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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리뷰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 
책을 사서 읽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 
너무 꼼꼼하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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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미 I LOVE ME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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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이 러브 미 I LOVE ME

베브 아이스베트 저/강현주 역
혜윰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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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긍정할 수 있어야 행복해집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에서도 역시, 자신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다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단계를, 마음의 평정을 찾는 첫째 단계로 규정하더군요. 이때 자신의 단점을 끌어안으라는 건, 무작정 합리화를 일삼으라거나(그렇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더 커집니다) 단점에 눈을 감으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쪽이죠.

이 책의 저자는 카툰과 삽화를 담당하는 프리랜서라고 합니다. 사실 요즘 같은 불황에 여간 능력이 뛰어나지 않고서야 안정적으로 일감을 맡는 자체가 어렵고, 지속적으로 업무를 위임 받아 왔다면 그 자체가 대단한 수완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잘나가도 그 현황이 얼마나 유지될지 불안할 수밖에 없고, 일에서 소외되면 그로부터도 역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게 당연하죠. 저자는 이처럼,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서도(동료, 동종업자들은 부러움의 눈길로 봤겠습니다만) "불안장애"라는 병을 새로 얻어야만 했습니다.

저자가 아무래도 이쪽에 종사하는 분이다보니, 텍스트로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나가기보다, 주전공일 일러스트에 곁들여, 간결한 아포리즘이랄까, 자신이 직접 맞대면해 온 여러 문제를 함축적인 몇 마디를 거드는 형식입니다. 이 책의 저자님과는 종사 분야가 크게 다르지만, 저는 과학자 박경숙 박사님이 자신의 무기력증(helplessness)를 극복한 과정을 진솔하게 서술한 어느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도 무엇보다 저자가 그 "병"을 얻고, 싸우고, 끝내 몸과 마음에 떨쳐 내기까지의 긴 여정을 가감 없이(그리고 간결히) 서술한 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불안장애"의 근원을 저자는 "자기 혐오"에서 찾습니다.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현재의 자신"을 혐오한다는 뜻으로 저자는 설명합니다. 왜 현재의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가? 본디 있어야 할 나를 "현재의 나"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나"는 아마 많은 현실과 내키지 않는 타협을 하고, 이상을 훼손하면서까지 자리를 보전한,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고, 나쁘게 말하면 비겁한 자아일 겁니다. 내가 꿈꾸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너는 왜 빛나고 순수한 꿈을 희생하고 구차한 이익을 택했니? 결국은 (이상적 자아를 향한) 자기애의 발현이 (현재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로 바뀐 것입니다.

이제 결론은 간명해졌습니다. 비록 소중한 많은 것을 잃은 나이지만, 그것을 어떤 대가(代價) 없이 날려 버린 건 아닙니다.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희생했다고도 볼 수 있죠. 무엇인가를 잃었지만, 그것을 아쉬워라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여전히 남아 과거를 그리워하기에, 현재의 나는 홍수에 떠밀려가지 않게 나를 지켜 준 고마운 은인이고, 한때 소중히 여겼던 무엇인가의 대상(對償)물로 여전히 남은 "나"입니다. 조금 더러워지고 금이 가긴 했어도, 여전히 "나"라서 소중한 그 자체로 보듬어 주면 안 될까요? "더 좋게 될 수도 있었는데"에 미련을 갖지 말고, "더 나빠질수도 있던 것을 이렇게라도 지켜 온 나"에 자긍심을 가져 봅시다. 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IT을 쫓아내고 나와 화해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게 저자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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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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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각하는 대로!

우에마쓰 쓰토무 저/김선주 역
시사일본어사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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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륙 음모론이 이상하게도 어린 세대 사이에서 인기입니다. 음모론은 본디 귀를 기울일 게 못 됩니다만, 당대인들도 의심 없이 믿었다고 하는 걸 왜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와서 새삼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지는 의아할 뿐입니다. 이에는 아마, 1980년대 후반 들어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간헐적으로 (그저 실패에 그친 게 아니라) 대형 참사까지 몇 건 발생하기도 했던 게 한몫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나사의 이런저런 프로젝트는 성과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게 "달 착륙" 만큼 대중에 임팩트를 주지는 못한 탓도 있죠. 앞으로도 무엇을 성취하건, 인간이 달에 한 발을 내디딘 것만큼 큰 인상을 남긴 사건은 좀처럼 다시 벌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여튼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역시, 1960년대의 미국 같은 초강대국은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겠죠)이 뭘 주도해서 인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이벤트가 재연이 안 되는 상황에서, 다만 성장 과정에서 저 달 착륙에 대해 엄청난 감명을 받고 자란 세대(솔직히, 그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그저 그러려니, 역사적 사실의 하나로 여길 뿐인데)는, 우주에 몸(정신적으로야 그간 인류가 이룬 간접 성과를 통해 얼마든지 침잠시킬 수 있죠)을 보다 가까이 접근해 보려는 꿈을, 국가 단위가 아닌 개인 차원에서 내 것으로 삼아 보려 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극소수는 이를 (아직은 미미한 단계에서나마)실천에까지 옮겼고, 이런 이들의 노력을 통해 어쩌면 (성장 동력이 모두 소진되어 간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세계 경기 재생의 힘찬 모티브 중 하나로 발전할 가능성마저 보입니다. 아마존 창업자이자 현 CEO인 베조스 같은 이의 몸부림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야 또 그런 꿈을 가진다 쳐도, 아무 배경도 없이 그저 동네 아저씨(할아버지?) 같은 분이 이런 야무진 희망을 현실에서 일부나마(일부라고 헐하게 표현하고 말기에는 제법 성과가 중대해 보입니다) 이루었다면, 그건 참 놀랍고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 우에마쓰 쓰토무(이분은 노력이라는 努자를 쓰시는데, 일본에는 쓰토무의 경우 단 한 글자로 이처럼 이름을 짓곤 하더군요. 개인마다 뜻이 통하는 다른 한자들을 두루 적용해 가면서)씨는, 시골 탄광 마을에서 태어나, 간신히 진학(책을 읽어 보면 정말 천신만고 끝의 과정이더군요)에 성공한 후, 어려서부터 키운 꿈 그 원형대로 별반 타협도 없이 자신의 진로를 펴 나갔습니다. 이분도 부친의 철물점을 이어받긴 했으니 가업 계승이 이뤄지긴 한 셈인데, 그게 그저 철물점에 그친 게 아니라 재활용 전자석 기업으로 확장, 재탄생했으니, 부친의 이름을 이보다 더 빛낸 아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겠습니다.

재활용 전자석 분야의 개척적 기업이라고는 하나, 책에 보면 나오지만 사실상 도심 외곽이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공장에는 대졸자가 단 한 명도 없는데, 사실 기업이라는 게 그렇더군요.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직원으로서 필요하지, 학벌이나 심지어 능력 요소조차 그리 긴절한 건 아니더라는 겁니다. 학벌과 능력이 좋아도 조직에서 겉도는 사람은, 회사에 장기적으로 해만 끼칩니다. 하긴 뭐 일도 안 하고 내가 원래는 뭐였네 이런 데서 일할 계제가 아니네 하며 환상에만 빠진(나이까지 많으면서 지하고 나이 차도 몇 살 안 나는 남들더러 어르신 소리는 악착같이 붙이고 다니죠. 그래서 애들 같은 싸구려 패션을 걸치고 다니나 봅니다) 인간보다는, 그래도 인맥이라도 갖췄거나 맡은 업무라도 야무지게 해 내는 사람이 물론 낫기는 합니다만(충성심이야말로 진정, 흔히 볼 수 있는 미덕이 아닙니다).

