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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7. 프로메테우스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1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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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

김재훈 글그림
한빛비즈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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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혹시 수없이 많은 <그리스로마신화> 가운데 무엇을 골라 읽을 것인지 고민인가? 그렇다면 아주 훌륭한 고민에 빠졌다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왜냐면 <그리스로마신화> 만큼 수없이 많은 '변주'를 거친 책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르기 힘든 일이고, 그걸 고민할 정도의 독자라면 이미 상당 수준의 '독서가'임을 인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리스로마신화>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그 수많은 원전들을 섭렵해야 겨우 제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지적 숙련을 거듭하고나서야 겨우 '이책은 이런 맛, 저책은 저런 맛이 난다'고 맛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간신히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 김재훈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가 대단히 훌륭한 원전해석을 선보인 '수준급, 신화인문서'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사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벌써 '두 번째'인데, 같은 책으로 열 번이라도 더 리뷰를 써낼 수 있을 정도로 '대서사극'을 감상한 뒤의 여운이 찐~하게 밀려들고 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번 리뷰에서는 '제우스 중심'이 아닌 '또 다른 신'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한다. 어차피 새로 출간한 2권에서도 '같은 인물(신)'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 신은 바로 '프로메테우스(미리 생각하는자)'다.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1권의 내용은 신들의 전쟁인 '티타노마키아'를 거쳐 올림포스 12신이 정립하는 일대기를 보여주었고, 2권에서는 또 다른 신들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를 치룬 뒤 제우스가 신들 중의 제왕임을 확인해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런데 두 차례의 전쟁에서 '제우스'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고, 제우스에게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왜 제우스의 편을 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기 마련이다. 이제부터 1권의 내용에 집중해보련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두 차례의 '신들의 전쟁'을 선보인다. '북유럽신화'에서도 라그라로크라는 모든 신들이 참전하는 최후의 결전을 치루며 신들의 세상이 저물어가고 인간들의 세상이 펼쳐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지만,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신들의 전쟁'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이후에 인간들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이렇게나 비슷한 양상으로 신화가 전개된 까닭은 다름 아니라 '신화'를 만든 이가 바로 '인간'인 탓이다. 아무리 전능한 신들이 세상을 창조하고 불사의 몸을 갖고 만물 위에 군림하더라도 끝내는 '신들의 전성시대'가 저물고 필멸의 몸을 가진 부족한 이들, 즉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인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점은 '북유럽신화'에서는 거의 모든 신들이 전멸한 뒤에 인간세상이 펼쳐지지만,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최고신임을 재확인한 뒤에 서서히 잊혀져 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들 중심의 신화가 영웅 중심 서사로 바뀌었다가 끝내는 인간 중심의 스토리 라인을 펼쳐낸다는 말이다. 물론, 그 인간들이 '제우스'를 비롯해서 여러 신과 영웅들의 후손임을 밝히는 '족보전쟁'의 양상을 띠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신화'는 '역사'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신화는 허구맹랑한 상상의 소산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빈틈'을 메워주는 소중한 사료로 다뤄져야 한다. 마치 우리가 '단군할아버지'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전쟁인 '티타노마키아'는 말그대로 '티탄(타이탄)과 벌인 전쟁'이다. 그렇다면 '티탄'은 누구인가?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태초에는 카오스(혼돈)이 있었고, 그 무질서한 곳에서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가이아'가 탄생하였다. 가이아는 자신이 낳은 우라노스(하늘신)를 지아비로 삼아 12명의 신을 낳았는데, 바로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낳은 신들이 바로 '티탄족'이었다. 그런데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가이아가 티탄족만 낳은 것이 아니라 괴물들도 여럿 낳았기 때문이다. 우라노스는 괴기망측한 그 괴물들을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이아의 자궁속(타르타로스, 깊은 땅속)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막되먹은 처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 괴물들은 바로 외눈박이 키클롭스 삼형제와 머리 50개, 팔 100개인 괴력의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다. 이렇게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자식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땅속 깊이 유배된 처사에 불만을 들어내고 우라노스를 물리칠 방도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때의 주역이 바로 '티탄족의 우두머리(사실은 막내)' 크로노스다. 가이아의 흉계에 빠진 우라노스가 방심한 틈(!)을 타고 크로노스가 가장 단단한 금속, 아다마스로 벼린 거대한 낫을 들고 제 아버지의 거시기를 싹뚝 잘라버린 것이다. 그리고 제 아버지의 왕좌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거사에 성공한 가이아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크로노스가 어머니를 배신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거사는 성공하였고 크로노스는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신들의 세상에도 '질서'는 있는 법이어서 가이아는 울분을 삼키고 또 다른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왕의 자리에 오른 크로노스도 마음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거시기가 잘리면서 저주를 남겼기 때문이다. "크로노스, 너도 네 자식에게 똑같이 당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크로노스는 자신의 누이이자 아내인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낳는 족족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다섯 명의 자식을 제 아빠가 삼켜버리는 광경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레아는 여섯 번째 아이(제우스)만큼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를 기회로 삼아 가이아는 크로노스를 몰아낼 궁리를 하면서 자신의 손자이기도 한 제우스를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 제우스는 쑥쑥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우라노스의 저주를 실현시키며 크로노스에게서 왕좌를 탈환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크로노스를 한 방에 처리하지 못했기에 기력을 회복한 크로노스는 자신의 형제인 '티탄족'을 이끌고 제우스의 형제들과 맞서 싸우게 되는데, 이것이 최초의 신들의 전쟁 '티타노마키아'다. 우리의 또 다른 주인공인 '프로메테우스'가 티탄족인데도 제우스의 편을 들어 제우스가 승리할 수 있게 한 숨은 공신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자신의 형제를 배신하고 제우스의 편을 든 까닭이 무엇이었냐는 점이다.

