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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미래를 생각한 못생긴 소나무 | 나의 리뷰 2023-06-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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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못생긴 소나무

정운복 저
생각나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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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작가는 춘천 풀무문학회 회장으로서 6권의 에세이를 펴낸 작가입니다.

『흙의 문화를 꿈꾸며』,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

『고래가 바다로 간 이유』, 『벽과 담쟁이』,

『물처럼 바람처럼』, 『느림의 행복』에 이어서

2022년에 일곱 번째로 펴낸 에세이가 『못생긴 소나무』이고요.

이 작품에 대해 누군가 이런 리뷰를 썼네요.

 

"못생긴 소나무"는 정운복 작가의 에세이집입니다. 2015년에 출간되었으며, 2016년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책은 자연 속에서 느끼는 삶의 편린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매일 아침 짧은 단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이러한 자연에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담아냅니다.

 

이 책은 짧은 글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하여 행간을 자주 띄운 것이 특징입니다. 현대인의 바쁜 삶 속에서 긴 글을 인내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편마다 주제가 다르므로 그냥 펼쳐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짧은 글 긴 생각처럼 글은 짧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소화해도 좋을 내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힐링 에세이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자연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글은 잘 쓴 리뷰일까요?

글쎄요. 심금을 울리는 멋진 리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단점을 지적하기도 곤란한

그런대로 무난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이 책에 대해서 저 정도로 글을 쓰려면,

최소한 『못생긴 소나무』를 읽었을 테고,

정운복 작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가능한 글이겠지요.

 

그렇다면 저 글의 작가는 누구일까요?

AI입니다.

**** 프로그램에서

"정운복이 쓴 『못생긴 소나무』를 알려주세요."라고 요구하니

3초 만에 저런 글이 나온 것입니다.

 

저 글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

『못생긴 소나무』는 2021년에 출간되었으니,

2015년에 출간되고,

2016년에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냥 인터넷에 올라온 정운복 작가의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짜깁기를 하다 보니 저런 글이 나온 것이지요.

 

AI가 쓴 글 속에는 출판사의 리뷰, 독자의 리뷰 등

인터넷에 올라 있는 여러 정보가 있는 듯합니다.

AI는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단 3초 만에 저런 글을 완성했네요.

 

제가 보기에 최소한 두 번째 문단은

『못생긴 소나무』를 비롯한 정운복 작가의 에세이들을

가장 잘 설명한 내용으로 보이고요.

 

AI의 글은 아직은 이런저런 단점이 있지만,

수학과 게임과 전쟁 등 고도의 지식을 종합한 바둑 분야에서는

알파고가 당대 최고의 기사인 이세돌 9단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기사들을 압도한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는 알파고를 능가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된 상태이고,

AI끼리의 컴퓨터 바둑대회도 열리는 시대이고요.

지금은 모든 기사들이 AI를 최고의 고수로 인정하고 있고,

AI를 통해서 바둑을 배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문학이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어쩌면 10년 이내에 AI에 의해서

노벨문학상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한글문서에서 맞춤법 정도만 교정을 해주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그 문맥은 물론 전체 문장 요소요소에서

그 내용에 가장 적합한 글을 AI가 알려주게 될 것이고.

문인들이 너도나도 AI에게 글을 배우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고요.

 

AI 프로그램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이나 작품 공모도 있을 수 있겠지요.

학생이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 대회에서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 소지를 금지하는 규정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그런 세상이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까지 근무하던 교단 시절에도

나는 수행평가로 학생들이 쓴 글을 볼 때는

과연 이 글이 학생의 작품인지,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인지 혼동이 될 때도 있더군요.

그래서 수행평가의 글짓기는 교실에서만 실시하였지요.

하지만 학생이 머릿속으로 암기한 글이라면

거기까지 확인할 능력이 없었고요.

AI의 문장력은 점점 발전할 텐데,

이런 시대에 내가 리뷰나 어떤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절망적인 생각도 드는군요.

 

그래도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요?

 

아, AI에게도 불가능이 있다고 하네요.