근데 저는, 뭔가 자기 분야에서 안 될 만한 상황을 극복하고, 남들 보기에 가망 없는 일을 해낸 분일수록, 그분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명언"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더라구요. "안 해 본 사람은, 안 되는 이유만을 남에게 가르쳐 줄 수밖에 없다." 거 참, 맞는 말입니다. 뭐 정주영 창업자의 "이봐, 해봤어?" (해 보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라는 뜻) 처럼, 기업가 정신은 일단 되든 안 되든 현장에서 부딪혀 보고, 안 되면 안 된 대로 뭔가 교훈을 얻어내기라도 하라는, 대단히 질박한 성격의 것입니다.

반대로, 일단 해 보고 작은 성과라도 얻어낸 사람은, 남한테 "이렇게 하면 되더라"를 가르쳐 줄 만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안 돼"를 말하는 사람과, (아무리 작은 거라도) "이렇게 하면 할 수 있어"를 말하는 사람, 얼마나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의 차이가 큰지를 말입니다. 그냥 말동무를 삼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끌릴 것입니다. 탄광촌에서 로켓을 쏘아 올릴 꿈이라니 얼마나 허황하고 실속도 없이 들립니까. 그러나 순수한 자기만의 열정을 품은 이였기에, 지금 대기업들이 눈독 들일 만한 소소한 특허(개중에는 중대한 것도 보유)를 저리 여럿 따 낸 거죠. 그게 탄광촌에서 불평불만이나 품고 거짓말이나 일삼는 인생이었으면 어디 가능이나 할 법했겠습니까. 인간은 이래서, 진정성 있는 인성의 세팅이 그만큼이나 중요한 겁니다. 근본 없고 가식과 뻘소리만 일삼는 늙은 스토커의 헛발질과는 엄청 큰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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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낭만과 비극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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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남의 낭만과 비극

박한제 저
사계절 | 200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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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본래 "강남"과는 태생적으로 유리된 지역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무학대사이건 정도전이건 "산지남 수지북"의 분명한 도그마를 염두에 두고 새 수도의 입지를 정했는데, "강의 남쪽"이 대체 웬말입니까. 본디 도성은 사대문 안 일대만을 뜻했고, 그 외 지역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나 격지의 농민들과 다를 바 없는 신분, 처지의 이들이 모여 살던 곳에 불과했으며, 현재 강남이라 일컫는 곳은 허허벌판, 과수원, 농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과 사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강남의 낭만"은 현대 한국의 도시형 삶(얼반 라이프)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일정한 의미로 다가오는 어구이겠습니다만(뭔가, 딱 들으면 공통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죠?) 물론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그러나 다분히 노리고 이렇게 제목을 다셨을 듯). 본디 "강'이라고만 해도 고전 시대 한자문화권에서는 "양쯔" 한 곳만을 가리켰고(이 역시 정확한 명칭은 아니며, 서양인들이 약간의 오해와 함께 널리 퍼뜨린 지명이죠), 이런 까닭에 사실 "강남"은 그저 장강 일대의 광활한 곡창지대와 풍부한 물산이 나는 중국의 특정 지역을 가리킬 뿐, 그리 두루 응용, 확장이 가능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호남, 영남, 호서 등으로 일컫는 지역명도 사실 중국에서 고유하게 일컫던 지명들을, 소중화주의에 입각해 그대로 따 와 무슨 큰 풍치나 되듯 속물적으로 쓴 흔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런 걸로 중국인들이 흠을 잡고 드는 품에, 뭔가 적극적으로 변호를 펴기가 대단히 옹색해지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여튼 이 책은, 강남(이라고 해도 얼마나 넓습니까) 일대의 풍광과 기행 기록만 담은 게 아니라, 예컨대 한국인들이 영원한 로망으로 삼는 <삼국연의> 그 격전의 현장(혹은 여러 고사의 배경)을, 박한제 교수님이 직접 다녀오신 후 운치 있는 문장과 생생한 사진을 함께 담아 펴낸 기획의 일부입니다. 업도는 특히 조맹덕이 각별한 정성을 담아 자신의 수도로 재건한 곳인데, 관도의 전투에서 만인의 예상을 깨고 대승을 거둔 그 기세로 결국은 화북 일대를 아우르며 천하의 사실상 패자로 오른 든든한 기반이 되었죠. 재물이든 시설이든 올바른 임자를 만나야 최적으로 활용되기 마련이고, 이미 원소가 그 지형과 물산의 이로움을 누리던 지역이었으나 조맹덕에게 장악된 후 훨씬 능률과 번영을 바라게 되었다고 봅니다. 저자께서 "관도 전투의 진정한 승자는 조조가 아니었다"고 한 말은, 왠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어느 고전 마지막 대사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칠종칠금 고사에 등장하는 맹획은 종종 베트남 북부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 (방향이 정반대인) 현재의 운남성 일대에 웅거했던 한 군벌일 뿐이며, 심지어 과연 소수민족이기나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박한제 교수님은 이 지역(역시 광대하죠) 일대를 살뜰히 돌아본 후, 그 남다른 감회와 평가를 멋진 문장으로 지면에 촘촘히 적어 두셨네요.

사실 우리는 명백히 저들 사관에서 동이족에 해당하므로(우리가 동이족의 전부는 아니지만), 특히 침투왕조와 정복왕조에 대해 괜한 유감이나 비분강개함을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충. 효 라는 보편적 덕목에 공감하여, 예컨대 악비라든가 한세충 같은 이들에게 얼마든지 경의를 바칠 수 있지만, 이게 모화사상으로 통해서는 매우 곤란하죠(누가 받아나 준답니까?). 오랑캐라 일컬어졌던 숱한 북방의 호걸들 중에서도 충신 명장 효자가 있을 수 있고, 오히려 혈연상 미세한 친연성마저 갖춘 그들에게도 얼마든지 찬사와 공경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저자께서도 "오랑캐도 중화제국의 성군이 될 수 있었다"는 부제로 이런 취지를 표현하시는데, 개인적으로는 영가의 난 같은 건 저 고대 로마의 동맹시 전쟁과 궤를 같이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여기까지는 1권으로 강북과 저 변경 일부(서남쪽의 운남이라든가 저 북쪽의 초원, 사막지역)를 다루시고, 2권(즉, 본책)부터 강남 이야기입니다(이 책의 전작으로 볼 수 있는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에서 커버합니다). 사천, 소흥, 형주 등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여튼 이 책에서는 광의의 강남에 끼어 저자의 유장한 설명과 함께 다뤄집니다. 제가 언제나 궁금했던 게, 왜 그토록 송제양진 네 황조의 군주들은 출신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자긍을 좀먹고 나라까지 망치고 말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 물론 태어난 신분에 따라 분수와 기능이 주어지는 사회이긴 했습니다만, 중국은 벌써 한족 문화의 원형을 확립한 한 제국 창업주부터가 농민 출신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 역시 변방의 오랑캐라며 경멸 받던 집단이었고 말입니다. 자신의 장점과 유리한 자질에 더 관심을 주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성취가 가능했을 텐데, 열등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찌질한 자기 기만에만 빠져 드니, 일신과 가문은 물론 국가 전체를 패망의 비극으로 몰아넣은 게죠.

