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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걷기]
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마지막회] | [둘이 걷기] 2016-06-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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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I'll be back, Venecia!

베네치아를 떠나 본토로 돌아오면서 헤르만 헤세가 베네치아를 여행하고 남긴 글이 떠오른다. "베네치아로의 여행만큼 긴장되는 경우도 없다. 기차가 물의 도시로 들어가노라면 도시가 물로부터 서서히 솟아오른다."(1)

그렇다면 떠나면서 뒤돌아보는 베네치아는 서서히 물로 가라앉고 있을 것이다. 헨리 제임스가 베네치아를 변덕스러운 여인에 비유한 까닭을 알려면 한나절 머물러서는 안 될 일이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를 따로 여행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때 베네치아를 다시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구경을 잘 했으니 밥을 먹을 차례다. 수상택시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밀라노로 가는 길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 발칸여행길에서 처음 먹게 된 한식이다. 한국에서 먹는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맛은 훌륭했다. 아마도 장맛 때문이 아닐까?

발칸지역에 한국관광객이 늘고 있다니 특히 두브로부니크 정도라면 한식당을 열어도 괜찮을 듯하다. 점심을 잘 먹고 나니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여유 있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2시 무렵에 밀라노로 떠난 일행은 6시를 조금 넘겨 밀라노 말펜사공항에 도착했다. 밀라노 외곽에서 잠시 퇴근길 정체를 만났지만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 밀라노 두오모


수년 전에 밀라노와 베네치아의 중간에 있는 스트레사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학회 중간에 짬을 낼 수 있었는데, 일행 가운데 일부는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가고, 필자 일행은 밀라노를 구경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베네치아를 보았더라면 이번 여행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밀라노 역시 언젠가는 아내와 함께 갈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때는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펜사공항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발권수속을 마친 다음에 보안검색을 거치면 바로 면세점 구역이 나오고,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출국심사를 하게 돼 있다. 보통은 보안검색 후에 바로 출국심사를 하는 공항들이 대부분인 것과는 다른 점이다. 따로 살 것도 없고 해서 면세점을 지나쳐 바로 출국심사를 받고 게이트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베네치아를 출발하면서 읽기 시작한 슬라보예 지젝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마저 읽었다.

필진 가운데 한 사람인 슬라보예 지젝이 슬로베니아출신인 점을 고려하여 고른 책이다. 발칸여행을 떠나면서 여행지와 여행기간 그리도 이동거리 등을 고려해서 5권을 골랐다. 마크 마조워의 '발칸의역사', 이종헌의 '낭만의 길 야만의 길',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슬라보예 지젝 등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그리고 스반테 페보의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등이었다. 나름대로는 이번 발칸여행과 관련된 내용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에 들고 간 책을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창밖의 풍경에 무심했던가 싶다.

저녁 10시에 예정되었던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비행기를 오래 타야 하는 경우 창문 쪽 좌석을 피하는 것은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때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앉는 경우도 있다. 비행기가 높이 날기 때문에 달리 볼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출발할 때나 내릴 무렵에는 이국적인 대지의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간비행에서는 그마저도 어둠 속에 묻히고 불빛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대도시 부근에서는 휘황찬란한 불빛쇼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을 지날라치면 외롭게 흩어져 있는 불빛이 가냘프게 깜박이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 남미여행길에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야간비행


야간에 단독비행을 하곤 했던 생텍쥐페리는 그 불빛의 의미를 남다르게 느꼈던가 보다. "이 어둠의 망망대해에서 반짝이고 있는 모든 불빛들은 하나하나가 그 나름대로의 뜻과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떤 집안의 불빛은 책을 읽기 위해서 그렇게 켜져 있었고, 다른 집안에서는 공간을 측정하기 위해서, 또 안드로메다 성운을 열심히 관찰해보기 위해서 켜져 있기도 했다. 그 모든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2)

어둠을 홀로 지키고 있다 보면 생각이 날개를 달고 무한하게 날아오르기 마련이다. 생텍쥐페리는 그런 생각들로 매듭을 지어 만들어낸 영롱한 구슬들을 꿰어 작품을 써냈을 것이다.

책을 모두 읽은 탓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할 일이라고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밖에 없었다. 추억의 명화 '카사블랑카'가 기억에 남는다. 40여년 전에 명화극장에서 본 탓에 기억이 가물거렸는데 이번에 제대로 기억을 강화한 셈이다.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여는 순간 마무리되는 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인천공항에는 공항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두 곳이다. 당연히 첫 번째 서는 곳으로 갔어야 하는데, 이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번째 서는 곳으로 가는 바람에 버스 한 대는 좌석이 없어 보내야 했고, 한참을 기다려 온 버스도 겨우 끝자리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보는 우리 산하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역시 가을 분위기는 우리나라가 최고다.