어떤 지식에 대해서 아무도 그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지 않는다면,

AI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옛 시절에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는데,

온갖 정보가 그보다 더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인터넷 시대에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일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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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삶을 산 최북 | 나의 리뷰 2023-05-3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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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붓, 한 자루의 생

최삼경 저
달아실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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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생』은 지인에게 받은 책이다. 지인의 지인이 쓴 소설인데 읽어보라는 의미로 선물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니 최삼경 작가는 나와도 지인일 수 있는 인연이다.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 춘천에서 오래 살았으니 오다가다 스치기도 했을 법하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최북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다. 요즘은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는데, 350쪽 가까이 되니 제법 두툼한 분량이다. 한편 나는 그림에 대한 안목이 거의 없다. 최북에 대해서도 성격이 괴팍해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고관과 다투다 스스로 자해하여 애꾸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당대 유명한 화가라는 것 외에는 그의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재미가 있을까, 아무튼 낭만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을 펼칠 때 '흥미진진'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해서 나의 배경지식이 거의 없으니 혹시 그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나온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것 같지 않고, 자해할 정도의 성격이라면 정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듯하며, 조선시대 화가의 삶이라는 것이 풍류와도 관계가 없을 듯했다. 혹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테니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책을 펼치고 몇 장을 넘기면서부터 거의 놓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만큼 몰입했다고 할까.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무엇이 그리 흥미진진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당대의 역사만 단순하게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서민의 삶까지도 마치 신문을 보듯 자세히 묘사했다.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간 듯 실감이 났다고 할까.

 

둘째, 작가의 깊은 연구에 재삼 놀랐다. 최북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 상황은 실록 등 참고 자료가 많으리라고 본다. 조선 시대를 비롯하여 조선에 영향을 미친 중국의 서풍이나 화풍도……, 아마 미술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자료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 시대 서민들의 생활까지 어찌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놀랍기만 하다.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로 교단생활을 했다. 국어라는 교과가 거의 모든 학문의 도구적 성격이 있다. 국어 교과서를 지도하려면 문학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위인이나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인물과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아야 한다. 교재연구를 하면서 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그 시대의 신문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왕과 신하들의 붕당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 각 지역의 위치와 분위기, 상류층은 물론 하류층의 생활상까지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어떻게 찾았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만주의 생활과 풍속(최북의 장인인 란의 아버지의 회상 장면)까지 담긴 것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가와 같이 당대의 시대상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교재 연구를 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역사서나 기행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장면들이 작품의 전개에 전혀 어색하지 않게 펼쳐진다는 것은 작가의 연구와 내공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셋째, 소설적인 완성도도 높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최북이 이순신이나 김유신같이 전쟁 영웅도 아니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애절한 사랑이나 감동적인 효행이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 흥미진진할 이유가 없으며, 스스로 자해해서 눈이 상한다는 것이 유쾌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최북이 그림과 글에 관심을 갖고, 이웃의 양반의 눈에 들어서 그림을 배우고, 화가가 되었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데……, 어찌 보면 평범한 이 이야기를 독자가 싫증 내지 않도록 이끈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역량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넷째, 사랑 이야기가 있으니 흥미를 더해준 듯하다. 최북의 장인인 란이 아버지가 만주에서 란이 어머니와 만나서 가정을 이룬 이야기, 최북이 란이와 만나서 결혼을 한 이야기, 최북은 그러면서도 기생 월향과 만나면서 풍파를 겪게 된다. 자세한 묘사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줄인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최북의 삶과 거리가 먼 허구이겠지만, 독자로서는 재미가 있었다.

 

다섯째, 뜬금없지만  이정명 작가의『바람의 화원』이 생각났다. 15년 전에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도 독자의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유명 화가인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단원 김홍도를 혜원의 스승이자 연인으로 가정해서 작품을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단행본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단원과 혜원의 작품이 삽화로 곳곳에 소개되면서, 작가는 그림에 얽힌 일화를 덧붙이면서 풀어주니 자연스럽게 그림 공부도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최북의 그림들을 자주 삽화로 소개하면서 작품의 배경과 연결시키고 있다.

