"

저자는 위의 분석틀, 즉 애착유형에 따른 분류와 그 하위 범주 회피형/불안형의 기준을 사례 하나하나에 철저히 적용합니다. 저자는 이런 저술 태도라야 독자가 신뢰를 할 수 있는데, 서투른 이들은 앞에서 잔뜩 늘어놓은 총론이나 전제가, 뒤의 각론에서 전혀 안 먹히거나 흐지부지, 혹은 전혀 다른 소리를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런 책은 그냥 잡담에 지나지 않죠. 반면 이 책은 저자가 최초에 내세운 대전제와 이론에 끝까지 충실합니다. 이러니 책을 다 읽고 나도 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고, 동시에 저자의 논지에 설득이 되는 겁니다.

요즘은 정기적으로 건강 진단을 대부분 받습니다. 혹 초기 단계의 종양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무작정 무시하고 지금껏 살던 패턴을 계속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저 비탄에 빠져 의욕을 상실한 채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까요? 제 생각엔 이 역시 ①회피형, ②불안형 두 범주에 넣어 분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 두 반응 중 어떤 것도 옳지 않으며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 대처임을 잘 압니다. 헌데 정작 자신의 부부생활(혹은 연인관계라든가)에는 이를 적용시키지 않으려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속으로 엄청 뜨끔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겁니다. ②에서 자신과 공통점을 많이 발견한 분들은, 이거 큰일났다며 종전보다 더 배우자나 연인을 들볶고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 문제없는(사실은 그저 "안정적 애착 유형"인) 분들도, 해당되는 부분이 많다며 지레 걱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허나 사람인 이상, 이런 극단적인 사례자와 조금이라도 겹치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죠.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경계심을 갖고, 자신이 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 후, 약점을 고쳐 나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나는 전혀 해당 사항 없어!" 이렇게 장담하는 분들은 오히려 ①에 된통으로 적용되는지도 모릅니다(아니라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고쳐나가는 게 인간이고, 또 바람직한 남편이고 아내입니다. 방심하다가 이 책 21유형 중 하나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하고, 배우자에게 속을 트고 약점을 인정하며 아껴 주고 사는 게 우리들 유한한 인생의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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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7-06-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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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그레그 제너 저/서정아 역
와이즈베리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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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나폴레옹 등이 언제 어디서 대단한 위업을 쌓고 유방백세의 이름을 남겼는지는 우리들 모두가 학교에서 사회, 역사 시간에 열심히 배워 왔더랬습니다. 위대한 선인들이 남긴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그 후손들인 우리가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데 큰 기여를 하는 중이니, 학창 시절 골머리를 싸매며 배운 노고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헌데 위인들의 거창한 위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들 평범한 소시민들이 매번 일상에서 접하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사업상의 약속을 정확히 지키거나 연인과 함께 달콤한 추억을 만드는 일, 혹은 지친 몸의 활력을 목욕, 샤워를 통해 회복하는 일, 배고플 때 단돈 얼마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편익 등이, 정확히 언제부터 가능했고 "일상"이 되다시피했는지 역시 중요한 의의를 갖습니다. 하지만 이 소소하고도 고마운 혜택이 누구 덕분에 처음 가능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사회 제도의 일부로 자리잡았는지는 교과서에서 배운 바도 없고, 어디 가서 알아봐야 하는지조차 우리가 모릅니다. 위인들의 업적에 기대는 건 우리 인생의 지극히 중요한 몇몇 순간뿐이지만, 의식주의 편리를 누리고 용변의 생리를 해결하는 건 매일매일 우리가 입은 혜택인데도 말입니다. 양쪽을 놓고 무게를 가늠하면 과연 저울 추가 어디로 기울지, 아무도 장담 못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편의를 모조리 거부하고 살기란, 당장, 지금부터,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소소한 일상의 자그마한 편리함이 언제부터 가능했는지를 아는 건, 그저 호기심 해소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결코 당연하지 않았으며, 이처럼이나 많은 이들(그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이름도 모릅니다)의 지혜와 공헌이 쌓이고 쌓여 비로소 가능했음을 아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마음이 숙연해지고 일상의 고마움에 대해 절감하게 됩니다.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과 (알고보니) 매우 깊은 저 먼 연원을 깨닫게 되면, 위생과 기초 생존 욕구의 원활한 해결(남는 에너지로 다른 고차원적인 작업과 상념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이 우리 생을 몇 배로 행복하게 해 줌을 알고, 나 자신의 마음부터를 평안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 혹은 한 세기 전만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사람 사는 게 짐승이나 다름없었을 생각하면 아찔해지죠.