여행을 정리해보면 급하게 결정을 하는 바람에 놓치면 섭섭한 장소, 예를 들면 사라예보, 베오그라드, 류블라냐 등이 빠졌다. 이번 여행상품은 크로아티아의 작은 도시들을 엮다보니 떨어져 있는 대도시들을 끼워 맞출 수 없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5개국을 포함하는 상품은 대도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특히 아드리아해안을 따라서 흩어져 있는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려서 선택했던 것이고, 일정을 잘 맞추지 못해서 여유 있게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발칸을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겨루던 오스만제국, 베네치아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모두 힘이 쇠잔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명이 접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으니 남겨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시작할 때 구상했던 것보다는 정리할 내용들이 많았던 까닭에 연재가 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발칸지역의 문학작품들로는 우리에게 소개된 것이 많지 않을뿐더러 필자가 과문한 탓에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오늘로써 발칸여행기를 마무리하고, 한 주일 정도의 여유를 둔 다음에는 지난 1월에 다녀온 남미여행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참고자료

(1) 클라우스 틸레-도르만 지음. 베네치아와 시인들 267쪽, 열림원 펴냄, 2007년
(2) 생 텍쥐페리 지음, 생 텍쥐페리의 우연한 여행자 7쪽, 세시 펴냄, 2013년

 

메디칼 타임스: 기사입력 2016-06-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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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29] | [둘이 걷기] 2016-06-1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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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3)

자유시간 다음에는 선택관광상품으로 곤돌라를 타기로 했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보지 못하면 베네치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를 제대로 보려면 걸어서 다리를 건너다니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방법과, 곤돌라를 타고 좁은 수로를 따라 가면서 역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방법이 있다.

비발디광장에 이르는 골목길을 조금 걸은 것으로 퉁치고, 이번에는 수로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 입구에 있는 성 마가의 사자가 앉아 있는 원주 가까이 있는 선착장에서 곤돌라를 탔다. 일행들 가운데 두 팀만이 곤돌라타기를 신청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그만큼 자유시간을 더 즐길 수 있는 셈이다.

 ▲ 골돌리에가 날씬하다는 것도 편견(좌), 탄식의 다리를 지나고(우)


곤돌라를 모는 뱃사공을 곤돌리에라고 하는데, 베네치아의 좁은 수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멋들어진 목소리로 노래 한 자락을 뽑는 상상을 해보지만, 흔들리는 곤돌라에 주눅이 들었던 탓인지 곤돌리에하고는 한 마디를 섞어보지도 못했다.

쫘악 빠진 몸매로 날아갈 듯한 자세로 중심을 잡으면서 곤돌라를 모는 환상적인 모습의 곤돌리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뚱뚱한 몸매에 배가 가라앉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곤돌리에도 있다. 총독궁 앞을 떠난 곤돌라는 탄식의 다리가 걸려있는 수로를 따라 들어갔다.

다리가 높지 않은 탓에 머리를 잔뜩 숙여야 했다. 그리고 보니 왼쪽은 총독궁이고 오른쪽은 감옥이다. 곤돌리에는 우리를 생각해서인지 총독궁 가까이 길을 잡는다.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의 좁은 수로를 따라가는 느낌을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적었다.

"나의 곤돌라는 소운하를 가고 있었다. 저 동방도시의 미로를 안내하는 마신의 손처럼, 내가 나아감에 따라서, 멋대로 그은 가느다란 항적으로, 무어풍의 작은 창문이 난, 줄지은 높다란 집들을 양쪽으로 밀어붙이면서, 그 구역 한가운데에 길을 트고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 간혹 더 훌륭한 건물이 비밀 상자를 열 듯이 뱃길에 나타나기도 한다. 코린트식 기둥들이나 정면에 우의적인 조각상이 있는 상아로 만든 조그만 신전 같은 건물은, 주위의 평범한 사물들 사이에 끼여서 약간 메떨어지고 쓸쓸해 보였으며, 운하와 잇닿은 그 앞마당은 야채 짐을 부리는 선창 같았다.(1)"

베네치아의 속살이라고 할 수 있는 수로를 따라 곤돌라가 나아가면서 프루스트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 좁은 수로 사이에 있는 그럴 듯한 호텔(좌), 2와 43번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우상), 낡은 집으로는 수로의 물이 흘러들 것 같고(우하)


곤돌라 두 대가 비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좁은 수로를 돌아나가면 번듯한 호텔이 등장하는가 하면, 건물 안에서 내다보는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기도 하고, 공간이 없을 것 같은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에서 관광객이 '깍꿍'하고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다리 위를 지나던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너무 낡아서 사람이 살지 않은 듯한 집도 있는데, 그런 집들은 수로의 물길이 출입문을 위협하는 듯 보였다. 골목길 수로에는 모터를 단 배가 다니면 안된다고 들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40여분을 이리저리 흔들리다보니 곤돌라는 벌써 선착장에 들어서고 가이드를 비롯한 우리 일행들이 반긴다. 다음 일정이 빠듯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은 전세낸 모터보트를 타고 그랑 카날(Canal Grand)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랑 카날의 초입 왼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은 '건강의 성모성당'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성당는 1630년 베네치아를 강습했던 흑사병과 연관이 있다.