 

『바람의 화원』이나 『붓, 한 자루의 생』은 전기나 작품 해설서가 아니라 평전이다. 작품에서 언급한 그림의 배경이나 일화가 반드시 사실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작가의 상상도 덧붙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감상은 독자의 몫이니 작가의 관점 역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또한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진다는 데서 두 작품의 공통성이 느껴졌다.

 

여섯째, 작품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꼈다. 중국과 한국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찾으려는 최북의 고뇌를 담은 대목에서는 화가의 집념과 열정을 느꼈다. 아울러 중국과 한국의 그림에 대한 나의 이해도 깊어졌다. 지금까지 동양화나 한국화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깊이 있게 쓴 글을 보지 못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애정을 갖고 읽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북(최북)은 산이며 강이며 들판에 나가 실경(實景)을 보며 대충의 밑그림을 그릴 때면, 과연 실제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많았다. 실경이란 것이 같은 날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실재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억이 어찌 이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기억을 통한 재현은 이미 왜곡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표암이나 겸재가 말하는 '진경산수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또한 산수화 자체가 그린 이의 화의(畵意)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 진경이라는 말이 참으로 애매하였다. (303~304쪽)"

 

최북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회의를 거듭하면서, 진정한 그림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번뇌를 하는 장면이다. 형식상으로는 최북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지만, 당대 모든 화가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화가나 그림에 대한 평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고민까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이해가 깊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곱째, 나의 예상이 모처럼 맞는 것을 보면서 아직은 나의 생각이 녹슬지 않음을 느꼈다. 최북이 란과 월향을 마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최북의 부모는 백년해로를 못했고, 최북의 장인과 장모도 그랬다. 최북의 누이도 결혼과 동시에 소식이 끊기면서 친정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오지 못했다. 작품 속의 남녀 관계가 순탄한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최북과 란, 또는 최북과 월향의 관계를 암시하는 복선일 것이라고 보았는데,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예상대로 작품이 전개되었다.

 

여덟째, 이순원 작가의 『은비령』이 떠올랐다. 『은비령』은 실재의 지명이 아니고, 그곳은 작은 한계령 또는 필례령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순원 작가가 동명의 작품에서 남주인공이 한계령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덟 곳에 '은비팔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작품이 독자의 호응을 받으면서 소설 속의 지명인 '은비령'이 실제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작품 속의 지명이 실제의 지명이 된 드문 사례이다.

 

이순원 작가는 최근에 『춘천은 가을도 봄』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이 은비령을 지나는 대목이 나온다.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은비령이라는 상호의 업소가 몇 곳 있고, 주변에서 은비령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명명한 은비령을 자신의 다른 작품 속에서 거론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뿌듯했을까?

 

최삼경 작가의 『붓, 한 자루의 생』에는 최북이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은 뒤에 그곳의 풍경을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 대목에서 최북의 여정이 배를 타고 춘천의 소양강까지 온 뒤에 육로로 금강산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영강, 소양강, 삼악산 등과 주변 풍경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최북이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일행이 춘천을 거쳤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갈 때는 반드시 춘천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강을 통해 여주와 횡성을 거쳐 갈 수도 있고, 철원 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성장한 춘천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최북의 여정을 소양강으로 설정했을 것이고, 주변 풍경을 애정을 지니며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순원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 '은비령'을 거론하면서 득의의 미소를 지었듯이…….

 

아홉째, 김유정 작가의 『봄·봄』을 생각했다. 언젠가 문학회 모임에서 『봄·봄』을 주제로 평가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제목에 왜 봄이 두 번 나왔으며, 사이의 가운뎃 점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그때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1) 두 남녀의 봄을 상징 : 나와 점순이의 봄이므로 두 번, 가운데 점(·)은 서로 마주 봄.

2) '봄을 봄(봄을 보았다)의 준말'을 명사 형태로 표현함.

3) 점순이의 이름 : 아마 그녀의 얼굴에는 점이 있었을 것.

4) 작가 또는 인쇄소의 오타 : 그 시절 맞춤법에는 가운뎃점이 없었음.