책은 여태 몸을 숨긴 채 눈에 띄지 않았던 정말로 소소한 일상의 역사를 자세히 다룹니다, 위인의 행적과 굵직굵직한 정치사는 권위 있는 문헌이 공인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기에(역사가 최초 기록된 시점부터 이미), 정확한 분석과 탐구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소소한 생활사는 파편적으로 흩어진 기록을 일일이 조사, 취합해야 하고, 기록자들이 농담, 여담처럼 남긴 흔적에서도 단서를 얻어야 하므로 너무도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재미있는 농담처럼 들려 주는 저자의 내공과 박학다식함에 독자로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오늘날처럼 12시간 60분 12개월 단위법으로 정착하여 널리 쓰이게 된 건 어떤 절대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프랑스 혁명 이후 지도층이 그저 정치적 세력 교체만을 이룬 게 아니라, 전근대성을 몰아내고 근대성, 합리주의 사상을 국가 지도 이념으로 정착시키려 든 노력이 자세히 소개되었다는 점입니다. 앙시엥 레짐의 진정한 붕괴는 비합리적인 제도의 전복과 대체에서 비롯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미터법 등 표준단위의 계산, 측정이 10진법에 기인하기에, 12월 체제인 역법도 10개월 단위로 바꾸는 등의 개혁을 시도한 건, 사회와 민중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했기에 실패했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이 정보를 전하는 톤과 분위기가 대단히 유머러스하기에, 인간의 관습과 제도가 절대적인 듯 보여도 실제로는 사소한 우연들이 겹치듯 끼어든 결과인 점, 우리는 허탈하게 절감합니다. 저자는 그저 우리에게 쉽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이런 캐주얼한 화법을 쓰는 게 아니라, 세상의 거대한 이치 배후에 어떤 필연성이 도도히 흐르는 것만은 아님을 소탈한 말투 속에서도 전달하는 거죠.



독자들은 특히, 일광절약 시간제라 부르는 서머타임 제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과 서유럽에 정착했는지, 저자의 너무나도 재미난 설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책 전체를 통틀어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신나게 읽힌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도 1988 서울 올림픽 전후로 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가 현재는 거의 언급도 안 되는데, NBC사와의 방송 중계권 협상 과정에서 그리 되었다는 재미있는(좀 창피한) 일화가 있죠. 저자 그레그 제너 님께 이 사실을 알려주면 아마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것 같습니다.

인류는 체내에서 동화 이화 작용을 반복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개체이기에, 이 부분 한정해서 여타의 하등 동물과 운명이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정착하여 군집 시스템을 일구고 사는 처지이기에, 적 아닌 동료 거주자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지의 문제가 실로 난감하다는 거죠(아니, 자기 자신의 것이라도요). 감정적인 불쾌감도 불쾌감이지만, 위생상의 문제가 더욱 절실합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부친 스트라보 장군도 이 문제 때문에 전황을 크게 그르칠 뻔했다는 역사가 전할 정도이니 배설 이슈는 더 이상 "소소"하지도 않은 셈입니다. 여기 대해서는 많은 대중서들이 이미 재미있는 정보로 독자들과 만난 바 있지만, 제가 여태 읽은 중에서는 이 그레그 제너의 책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포괄적이었습니다. 조선에서도 시비법이 고안된 후 수확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유럽 역시 강물을 더럽히는 수세식이 아닌 저장식으로 농사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더 우세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6.25 당시 파병되고 이후에도 주둔한 미군들이, 논밭에 배설물을 비료로 주는 우리 농촌의 관행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들 역시 소위 "문명"의 관점, 기준이 바뀐 지 그리 오래지 않다는 점을 알고 부끄러워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옷 파트 역시 독자가 한번 펼쳐들면 끝까지 읽어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재미있습니다. 원더브라가 이미 고대에도 그 원형이 존재했다는데, 속옷(특히 기능성)의 착용이야말로 우아한 현대인의 표징이라 알아 온 우리들로서는 맥이 빠지기까지 합니다. 한편으로,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문자 기호의 아득한 원형이 존재했으며, 표음 문자가 진일보한 수단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현대에 들어 픽토그램이 다시 널리 쓰인다거나, 메신저 등에서 애용하는 이모티콘, 스티커 등의 인기는 우리에게 사물과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음을 깨우칩니다. 한자(漢字)만 해도 전산화 시대에 대체 어떻게 활용하겠냐며 중국을 두고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본 게 몇십 년 전인데, 지금은 다양한 입력 방식을 지원하는 앱의 개발로 중국인들도 무리 없이 의사소통을 합니다. 당연한 상식이 반드시 절대적 타당성을 갖고 받아들여져야 할 이유는 없음을 저자는 여러 고찰을 통해 깨우칩니다.