1630년 여름에 시작한 흑사병은 1931년까지 기승을 부려 베네치아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도시에서만 46,000명 석호 전체로 따지만 9만 4,000명이 죽었다. 1930년 10월 베네치아 의회는 16세기 흑사병이 유행할 때처럼 교회를 세울 것을 결정하였는데, 도시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가 아니라 성모에게 헌정하기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찌되었던 성당은 1631년 착공하여 1687년 완공을 보았다. 발데사레 롱게나(Baldassare Longhena)가 설계한 비잔틴양식의 8각형 건물에는 두 개의 돔을 올렸고, 뒤쪽으로는 그림 같은 두 개의 종탑을 세웠다. 교회에는 티치아노의 '성령 강림', '아브라함의 희생', '산 마르코와 성자들'과 틴토레토의 '가나의 혼인잔치' 등이 소장되어 있다.(2)

 ▲ 헤밍웨이가 머물렀다는 그리티 펠리스 호텔(좌), 리알토 다리(우. 위키피디아 인용)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지나 본격적으로 그랑 카날을 탐험(?)한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건너편에는 헤밍웨이가 머물면서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다는 그리티 팰리스 호텔(Hotel Gritti Palace)이 있다.

가이드가 설명한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 교외에 있는 핀카 비히아라는 집에서 집필을 했고, 베네치아에서는 '강건너 숲속으로'를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랑 카날을 지나면서 처음 만나는 다리는 나무로 만든 산 마르코 구역과 아카데미 미술관을 연결하는 아카데미아 다리이다. 베네치아 예술대학이 있는 곳이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는 그랑 카날에 걸려 있는 4개의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1181년 니콜로 바라티에리가 부교형태로 만들었고, 동쪽 입구에 주조소가 있었기 때문에 모네타 다리라고 불렀다.

동쪽 둑에 있던 리알토시장이 점점 번성하면서 교통량이 늘게 되어 1255년에 나무다리로 교체되었다. 개폐교로 된 다리는 큰배가 지나가면 중앙부분이 풀려서 들리게 되어 있었다.

1310년 바자몬테 티에폴로(Bajamonte Tiepolo)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일부가 불타기도 했고, 1444년에는 선박축제에 참가한 배의 행렬을 보기 위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붕괴되었으며, 1524년에도 붕괴사고가 있었다.

1503년 석조다리를 건설하자는 제안이 나와 오랜 공모 끝에 베네치아 건축가 안토니오 다 폰데(Antonio da Ponte)의 설계로 1591년 완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개의 경사로가 중앙 주랑(central portico)으로 들어올려진 모습으로 경사로에는 2열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3)

영국의 문필가 토머스 코리에이트에 따르면 리알토다리를 건설하는데 8만크로네(영국돈으로 환산하여 2만2천 파운드)가 들었다고 했다. 코리에이트는 리알토다리의 난간에 있는 기둥이 모두 252개였다고 기록할 정도로 꼼꼼했다.(4)

 ▲ 그라씨 궁전(좌), 피사니 모레타 궁전(가운데), 발비궁전(우)


아카데미아다리에서 조금 더 가면 시각예술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라씨 궁전(Palazzo Grassi)이 나오고, 이어서 피사니 모레타 궁전(Palazzo Pisani Moretta)을 볼 수 있다. 피사니 모레타 궁전은 러시아 황제 파벨 페트로비치, 나폴레옹황제의 조세핀황후, 신성로마제국의 요제프 2세 등이 머물렀다.

궁안에는 티에폴로(Tiepolo), 과라나(Jacopo Guarana), 디지아니(Gaspare Diziani), 안젤리(Giuseppe Angeli) 등 바로크 미술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고, 특히 1786년 베네치아를 방문한 괴테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그림 '알렉산더의 발치에 엎드린 다리오 왕의 가족'을 보기 위하여 방문하기도 했다.(5)

1582년에 지은 발비궁전은 베네치아의 귀족 발비가문의 집으로 19세기 무렵 미켈란젤로 구겐하임의 소유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아드리아 전기협회로 넘어갔고 1971년에는 베네토주의 소유가 되어 주의회가 사용하고 있다.

 ▲ 세계 최초의 카지노(좌), 산타 루치아 역(가운데), 성 제레미아 성당(우)


1638년에 세계 최초로 문을 열었다는 카지노도 있다. 집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카사(casa)에 작다는 의미의 어미 이노(ino)를 결합한 것이다. 카지노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귀족들의 사교용 별관을 의미하였다. 배는 산타 루치아 역까지 갔다가 처음 버스에서 내렸던 장소로 돌아갔다.

산타 루치아 역은 밀라노와 연결되는 노선의 종점으로 산타 루치아 교회가 있던 자리에 1860년에 착공하여 1952년에 완공을 본 것이다.(6) 산타 루치아 성당에 모시고 있던 산타 루치아 성녀의 유해는 가까운 성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다.(7)

그랑 카날을 따라 서있는 수많은 건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가이드로부터 들으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 사진을 찾아보니 기억이 가물거린다. 역시 가이드의 말대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불과 한 나절에 베네치아 돌아보기를 마쳤으니 무어 하나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것 같다. 역시 베네치아에서 머물면서 해가 뜰 때, 그리고 해가 질 때의 베네치아의 모습, 기회가 된다면 안개낀 베네치아, 비가 내리는 베네치아를 경험해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베네치아를 뒤로 했다.