 

정답은 모르겠다. 우리들이 정답을 알아낼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붓, 한 자루의 생』에서 쉼표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쉼표가 없으면 어떻고, 느낌표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열째, 다시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되새겼다. 내가 이 작품을 열심히 읽은 이유 중에는 작품 속에서 단원과 혜원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그 그림의 배경을 작가 나름으로 풀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림과 풀이가 좋았다. 그 대목들은 내가 읽은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안내서였다.

 

『붓, 한 자루의 생』에서도 최북의 여러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인쇄 상태가 너무 흐렸다. 그림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실망이 앞섰다. 수십 장의 작품을 원색으로 제시하려면 인쇄비 등의 부담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다음 이미지)에 있는 최북을 검색하여 갈무리한 그림들이다. 이 책의 삽화를 이렇게 원색으로 만날 수 있었다면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이 더욱 컸으리라고 본다.


속표지에 나오는 최북의 초상화이다. 최소한 이 그림만이라도 원색으로 소개하였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열한째, 붓 한 자루의 생을 산 최북이 부러웠다. 백과사전에 나온 최북의 출생과 사망은 '1720년(숙종 46) ~ 미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70세를 넘긴 것으로 전개하고 있다.

 

"북은 자신의 나이가 어느새 칠십이 넘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새삼 알았다. (328쪽)"

 

작가가 무엇을 근거로 최북이 칠십 세 이상의 장수를 누린 것으로 기록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의 벗인 원교와 필재 등이 먼저 떠났고, 그가 죽었을 때 신광하가 「최북가」를 지어 애도한 것 등으로 칠십 세를 넘긴 것으로 본 듯하다. 아무튼 최북은 최소한 환갑은 넘긴 듯하니 그 시대로서는 장수한 것이다. 자해 행위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고, 홀몸으로 술에 찌들면서 가난하게 산 것에 비하면 놀라운 체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왕성한 창작 활동은 아마도 체력의 뒷받침이 있었기게 가능했던 듯하니, 그림과 글의 능력에 더하여 체력과 수명과 명예까지 갖추었으니 이만하면 부러운 삶이 아닌가 싶다. 다만 부귀와 처복이 따르지 않은 듯하나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열두째, 옥에 티를 거론하라면 2%쯤의 부족함을 들겠다. 두 가지만 거론하겠다.

 

1) 헤어졌던 월향이 빈곤한 최북을 찾아와서 식사를 마련하고 냉방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온다. 한동안 불기가 없던 방에서 최북은 그날 모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숙면을 취했다고 하는데…….

 

"북은 간만에 불구경을 한 구들에 뜨뜻하게 허리를 지졌다. 허리부터 시작한 불기운이 불기둥이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214쪽)"

 

글쎄, 나는 시골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황토방에 불을 때며 살고 있다. 한동안 불을 때지 않은 온돌방이라면 그렇게 금방 따뜻해지지 않는다. 겨울 같으면 2~3일은 때야 온기가 느껴지고, 여름이라도 일주일 이상 안 땐 방이라면 하루 정도 지나야 뜨뜻해질 것이다. 불기운이 하루 만에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려면 숯가마 정도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2) 최북의 장인인 난이 아버지는 만주에서 난이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한동안 거주했다. 최북 자신도 만주와 일본과 러시아까지 여행한 것으로 나오는데……. 작품 속에는 중국어, 일본어 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최북이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림을 팔거나 그려주었을까?

 

혹시 작가가 나의 리뷰를 본다면, 억지로 옥에 티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보여 준다면 멋진 대답이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최북이라는 화가는 물론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그 무렵의 정치와 서민들의 삶을 거의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 이 글은 앞서 쓴 1~2차 리뷰에 몇 자를 덧붙여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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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않게 몰입한 최북의 삶 두 번째 이야기 | 나의 리뷰 2023-05-2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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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붓, 한 자루의 생