미국 대중 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상큼하고 기발한 비유가 매우 재밌게 와 닿을 것입니다(정작 저자는 영국 분인데). 표준 시간제 도입을 설명하며 저자는 "돌리 파튼의 나인 투 파이브가 혹여 '밤9시부터 새벽 5시'로 이해될 뻔했다"며, 대중들의 생활 습관에 맞지 않는 무리한 기준의 도입이 얼마나 우스운 결과를 낳을 뻔했는지 실감시켜 줍니다. 그런가 하면 만약 에디슨이 "헬로"라는 통화상의 표준 인삿말을 "어호이(ahoy)" 등으로 고안했다면, 라이오넬 리치의 대 히트곡 "헬로"도 "어호이"가 그 제목, 가사 후크가 되었겠다며 독자의 웃음을 유도합니다. 이뿐 아니라 브래지어(혹은 비키니 탑)의 유래를 설명하는 중, <공룡 백만년>의 여우주연 라켈 웰치(이 포스터가 너무 유명해서 사회학 서적에도 도판으로 실릴 정도죠)가 "원시인 브라"를 입는 모습은 결코 영화 속에서의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여 독자를 놀라게 합니다(아마 반 세기 전 영화 제작자들도 몰랐을 듯요).



번역도 참 깔끔한데요. 마치 한국 저자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책을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역주(본문 중 삽입)도 많이 달려 있어서 저자가 어떤 대목에서 위트, 말장난(pun)을 시도했는지 우리는 놓치지 않고 웃으며 감탄할 수 있는데, 이런 대중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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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살아있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7-03-0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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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헌법은 살아있다

이석연 저
와이즈베리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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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법제처장 이석연 변호사님(전북 정읍 태생. 전북대 졸)의 저서입니다. 몇 년 전 어느 정치인이 대한민국 헌법1조를 거론하며 꺼낸 한 마디가 화제에 오른 이후, 대통령 탄핵이라든가 조기선거 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부터는, 그저 당연히 거기 머무는 근엄한 문서겠거니 정도로 여기던 헌법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늦은 느낌이 크지만 국민주권, 참여하는 시민 의식 함양 등을 위해 다행스럽다고 하겠습니다.

헌법은 본디 추상규범, 최상위 규범, 원칙 규범이기 때문에, 숫자나 기간, 정년, 명칭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용어가 여러 의미를 띨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 개인이 법전을 들여다 보며 편할 대로 새기고선 "이게 옳다!"란 주장을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사인(私人)뿐 아니라, 법과대학에서 평생토록 헌법 조문만 파고 든 학자라고 해도, 비록 법조 실무에서 그의 견해가 사실상 주의깊게 경청되는 형편이라 해도, 그 자체로 실정법 같은 권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그가 길러낸 제자들이 사법관료, 법관 등의 자리에 올라 스승의 가르침을 현실에 적용을 시킬 수는 있다 해도). 이른바 "학리 해석"과 "유권 해석"이 구별되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경우이죠.

국민들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은, (헌법이 보장한) 사법권을 지닌 법원, 헌재 뿐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조선 후기 현종 연간에 벌어진 예송 논쟁에서, 두 차례 모두 쟁론의 승패를 결정한 건 최종적으로는 조정이었고, 사실상 한 당색의 손을 들어 준 결과라고는 하나 공식적으로는 일파의 당론을 따른 게 아니라 "국조오례의" 등 전례를 따랐을 뿐이라고 극구 강조한 고사나 비슷합니다.

여튼 이런 이유 때문에, 아무리 권위 있는 전문가의 견해라고 해도 개인의 해석이 헌법 문언의 뜻과 효과를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 우리 범속한 세인의 생각이 그런 원칙적이고 까다로운 경계에 머물겠습니까? 이번 판결은 어느어느 법관의 개인적인 생각에 좌우되었다느니 하며 경망한 입방아를 찧어 대게 마련이죠. 어쩌면 이런 경솔한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저자분 같은 권위 있는 법조인이 "그 격변의 와중에서 막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개인이 당시 무슨 소신과 신념으로 사태에 임했는지"를 진솔히 회고하는 내용을 들어 보는 건, 건전한 시민 의식의 고양을 위해서나 지적 호기심의 충족. 혹은 유효한 역사의 재구성에 사료로 취합하기 위해서나 여러 모로 유익합니다.