 

  수많은 신화학자들은 '프로메테우스(미리 생각하는 자)'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10년이나 이어졌던 '티타노마키아'에서 제우스가 끝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미리' 알고 있었던 탓이라고 해석한다. 과연 그뿐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훗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창조주'로 활약하는 장면과 연관지으면서 신들의 세계를 '티탄'이 지배하는 것보다 '티탄의 자식들'이 지배하는 것이 더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썰을 풀어놓았다. 더 재미난 일 말이다. 사실 이 말이 좀 무시무시한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재미'를 말할 때, 질서정연한 곳에서 느끼기보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인 무질서한 곳에서 더 찐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재미없고 지루한 천국보다 하루하루가 짜릿하고 화끈한 지옥이 더 낫다는 말에 열광하는 이들이 더 많겠냔 말이다. 이런 짜릿한 미래를 예견한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동족을 배반하고 말았다.

 

  물론, 배반의 대가는 치욕, 그 잡채였다. 이건 2권에서 다시 이야기하련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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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6. 제임스 조이스, 제대로 읽어보자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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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젊은 예술가의 초상

박성문 글/이철희 그림
채우리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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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한 대목에서 '좋은 작품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좋은 작품은 인간의 감정을 사로잡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라는 표현을 빌리는데, 무언가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의 감정이 생긴다면 좋은 작품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저 밋밋한 좋지 못한 작품이라고 한 구분하였다. 여기에 한 눈에 사로잡을 만한 '형식'까지 갖춘 작품이라면 미인을 바라볼 때, '그녀의 이름은 무엇일까? 어디에 살까? 남자 친구는 있을까? 무엇을 좋아할까? 말을 한 번 걸어볼까? 하고 꼬리에 꼬리는 물며 궁금해하는 것이 생기는데, 바로 이런 감정이 '사로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런 궁금증이나 관심이 '광휘'를 만든다고 했고, 조이스는 다시, 광휘를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더 깊이 몰두하여 진실된 모습을 깨닫는 것'이라고 풀었다.