남경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장강(우리가 양쯔강으로 아는)이 젖을 먹여 키운 보석과도 같은,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축복받은 고장입니다. 중국은 북방 유목민족에게 쫓겨 강남 개발을 본의 아니게 이룬 후에야 오히려 재정이 튼실해지고 세계 제국으로서의 정체성마저 더 온전히 갖췄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치 이슬람 전투 부족이, 그 풍요로운 인더스 유역이나 그 아래 아대륙을 멀리하고, 사마르칸드 일대 고원을 수복해야 진정한 정통성이나 찾아지는 듯 여긴 것과 비슷하게, 이 살기 좋고 따뜻한 강남은 정작 지배 세력이 실속을 그로부터 챙긴 물적 기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윤택해서 불결한 무엇이나 보듯 내내 평가절하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물적, 정신적 낭만의 요람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비극의 온상 노릇도 한 곡절이 여기에 있죠.

3권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에선 다시 북으로 올라가 북제, 북주, 수, 그리고 당 제국의 초기를 다룹니다(그래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별권으로 된 전 3권을 모두 독파하는 편을 추천합니다). 중국은 5호 16국 시대를 거쳐 강남과 진하게 조우한 후, 비로소 더 성숙한 모습으로 통일도 완수하고 체제도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께서 다루는 이 시기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풍광은 그래서 중국의 "성장기"를 접하는 느낌입니다. 번듯하게 보여도 처음부터 그리 성숙한 자태는 아니었다는 이치가, 어디 여기에만 해당할까요? 동시에, 저자께서 몸담으셨던 학교의 학풍이 묻어나는 여러 칼날같은 지적에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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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 - Jonathan Kellerman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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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Rage

Kellerman, Jonathan
Ballantine Books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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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아와서 죽었습니다. 또입니다.

이렇게 예전의 어떤 달갑지 않은 인연 속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누가 불쑥 찾아와, 그것도 부족해서 내 집 문 앞에서 죽어버리기까지 한다면, 그건 참 무지 트라우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닥터 델라웨어는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적 있었고, 그때 은퇴해서 인적이 드문 교외로 숨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델라웨어 박사는 마음이 꽤나 여린 편이라, 또 고유의 직업 정신도 무척 투철하여(어떤 무지렁이는 직업 정신과 가업 계승을 헷갈리던데, 직업 정신은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하자나 아쉬움 없이 투철히 완수하고, 만약 못 했을 시 죄의식마저 느낀다는 그런 윤리의식을 뜻할 뿐이지, 가업 계승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하죠), 이런 일이 한번 벌어지면 도무지 자신을 감당하질 못합니다. 그런데, ... 이번 껀수는 사안이 사안인지라 닥터 디의 반응 양상도 좀 다르긴 합니다.

저희 집 근처에도 주민센터 게시판에 보면 성범죄자의 사진과 범죄 이력을 담은 벽보 같은 게 붙어 있습니다. 현상수배된 용의자들 사진처럼, 이 역시 (제도 시행 초기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리 눈여겨 보는 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성범죄자를 신상 공개하여 주민의 주의를 촉구하는 제도는 미국 남부 일대에서 시작되었고, 현재 우리나라도 전자발찌 착용 등과 함께 도입해서 시행 중이죠. "범죄자들의 인권을 왜 그리 보호하려 드는가? 그럴 정성으로 피해자들의 권익에나 신경 써야지."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현대적 교정 시스템의 기반 이념과 지향 목표를 잘 모르는 겁니다. 형벌은 응보와 응징, 혹은 복수 따위보다, 범죄자의 교화와 개전에 더 주안을 두는 쪽으로 이미 현대 민주 국가에서 결단을 내린 사항입니다.

국가 형사법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으로 상정하는 교정의 양상은, "범죄자는 뉘우치고, 피해자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많은 배상을 받아낸 후, 국가와 사회에 의해 치유되는 정해진 경로를 걷는 것"이죠. 우리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어떤 분풀이(대개 자신이 못나서 받는 스트레스)를 하려고, 별로 정의롭지도 않은 사람들이 군중심리에서 이상한 폭주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전혀 사실 무근의 마녀사냥으로 드러나면, 제 모자란 반응이나 미숙하고 얼띤 생각, 감정이 부른 과실, 고의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뭘 잘못했냐며 오히려 지가 화를 내곤 하죠. 한번 치도곤을 맞아야 이런 범죄자나 별 다를 바도 없는 한심한 인생들이 정신을 차립니다.

여기서는 갓 형사처벌(책임)연령을 넘겼던, 솔직히, 좀 모자라게 태어난 애들 둘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근 십 년 형기를 채우는 동안 한 명은(미국 교도소에서 흔히, 저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선고를 받고 복역하는 이들이 겪곤 하는 운명대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특히나 좀 아둔한 머리에, 성격만 급하고 말만 많은 타입입니다. 이 남은 한 명이 교도소 문을 나와, 뭐가 맺힌 게 있었던지, 아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라도 작용했는지, 닥터 디를 찾아와 "또" 죽었습니다. 이거 참, 점잖은 박사님이 할 짓이 못됩니다.

심리치유사는 그저 마음이 꼬이고, 혹은 이유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받은 억울한 피해자만 잘 고쳐 주면 되는데, 왜 이런 구린 범죄자까지 찾아와 시간을 뺏고, 귀찮게 하고, 나아가 집을 어지럽히기까지 하는 걸까요? 교도소에서 형을 사는 이들치고 자기 죄인이라는 인간 없습니다. 다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들어왔단 겁니다. 이들이 자기 잘못이 뭔지 뉘우치질 못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유를 박탈당하고 불명예를 쓰기에 충분한 겁니다.

다시 교화의 문제로 넘어가죠. 수전 크레이머와 퍼니 레이스는 아직도 두 꼬마(12살, 13살이면 꼬마죠. 한 녀석이 비록 덩치가 비정상적으로 크긴 하나)를 공원에서 잡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경찰 중 여성분들의 경우, 유독 학교 선생이나 된 듯 아이들을 뭔가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온정적 눈길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 경험인데, 경찰은 피의자가 형사책임연령을 넘은 이상, 엄격히 범법 여부만 따져 단속행정에만 나서면 될 일이지 무슨 되지도 않은 중학교 도덕 선생 흉내를 내려 드느냐며 단단히 한 소리 한 적 있는데요. 여튼 (젊은) 여성이라서 그런 아마츄어 같은 마음가짐도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더군요. 이 책을 읽으며 그 여경 생각이 잠시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수전은 형사 직급이고, 그 여성은 정복 착용하고 순찰 도는 위치였습니다만.

언제나 플로팅의 마법을 통해 독자를 즐겁게 해 주는 켈러먼 선생이지만, 이 이야기는 소소하게 초두를 잡은 것(아니, 범죄가 소소하다거나 누군가의 죽음이 하찮다는 게 아니라, 요 직전 몇 작품에 비해 스케일이 작아진 것 같아서요)처럼 보이면서 전혀 엉뚱한 결말로 독자를 놀래키는 반전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인간은 격정 속에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그간 억눌려 왔던 열등감이나 충족되지 못한 자존이 범죄로까지 비화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겸허한 성찰입니다. 자신 속에서 분노가 치민다고, 그게 참다운 자존의 확증이 될 수가 있습니까? 어디까지나 자신의 미숙하고 어설프고 수양 덜 될 감정일 뿐, 무슨 초자연적 계시 같은 게 절대 될 수 없습니다. 과학과는 전혀 동떨어진 미개한 사고 방식, 둔한 지능, 지적 배경만 갖춘 자가 터무니없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 범죄와 결부된 더 큰 비극이 자기 앞에 떨어질 뿐이죠. 그게 환상에만 빠져든다고, 억지로 우긴다고 해결이 될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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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apy - Jonathan Kellerman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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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Therapy