건국절 논란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조목조목 제기하십니다. 일단 (본문은 아니라고 해도) 헌법 전문에 "3. 1운동으로 성립된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이란 언급이 있기 때문에, 임정이든 3. 1운동이든 실정법적 의의를 전적으로 배제하기란 어느 입장에서도 어렵습니다. 저자는 1948년설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이를 헌법 정신에 반한다고까지 단정하시고는 그 대안으로 1919년 3월 1일을 제안합니다. 국가의 3요소 중 주권의 부재 상태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실효적 주권이 미치지는 못 해도 "휴전선 이북의 북한 점령 지역"에까지 대한민국의 법적 권위를 인정함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논거입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민족의 기원을 문자 그대로 BC 2333으로 인정하자는 부분인데, 터키 공화국이 서기 552년에 유연을 격파하고 독립한 <자치통감>의 기사를 근거로 하는 예가 있듯, 사대주의의 폐습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이런 주장이 고위 공직자, 유권 해석 공표의 한 주체였던 분의 견해라는 이유에서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저자께서도 책 속에서 이를 한 시안(試案)이나 사견으로 제시하기보다, 어떤 입법적 권위가 부여된 국가적 컨센서스로 삼자는 취지에 가깝습니다.

어느 유력 대통령 후보가 최근에 즐겨 주장하듯, "촛불집회는 대표적인 저항권 행사"라는 점을 들며, 개헌 논의가 일기 시작한 지금 아예 "저항권"을 실정헌법 조문으로 명시하자는 말도 있습니다. 저자께서 지적하시듯 헌재 판결례 역시 한 결정문에서 저항권의 개념 정의까지 적시한 적도 있기에, 우리 헌정 질서가 이를 아예 백안시해 왔다고 보기는 무리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학계와 실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역시 명문으로 이걸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행사요건은 엄청 까다로우며, 이른바 "혁명권"과 저항권을 엄격히 구분하는 게 또한 현실이죠. 현재는 꽤 왜곡되어 인식되는 형편이긴 해도, 미국 역시 소위 "총기 소지의 권리"를 헌법 제정 당시에는 저항권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권리장전에 편입한 것입니다. 여튼 법제처장직이라는 고위 공무원 출신인 저자께서 저항권을 명문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을 하신 건 신선한 느낌입니다.

현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탄핵 사유의 당부는 사법당국의 확인 정도로 충분하다는 쪽입니다(즉, 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 또한 탄핵 심판은 경우에 따라 상황의 긴급성과 함께 전개되기 일쑤이므로, 훈시 규정의 명문에 구애받을 것 없이(훈시 규정은 법적 효력이 약하지만, 무엇을 강행법규로 보고 무엇을 훈시 규정으로 볼지는 물론 사람마다 해석이 갈립니다) 신속한 심리, 판결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행 헌법에 대해서는 시국이 엄중하던 때 밀실에서 머리를 맞대어 협의를 마친 졸속성이 적잖게 노출되며, 특히 5년 단임제는 국정 불안, 책임 정치 실현 실패 등 문제가 많은 제도라고 지적합니다. "개헌은 국민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특히 인상적인데, 국민발안 국민소환을 제도화하자,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 대한 국민 심사제를 도입하자, 국어, 국기, 국가(anthem), 수도에 대해 명정하자, 정당과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자 등이 골자로서 이번 개헌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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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스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6-12-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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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컨페스

콜린 후버 저/심연희 역
북폴리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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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란 단어는 부끄러움과 설렘이란 감정을 동시에 풍기는 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꼭 청춘의 애정 고백만 그런 게 아니죠. 인생에서 큰 상처를 입고 그 아린 흉터를 아직 추스려야 하는 처지에서도, 어느 순간 미친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앞에 전율하며 "이제부터 품는 고백의 씨는 꽃을 피울지, 아니면 또 아프게 유산될지"의 섣부른 갈등을 부를 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의 객관적 전망, 가망은 제3자의 눈으로 볼 때에만 정확히 판단이 가능합니다.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씐다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만, 한번 맹렬히 버닝할 때는 그 사람의 정확한 실체가 도통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명망 있는 변호사의 차남이고, 항상 살갑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 엄청난 우군이 되어 주는 든든한 형까지 가진 오언은 불행히도 본인이 "문제아"입니다. 그는 약물 중독이란 나쁜 습벽이 있고, 의지가 유약해서 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배경이 저만큼이나 든든한데도 주변에서 그를 누구의 배필로 추천하기 망설이는 건 이 때문이지만, 적어도 사랑에 빠진 상대를 배려하거나 그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은 아는 인간미는 누구보다 농도 짙게 간직한 남성입니다.