 

  그렇다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좋은 소설'일까? 많은 이들은 제임스 조이스가 기존의 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현대소설(모더니즘)의 기틀을 닦았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존의 소설이 '행위 중심'으로 서술한데 반해, 조이스는 '의식 중심(떠오르는 이미지)'으로 이야기를 서술함으로써 소설속에 '초현실주의'를 실현시키는데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평가하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독자들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다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기도 전에 책을 덮어버리고 말 것이다. 왜냐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이 무작정 '좋은 소설'이라는 평만 믿고서 소설속으로 뛰어들다보면 '의식의 흐름 기법' 때문에라도 어질어질 멍한 채 이리저리 헤매기만하다가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리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허나, 작품속에 담긴 '배경지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이 책'이 왜 그토록 극찬을 받는 소설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한 명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 중심'으로도 읽어도 좋고, 영국의 식민지로 신음해야만 했던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아픔과 고뇌를 이해하며 '민족주의의 각성'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도 있으며, 종교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안정적인 직장인으로써의 '종교에 대한 성찰' 등등 하나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독자가 지니고 있는 '배경지식'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다양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펼쳐내는 소설이야말로 훌륭한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서울대선정 문학고전'으로 읽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고전문학의 깊이를 체험하지 못한 예비독자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물론, 길라잡이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만 달달 암기하듯 '감상'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진정 '고전문학'에 담긴 참뜻을 이해하는데 스스로 한계를 긋는 작업일 뿐이다. 더구나 이 책은 '만화형식'이라서 '원작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제대로 맛볼 수도 없으며, 그런 기법을 통해 선보여지는 '작가의 분신'인 소설속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의 수많은 갈등과 고민도 생생하게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저 원작에서 '그런 것들'을 다루고 있다는 '정보'만 달달 외우고 '시험대비'만을 위한 독서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법답안처럼 제시되어 있는 '작품해석'을 이해한 뒤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길 바란다. 이 책은 그런 '재해석'을 위한 첫 디딤돌로 활용해야 더욱 바람직하며, 이 책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토록 두서없이 서론이 장황한 까닭은 나 역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으며 엄청 헤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의식의 흐름기법'이지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기도 전에 확확 바뀌는 장면연출과 부족한 배경지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이해를 하기 전에 책을 덮어버리고 만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는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썰을 풀어보아야겠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한 예술가의 자전적인 소설인 까닭에 작품속의 인물과 배경이 마냥 '허구성'을 띤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진심 가운데 나는, 작가의 고국이 '아일랜드'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강대국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을 하는 민족주의자가 있는 반면에, 어둡고 아픈 현실 앞에 '삶의 당위성'을 빌미로 내세우며 그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삶의 길을 찾아나서는 현실주의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사상가(?)'들이 모두 아일랜드인이라는 점이 비극의 시작인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의 눈에는 조국의 어두운 앞날이 예견되는데도 비굴하게 압제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조국을 배신하고, 동포를 배신하면서도 오직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반면에 현실주의자들의 눈에는 거대한 바위에 달걀던지기 꼴로 하나 뿐인 소중한 목숨마저 헛되게 낭비(?)하며 불가능에 가까운 '조국의 독립'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부추기는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이렇게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현실을 제임스 조이스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이스는 소설속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반민족적인 행태'를 일삼는 이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아니, 어린시절에도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 당당히 '옳음'을 밝히고 한 점 부끄럼없이 떳떳한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겼던 자신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런 올곧은 성품이었기에 '성직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고민하던 시절에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사창가를 들락거렸던 자신에게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런 고통은 자신이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면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지만, 가정의 생계를 걱정해야만 하는 '청년시절'이 되자 생계를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 하는가? '자신의 꿈(자아)'을 실현시키기 위해 예술가의 혼을 갈고 닦아야 하는가?로 고민하게 된다. 물론,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민족적인 고뇌'를 내려놓지 않았다. 당시의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출세와 안녕을 위해서 조국을 배신하고 '영국의 입맛'에 딱맞는 설교를 늘어놓는 비겁한 모습과 예술이란 이름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수준 낮은 창작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베끼면(도둑질)서도 부와 명예를 적당히 건져올려 배를 채우면서도 부끄러울 줄 모르는 몰염치함도 서슴없이 비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작중화자인 '스티븐 디덜러스'는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해 그리스의 뛰어난 장인 '다이달로스'처럼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화려한 비행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을 보여준다. 어려움에 빠진 '조국'과 '가정'의 비참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면서도 '예술가의 혼'을 불태울 열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는데도, 현실은 중국에 이어 미국을 '종주국'으로 삼고, 강대국(?) 일본의 식민지인처럼 '강자의 입맛대로' 시키는 일에만 충실히 따르는 멍청이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라 굳게 믿고 있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이런 멍충이들은 미국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일본이 '아직'도 강대국이라는 꿈에서 깨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미국의 간섭 없이도 잘살 수 있고 일본 따위는 한 수 아래로 보아도 될 정도로 후진국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어찌하여 외면하게 되었을까? 몹시 궁금할 지경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런 멍충이들이 대한민국에 절반 가까이나 살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절반이나 되는 멍충이들을 깨우쳐주는 일이 아니다. 이미 깨어있는 나머지 절반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멍충이들이 활개를 칠 수 없기 때문이다. 멍충이들을 깨우치게 하는 일보다는 분명 쉬운 일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이 무어냐고? 그 첫 번째는 무엇보다, '돈, 많은 놈'이 부럽다면 그놈들이 '사악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돈, 많은 놈'은 그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돈, 많은 놈'을 '돈도 많은 분'으로 개과천선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 문화 등등 총체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부익부빈익빈이 만연하고, 계층사다리가 사라져버려서 '없는 사람'은 출세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그럼 당당히 요구해라! 대한민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라고 말이다. 그게 바로 '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이 후진적으로 썪어서 서민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런 놈들을 '찍어준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정치는 '선거'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하는 것이다. 당당히 요구해라!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돈도 많은 분'만이 이 땅에 충만해질 때까지 '해야 할 일'을 망각하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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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3. 드디어, 이 책을 읽는다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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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비의 섬 1