Kellerman, Jonathan
Ballantine Books |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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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브룬디, 자이르(현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중인 종족 간 "인종 청소"의 비극은, 서유럽 백인들에게 깊은 반성과 죄의식을 되새기게 하는 강렬한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인종 청소"라는 말은 참 듣기에도 섬뜩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아찔한 만큼 내면의 심연을 파고드는 비극의 압축 개념인데요. 이 잔혹상에 대해서는 몇 년 전 다카노 가즈아키의 어느 장편이 한 대목을 통해 실감나게 묘사해서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중앙아프리카 일대에서 자행된 이 끔찍한 학살극은, 비슷한 시기 남동 유럽 발칸 반도 서단에서도 유사한 패턴의 참사가 벌어져서, 냉전이 종식된 지금 왜 또 인류가 이런 목불인견의 비극을 겪어야 하는지 전 지구촌 시민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열 여덟번째 델라웨어 연작은 그 무렵에 창작된 건 아닙니다. 구 유고 내전은 나토의 대대적인 폭격과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체포, 기소로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나(당시 이 사태도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초 난제였는데 어찌어찌 봉합이 되어 가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물론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여전히 극악의 민족 감정 대립상을 연출하긴 합니다만. 인터넷에서도 왜 그렇게들 싸우는지), 후투 족과 투치 족 사이의 끝이 안 보이는 증오의 대립상은, 이 소설 발표 후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형 분란의 불씨가 잠복해 있습니다.

켈러먼 선생이 왜 갑자기 이곳에 시선을 돌렸는지는, 그 동기야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비교적 선명한 편입니다. 앞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그 작품에 보면 언어를 다차원으로 구성하여 소통할 수 있는 초인류가 등장하곤 하죠. 그 가상의 진화한 종(種)의 특출한 지적 능력에까지 비길 수는 없겠으나, 이 작품은 여태의 전작들에 비해 특히 플로팅이 복잡합니다. 날씨가 더웠던 이유도 있겠으나, 저는 몇몇 사건과 암시가 이해가 안 되어 앞으로 몇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 읽기도 했습니다. 켈러먼의 소설을 읽을 때치고는 좀처럼 겪기 힘든 체험이기도 했죠. 물론 스릴러, 미스테리물을 읽을 때, 꼬이고 어려운 플롯이라면 그보다 더한 독자에의 성의, 서비스가 없다는 점에 저는 열렬히 동의합니다. 불만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표시로 한 말입니다.

보통 알렉스 델라웨어의 모험 장도에는 아름다운 여인, 그 중에서도 지성 면에서도 뛰어나고 번듯한 직업에다 고소득을 올리는 분들이라야 그의 애정 행각에 낄 자격이 생기는데(이 점은 지난 서평들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이 열여덟 번째 작품에서는 좀 색다른 캐릭터가 하나 등장합니다. 하긴 너무 이런 패턴이 굳어서 좀 변화를 줄 필요는 있었겠지요. 델라웨어 본인도 L.A. 일대에서는 유명한 세라피스트이자 전문가(그리고 진술조력인, 경찰 자문역까지 겸하는)이지만, 이 책 중에서는 방송도 자주 타고 돈도 (아마) 더 많이 버는 듯한 심리학자 한 명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여성입니다. 성격은 아주 나쁘고, 끼리끼리 모인다고 그 같은 팀원들도 거만하고 불손하기 짝이 없습니다. 프로페셔널 컬터시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구경 못 할 더러운 매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여정을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렉스 델라웨어는 과연 언제나 겸손하고, 자신보다 못한 이들 앞에서 친절을 베풀 줄 아는 품성, 혹은 태도를 갖춘 이였을까요? 우리 독자들은 그의 성격과 스타일을 좋아하기에 여기까지 같이 왔고, 또 대체로 델라웨어 박사가 사람 성격 거슬리게 만든 적은 별로 없었지요. 하지만 저 카플과 (그녀의 환자들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히며, 이 델라웨어는 어느덧 그 박식하고 잘 정돈된 전공 지식의 틀을, 자신의 인격과 행적에 투영하여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 역시, 로빈 카스타냐 등 가장 가까운 인연과도 결국 관계를 잘 가꾸지 못하여 파탄에 이르렀고,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자주 만나긴 해도 저 마일로 스터지스의 감정을 내내 존중한다고는 말 못 할 것입니다(재수없는 카플은 여기서 희한한 오해를 하고 드는데, 정말 왜 그렇게 사는 지 모를 일이죠). 어느 커플(심리학자 세라피스 Koppel과는 철자가 물론 다릅니다)의 죽음으로 시작해, 내내 두 사람 쌍의 기묘한 곡절로 이야기를 채워 가는 이 사연은, 미스테리로서의 완성도도 완성도이지만, (직전 작에 이어) 사람 사이의 관계 그 본체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돕는 어떤 여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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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한국경제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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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침몰하는 한국경제

김영욱 저
이다미디어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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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가의 말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여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도 예언자 나단을 엄혹히 제재하지 않고 그의 말을 오히려 충언으로 삼아 귀기울였으며, 당 태종은 언제나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 하는 위징을 곁에 두고 나태와 방종을 예방하는 안전판으로 선용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 별 근거도 없는 선호와 확신을 갖기 일쑤이므로, 기분 나쁜 악평에 일부러라도 진지한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제 앞가림도 못하는 늙은 얼치기가 떠드는 기분풀이용 헛소리, 어디서 베껴 읊어대는 진정성 없는 사이비 예언에는 전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지만 말입니다.

전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신 김영욱 박사님은 그간 언론 매체나 방송 등을 통해, 시원시원한 탁견으로 우리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셨던 중견 언론인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학문적 바탕이 견실히 깔린 정연한 지론을 그간 전개하셨기에, 우리 독자들이 일회성 화제로만 그저 새기거나 이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의 다른 비평과 분석의 프레임으로 응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가뜩이나 엄중하고 긴장감 팽배한 시기에, 우리의 현실을 대체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난국의 타개책은 무엇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편으로는 우려 섞인 장탄식을 유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정확한 우리의 좌표가 지금 이 즈음이니, 앞으로 이런 위험과 저런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면 되겠구나 같은 분명한 설계, 견적을 낳게 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지기도 합니다. 정확한 진단과 권위 있는 평론은 그래서, 일단 처음에 불편해지든 어떻든 간에 장기적으로는 희망과 활력을 되찾아 줍니다.

"일본화의 길"이란 무엇이냐? 1980년대 일본 산업 전반의 혁신과 창의력과 활기가 극에 달했을 때는, 전세계가 일본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은 심지어 일본이 무역 흑자 폭을 축소하지 않고 수입품 개방 폭을 확대하지 않을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암시를 (말도 안 되지만) 매체를 통해 흘려 일본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게 플라자 합의의 부작용으로(꼭 일본에게 불리한 협상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고평가된 엔화의 위력으로 세계의 자산을 다 끌어모아 확보할 수도 있었죠. 이꼴이 된 건 갑자기 거품 낀 돈지갑을 챙겨 들고 실속을 못 챙긴 일본인들의 어리석음 탓이지 누구 원망을 할 게 아닙니다. 또, 그 나라 내부의 계급 간 이해가 대단히 불건전한 방향으로 조정되어버린 영향도 큽니다. 밖에서 돈을 힘들게 벌기보다,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빨대 꽂는 편한 방식을 택한 거죠),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40년을 바라보는, 끝이 안 보이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든 것입니다. 이게 저자께서 개탄하는 "일본화의 길"입니다. 쉬운 말로, "안락사, 망국에의 길"이죠.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경제 활력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은 책에서 우리가 가장 뼈아프게 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다만 일본과는 좀 비교가 안 되는 게, 한국은 눈에 잘 안 띄긴 해도 기발한 시도와 모험을 하며 해외에서 활발한 개척을 벌이는 기업가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긴 한데, 그들이 애써 활동을 해도 은행 대출금 상환, 고리의 사채, 정부 유관 기관의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그냥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놀고먹는 비경제활동 계층의 만족과 수익에 비해 손에 쥐는 게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문제죠. 이런 게 개선되려면 세제, 지원금 정책, SOC 등 제반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코렌터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어느 시장이든 뚫고 들어가(엔터)고야 만다는 코리언들의 배짱 좋고 생명력 강한, 침투 근성과 확장 본능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저는 이 코렌터의 원조가, 대우 신화 세계 경영을 내세운 김우중 씨의 패기 만만한 과거의 실적이 그 원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 선진국에서 한국 차가 어필하기 힘들면, 옆에 붙은 신흥 시장 동유럽에다 개척자처럼 팔아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에 첫 맛을 들이기 시작한 이들에게 대우와 한국이라는 이미지도 각인시키고, 품질을 높여 향후 서유럽에서도 셰어를 키우고 말이죠. 전자제품은 이미 성공하여 세계 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양분할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 회장 자신의 문제가 크긴 했으나 자동차 시장도 이때의 기세를 잘 살렸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동차와 가전은 그 파급력이나 기본 덩치의 면에서 차이가 꽤 큽니다.