한편 오언과 눈먼 사랑에 곧바로 빠져든 오번 역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만찮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벌써 "시아주버니(물론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끼어든 과한 뉘앙스가 들어 있겠습니다만)"가 곁에서 맴도는 그녀인데, 사실 우여곡절 끝에 혼인 관계가 해소되었으므로 법적인 인척도 뭣도 아니긴 합니다. 그녀는 미장원에서 일을 하며,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오언의 평가에 따르자면) 사업 감각이 탁월한 면이 있습니다. 두 사람 중 어느 하나가 더 (억울하게)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서로 공평하게 죽고 못 사는, 대단히 공평한 사랑이 싹튼 것마냥 보이는데 뭐가 문제일까요? 여기서 "고백"이라는 화두가 제법 심각하고 진지하게 등장합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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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6-12-1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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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리처드 서스킨드,대니얼 서스킨드 공저/위대선 역
와이즈베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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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포털에 게시된 언론사의 기사(조만간 외국어 간의 완전한 통역이 가능한 AI 소프트웨어가 등장한다는 내용) 밑에 이런 덧글이 달린 걸 본 적 있습니다. "통역사가 직업을 잃을 정도 같으면 다른 직업은 뭐..."

이 책의 역자께서는 서문의 말미에, '"원제 중 profession의 뜻은 '직업'이란 뜻이므로, '전문직의 미래'보다는 '직업의 미래'라는 게 차라리 적절하다."라는 언급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위에 인용한 어느 네티즌의 덧글처럼, 도대체 통역사처럼 고도의 지식과 감각과 순발력을 요하는(물론 국제행사의 TV 생중계에 출연 가능할 정도의 일류를 두고 하는 말이겠죠?) 직종마저 "인공 지능이 떨어대는 유세"에 밀릴 정도라면, 사람이 고유의 정신과 육체적 기능으로 AI에 밀리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직업은 하나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자의 지적은 (설령 그런 의도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해도) 백 번 타당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동력, 트렌드, 지향점 중 하나인 AI가 몰고 올 미래는, "전문직을 필두로 한 직업 전반의 소멸과 퇴조상"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직업 일반, 전반의 위기를 짚어내기 위해선 가장 대체되기 힘든 직업군일 "전문직"의 현 시점(4차 산업혁명이 노도와 같이 밀어닥치는 작금)에서 갖는 위상, 전망, 변화상이 무엇인지 짚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경제적"입니다.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 전문직은 과연 AI의 효율성(엄청난 저장 용량과 정보 처리 속도를 앞세운)과 원가 우위(사람보다 싸니까 AI를 쓰는 거죠. 아니라면 사람을 고용하는 게 나을 거고요)에 밀려 사멸하고 말 것인지, 전문직이란 막연한 말로 포섭한다 해도 직종이 천차만별인데, 어떤 건 선방하고 어떤 건 근근히 버티며 어떤 건 벌써부터 단순노무직으로 전락하고 마는 중인지, 각론별로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사"자 붙은 직업만 가지면 열쇠 몇 개가 딸려온다느니 하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낭만과 환상이 뒤섞인 주문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AI가 선도하는 4차 산업 혁명의 물결은, 이미 "그런 사 자 붙은 직업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주겠다는 듯" 공포의 저승사자처럼 다가오는 양 일반에 인식되어 있습니다. 저자 서문에 적힌 한 문장을 읽으며 슬쩍 웃음이 지어졌는데요, 말인즉슨 "... 벌써 이런 논의를 꺼내는 것만으로 이 책을 슬쩍 한켠으로 밀어 놓는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입니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 든 이들이라면, 아마 이런 "매우 솔직한" 저자들의 언명과 너스레 때문이라도 책 읽기를 도중에 멈출 수 없을 줄 압니다. 5년 전쯤 안철수씨가 재인용한 유명한 말(윌리엄 깁슨) "미래는 벌써 우리 옆에 다가와 있지만, 다만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처럼, 현장의 전문직들이 전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예언이라면 일말의 불안감도 느낄 필요가 없죠.