쥘 베른 저/김석희 역
열림원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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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까지 '여담'을 조금 풀어놓자면, <열림원>에서 출간한 '쥘 베른 컬렉션'을 한창 사모으고 있었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책을 많이 사지 못하던 때여서 진짜 '소장각'인 책들만 사모으던 터였는데, 쥘 베른의 열혈팬이었던 나는 이 책에 아낌없이 홀릭해버렸다. 그렇게 10권을 모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책의 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분명 '컬렉션 목록'에는 <신비의 섬>을 비롯해서 <황제의 밀사>, <기구 타고 5주간> 등등이 소개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후속작'이 출간되었는데, 막상 사려고 보니 '표지갈이'가 되어 버린 '개정판'으로 출간해버린 것이다. 가격이 오른 것은 둘째치고, 기존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까지 싹다 '표지갈이'가 되어, 이전과는 아주 다른 '장서'로 재출간이 된 것이었다. 더구나 '이전 장서'와는 책의 높이마저 달라져서 '구매욕구'가 싹 사라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쥘 베른 컬렉션'은 새단장한 모습으로 또 다른 모습의 '쥘 베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연이어 새책들이 출간되었더랬다. 하지만 난 끝내 '개정판'을 사모을 수가 없었다. 마치 '개정판'을 사모으게 되면, 기존에 모았던 책들에 대한 '배신(?)'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난 왠지 모를 '배신감'에 '개정판'에 대한 미움만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 '개정판'도 오래 가지 못하고,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소위 '잘 팔리는 책들(?)'만 엮어서 또 다른 '표지갈이'로 지금의 책이 출간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해저 2만리>에 등장했던 '네모선장의 정체'가 <신비의 섬>에서 밝혀진다는 문구를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두말없이 '또또 개정판'에 해당하는 이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책꽂이에는 두 개의 '이질감'이 가득한 쥘 베른 컬렉션이 장식하게 되었다. 앞으로 '또또 개정판'을 사모으게 될런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개정판이 출간되더라도 제발 '표지갈이'는 완간을 한 뒤에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넌지시 호소해보려 한다. 정말이지 '완간'도 되기 전에 표지를 바꿔버리면 구매욕이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암튼, 내가 <신비의 섬>을 읽게 된 까닭은 앞서 말한 '네모선장의 정체'가 밝혀진다는 문구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1권을 다 읽어보니, 첫 느낌은 '어른판' <2년 동안의 휴가(15소년 표류기)>를 읽은 듯한 느낌도 들고, '무인도'에 정착해 아무 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1권의 줄거리에서 '네모선장의 비밀'이 밝혀지는 내용은 없었지만, 네모선장의 흔적(?)인 듯한 '암시'가 되는 부분들은 몇몇 있었다. 다섯 명의 조난자 중에서 네 명은 폭풍속을 기구를 탄 채 날다가 추락하던 중에 해안가에 표류해서 운좋게 생존하지만, 단 한 명은 '동굴' 속에서 발견 되었다는 점이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 같은 섬의 호수에서 괴물같이 거대한 듀공이 격렬한 사투 끝에 죽임을 당했는데, 듀공의 사체가 '날카로운 칼'에 의해 잘려진 것같은 상처가 커다랗게 있었다는 점, 그리고 조난자와 함게 표류한 개, 토비가 새로 정착한 동굴을 거처로 삼은 뒤에도 '바다로 통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는 통로 근처에서 이상하리만치 경계를 하고 으르렁거리는 장면이라든지, 마지막으로 덫에 걸린 새끼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다가 딱딱한 돌 같은 것을 씹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돌이 아니라 '납으로 만든 총알'이었다는 점에서 탐정같이 예리한 독자들은 '네모선장의 비밀'과 연관지을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해저 2만리>에서도 네모선장이 바다 한가운데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섬에서 '노틸러스호'를 기항하고 수리를 하거나 보급을 하는 '신비한 섬'을 언급한 대목이 있기에 <신비의 섬>에서 '무인도'라고 알려진 '링컨 섬'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증거'들은 애독자들에겐 단지 '무인도'가 아니라는 설정, 그 이상의 설렘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흥미진진한 '단서'들은 일단 2권에서 다시 '본격, 추리'를 해보도록 하고, 다시 책의 줄거리로 시선을 돌려보려 한다. 먼저 줄거리는 단순하다. 다섯 명의 조난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기구를 타고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리치먼드에서 탈출에 성공하지만, 하필 탈출할 때의 날씨가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이었던 탓에 운좋게 탈출에 성공한 것이 그만, 폭풍속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렇게 남서쪽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려가다가 망망대해에 추락을 면하기 위해 기구 안에 실었던 '모든 것'을 기구밖으로 떨구며 근근히 버티다 '운좋게(?)' 