참고자료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 사라진 알베르틴 270-271쪽, 국일미디어, 2007년
(2) Wikipedia. Santa Maria della Salute.
(3) Wikipedia. Realto bridge.
(4) 클라우스 틸레-도르만 지음. 베네치아와 시인들 72-73쪽, 열림원, 2007년
(5) Wikipedia. Palazzo Pisani Moretta.
(6) Wikipedia. Venezia Santa Lucia railway station.
(7) Wikipedia. San Geremia.

 

메디칼 타임스: 기사입력 2016-06-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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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28] | [둘이 걷기] 2016-06-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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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2)

 ▲ 총독궁


총독궁 앞을 지나 산마르코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도제(Doge)라고 하는 베네치아공화국의 국가원수가 거처한 궁전은 813년 성마르코성당과 함께 건축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308년부터 1424년에 걸쳐 지은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아래 두층은 우아한 아케이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의 전면은 흰색 석회암과 분홍빛 베로나 산 대리석을 사용한 마름모 문양의 무어(Moore)식 취향으로 장식되어 건물의 무게감이 사라진 듯 아른거리는 효과를 자아낸다.'라고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은 적었다.(1)

산마르코대성당 쪽의 파사드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성 마가의 사자' 석상이 있고, 2층 아케이드의 일곱 번째 기둥에는 원형머리장식으로 도시 최고의 미덕인 '정의'를 상징하는 부조를 새겼다. 양 옆에 사자가 호위한 가운데 솔로몬의 의자에 앉은 여성은 오른 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있다.

"나는 공정함과 강함에 군림하며, 바다는 나의 분노를 씻어내린다.(FORTIS IUSTA TRONO FURIAS MARE SUB PEDE PONO)" 총독궁에는 티치아노의 '스폴레토 전투'를 비롯하여 "평화를 너에게, 복음서가 성 마가(PAX TIBI MARCE ENVANGELISTA MEVS)"라는 경구가 적힌 책을 펼치고 있는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 마가의 사자'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 산 마르코 광장의 카페


총독궁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성마르코 성당이 있고 그 앞으로 널따란 광장이 열린다. 밀물이 물러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광장은 가운데는 아직도 물이 고여 있다. 광장 주변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는 식탁 없이 의자만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의자가 모두 식당 쪽으로 놓여있는 것은 식당 앞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악단이 손님의 희망곡을 연주해준다고 했다.

장방형의 광장의 중간쯤까지 걸어가서야 성 마르코 성당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공사 중인 듯 성당의 오른쪽 파사드가 천막으로 가려져 있어 아쉽다. 우리와는 달리 캄포 산 모이세 쪽에서 보카 디 피아차(광장의 입구)를 통하여 들어온 존 러스킨은 산 마르코 성당에 이르기까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열주들 사이에 숭고한 빛이 떨어지고 그 중앙으로 천천히 나아갈 때 산 마르코의 거대한 탑은 가지각색의 돌바닥으로부터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듯하다. 양쪽으로는 무수히 많은 아치들이 대칭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으며, (…) 다양한 열주들과 흰색 돔들이 모여 다채로운 빛깔의 높고 낮은 피라미드형상을 이루고 있다. (…) 열주의 꼭대기에는 복잡하게 얽힌 트레이서리, 단단하게 얽힌 목초, 너울대는 아칸서스와 포도 덩굴 잎,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처음과 끝을 맺는 신비한 기호들로 가득하다. 열주 위의 아키볼트 안에는 천사들, 천국의 상징, 인간의 노동이 각각 대지 위에 정해진 계절과 함께 끊임없는 언어와 삶의 연결고리가 되어 나타난다."(2)

 ▲ 산 마르코성당


산 마르코 광장의 동쪽 끝에 자리한 산 마르코 성당은 벽면을 금박 모자이크로 가득 채우고 있어 황금의 교회(Chiesa d'Oro)라고 부르기도 한다. 828년 이전까지 베네치아는 아마세아의 성 테오도로를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테오도로에게 봉헌된 성당은 지금의 산 마르코 성당 부근에 있었다.

828년 이슬람세력의 박해가 시작되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모셔졌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옮기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베네치아의 도제는 성 마르코를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정하고,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실 성당을 도제궁(총독궁) 옆에 짓기 시작했다. 산 마르코 성당은 콘스탄티누폴리스에 있는 성 사도 대성당을 모방하여 832년에 완공되었다.