다른 한편으로, 전문직은 정말 기술 발전의 도도한 추세 앞에 소멸하고 말 운명일까요? 책 1장의 제사(題辭)에는, J S 밀(공교롭게도 부친의 천재 교육으로 위인이 된 인물이네요. 혹 몇 백 년 후인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인공지능을 가장 싫어했을 법한)과 케인즈(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천재형 두뇌였죠)의 말이 인용되어, 인공 지능 혹은 기계가 주도하는 문명 일반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합니다. 사실, 이미 1차 산업 혁명 당시에도 지적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곤경과 아픔을 안긴 바 있던 흐름입니다만, 기술의 발전은 결국 사람의 직업을 빼앗고 입지를 축소시키는 쪽으로 대세를 일찍부터 잡은 바 있습니다. 맑스의 공산주의 이념 역시 이런 위기 의식(프롤레탈리아 계급뿐이 아닌, 인류 일반의)에서 싹을 틔운 거겠고요. 이런 관점에서라면 현재의 전문직 잠식, 사멸 징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시간의 문제일 뿐 조만간 전면적으로 대두할 사회 문제임에 분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리 문제를 단순화하여 짚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책이 취하는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믿음직한 태도인데요. 다시 역자 서문에서 일부를 인용하자면 "... 저자들은 논점의 단순화와 아젠다의 센세이셔널한 선점을 위해, 근거 없이 미래상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의 징후가 느껴지만, "이건 모두 현실이 아니야!"라며 무작정 부정한다거나, 정반대로 "우린 이제 죽었어!"라며 지레 절망에 빠지는 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위험 중 어떤 건 사뭇 가능성 높은 현실이고, 어떤 건 터무니없이 과장되었으며, 어떤 건 확률이 반반이라 당사자의 현명한 대처에 따라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근거 없는 낙천주의나 비생산적인 패배주의가 아니라,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대처 방안의 강구입니다.

역자께서는 본인이 명문대 상경계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이라서인지, 한편으로 "전문직의 점차 어두워져가는 전망"에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이 책을 펼쳐든 가상의 독자들에게 독려의 말을 건네며, 혹은 (아마도) 한창 장래 모색에 대한 걱정에 여념이 없을 자녀를 키우는 학부형으로서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설계하게 도와야 할까?" 같은 고민의 일단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참으로 방대하게, 그러면서도 세심하고 치밀한 근거를 들어가며, "과연 지금의 어떤 직업이 살아남고, 어떤 직업은 파괴적 혁신(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개념을 그대로 원용하더군요) 없이는 사라지고 말지, 선입견이나 논리의 도약 없이 차분히 짚어 나갑니다.

의료 서비스의 경우, 몇몇 문예나 영상물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듯, 컴퓨터의 거친 알고리즘에만 의존하는 돌팔이들이 스스로의 무능을 폭로하며 전문직에서 퇴출되어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 지금보다 더 기계에 의존하고, 방대한 데이타베이스에 종속될 것이며, 사물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유효하고 세밀한 정보의 도움을 받아, 치료보다는 예방의 기능에 더 힘을 쓸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의료 서비스의 퇴조를 부른다기보다, 오히려 본연의 인술적 기능으로 복귀하는 것이며,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판단은 인간에 더욱 의지하는 결과를 부르겠습니다. 전산처리장치의 장점은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 처리입니다만, 이의 메타적 의미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게 한계입니다.

책 앞에 나온 케인즈의 명언에도 드러나지만,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보다 낡은 다수의 고정관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는 게 몇 배는 더 어렵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자기 반성, 때로는 전면적인 자기 부정을 통해 거듭 태어날 수 있어서 위대한 것입니다. 기계는 치밀하고 실수가 없지만, 기계의 지능에 발전이란 없으며 "창조주"인 인간이 재 세팅을 해줘야 새로운 분야 작업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알파고를 통해 "자체 학습"이 가능한 지능을 구현하겠다고 했지만 마케팅 표어와 학문적 성과를 혼동해서는 곤란하죠.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기계의 건조하고 융통성 없는 결론이 냅다 내려지는 걸 과연 환자 중 몇이나 이의 없이 수긍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도 인간이고 기적을 일궈내는 것도 인간의 영역입니다.

세무나 회계 서비스는 이미 많은 부분이, AI까지 갈 것도 없이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결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빈도가 줄지 않는 각종 경제 사범의 현황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의 놀라운 창의성과 교활함(?)은 치밀한 법망을 빠져 나가며, 이를 적발해 내는 것도 인간의 육감이 하는 일입니다. 법률 서비스는 법정에 출석하여 펼치는 변론이라든가, 언어 속에 스며든 모호한 의미차이로 인해 쟁송의 승패가 180도로 바뀌곤 하는 현상들이, 그저 기계적인 처리만으로는 대체가 요원한 형편이죠. 20여년 전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때, 일부에선 사이버 가수, 사이버 배우들이 모든 엔터테이너를 실직시킬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사람의 귀를 가장 잘 만족시킬 수 있는 음색과 선율, 사람을 가장 흐뭇하게 만들어 줄 신체 비율과 이목구비의 배치... 이런 것들은 현재 하나도 실현되지 않은 채, 단 한 명의 슈퍼스타 캐릭터도 사이버상으로 개발되지 못한 채 여전히 개성 넘치고 매혹적인, 디지털 파라미터로 도무지 함수변환되지 못한 연예인들이 은막과 모니터를 누비는 모습이죠.