소득 주도 성장보다 투자 주도가 옳다는 게 김 박사님의 진단입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때에도 써 본 정책이지만, 그 유가 보조금 몇 만원씩을 국민들에게 풀었으나 결국 소비 진작 효과도 못 보고 허공으로 다 흩어졌죠. 돈은 푼돈이라도 모이고 모여서 덩치를 이뤄야 제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연금 몇 푼 쥐어 주는 식으로 선심을 쓸 게 아니라,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미래산업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기반 시설 마련에 주제도 모른다는 소릴 들어가며 쏟은 돈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YS(이런 인간이 다 있었으니)가 나라를 다 말아먹었을 당시 외채를 갚는 밑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1970년대 당시 살인적인 고물가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죠. 얼마 되지도 않는 돈과 물자가, 당장 입에 풀칠도 못 시켜 주는 거대 공장, 설비 건설에 다 투입되었으니 말입니다. 여튼 그때 어르신들이 참고 견뎌 준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버텨 내는 겁니다. 수출 경쟁력을 다 잃은 한국이 지금 어디서 소득이 들어오는 게 있습니까. 벌어 놓았던 거 까먹으며 견디는 거죠.

현기차에 대해서도 김 박사님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습니다. 특정 기업에 대해 무분별하게 평판 훼손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행태도 문제지만, 독과점 지위를 이용하여 현저히 부당한 시장 분리 대응을 은근히 이어가는 이 기업의 전략과 인식에도 큰 문제가 있음은 부인 못 합니다. 김 박사님은 원전 수주도 반관반민 형태의 법인으로 앞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는데, 이 역시 지금의 한수원 조직의 불투명 경영 행태에 비추어 귀 기울일 만한 충고입니다. 현재 한국 원자력 산업은 그간의 축적된 노하우 덕분에 국제 경쟁력이 꽤 있는 편이므로, 이의 이점이 해외 시장에서 최대한 이익으로 환수될 수 있는 시점까지는 공연한 위축 압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뭐하러 소중한 자산을 앞뜰에서 불태워 없앤단 말입니까? 그거 마음에 든다는 이웃에게 중고 헐값으로라도 넘겨야죠.

좀 장기간에 걸쳐 연재된 칼럼들을 모아 둔 책이므로, 시대 배경을 정확히 이해, 기억하는 독자라야 저자의 취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역사의 증언 기능을 하는 훌륭한 지적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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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전쟁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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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원자재전쟁

유태원 저
한빛비즈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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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지식기반 산업이다, 나아가 4차산업혁명이다를 운위해도, 아직 인류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유롭게 이상과 꿈을 일일이 물리계에 실현하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멉니다. 당장 1980년대에만 해도, 21세기가 되면 당연히 "달나라 여행"이 가능들 할 줄 알았죠.

과학 기술이 한계를 모르고 발전하던 시절에, 대중들은 터무니없는 기대와 공상으로 스스로의 입맛을 너무 나쁘게 버릇들였는지도 모릅니다. 레이 커즈와일을 비롯해서 많은 학자, 논객, 전문가들이 점친 바는, 먼 미래에는 기어코 실현되고 말 것들입니다. 씨쓰리피오, 알투디투 등도 언젠가는 곁에 두고 말벗처럼 청소부처럼 비서처럼 부리고 소통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거기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너무도 멀고, 우리 인류는 당연하다는 듯 거창한 근미래상을 마케팅 구호로 마구 지어내도 될 만큼 충분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숙제를 덜 했으면, 딱 그만큼 대접받을 각오를 해야 하죠. 눈높이만 터무니없이 높은 사람은 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참 초라합니다.

인간이 물리계의 한계를 아직 못 벗어났기에, 소재가 중요하고 소재의 가공과 개량이 중요하며, 그 소재의 바탕이 되는 자원과 원자재가 더욱 소중해지는 겁니다. 소재 공학이 발달하니, 리튬 같은, 전에는 이용할 생각도 못했던 저(低) 원자량(原子量) 물질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죠. 이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토양 속에 그리 풍성하지 않게 분포되었던 건 다를 바 없지만, 거의 없던 쓸모가 갑자기 늘어난 나머지 근래에 들어 값이 폭등하고 보유국들이 큰소리를 치게 된 것입니다.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다는 중국의 압력 앞에 당시 일본 총리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책은 먼저 첫 장에서 원유에 대해 다룹니다. 예전 어르신들이 배우던 교과서에는 앞으로 매장량이 몇십 년치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이 자원이 다 고갈되는 날이 곧 다가오면 세계가 큰 혼란에 빠질 것처럼 설명하곤 했습니다. 환경 보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문제는 학생들에게 정확한 진실을 전달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거죠. 현재 원유 채굴 기술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 전에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포기했던 유정까지도 일일이 주목하여 개발하는 게 현실입니다. 예전 교과서대로라면 지금쯤 석유가 바닥 나, 세계는 무장 투쟁과 약육강식의 아비규환 디스토피아가 벌써 펼쳐졌어야 했죠. 뭐 방심하고 무작정 탄소 원료에만 의존하다간 환경이 다 파괴되고 악몽이 현실로 더 빨리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요.

원유는 매장량과 보유량, 산출량 같은 물적 지표로만 세계 경제, 나아가 정치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닙니다. 이미 대세는 금융 섹터가 깊숙이 개입하여, 미래 수요와 가격 동향을 예측, 감안한 헷징과 스페큘레이팅 전략의 싸움으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산유국들도 무식하게 그저 기름통을 감싸 안고 파니 안 파니로만 신경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지금 원유에 대한 전망을 긍정/부정 어느 편에 놓고 의사결정을 하는지 꼼꼼히 주시한 후,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습관을 들인 지 오래되었습니다.

게임이 이처럼 치열하고 두뇌 싸움으로 변했기 때문에, 유가의 중단기 예측은 거의 올림피아드 난제 풀이 수준으로 변했습니다(그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으면 어려워졌을 뿐). 이제 돈 벌려면 정말 수학 공부 열심히 해서 금융 섹터로 빠져야 합니다. 귀하신 몸은 서로 모셔가려 들며, 인공지능이다 뭐다 해도 적실한 예측 프로그램을 짜서 다른 사람 이용 못하게 자기만 알짜 수익을 챙기는 두뇌는 따로 있습니다. 아무나 다 한 대씩 사서 집에서 굴릴 것 같으면 누가 거액을 들여 투자하겠습니까? PC 보급 보편화된지 30년이 지났습니다만, 다들 집에서 코딩하고 부업으로 일러스트 납품하고 CAD건축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돌대가리한테 칩만 심어 주면 다 아인슈타인 되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성형 수술 보편화되어도 누구나 다 미인이 되어 거리를 활보하는 게 아니듯 말입니다.