이때 지은 성당은 976년에 발생한 폭동에 불타는 바람에 978년에 재건되었으며 1063년부터 1094년에 이르기까지 보완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도제의 개인성당이었던 산마르코 성당은 1807년부터는 베네치아교구의 주교좌성당이 되었다.(3)

 ▲ 산 마르코성당의 파사드 테라스에 올려진 콰드리가(상), 출입구에 그려진 예수의 삶에 관한 그림들(하)


산 마르코 성당의 백미는 내부와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이다. 황금과 청동, 유리를 비롯한 값비싼 광석을 이용하여 약 8,000㎡에 달하는 공간을 고딕양식과 비잔틴양식으로 장식한 모자이크는 예수의 삶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산 마르코 성당에서는 이스탄불에 있어야 할 유물들을 볼 수 있다.

1204년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가 제4차 십자군 원정대를 꼬드겨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함락하고 약탈해온 것들이다. 그 대표적인 유물이 산 마르코 성당의 정면 테라스에 올려놓은 '콰드리가(quadriga)'라는 이름의 청동제 말 조각상이다. 콰드리가는 말 네 마리가 끄는 이륜전차로 고대 로마시절 전차경주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이스탄불 역시 콰드리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모양이다. 원래는 그리스의 히오스 섬에 있던 것을 동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콘스탄티누폴리스에 있던 전차경기장 히포드럼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콰드리가의 기구한 운명은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1204년 베네치아로 옮겨온 뒤 1254년부터 산 마르코 성당을 장식하면서 '산 마르코의 말(Cavalli di San Marco)'로 개명까지 당한 콰드리가는 1797년 나폴레옹군이 베네치아를 함락한 뒤 파리로 옮겨졌다. 나폴레옹은 1808년 루브르 궁전의 카루젤 광장에 세운 개선문 위에 콰드리가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쫓겨난 뒤 1815년에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산 마르코 성당의 정면 테라스를 지키던 콰드리가는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청동이 부식되기 시작하자 성당 내부의 박물관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복제품을 세워 놓았다.

그밖에도 이집트산 자주색 반암에 새긴 사두정의 네 황제들(The Tetrachs)과 팔라 도르(Pala d'Oro)가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약탈해온 것들이고, 하기아 소피아에서 뜯어온 대리석 판석이 성당내부에 깔려있다.(4)

 ▲ 산 모이세 교회(좌), 시나이산의 모세(우.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함)


광장을 가로질러 존 러스킨이 광장에 들어왔던 골목으로 들어가면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 등 명품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가이드들은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쇼핑에 목숨을 거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나 보다. 적지 않은 시간을 명품점에 붙들어 두었지만, 실제로 명품을 구입한 분은 없던 것 같다. 그리고 얻은 얼마 되지 않는 자유 시간을 이용해서 이 골목에 있는 산 모이세 교회(Chiesa di San Moisè)에 잠시 들렀다.

8세기경에 처음 지어진 이 교회는 모세에게 헌정되었다. 베네치아에서는 비잔틴제국처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 예언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있었다. 교회는 9세기경에 재건축되었다가 1668년 바로크양식의 파사드를 세웠다. 모이세교회의 파사드는 빈센쪼 피니(Vincenzo Fini)가 후원하고, 알레산드로 트레미뇽(Alessandro Tremignon)가 건축설계를 맡았다.

파사드 조각의 일부는 하인리크 마이링(Heinrich Meyring)의 작품이다. 성당의 내부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는데, 엄숙한 분위기라서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모세를 새긴 마이링의 조각 작품에 모레이터(Morlaiter)의 그림을 곁들인 작품이 압권이며, 천장의 성화와 피에스타 조각 등이 볼만하다.(5)

이어서 선택상품인 곤돌라를 타러가야 했기 때문에 자유시간은 짧기만 했다. 결국 종탑에는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

참고자료
(1)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 지음.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73쪽, 예경, 2001년.
(2) 존 러스킨 지음. 베네치아의 돌 136-137쪽, 예경, 2006년
(3) Wikipedia. St. Mark's Basilica.
(4) 나무 위키. 산마르코 대성당.
(5) Wikipedia. San Moisè, Venice.

 

메디칼 타임스: 기사입력 2016-06-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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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27] | [둘이 걷기] 2016-06-1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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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1)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 가는 국경은 출입국 절차 없이 통과했다, 창밖의 풍경도 바뀌어서 널따랗게 펼쳐지는 평야지대다. 포스토니아동굴을 떠난 버스는 두어 시간 만에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이날 하루 동안 우리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3개국을 여행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베네치아에 들어오는 관광버스는 체크포인트까지 가서 별도로 신고를 하고 600유로를 내야 한단다. 신고를 마치고 호텔로 향하던 버스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버스의 네비게이션이 숙소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숙소로 연락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거의 8시가 되어 베니스호텔 빌라도리에 도착했다.

 ▲ 베니스호텔 빌라도리의 특이한 식당


그런데 숙소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건물 밖에 불상이 서있고 식당에도 많은 불상을 모시고 있었다. 불상의 모습으로 보아 인도의 밀교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코끼리상을 한다거나 팔이 네 개인 불상도 있다.