최삼경 저
달아실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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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만에 완독했다.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던 나로서는 드문 상황인데, 여러 요인이 있는 듯하다. 그만큼 책의 가독성이 높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서울을 여행하면서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을 대여섯 시간 이상 타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책과 나는 좋은 인연인 듯하다는 생각 속에 책장을 덮으면서 스친 생각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작품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꼈다. 중국과 한국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찾으려는 최북의 고뇌를 담은 대목에서는 화가의 집념과 열정을 느꼈다. 아울러 중국과 한국의 그림에 대한 나의 이해도 깊어졌다. 지금까지 동양화나 한국화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깊이 있게 쓴 글을 보지 못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애정을 갖고 읽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북(최북)은 산이며 강이며 들판에 나가 실경(實景)을 보며 대충의 밑그림을 그릴 때면, 과연 실제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많았다. 실경이란 것이 같은 날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실재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억이 어찌 이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기억을 통한 재현은 이미 왜곡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표암이나 겸재가 말하는 '진경산수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또한 산수화 자체가 그린 이의 화의(畵意)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 진경이라는 말이 참으로 애매하였다. (303~304쪽)"

 

최북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회의를 거듭하면서, 진정한 그림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번뇌를 하는 장면이다. 형식상으로는 최북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지만, 당대 모든 화가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화가나 그림에 대한 평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고민까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이해가 깊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둘째, 나의 예상이 모처럼 맞는 것을 보면서 아직은 나의 생각이 녹슬지 않음을 느꼈다. 최북이 란과 월향을 마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최북의 부모는 백년해로를 못했고, 최북의 장인과 장모도 그랬다. 최북의 누이도 결혼과 동시에 소식이 끊기면서 친정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오지 못했다. 작품 속의 남녀 관계가 순탄한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최북과 란, 또는 최북과 월향의 관계를 암시하는 복선일 것이라고 보았는데,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예상대로 작품이 전개되었다.

 

셋째, 이순원 작가의 『은비령』이 떠올랐다. 『은비령』은 실재의 지명이 아니고, 그곳은 작은 한계령 또는 필례령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이순원 작가가 동명의 작품에서 남주인공이 한계령의 아름다움에 반해 여덟 곳에 '은비팔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작품이 독자의 호응을 받으면서 소설 속의 지명인 '은비령'이 실제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작품 속의 지명이 실제의 지명이 된 드문 사례이다.

 

이순원 작가는 최근에 『춘천은 가을도 봄』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이 은비령을 지나는 대목이 나온다. 독자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은비령이라는 상호의 업소가 몇 곳 있고, 주변에서 은비령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명명한 은비령을 자신의 다른 작품 속에서 거론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뿌듯했을까?

 

최삼경 작가의 『붓, 한 자루의 생』에는 최북이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은 뒤에 그곳의 풍경을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최북의 여정이 배를 타고 춘천의 소양강까지 온 뒤에 육로로 금강산으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영강, 소양강, 삼악산 등과 주변 풍경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최북이 금강산을 찾고 그림을 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일행이 춘천을 거쳤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갈 때는 반드시 춘천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한강을 통해 여주와 횡성을 거쳐 갈 수도 있고, 철원 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는 아마도 자신이 성장한 춘천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최북의 여정을 소양강으로 설정했을 것이고, 주변 풍경을 애정을 지니며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순원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 '은비령'을 거론하면서 득의의 미소를 지었듯이…….

 

넷째, 김유정 작가의 『봄·봄』을 생각했다. 언젠가 문학회 모임에서 『봄·봄』을 주제로 평가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제목에 왜 봄이 두 번 나왔으며, 사이의 가운뎃 점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그때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1) 두 남녀의 봄을 상징 : 나와 점순이의 봄이므로 두 번, 가운데 점(·)은 봄.

2) 봄을 봄(봄을 보았다)의 준말을 명사 형태로 표현함.

3) 점순이의 이름 : 아마 그녀의 얼굴에는 점이 있었을 것.

4) 작가 또는 인쇄소의 오타 : 그 시절 맞춤법에는 가운뎃점 없었음.

 

정답은 모르겠다. 우리들이 정답을 알아낼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붓, 한 자루의 생』에서 쉼표의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쉼표가 없으면 어떻고, 느낌표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다섯째, 다시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생각했다. 내가 이 작품을 열심히 읽은 이유 중에는 작품 속에서 단원과 혜원을 비롯한 여러 작가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그 그림의 배경을 작가 나름으로 풀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림과 풀이가 좋았다. 그 대목들은 내가 읽은 단원과 혜원의 그림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안내서였다.