"금은 원자재인가, 아니면 금융상품인가?" 사실 이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우문입니다. 당신이 오늘 지출한 생활비는, 그게 대체소득 증가분을 소비한 건가, 아니면 소득효과 증가분이 그 원천인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합니다. 혹은, 오늘 조깅 하면서 흘린 땀방울이, 밥 한 공기 섭취분의 연소인지, 아니면 닭가슴살 스테이크 한 조각이 제공한 건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실익이 없습니다. 모든 (경제적 가치 있는) 원자재는 (이제) 금융상품이고, 금융상품 중 핵심 종목들이 원자재입니다. 어떤 이는 금 보유 전략을 짜며 과연 어느 편이 유리한지를 놓고 질문도 하는데, 역시 그 사람의 보유 총자산, 재력 규모가 얼마이며, 어느 정도까지나 돈을 묻어 놓고 버틸 수 있는지에 따라 답은 천차만별로 갈립니다.

비철금속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보다 기업하기가 훨씬 어려워진 환경이라면, 이처럼 원자재 하나하나가 모두 금융상품화하여, 그 자원에 보다 눈독을 들이고 더 관심을 쏟아 온 투자자(당연하지만, 꼭 기업가일 필요가 없습니다)가 그 가격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기업하는 분들은 일정 기간 안정된 가격에 원자재를 공급받겠거니 기대하는데, 이처럼 뭐가 날이면 날마다 이슈도 없이 가격이 들쑥날쑥(투기꾼들의 장난질에 의해)이니 이전 마인드에 젖은 분들은 죽을 지경이죠. 어쩔 수 없구요, 세상의 룰이 바뀌었으니 기업가들이 적응을 해야 합니다. 참고로, "이슈가 없는 듯 보여도" 배후를 캐고 보면 그렇게 널뛰기가 벌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걸 안 놓치는 사람이 돈 벌고 미래를 내다 보는 거고요.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은 이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곡물 역시 고도로 종목화된 금융 상품 속에 낱낱이 편입되는 주요 소재이기에, 곡물이 그저 곡물이고 작황의 풍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줄 아는 분들은 이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여기면 됩니다. 다음 제5장을 보면, "현재 가격으로 미래에 살 것인가, 반대로 미래 가격으로 현재에 살 것인가?"라는 소절이 나오는데, 이 테마는 원자재 뿐 아니라 모든, 말 그대로 세상에 거래되는 모든 물건에 적용되는 이치입니다. 이건 앞으로 망하겠다 싶은 사람은, 지금은 당장 괜찮으니 갖고 있다가 나중에 비싼 가격에 팔 것을 약정하면 되고(계약이므로,  시세 폭락 여부에 무관하게, 사기로 한 사람은 그 가격에 사야만 합니다), 앞으로 귀해지겠거니 전망이 선 사람은 자신이 적당히 여기게 제시된 품목을 골라 미리 살 것을 약속하면 되죠. 파는 사람은 "이런 걸 놓고 왜 그런 비싼 가격에 살것을 약속하는지" 몰라하는 사람이라야 거래가 성립될 겁니다. 사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전망이 반대 방향으로 일치하기에 성립하는 거래이므로 누가 억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책은 "원자재 전쟁"이라고 제목이 달렸으나, 결국 책에서 설명하는 이치는 원자재 뿐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 종목에 다 해당되는 이치입니다. 전망이 일치하면 선물 거래란 성립될 여지가 없습니다. 각자가 미래에 대해 낙관/비관으로 전망이 갈리기에, 이런 파생 상품의 거래가 성립될 기반이 생기는 거죠. 문제는, 내 전망이 어떻냐는 것보다, 남들, 특히 돈을 가진 이들이 어떤 전망을 갖고 어떻게 플레이하느냐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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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근이 말하는 경제 돌파구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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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종근이 말하는 경제 돌파구

유종근 저
청어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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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저자 유종근 회장님은 젊은 시절부터 저명한 학자로서의 경력을 쌓았을 뿐 아니라, 전라북도 제1기 민선 도지사를 지낸 분입니다. 민선 지자체장 선거는 1995년에 처음 실시되었는데, 당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이분을 적극 천거하여, 대체 누군데 무명의 정치신인을 DJ가 저렇게 밀어 주나 하고 다들 궁금해하기도 했죠. 도지사 임기도 아주 훌륭히 마치셔서 일하는 지자체장, CEO형 정치인의 새로운 모델을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이죠. 한 사람이 학자로서 뚜렷한 업적을 남기기도 쉽지 않은데, 정치인과 기업 경영자로서도 흠 없는 경력을 쌓는다는 건 한국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견제와 모함이 심한 풍조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나 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실력 뛰어난 분들이 이후 국무총리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계속 중책을 맡았더라면, 한국의 정치 진로가 현재처럼 혼탁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빼어난 인재가 정치논리나 연줄 때문에 소외되어, 재야에서 헛되이 낭비되는 걸 너무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종근 박사님이 역점을 두어 강조하는 건, 언제까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내부의 소모적인 싸움에만 말려들 것이냐는 준열한 충고입니다. 일단 그가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 그리고 한국에 컴백하여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때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탈규제 열풍이 세계를 휩쓸 때였습니다. 이 무렵 정부에서는 (얼마 전에 타계한) 박세일 교수가 이 트렌드를 주도했고, 야당에서는 유 박사님이 이 글로벌 추세의 전도사로 나섰죠. 시대의 대세가 당시 워낙 그쪽이었던 터라 여야가 유독 이 부분에선 한 목소리를 냈던 셈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여튼 당시의 지도자들은 경륜이 있었던 분들이라, 지금처럼 정치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고 타협할 건 마지막에 꼭 타협이 이뤄지곤 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저자가 내세우는 모토와 주제에 다소 거부감이 느껴질 만도 할 겁니다. 저 역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의 매인 컨셉이란,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속되게 말하면) 간판을 뭘로 내거느냐에 따라 첫인상, 수용 자세가 확 달라지게 마련인데, 왜 하필 저 말을 주제어로 제시하셨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의 유 박사님 답게, 정직하고 가식 없는 접근으로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직시하자는 취지로 선해했습니다.