헷갈리는 것은 식당 한쪽에 바가 있고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과 빨간색의 불빛이 난무하고 있어 경건한 분위기는 아니다. 다음날 들어보니 주인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에 따른 수집품을 전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의 주도로 인구 264,579명(2014년 기준)이 살고 있는데, 구시가지에 6만, 인근 섬에 3만 그리고 나머지는 본토 쪽 신시가에 살고 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를 흐르는 포(Po)강과 피아베(Piave)강이 흘러드는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을 운하와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 조성한 도시이다.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기원전 10세기 베네티(Veneti)사람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다. 로마제국에서 비잔틴제국으로 이어지는 사이 본토 쪽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곳 습지에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6세기 무렵 아틸라(Attila)가 이끄는 훈족에게 밀려난 게르만족의 일파인 롬바르드족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도시가 커감에 따라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뽑았고, 비잔틴제국의 황제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697년 최초로 뽑은 총독(Doge)은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Paolo Lucio Anafesto)였다.(1)

프랑크왕국과 비잔틴제국 사이에 끼어있던 베네치아공화국은 뛰어난 항해술과 상술을 바탕으로 중계무역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서기 1000년경에는 비잔틴제국의 간섭을 벗어나 발칸반도의 연안으로 영토를 확대하였고, 1204년에는 제4차 십자군을 인도하여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15세기에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여 동방무역을 독점하여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16세기 들어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 패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서양항로를 개척하면서 세력이 기울게 된다. 오스만제국과의 끊임없는 충돌이 이어지면서도 잘 버티던 베네치아공화국은 1797년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1805년에는 나폴레옹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가 181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2)

섬이라고는 해도 썰물 때 물 위로 드러나는 갯벌에 불과한 지역에 도시를 건축하기 위하여 베네치아 사람들은 식민지였던 발칸지역에서 실어온 길이 4미터 정도의 통나무를 갯벌에 촘촘히 박아 넣고 그 위에 나무 기단을 얹은 다음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수상가옥인 셈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를 짓기 위하여 들어간 나무말뚝이 무려 1,106,657개나 되었다고 하니 대단한 역사(役事)가 아니었을 것이다.(3)

그래서 역사가 마린 사누도(Marin Sanudo)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힘으로” 건설된 도시라고 했나보다. 도시가 해발 1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밀물 때는 바닷물이 넘쳐서 산 마르코 광장에서 수영을 하는 외지인들도 있다고 한다.

 ▲ 우리는 베네치아로 접근 중


8시에 숙소를 떠난 버스는 무솔리니가 건설했다는 자유의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의 공용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베네치아에 사는 한국인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한나절 일정의 베네치아 관광을 시작했다. 공영주차장에서 전셋배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 인근에 있는 부두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멀리서 바라보는 베네치아는 그대로 물위에 떠있는 도시였다. 일렁이는 파도 때문인지 떠오르는 아침 해 때문인지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에는 몽환적인 도시의 느낌이 그대로 담긴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베네치아에서 보낸 한 나절은 페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이 '베네치아의 르네상스'에서 묘사한 그 느낌 그대로였던 것 같다.

"배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의 광경은, 교외를 지나 성문을 통과하고 길을 따라 점점 도심에 접근해가는 여느 도시 입성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방문객들은 처음부터 베네치아를 한 눈에 펼쳐진 일대 장관으로 경험한다. 그런 다음 발길이 닿지 않은 물길을 따라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듯, 곧바로 도시의 심장부에 다다른다. 베네치아에서는 사물들이 시시각각 달라 보인다.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시선을 돌려 빛과 대기가 뒤섞인 흐릿한 수평선으로 녹아 들어가는 아른거리는 수면을 볼 때, 그 동안 전해들은 얘기와 실제가 그렇게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은 베네치아의 실제 지형적인 위치 때문일 것이다."(4)

 ▲ 비발디광장(좌상), 비발디광장의 우물(좌하), 산 지오반니 교회(우)


가이드가 일행을 처음 데려간 곳은 4계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생가와 1678년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산 지오반니 교회(San Giovanni in Bragora)가 있는 광장이다.(5) 축구장 크기 광장은 사방에 들어선 건물로 밀폐된 느낌이 든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은데, 광장 한 곳에 서 있는 작은 나무가 한 그루가 숨통을 틔워주는 듯했다.

광장이 이런 모습인 것은 물이 귀한 베네치아에서 빗물을 모아 사용하기 위한 치수체제 때문이라고 했다. 광장과 주변의 건물에 내리는 빗물은 광장 아래 있는 저수조에 모아 허드렛물로 사용한다고 했다.

 ▲ 총독궁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앞 건물이 누오베라감옥 뒷건물이 총독궁(좌), 탄식의 다리(우)


광장을 나와 아치형의 다리를 몇 개 건너 총독궁으로 이동한다. 총독궁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은 피리지오니 누오베라 감옥이다. 총독궁의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죄수를 누오베라 감옥으로 이송할 때 이용했다는 탄식의 다리를 볼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쫄깃해졌을 것 같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는 죄수들이 탄식을 했대서 탄식의 다리라고 불렀다는데,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일을 배달하는 곤돌라의 사공은 무심하게 노를 젓는다.