 

『붓, 한 자루의 생』에서도 최북의 여러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인쇄 상태가 너무 흐렸다. 그림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실망이 앞섰다. 수십 장의 작품을 원색으로 제시하려면 인쇄비 등의 부담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속표지에 나오는 최북의 초상화이다. 최소한 이 그림만이라도 원색으로 소개하였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여섯째, 옥에 티를 거론하라면 2%쯤의 부족함을 느꼈다. 두 가지만 거론하겠다.

 

1) 헤어졌던 월향이 빈곤한 최북을 찾아와서 식사를 마련하고 냉방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온다. 한동안 불기가 없던 방에서 최북은 그날 모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숙면을 취했다고 하는데…….

 

"북은 간만에 불구경을 한 구들이 뜨뜻하게 허리를 지졌다. 허리부터 시작한 불기운이 불기둥이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214쪽)"

 

글쎄, 나는 시골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황토방에 불을 때며 살고 있다. 한동안 불을 때지 않은 온돌방이라면 그렇게 금방 따뜻해지지 않는다. 겨울 같으면 2~3일은 때야 온기가 느껴지고, 여름이라도 일주일 이상 안 땐 방이라면 하루 정도 지나야 뜨뜻해질 것이다. 불기둥이 하루 만에 기둥을 타고 지붕까지 전해지려면 숯가마 정도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2) 최북의 장인인 난이 아버지는 만주에서 난이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한동안 거주했다. 최북 자신도 만주와 일본과 러시아까지 여행한 것으로 나오는데……. 작품 속에는 중국어, 일본어 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최북이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사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림을 팔거나 그려주었을까?

 

혹시 작가가 나의 리뷰를 본다면, 억지로 옥에 티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빈다. 다만 더 좋은 작품으로 대답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최북이라는 화가는 물론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그 무렵의 정치와 서민들의 삶을 거의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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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않게 몰입한 최북의 삶 첫 이야기 | 나의 리뷰 2023-05-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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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붓, 한 자루의 생

최삼경 저
달아실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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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자루의 생』은 지인에게 받은 책이다. 지인의 지인이 쓴 소설인데 읽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보니 최삼경 작가는 나와도 지인일 수 있는 인연이다.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 춘천에서 오래 살았으니 오다가다 스치기도 했을 법하다.

 

조선 영조 시대의 화가 최북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되었다. 요즘은 책을 읽을 여유가 거의 없는데, 350쪽 가까이 되니 제법 두툼한 분량이다. 한편 나는 그림에 대한 안목이 거의 없다. 최북에 대해서도 성격이 괴팍해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고관과 다투다 스스로 자해하여 애꾸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당대 유명한 화가라는 것 외에는 그의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재미가 있을까, 아무튼 낭만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을 펼칠 때 '흥미진진'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해서 나의 배경지식이 거의 없으니 혹시 그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나온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것 같지 않고, 자해할 정도의 성격이라면 정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 듯하며, 조선시대 화가의 삶이라는 것이 풍류와도 관계가 없을 듯하다. 혹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테니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책을 펼치자 거의 놓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그만큼 몰입했다고 할까. 읽으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무엇이 그리 흥미진진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단순한 당대의 역사만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서민의 삶까지도 마치 신문을 보듯 자세히 묘사하니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간 듯 실감이 났다.

 