기업인들이란 "야성적 충동"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과감하게 이를 플랜화하여 행동에 옮깁니다. 책상 앞의 전략가들의 충고에 물론 귀 기울이기도 하지만, 전략가들과 기업인들은 행동과 사고 기제가 또 다릅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룰이 불공정하다 싶으면 창의력과 영감이 솟아나질 않습니다. 대신, 룰을 공정하게 마련해 준다 싶은 다른 경제 권역으로 "서식지"를 옮겨 버리죠. 여러 나라들이 세제(稅制)와 환경을 친 기업적으로 조성하여 알짜 우량 법인체를 유치하려 애 쓰는 건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1980~90년대 당시, 이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으로 각국의 경제가 살아나는 걸 직접 보았던 그로서는, 왜 정치적 편견 때문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정석 처방을 구태여 회피하느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이 책에서 조언의 형식을 빌려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세계, 특히 미국의 경기 활황 여부에 따라 어떤 경제사조와 이론이 부침을 거듭했는지 자세히, 한 챕터를 할애하여 고찰합니다. 그가 일단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놓은 건 케인즈주의 진영이며, 신자유주의의 범주 안에 넣은 건 통화주의, 서플라이 사이드 학파, 시카고 보이즈, 공공 선택론 등입니다. 이는 저자의 관점에 따른 프레이밍이므로 논자에 따라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케인즈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입장은 시카고 보이즈입니다. 케인즈주의를 한국에서 대변하는 태두 격이라 볼 만한 분은 정운찬 전 총장님이겠는데, 수업 중에도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 등 격한 표현을 (케인즈주의 진영에서) 쓴다는 등 재미있는 소개를 하기도 하는 분이죠. 여튼 시카고 학파가 주류 경제학에 남긴 업적도 뚜렷하여,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이론은 노벨 경제학상 시상으로 그 의의가 기려지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 살아있는 경제이론은 어느 국면에서건 경기 활성화에 분명한 기여를 합니다. 케인즈주의 역시 대공황 시절이나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불경기에, "일단 돈을 풀어서 분위기를 띄우고 봐야 한다"는 소박한 인식의 기저에 확고히 깔린 사상이고, "양적 완화"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 바탕에 서서 작동되는 정책이죠. 반면 공급측면 학파나 시카고 진영도, 말도 탈도 많지만 여튼 1980~90년대의 호황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보는 게 공정한 태도일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가장 뚜렷한 업적 중 하나인 전주 한옥마을 계획을 예로 들며, 기업을 살리고 지역민에게 활기와 의욕, 소득 증대 효과를 안겨다 주는 가장 확실한 방책이 무엇일지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서 소상히 의견을 개진합니다.

저자의 말입니다.

"나는 신자유주의 예찬론자가 아니다. 다만 김대중 정부 시절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독재의 영향으로 억압되고 있었던 시장의 기능을 어느 정도 정상화하기 위한 IMF개혁에 적극적이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를 독자로 하여금 숙고하게 합니다. 첫째 DJ 정부 이전의 체제들도, 정부 주도 관치 금융의 기조가 걷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정도를 걸었다고는 못 한다는 점, 둘째 성장이란 목표를 여전히 경원시하는 반대 진영에서도, 탈규제 친시장의 과감한 개혁은 선뜻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죠. 저자는 그래서 자신의 입장을 "실용주의"로 정리합니다. 모두가 윤택한 경제 성장의 효과를 두루 보는 번영이 다시 찾아온다면, 소모적인 내부 갈등은 상당히 완화되고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물려 줄 수 있는 국가의 재건이 가능하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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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다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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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다

양종기 저
도서출판ONE(원)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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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은 언제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왔습니다. 소련과의 패권 경쟁이 한창일 때, 레이건의 공화당 행정부는 가능한 한 최대한 동맹국들의 체면과 이익을 챙겨 주는 듯한 제스처를 폈으나, 의회는 그때에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죠. 이 당시 민주당은 가장 강한 보호무역정책을 펴서, 이른바 슈퍼 301조의 발동으로,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들을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일반특혜관세(GSP)가 폐지된 것도 그 즈음의 일입니다. 1980년대의 실정이 이랬고, 1970년대에는 닉슨이 달러 금 태환을 정지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언제나 미국은 좀스러울 만큼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해 왔던 셈입니다.

저 당시만 해도 민주당이 국수주의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상황이 바뀐 느낌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TPP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이니셔티브를 결코 중국 같은 나라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당장 미국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먼 장래를 내다본 안정된 시스템 하나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 역시 광의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임에 틀림없으나, 여튼 타국의 이익도 단기간(미국 측의 전망대로라면)일망정 기대는 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던 게 오히려 공화당 정부 들어서서, 이제 안면몰수하고 몇 푼의 동전까지 보이는 대로 갈무리하고 나서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거죠. 어떤 나라가 자기 나라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걸 막거나 반대할 이유, 수단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미국이 더 이상 먼 장래를 내다볼 여유가 없다는 사실만이 확인된다고 봐야죠. 반면, 안타깝게도 중국은, 허황될 만큼 몇 십 년 단위를 바라보고 장기 투자 설계에 골몰합니다. 싫건 좋건 이게 객관적 현실이므로 우리는 명백한 팩트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튼 이 책은, 이제 목전의 소소한 이익까지 번거롭게 챙기겠다는, 보다 구차해진 미국의 정책 변화가 앞으로 세계 경제, 미국 국내 사정, 그리고 소규모 개방경제의 전형이라 할 한국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오바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국이 언제 위대하지 않은 적 있었던가?" 이는 마치 YS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를 들고 나왔을 때, 보수 진영에서 "역사가 언제 비뚜루 눕기라도 했었나?"로 퉁명스레 대꾸한 양상이나 비슷합니다.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게 고작 치사한 이삭줍기, 보호무역 강화, 시장에의 무분별한 개입 등이 그 수단이라니, 다시 위대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좀스러워지는 꼼수라고밖에 안 보입니다. 반면, 잘못된 정책으로 국세가 기울어갈 뿐 아니라 본인 자신이 중국에서 치욕적인 푸대접을 받고 돌아와서도 "언제나 미국은 위대했음"을 강변하는 오바마도, 고작 정신승리에 파묻히려는 구차한 모습만 드러냈을 뿐입니다. 하나 확실해진 건 "더 이상 안 위대한 미국이 뭔가 몸부림을 쳐서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겠다"는 전망 정도입니다. 현실은 그대로 인정해야 바른 전략이 짜지며, 적실하고 정확한 미래 대응 방법이 강구될 수 있습니다.

현재 트럼프의 경제정책을 가늠하려면, 측근 중 누가 짤렸다 사퇴했다 갈등을 빚었다, 진영을 옮겼다 등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측근 라인업 중에서, 최소한 자기 세력 확보나 영역 확장에는 아무 잡음이 안 들리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의 행보를 지켜 보면 정확합니다. 책에서는 "그의 경제팀이 월가를 점령했다"고 평가하는데, 이기적이고 약삭빠르게 대세를 파악하고 거시 경제의 향방을 점치는 데에, 이 트럼프와 "그의 오랜 친구들"만큼 촉 좋은 이들이 없습니다. 사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지금 짤리거나 좌천당한 이들은 나중에 합류한 축이고, 트럼프가 한창 리조트 개발로 떼돈 벌고 세계를 누빌 시절에 알던 친구들은 건재하게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단기의 미미한 변수와 상수를 구별할 줄 아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정확히 점치는 길입니다.

책에서는 또하나의 재미있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특히 공화당은 오랜 전통적 정책 중 하나가 반(反) 러시아 자세인데, 이번에는 정반대가 되어 민주당에서 러시아 내통 의혹을 들고 나왔고, 공화당이 이를 무마하려는 태세였습니다(지난 선거는 참 여러 면에서 기상천외한 풍경이 벌어지는 난장판이었죠). 그간 저는 그 사위 쿠슈너의 개인적 인맥 때문에 장인인 트럼프 역시 사업상 음으로 양으로 엮인(다른 말로 코가 꿴) 게 많아서 저처럼 러시아 관련 이슈에서 궁지에 몰리는가 보다 짐작했는데, 이 책에서는 백인우월주의, 극우파의 정치적 코드로 보다 거대담론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제가 참 우습게 본 게, 소련 망하고 나서 러시아 젊은이들을 바로 사로잡은 게 네오나치 트렌드였다는 겁니다. 러시아는 우리가 다 잘 알듯, 2차대전 당시 가공할 만한 위력의 나치 침공을 숱한 인명, 물자 희생을 치르고 막아내어 자국의 독립과 위신, 세계 평화를 지킨 나라인데, 그 후손들이 그런 행태를 보인다는 게.. 마치 한국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숭배 열풍이 분다고 가정하면 이에 비길 수 있을지요.