육지를 발견하고 불시착을 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육지는 망망대해에 갇힌 섬이었다는 전개다. 그리고 그 섬은 대륙이나 가까운 섬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뱃길과도 멀리 떨어진 탓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였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토록 아무 것도 없는 섬에서 '생존의 불씨'를 되살린 것은 다름 아니라 '인류의 지혜', 그리고 '문명의 지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믿기 힘든 현실이 펼쳐지면서 '쥘 베른의 역작'이라는 면모가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이는 다섯 명의 조난자가 대단한 능력자들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그 뛰어난 능력은 그들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먼저, 만물박사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이러스 스미스'는 Cyrus(키루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대왕의 이름에서 따왔고, <뉴욕 헤럴드> 신문기자인 '기디언 스필렛'은 종군기자로 활약하면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용맹함을 갖춘 지성인으로 척박한 무인도에서도 위대한 모험가로 활약하며 조난자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벗고 나서는 영웅적 인물이었다. 또한, 사이러스의 하인을 자처한 '네브'라는 흑인이 등장하는데, 북군으로 참전한 사이러스는 네브를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켰지만, 원래부터 충직하고 성실하며 헌신적인 성향을 띤 네브는 해방된 뒤에도 사이러스의 하인을 자처했더란다. 이런 '네브'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군주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대왕에서 따왔다. 이 대왕은 백성을 사랑한 자애로운 왕이었으며 왕비를 위해 손수 '공중정원'을 만들어줄 정도로 지극정성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항해에 잔뼈가 굵은 선원 출신의 '펜크로프',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고 박물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춘 소년 '허버트'가 합류하여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신비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 설정과 전개는 이 책이 <15소년 표류기>나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까닭은 앞선 두 소설에서는 표류자들이 '우연한 계기'로 생존에 필요한 물자나 원료를 얻게 되면서 무인도에서 생존하고 끝내 탈출하게 되지만, <신비의 섬>에서는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완전 고립된 무인도에서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무인도에서 용광로를 만들어서 '철기도구'를 제작해낸다든지, '니트로글리세린'이란 폭발물을 조제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화학제조'를 실현한다든지, 맨몸으로 표류했음에도 굻어죽지 않을 정도를 넘어서서 매일매일 '사냥'에 성공해서 '고기(단백질)섭취'를 가능케하여 무인도에서 문명을 일구어내는 왕성한 체력을 뿜뿜해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뻥이 좀 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쥘 베른은 이러한 '무모한 설정'을 온전히 '과학의 힘'을 바탕으로 완벽히 무마시켜버렸다. 무릇 인류에겐 '지식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월할 수밖에 없고, 그런 우월함을 바탕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무모한 '과학만능주의'의 폐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인간의 관점'에서만 '자연의 섭리'를 논하고, 그런 섭리의 위험함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내린 축복'으로만 해석하며 자연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모습은 이 소설의 유쾌함에 살짜쿵 걸림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쥘 베른이 19세기 작가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이 지구의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어쨋든, 1권은 씹던 고기에서 '납 총알'이 발견되어 2권에서 벌어질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예고하며 마무리하였다. 2권에서는 또 어떤 '네모선장의 비밀'이 파헤쳐질지 기대가 만빵이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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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5. 방대한 역사공부, 한 병씩(?) 차근차근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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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처음 세계사 5