둘째, 작가의 깊은 연구에 재삼 놀랐다. 최북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 상황은 실록 등 참고 자료가 많으리라고 본다. 조선 시대를 비롯하여 조선에 영향을 미친 중국의 서풍이나 화풍도……, 아마 미술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자료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 시대 서민들의 생활을 어찌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놀랍기만 하다.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로 교단생활을 했다. 국어라는 교과가 거의 모든 학문의 도구적 성격이 있다. 국어 교과서를 지도하려면 문학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위인이나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인물과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아야 한다. 교재연구를 하면서 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그 시대의 신문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왕과 신하들의 붕당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 각 지역의 위치와 분위기, 상류층은 물론 하류층의 생활상까지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어떻게 찾았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만주의 생활과 풍속(최북의 장인인 란의 아버지의 회상 장면)까지 담긴 것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가와 같이 당대의 시대상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교재 연구를 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역사서나 기행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장면들이 작품의 전개에 전혀 어색하지 않게 펼쳐진다는 것은 작가의 연구와 내공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셋째, 소설적인 완성도도 높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최북이 이순신이나 김유신같이 전쟁 영웅도 아니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애절한 사랑이나 감동적인 효행이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 흥미진진할 이유가 없으며, 스스로 자해해서 눈이 상한다는 것이 유쾌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최북이 그림과 글에 관심을 갖고, 이웃의 양반의 눈에 들어서 그림을 배우고, 화가가 되었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데……, 어찌 보면 평범한 이야기를 독자가 싫증 내지 않도록 이끈다는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역량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넷째, 사랑 이야기가 있으니 흥미를 더해준 듯하다. 최북의 장인인 란이 아버지가 만주에서 란이 어머니와 만나서 가정을 이룬 이야기, 최북이 란이와 만나서 결혼을 한 이야기, 최북은 그러면서도 기생 월향과 만나면서 풍파를 겪게 된다. 자세한 묘사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줄인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최북의 삶과 거리가 먼 허구이겠지만, 독자로서는 재미가 있었다.

 

다섯째, 뜬금없지만 『바람의 화원』이 생각났다. 15년 전에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도 독자의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의 유명 화가인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하고, 단원 김홍도를 혜원의 스승이자 연인으로 가정해서 작품을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단행본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단원과 혜원의 작품이 삽화로 곳곳에 소개되면서, 작가는 그림에 얽힌 일화를 덧붙이면서 풀어주니 자연스럽게 그림 공부도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최북의 그림들을 자주 삽화로 소개하면서 작품의 배경과 연결시키고 있다.

 

『바람의 화원』이나 『붓, 한 자루의 생』은 평전이나 작품 해설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작품에서 언급한 그림의 배경이나 일화가 반드시 사실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작가의 상상도 덧붙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감상은 독자의 몫이니 작가의 관점 역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또한 독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진다는 데서 두 작품의 공통성이 느껴졌다.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절반을 약간 넘긴 218쪽(전체 348쪽)까지 읽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리뷰 2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한국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최북이라는 화가는 물론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작품 속에는 그 무렵의 정치와 서민들의 삶을 거의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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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은비령 | 나의 리뷰 2023-05-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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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은비령

이순원 저
노란잠수함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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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작가의 '은비령'은 처음 읽는 것이 아니다. 아마 열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처음 읽은 것은 20년 전에 인제중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당시 국어 교과서에 이순원 작가의 글이 실렸는데, 자신이 '은비령'에서 시간의 흐름을 알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고, 그중에 백과사전 등에서 찾은 내용들을 유용하게 활용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저 북쪽 끝 스비스조드라는 땅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있답니다. 높이와 너비가 각각 1백 마일에 이를만큼 엄청나게 큰 바위인데, 이 바위에 인간의 시간으로 천년에 한 번씩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날카롭게 부리를 다듬고 간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 영원의 하루가 지나간답니다."

 

주인공 남녀가 은비령에서 만난 천문학자에게 시간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다. 이런 부분을 비롯한 무궁무진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백과사전을 늘 가까이 두고 읽으라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교과서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이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인 줄 알았다. '은비령'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전설 속의 어떤 계곡인 줄로 알았고……. 그러던 어느 날 교재연구를 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펼쳤다.