책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전문직들이 뼈를 깎는 혁신과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모든 특권적 위치와 고소득은 (과거 육체 노동자들이 그러했듯)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AI가 진화하고 4차 산업 혁명이 전에 없던 상품- 용역의 생산- 소비 구조를 창출해도,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해 교정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임무는 여전히 인간의 창의성에 맡겨져 있는 겁니다. 농경 혁명 이래 언제나 인류가 걸어 온 족적처럼, 낡은 건 쓸려나가고 새로운 건 대접받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기술의 진보는 (압제적인 스카이넷이나 매트릭스의 도래가 아닌)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하는 거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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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6-11-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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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 기쁨을 길들이다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이세진 역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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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대한 악의 조건, 압제의 근원이 사라졌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에게 일거의 행복이 찾아오는 건 아닙니다. 저자는 이 책 중 차우셰스쿠의 몰락 후 느닷 늘어난 고아 수를 감당하지 못 해 비참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떨어진 루마니아의 보육원 시설을 그 예로 듭니다. 갑자기 찾아든 시대의 변화를 언제나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차라리 태생적으로 현명한 존재라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의 지혜가 (그 동족으로부터도) 그리 신뢰받는 자질이었을까요? 인간이란 종이 그만큼이나 믿음직하고 넉넉한 지혜를 갖췄다면, 철학자라는 직종이 처음부터 필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결국 기쁨이 이겼다!" 모든 드라마와 개인의 분투 노력에 대한 사연이 다 이처럼 마무리된다면 종교라든가 기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고안해 낸 어떤 무형적, 인문적 장치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여튼 저자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과 직장에서 필사적으로 땀과 눈물을 경주하는 건, 결국은 조금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고 긍정의 기운을 몸과 영혼에 채우기 위함입니다. 치과의사 겸 연예인인 김형규 씨도 (지금 말고 VJ로 뛰던 학생 시절) "행복해지고 싶어요."를 사는 목적을 표현하는 말로 대뜸 코멘트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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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세트 | 경제경영/자기계발 II 2016-03-2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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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종필 증언록 세트

김종필 저/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편
와이즈베리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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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탁월한 족적을 남기고 특출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사람 자체를 놓고 "역사"라 일컫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 인물에 대해 찬반과 호오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실정이라면 어떤 중립적인 규정을 시도한다는 것부터가 지난한 작업입니다. 이런 사정들을 모르지 않지만, 왠지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그리고 근엄한 평자까지 겸하는 중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그가 곧 역사였다"라는 비유적 평언을, 좀 다른 의미에서 허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역사(일단 자유당 집권기를 제외하면)의 결정적 전환점에는 그가 항상 자리해 있었습니다. 5.16 군사정변의 한 주역(이때 그는 실제로 예비역이었으므로 병력 동원의 중심에 서 있지는 않았죠)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3선개헌(처음에 그는 반대 입장이었고, 여당 내에서 집중적으로 반대했던 인물들은 바로 그를 옹립하려는 의도였죠), 유신, 신군부의 등장, 여소야대 정국의 캐스팅 보트, 3당 합당, 그리고 마지막 DJP 연합까지, 한 개인이 이처럼이나 정계에 오래 머물고 그 머문 기간 동안 현대사의 전환점적 사건들에 모조리 개입할 수도 있는 건지, 이 두꺼운 책 페이지를 넘기고 쓰다듬을수록 참으로 경이롭다는 생각, 그리고 한편으로 개탄스럽다는 감회, 이 양가의 상념이 동시에 머리 속을 교차합니다.

얼마 전 타계한 YS의 경우 심한 고초와 격렬한 투쟁의 시기를 겪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치욕, 몰락의 쓴맛을 인생에서 다신 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JP는 "영욕의 인생"이라는 말이 잘 걸맞을 만큼, 영화로울 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가였고, YS나 DJ와 결별할 때는 노년에 참으로 수치스러운 곤경에 몰린다는 느낌을, 그에게 공감할 아무 이유가 없는 입장에서도 지울 수가 없었고요. 이 거대한 생은 언제나 공적 인생이었고, 그의 부상과 몰락 모두가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바꿔 놓았던 중대한 사건들과 긴밀히 엮여 있었습니다.