초등 역사 교사 모임 글/한동훈,이희은 그림/서울대 뿌리 깊은 나무 감수
주니어RHK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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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공부를 하다보면 '중간이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도 '처음'과 '끝'은 기억이 생생하기 마련인데, '가운데'에는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가물가물하고, 순서도 헷갈리기 십상인 것처럼 세계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어서 '모든 것'을 다 씹어먹을 듯한 열정으로 달려왔다하더라도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가는 이즈음의 역사가 아리까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모두 10권의 시리즈 가운데 5권에 해당하는 부분이 그렇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막상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떠듬떠듬 헷갈리고 마니 말이다. 더구나 요즘 세계사는 '서양(유럽)중심사'를 벗어나 '중동아시아사'와 '아메리카문명', 그리고 '이슬람문명'을 비롯해서 '인도사', '중국사', '한국사', '일본사'까지 아울러 소개하고 있기에 광범위한 세계사를 눈앞에 두고서도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 감도 잡을 수 없게...아니 주눅이 들 정도로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방대한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쿠르트 50병을 마시는 방법'으로 표현해보려 한다. 요쿠르트 한 병은 누구나 부담없이 단번에 쭉 들이킬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병조차 뚜껑을 까서 마시기보다 밑을 이빨로 뜯어서 쪽쪽 빨아먹거나 꽁꽁 얼려서 반으로 잘라 먹는 '기이한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역사공부를 해서는 결코 인류역사 오천년을 총망라하여 정리할 도리가 없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요쿠르트 한 병'을 가볍게 쭉 들이키는 상상을 하길 바란다. 이렇게 '한 병 마시기'가 너무나 수월한 관계로 '다섯 병'을 한 팩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빨대를 하나씩 꽂아 쪽쪽 빨아먹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도전(?)의식이 샘 솟았나보다. 다섯 병도 손쉽게 들이키는데 '50병'을 마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요쿠르트 50병을 커다란 대접에 부어서 한 번에 들이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한 병에 50밀리리터라고 해도 열 병이면 500밀리리터이고, 그렇게 다섯 배를 하면 2500밀리리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커다란 생수 1리터(1000밀리리터)를 2병 반을 원샷하는 셈이다. 이게 보통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역사공부가 그렇다. 단원 하나하나는 외울 것도 만만해보이고, 이해해야 할 것도 고만고만해보이지만 '역사책' 10권을 통째로 외우고 이해하려 들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면 요쿠르트 50병을 모두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서 '한 번에 한 병씩' 꾸준히 마시면 50병은 물론, 100병도 거뜬히 마실 수 있게 된다. 역사공부는 무릇 이렇게 하는 것이다.