 

작품은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어느 문필가인데 젊은 시절에 어느 친구와 함께 한계령 필례 약수에서 고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계령의 경치에 반한 둘은 한계령을 은비령이라고 부르며, 특히 아름다운 경치를 다음과 같이 은비팔경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정하고 붙인 제1경은 우리가 방을 들고 있는 화전 마을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삼주가병풍>이었다. 원통에서 한계령으로 오를 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옥녀탕과 하늘벽, 장수대의 뒤편의 삼현제봉과 주걱봉, 가리봉이 화전 마을에선 병풍처럼 우뚝 막아선 앞산처럼 보였다. 모두 해발 1200미터에서 1500미터가 넘는, 태백산맥의 한 가지를 이루는 가리산맥의 준령들이었다. 제2경으로는 겨울 은비령의 눈 내리는 풍경으로 은비은비(隱秘銀飛)를 꼽았고, 제3경으로는 마을 서쪽 한석산에 지는 저녁노을로 한석자운(寒石紫雲)을 꼽았다. 제4경으로는 맑은 날 아침에도 구름처럼 걸쳐져 있는 우풍재의 안개, 제5경으로는 가리봉을 주봉으로 한 가리산의 가을 단풍 제6경으로는 필례골의 흰 돌 틈 사이로 작은 폭포처럼 가파르게 흐르는 여울, 제7경으로 장작으로 밥을 지을 때 안개처럼 낮게 피어올라 바깥마당을 매콤하게 감싸는 우리 공부집의 저녁연기로 은자당취연을 꼽았고, 마지막 8경으로 맨눈으로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은궁성라를 꼽았다."

 

이 부분을 보면서 마음이 끌렸다. 은비령(한계령)은 내가 근무했던 지역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배경들은 예서 10여 년을 근무하면서 대부분 가 보았거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당시 국어과 동료들에게 이 글은 최소한 인제 관내의 학생들은 읽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설파했다. 이후 관내 독후감 경연대회의 대상 도서로 자주 활용하였다. 지금은 필례 약수 부근에 가면 은비령이라는 상호의 업소를 여럿 볼 수 있고, 사람들은 그 부근을 은비령이라고 부르고 있다. 문학 작품이 실제의 지명으로 정착된 드문 사례라고 할까?

 

물론 인제의 지명을 소개한 것이 좋아서 이 책을 자주 읽은 것이 아니다. 고시 공부를 포기한 주인공은 문필가의 길에 들어서서 어느 정도 문명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가정생활은 순탄치 못해서 이혼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른다. 그런 어느 날 은비령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처지였다. 서로에게 연정을 느끼던 둘은 어떤 계기로 인해 은비령을 찾게 된다. 이 작품은 시간이 정지된 듯한 은비령에서 일어난 사연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주인공 남녀의 애틋한 사연이 마음에 와닿았고, 우수에 잠긴 그녀의 모습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은비령이 좋아서 이 책에 흥미를 느꼈고, 그녀의 모습이 좋아서 이 책에 심취했다고 할까? 인상에 남는 줄거리의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이 세상의 일이란 일은 모두 2천5백만 년을 한 주기로 되풀이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즉, 2천5백만 년이 될 때마다 다시 원상의 주기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2천5백만 년이 지나면 그때 우리는 윤회의 윤회를 거듭하다 다시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여기에 모여 우리 곁으로 온 별을 쳐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성의 위성을 처음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홀의 유머가 삽입되어 있다.

 

그가 아직 하버드 천문대의 조수로 일하고 있을 때 친구와 함께 레스토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 식사를 끝내고 계산할 때가 되자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가 주인인 중년 부인에게 2천5백만 년 주기의 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이런 유머를 했다. 2천5백만 년 후에 자기가 다시 이 레스토랑에 올 거니까 식사 대금을 그때까지 외상으로 해 줄 수 없겠느냐고…….

 

그때 식당 여주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건 외상으로 해주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꼭 2천5백만 년 전에도 손님께서는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셨을 거고 그때에도 지금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식대는 외상으로 할 테니 2천5백만 년 전의 외상값을 치르시기 바랍니다.”

 

식당 여주인이 한 수 위였다고 할까? 다시 읽어도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재미있으며, 아울러 적당히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 글은 이순원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으면서 많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번 읽은 이 작품을 새삼스럽게 다시 펼친 이유는 요즘 지역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있어서이다. 나의 강의 교재에 포함시킬 리뷰를 고르던 중에 이 글을 3편 중에 한 편으로 선택하면서 책도 펼치게 되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 무언가 여운을 남기게 한다. 마치 추억 속의 앨범을 펼치듯 향수도 느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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