이 책은 케이스입으로 1권, 2권이 함께 묶여 있습니다. 회고록을 1,2권으로 나눠 내는 게 보통인데, YS나 이종찬씨, 박철언씨 같은 경우는 케이스입도 아니고 하드커버도 아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은 이 책처럼 하드커판 2권 묶음이었고요. 이 회고록들을 저는 일일이 구입해서 꼼꼼히 읽어 본 독자지만, 이 책은 그런 기록들과는 또다른 개성을 풍긴다는 느낌이 지금 정리됩니다. 솔직히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렴풋이나마 한 문장으로 적어 보자면 "자신이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보다 솔직한 태도로 털어 놓았다" 정도겠습니다.

얼마 전(이 책 출판 기념회 말고, 그의 구순 잔치 때), 그는 대단히 격노한 어조로 5.17 특별조치 당시 신군부의 재산 환수 처분에 대해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당시의 그 참담한 처지에 대해, 독자가 처연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세히 술회합니다. YS에 의해 문민정부에서 축출당했을 때, (이 증언록에는 안 나와 있으나) "이것보다 더 힘든 일도  다 겪어 봤다."고 결기를 다지기도 했죠. 이 증언록에서 그는 YS의 회고록 일부를 인용하며, "김종필을 붙들어 두지 못한 게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라고 한 말을 문언 그대로 믿고 싶다며 담담한 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잘 읽어 보면 저자는 "믿고 싶다"고만 했지 그 말이 틀림없겠다거나 의당 그래야만 한다는 취지가 아닙니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 본인의 아전인수격 왜곡이나 미화, 윤색이 최대한 절제된 게 특징입니다. 이런 말까지 다 털어놓는다는 게 자존심이나 감정적 이유에서도 쉽지 않을 텐데 싶은 대목이 참 많았습니다. 워낙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다 보니 회고록에 그런 말이 당연히 들어가지 않겠나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치부나 좌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저런 가감없는 태도를 취하기란, 유명인이 아닌 우리들 대중의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게 아니죠. 공산주의식 강제 자아비판이 아닌 이상, 당사자 본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 중에는 가장 솔직한 한계까지 가지 않았나는 생각입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 근접 거리에서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르포도 시중에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제법 묵직한 평론과 일차사료에 가까운 중요성을 담은 것도 있고, 잡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런 저널리즘의 충실한 "증언"들을 균형감각 있게 읽고 취사선택을 하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조감도를 머리 속에 그리는 게 보통이죠. 이런 기록들과, 정치인의 "회고록"은 대체로 내용이 크게 상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양식 있는 독자라면, 그래도 중립적인 위치겠다 싶은 저널 쪽을 더 크게 의존하는 게 보통이죠. 그러나 이 책은, 거물급, 아니 그 정도 말로는 올바른 형용이 어려운 초거물급 인사 본인의 입으로 털어 놓은 증언을 정리한 내용인데도, 시선이 담담하고 초연하며 공정합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박정희 정부에서 모두 국무총리를 역임한, 어떻게 보면 한 개인이 지니기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력을 갖춘 진귀한 케이스입니다. 성향이 전혀 상반되고 화해가 불가능한 정적 둘과 차례로 손을 잡고, 두 권력자들로부터 모두 견제를 받았으며, 그러면서도 두 권력자 모두 그의 힘을 어느 순간에는 절실히 필요로 하며 자세를 낮추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실로 많은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이 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뇌리에 머문 느낌은, 이분이 박, 김 양 진영으로부터 비교적 비슷한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읽어 보면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 업무 능력과 추진력 등에 대해서만 높은 평가를 하고 있을 뿐, 자신의 처삼촌이기도 한 그에 대해 가슴이 사무칠 만큼 감정적 접착을 보이지는 않습니다(기념관 건립 건은 그저 의리의 발로로 보이기도 하고요). "유신 정권 치하에서 겪은 일은 살아 있는 내가 대신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하는 대목에선, 정계를 누빈 그 수많은 실력자들 중에 진짜 인간의 가슴을 지니고 사내다운 낭만과 진심을 유지한 이가 이분뿐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회고록"이 아닌 증언록입니다. 책을 JP가 직접 쓰지 않고 기자들한테 들려 준 이야기를 다른 필진이 정리한 까닭도 있지만, "회고록"에서 흔히 드러나는 아전인수식의 위증 없이, 역사의 법정 앞에 선 증인의 겸손된 자세로 담담히 들려 주는 "자신과 매듭매듭 결부된, 상처 많은 한국사"의 진술 자체라는 점에서, 이 제목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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