유일하게 누오베라 감옥을 탈출한 이가 바로 카사노바였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재판도 없이 5년형을 받아 감옥에 수감된 이유도 가설이 분분하고, 탈출한 방법도 가설이 여럿이라고 하는데, 어떻든 탈출하면서 감옥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이제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가노라." 역시 낭만가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겠다.

참고자료

(1) Wikipedia. Venice.
(2) 위키백과. 베네치아공화국.
(3) 나무위키. 베네치아.
(4)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 지음.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15쪽, 예경, 2001년.
(5) Wikipedia. Antonio Vivaldi.

 

메디칼 타임스: 기사입력 2016-06-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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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26] | [둘이 걷기] 2016-06-0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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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포스토니아 동굴

 로비니에서 슬로베니아국경까지는 1시간, 포스토니아 동굴까지는 2시간반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문제는 여행할 무렵 급증하는 중동난민들 때문에 국경감시가 강화되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국경에 늘어선 버스가 없어 출입국수속이 곧바로 진행됐다. 덕분에 포스토니아동굴에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고, 4시로 예정되었던 투어를 한 시간 당겨서 시작했다.

포스토니아 동굴은 카르스트지형으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에서도 두 번째로 긴 석회동굴이다. 카르스트(Karst)라는 단어는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 지방을 이르는 독일어이다. 이 지방에는 중생대에 만들어진 석회암이 두텁게 분포하고 있어, 용식작용의 의한 독특한 지형이 많다.

따라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같은 지형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석회암이 많다고 해서 모두 카르스트지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로 방해석(CaCO3) 형태의 탄산염이 60%가 넘어야 되고, 웬만한 구경거리가 되려면 90%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탄산칼슘이 탄산가스가 포함된 빗물에 잘 용해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는 지상에 만들어지는 돌리네(doline)와 우발라(uvala), 그리고 석회동굴(limestone cave)이 있다. 석회암이 빗물에 용식되어 움푹 파이는 지형을 돌리네라고 한다. 토양 속에 있는 석회암이 용식되어 만들어지는 것을 용식 돌리네(solutino doline)라고 하고 지하에 있는 석회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만드는 함몰 돌리네(collapse doline)가 있다.

돌리네가 2개 이상 결합된 지형을 우발라라고 한다. 돌리네 가운데에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 역할을 하는 낙수혈(sinkhole)이 있다. 석회암의 틈새로 흘러 든 지하수가 하천으로 연결되면 대량의 석회암이 녹아내리면서 석회동굴이 만들어진다. 이런 동굴에서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녹아든 탄산칼슘이 다시 결정을 이루면서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을 만들게 되는데, 이런 지형을 스펠레오뎀(speleothem)이라고 한다.(1)

 ▲ 포스토냐 동굴로 흘러드는 피브카강


24.12km의 포스토냐 동굴(Postonja cave)은 톰린 미고베츠(Tomlin Migovec)에 있는 깊이 975m 길이 24.9km의 알프스 동굴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석회암 동굴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인 포스토냐동굴은 피브카강(Pivka river)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 동굴은 카르스트지형 연구의 선구자 요한 바이크하르드 폰 발바소르(Johann Weikhard von Valvasor)에 의하여 처음 기술되었으며, 대중에 공개된 것은 1818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초대 황제 프란시스 1세(Francis I)에 의해서이다.

1872년에는 철로를 개설하였는데, 관광객을 위한 동굴열차로는 세계 최초의 것이었다. 1884년에는 류블라냐보다 앞서서 전기불을 밝혔는데, 이 또한 세계에서 최초로 동굴에 전기를 가설한 것이다. 1945년에는 개솔린으로 움직이던 전동차를 전기 전동차로 교체하여 운행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이곳을 점령한 독일군이 천여드럼의 항공유를 저장하였는데, 1944년 4월 슬로베니아 파르티잔들이 공격하여 파괴하는 바람에 7일 동안이나 불탔다고 한다. 이때 동굴입구의 상당부분이 파괴되고 검게 그을렸다.(2) 가이드에 따라서는 동굴에 전기가 가설되기 이전에 횃불에 의지하여 구경을 하다 보니, 횃불의 그을음이 천장에 들러붙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 포스토냐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블랙홀로 빠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로 진행하는 동굴가이드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아직은 한국어로 진행하는 동굴가이드는 없나보다. 입장권을 내고 동굴에 들어가면 한 칸에 두 명씩 탑승할 수 있는 꼬마열차에 오른다. 출발에 앞서 열차 밖으로 몸을 내밀거나 일어서지 말라는 주의를 받는다. 열차가 들어가는 동굴이 생각보다 협소한 장소도 있나 보다.