얼마 전 버지니아 샬로츠빌에서 대규모 극우파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처음 모호한 태도를 취하다가 마지못해 한 마디를 한 후, 다시 골수지지층을 의식한 "트윗"으로 지지층 달래기에 나섰지요. 독일에서도 1차 대전 직후 경제가 최악일 때 극우 세력이 부상했던 과거를 감안하면, 사실 이런 동향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는 지금 가장 불리한 환경에서, 가장 시원찮은 수단으로, 미국 패권주의를 다시 세우겠다고 나선 겁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말했듯 "점점 외연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고립되어 가는" 그에게, 이는 너무 벅찬 과제처럼 보입니다.

엉뚱하게도 민주당 행정부의 빌 클린턴은, 금융 섹터의 건전한 운용을 저해할 수 있었던, 저축은행과 투자은행의 엄정한 준별을 규정한 글래스- 스티겔 법을 폐지하면서, 그로부터 십 년 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재앙을 부를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건 본래 공화당 우파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이었는데, 뭔 생각이었는지 그는 탈규제,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대단히 위험한 선 하나를 과감히도 넘었죠. 하긴 이는 영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도 않아서, 이른바 "빅뱅"으로 불리는 대규모 규제 철폐를 그 오랜 보수주의의 아성에서 그 무렵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본 대목은, 불과 몇 년 전에 그토록 뜨거운 맛을 보고서도 다시 도드 - 프랭크 법을 폐지하여 금융계의 기강 해이,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만한 위험을 키우려는 현 행정부의 정책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어떤 변수나 정책 변경보다, 이 점에 주목해서 향후 미 행정부의 동태를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 지도자들의 현명한 타협 덕분에, 전세계는 간신히 대공황의 위기를 넘겼고, 중국은 타이밍이 지금이다 싶어 "기축통화 이슈"를 들고 나오며 혼란을 틈타 패권국으로 부상하려 들었으나 실패했죠. 월가의 단기 이익보다 자국 전체 국민의 장래를 중시해야 올바른 선택일 텐데, 여러 모로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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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ld Heart - Jonathan Kellerman | YES24 파블미션(舊) 2017-08-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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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양서]A Cold Heart

Jonathan Kellerman
Random House Large Print Publishing | 200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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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창조하는 인간, 젠더, 혹은 성(性)"입니다(sex라고 쓰는 게 본래 의도였으나 이상할 것 같아서). 어떤 여성도 무엇인가를 만들기 좋아하고, 창조의 모태를 다 간직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남자들은 "만드는 것"보다는 대개 고치거나 수리하는 걸 즐기지만, 이마저도 사람마다 편차가 심해서 일률적으로 단정 못 합니다. 반면 여성들은 확실히, 별 예외 없이, 대개는 (뭐라도)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조각을 한다거나, 요리를 한다거나, 하다못해 일기를 쓰고 편지를 작성하는 것도 다 일종의 "창조'입니다. 물론 남자도 요리의 대가가 있고 미술의 거장 중 많은 수가 남성입니다만, 요리 잘하고 예술에 능한 건 남자들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는 도저히 없죠. 빼어나게 그 재능과 적성만 타고난 소수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것뿐이고요.

이유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여성은 대개 예비 어머니들입니다. 뭐 물론 여러 이유로 아기 갖는 걸 생각 않으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대체로는 여성은 자신 안에 모성, 혹은 그 잔여나 대체라 부를 만한 무엇인가를 갖고 태어나며,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이를 재확인합니다. 여성은 그래서 어린이들, 작고 약한 동물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좋아하고 달려가서 안아 주고 싶어하죠. (남자들은 반면.... 흠) 아마 여성들이, 그림 잘 그리고 요리 잘 하고 뭔가 창조의 적성이 있는 남자들에게 특별히 끌리는 건, 그런 "짓고 만드는" 자질을 닮고 싶어하는 충동도 있을 것입니다.

대개,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 델라웨어는 뭘 처음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고치는" 쪽이었습니다. 범죄자들의 잘못된 충동과 마음 씀씀이를 고치고(교정), 어그러진 사회 질서를 고치고(정의 구현), 피해자들의 깊은 상처를 고치고(힐링),... 이런 델라웨어와,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로빈 카스타냐는 남녀 커플로 멋진 앙상블을 이룰 만합니다. 카스타냐는 그런 델라웨어가 좀 더 자기 곁에 머물러 주고, 남들보다는 특별한 옆지기인 자신의 상처와 요구에 더 집중하고 케어해 주길 기대했죠(아니, 카스타냐뿐 아니라, 세상 어떤 여성이 안 그러겠습니까?). 여튼 지난번에 혼이 난 후 델라웨어도 자기 마음씀씀이나 자세에 대해 크게 반성한 바 있습니다. 비록 시기가 조금 늦긴 했지만 말입니다(... 깊은 위로를 전하며ㅋ).

이 장편은 어느 갤러리에서, 교살(목이 졸려 죽음)된 한 젊은 여성 아티스트의 참혹한 시신을 그들(당연히, 닥터 델라웨어와 형사 마일로 스터지스)이 마주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야심과 꿈으로 가득했던 이 여성은, 선망해 오던 갤러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어, 홀을 자신의 작품으로 가득 채우게 된 바로 그 꿈을 이루던 날,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앗깁니다. 만약 이 여성과 이루지 못한 사랑, 질투, 치정 따위에 의해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의 소행이라면, 델라웨어 박사와 스터지스가 또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유능한 LAPD의 루틴 스탭 선에서 충분히 해결을 볼 사항이죠. 그런데 왠지, 전에 죽은 어느 예술가의 죽음, 그 현장에서 포착된 모종의 패턴과 "개성"과 이 건이 서로 많이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지능적이고 비뚤어진 성품의 시리얼 킬러가 배후에 도사린다는 암시도 됩니다.  직전 권에 앨범을 보내 온 그자처럼, 이 범인 역시 공권력과 탐정에 뭔가 도전하는 듯한 태세를 굳이 감추지도 않습니다.

티모시 플라셰와 이미 한 살림 차린(헉!) 로빈을 자꾸 떠올리며, 뭐 바람기로는 세계 어느 남자 못지 않을 알렉스는, 이 책에서 또 몇 분 여성과 잠시 순간을 함께합니다. 그를 선망해 온 여러 여성들에게 공덕도 쌓겠다 눌러 왔던 회포도 풀겠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이 "외도 아닌 외도"가 이제 그에게는 죄의식으로 다가옵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 까닭을, 왠지 전여친 로빈과 동일시될 이유가 많은, 저 젊은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범인을 잡는 과제는 이제 로빈에 대한 (간접)미안풀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고 냉혈한 범죄자를 잡아들여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닥터 디의 내면에서 동일한 동기와 추동력에 의해 진행됩니다. 영어에서 cold-blooded란 말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동정, 여유, 연대의식, 사랑을 전혀 결여한 채, 제 개체의 생존만 냉혹하게 추구하는 성질이나 행태를 가리킬 때 쓰이죠(보통 뒤에 bastard도 붙습니다만ㅎ). 닥터 디는 이 사건을 해결하며, 자신 속에 슬쩍 감춰진 한 가닥의 이기심, 공감 회피 본능도 함께 마주하여, 이를 고치고 다스리려 애 씁니다. 이 작품은 그래서, 다른 요소가 최소한으로 개입 자제된, 닥터 알렉스 델라웨어 혼자의 분투기라는 시리즈 원 색깔에 최대한 복귀한 구성이기도 합니다. 이 권만 우연히 큰글씨 판으로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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