 

  <처음 세계사 5>에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를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점차 퍼지게 되었는데, 한 가지 분야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다함께 성장발전한 것이 큰 특징 중 한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학문, 예술, 문화 등등'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의 특징'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럽의 중세 1000년 동안 '신학 중심'으로 발전을 해오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눈 뜨게 한 것이 르네상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무너지고 고대의 그리스로마신화 때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종교개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가톨릭 교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들게 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종교개혁'은 루터의 반박문을 시작으로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칼뱅, 그리고 영국의 국교회와 청교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유럽은 '구교'와 '신교'가 대립 아닌 대립을 하게 되고, 같은 신앙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갈등으로 커지더니 급기야 '종교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즈음 서유럽국가들은 '인도 항로'를 새로 개척하기에 열을 올린다. 지중해로부터 인도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이슬람세력'이 가로막고서 통행료(관세)를 거두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 이러한 부대비용을 절약하고서 인도의 향신료로 얻을 커다란 이득을 새로 챙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부풀어올랐기 때문이다. 이 당시 과학사의 업적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증거가 유럽인들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그래서 용감한 모험가들은 지중해를 벗어나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와 대서양을 건너 지구 한바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데 성공했고,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젤란은 실제로 세계 일주에 성공(마젤란은 필리핀 원주민에게 살해)하는 위업을 달성하며 '신항로 개척'에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메리카 문명'은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는데, 다행스럽게(?) 마야문명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멸망했지만, 아스텍과 잉카 문명은 유럽인이 가지고 온 '총, 균'에 의해 원주민 대학살이 벌어지고 만다. 이렇게 아메리카의 자원을 강탈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은 '서구제국주의의 첫 번째 만행'을 저지르며 성장발전하게 된다.

 