일반에 공개되는 거리는 열차로 움직이는 거리를 포함하여 5.3km 남짓인데, 1.5km 정도를 걸어서 구경하고 나머지는 꼬마열차로 이동하면서 구경하는 것이다. 꼬마열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열차주변에 있는 종유석들은 눈에 들어왔나 하면 벌써 뒤로 지나기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열차의 전면을 향해서 찍은 사진을 보니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 골고다의 언덕 주변의 종유석들


회의실(Conference hall)이라는 이름의 광장에서 꼬마열차를 내렸다. 1819년 성신강림절에는 이곳에서 무도회를 열린 뒤로 무도회홀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이곳에서 조금 걸어가면 높이 45m의 언덕이 나온다. 거대한 산(Great Mountain) 혹은 골고다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기다리던 가이드를 따라 본격적인 동굴탐방이 시작된다.

이곳을 두고 현대 영국 조각의 개척자 헨리 무어(Henry Moore)는 ‘자연의 가장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했다. 유연한 곡선이 특징인 그의 작품들을 보면 포스토니아 동굴에서 만나는 자연의 위대한 작품들의 선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러시아다리(좌), 피사의 사탑(우)


가이드를 따라나선 동굴 투어는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종유석은 동굴의 조건에 따라서 자라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는 셈인데, 대체로 100년에 1cm 정도 자란다고들 한다. 석회동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종유석들은 적어도 수천년의 세월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진 것이다. 느림의 미학으로는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석회동굴에서 종유석들이 부러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다만 시멘트를 타설하여 탐방로를 만든 것이 옥의 티라고 할까?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석의 모습에 홀리다 보면 걸음이 꼬여 휘청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어 컴컴한 동굴 속 계곡 위에 걸려 있는 다리를 건널 때는 바짝 긴장하게 된다.

이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해서 ‘러시아 다리’라고 부른다. 다리 위에서는 컴컴한 가운데 희미한 조명을 받는 피사의 사탑이 계곡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스파게티홀(좌상), 파라다이스홀의 석주(좌하), 다이아몬드(우)


계곡을 건너면 파라다이스 동굴이다. 동굴 초입에 있는 스파게티홀은 천정에 온통 스파게티 면발 같은 종유석이 늘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파라다이스 동굴을 지나는 사이에 가이드가 불을 끄는 시간이 있다. 키스타임이라고 웅성거렸지만, 사실은 종유석에서 석순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종유석마다 물방울이 맺히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물방울 소리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영겁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멈춤 없이 이어져 온 시간의 소리이기도 하다. 조금 더 가면 뻐꾸기라고 해서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종유석이 있다.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정도에 따라서 다른 소리를 낸다. 이어서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의 순백색의 석순을 만난다. 바로 옆에 서 있는 황갈색의 석순과는 달리 우유 빛깔의 석순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불빛의 일부가 투과된다고 해서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3)

동굴투어가 끝나고 모이는 장소는 엄청나게 넓은 콘서트홀이다. 무려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장소에서는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데,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등을 비롯해서 슬로베니아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협연을 열었다고 한다. 콘서트 홀 가운데 서서 소리를 내면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오는지 모를 반향이 환상적이다.

 ▲ 휴먼피쉬(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함)


콘서트홀에 있는 작은 수조에서 양서류 살라만다의 일종인 옴(Olm)을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오로지 동굴에서만 서식하는 척삭동물이다. 대부분의 양서류와는 달리 어류처럼 물속에서만 산다. 뱀처럼 긴 몸통에 네 발이 달려 있으며 물속에서 살고 있는 특이한 종으로 파충류와 양서류 그리고 어류의 특징도 아우르고 있는 독특한 동물이다.

동굴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눈이 퇴화되어있고 피부에 멜라닌색소가 없어 하얀색이다. 백인의 피부를 닮았을 뿐 아니라 수명도 인간과 비슷하게 80-100살 정도 살 수 있대서 휴먼피쉬라고 하나보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젖은 땅을 파고든다고 해서 모체릴(močeril)이라고도 부른다.

길이 30cm 정도의 휴먼피쉬는 지하동굴의 물이 넘칠 때면 물 밖으로 휩쓸려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 눈에 띄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공룡의 새끼라고 믿었다. 이렇게 지상으로 나온 휴먼피쉬는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 포스토냐 동굴 안을 흐르는 피브카강의 여울목


동굴입구에 가까워지면서 꼬마열차는 작은 계곡을 건너는데 엄청난 양의 물이 계곡을 따라 동굴 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가이드의 말로는 슬로베니아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지상의 세계와 지하동굴의 세계. 슬로베니아전역에 얼마나 많은 지하동굴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참 다행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렸을 적에 읽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속 여행'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사화산 분화구를 통해서 들어간 지하세계에는 1억 5천만년 전에 사라진 생물들이 살고 있었던 것인데 슬로베니아의 지하세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그 비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웃한 크로아티아의 북부 크라피나 동굴과 빈디자 동굴에서 발견한 네안데르탈인 유골에 있다.

라이프치히대학의 스반테 페보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DNA와 핵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과정을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에 담았다. 발칸여행길에 흥미롭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포스토냐동굴 어딘가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 숨어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1) 지리세계. 석회암과 카르스트 지형.
(2) Wikipedia. Postonja cave.
(3) 오동석. 두루가이드-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동유럽 발칸여행.

 

메디칼 타임스: 기사입력 2016-06-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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