  한편, 이슬람 문명은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인도'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는데, 각각 '오스만 제국',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이다. 앞서 '칭기즈 칸의 정복전쟁'으로 헝가리까지 뻗어갔던 '몽골제국'은 칭기즈 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여러 개의 '칸국'으로 나뉘게 되었고, 몽골군에게 크게 놀라 휘청거렸던 이슬람세력은 '오스만 제국'으로 다시 자리를 잡게 되고, 칸국으로 자리 잡았던 '몽골의 후예들'은 각각 중앙아시아를 발판삼아 '티무르 제국'으로, 인도로 뻗어나간 이들은 '무굴 제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티무르 제국은 한 세대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인도에 정착한 '무굴 제국'은 인도의 힌두교와 결합하면서 인도의 왕조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원나라를 세워 중국땅에 정착한 '몽골의 후예'는 한족의 저항에 밀려 '북원'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 '명나라'가 새워지게 된다. 그렇게 명태조 '주원장'은 강력한 통치력으로 자금성도 세우며 강력한 황권을 세우지만, 그가 죽자 '후계 문제'에 휩싸여 형제들이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왕권 다툼'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명나라의 기세는 날로 커지게 되고, 급기야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까지 조공무역을 성사시키면서 전세계에 '화교'를 정착시키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즈음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로 건국되었는데, 세종대에 이르러 나라기틀을 다잡더니 '과학기술, 문화예술'이 날로 성장하여 동아시아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에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선조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이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끝으로 일본은 혼란기를 맞이하는데,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전국의 다이묘들이 군웅할거를 시작하더니 점차 '힘이 쎈 영주(다이묘)'를 중심으로 새 판이 짜여지더니 급기야 서로 뺏고 빼앗는 전쟁이 일상처럼 벌어지게 된다. 때마침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조총'이 전해지면서 전쟁을 직업으로 삼는 '상비군'이 결성되는데, 이를 최초로 전쟁에 잘 활용하였던 이가 바로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통일의 위업을 앞에 두고서 '혼노지의 변(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함)'을 마지막으로 수명을 다하게 되고, 노부나가의 복수에 앞장 섰던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의 전국통일은 달성이 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상비군'을 적절히 해체하지 못한 히데요시는 '대륙정벌'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는데, 그 첫 단추로 '정명가도(명나라를 치려하니 조선은 길을 내주어라)'를 핑계삼아 대대적인 조선침략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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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바다, 그 경이로운 이름을 깨우쳐주는 고마운 소설 하나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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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저 2만리

쥘 베른 저/질베르 모렐 그림/김석희 역
작가정신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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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정신>의 '아셰트클래식' 시리즈는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인 책이다. 한 눈에 보아도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고 클래식한 색감과 고풍스런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빼놓은 수 없는 매력은 '도감'이다. 흡사 백과사전을 펼쳐보는 듯한 세세한 '그림'만으로도 오래된 고전속에서 캐내는 '지적 보물'이 듬뿍 담겨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기에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왔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책에 단 하나의 단점을 꼽자면 '값비싼 책값'이다. 멜빌의 <모비 딕>이나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 같은 명작은 이 책 이외에도 수많은 책이 있었고, 읽었기 때문에 그만한 값을 치르고 사모으기에는, 솔직히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아셰트클래식'만의 장점을 또 하나 꼽자면 빼어난 '도감'과 더불어서 '원작, 그 잡채'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명작의 값어치를 제대로 아는 독자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훌륭한 시리즈가 될 것이다.

 

  사실, 난 '쥘 베른'의 열렬한 팬이다. 어릴 적부터 과학자의 꿈을 꾸었기에 쥘의 책은 과학지식의 원천이었다. 실제로 쥘의 책은 '경이로운 여행'이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그 여행은 땅 위는 말할 것도 없고, 땅속, 바다, 하늘, 그리고 우주까지 19세기 당시에 '가본 적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말그대로 '경이로움'으로 가득하였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다. 21세기인 오늘날에는 당연한 일로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100여 년이나 앞서서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내는 드라마틱한 모험담을 술술 써내려갈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현불가능한, 그런 막연한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조목조목 들이대며 '그럴 듯한 상상력'을 펼쳐냈기에 훗날의 과학자들은 '쥘의 소설'을 바탕삼아 그대로 재현하는 '쉬운 업적(?)'을 남긴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 테면,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책에서 커다란 대포를 만들어서 '텅빈 대포알'을 우주선 삼아 달을 향해 발사하는 황당한 줄거리는 인류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궤적과 꼭 닮아 있다. 마치 쥘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살짝 엿보고 돌아온 뒤에 소설을 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쥘의 소설'은 단순한 '공상과학(SF)'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과학 교과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터다. 물론, 오늘날에는 쥘이 상상한 '미래'조차 과거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과학의 역사'라는 점에서 쥘의 소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소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쥘의 소설'이 읽혀 마땅한 까닭은 수많은 '경이로운 여행'을 성공한 인류가 아직도 속시원히 들여다보지 못한 곳이 남았기 때문이다. 바로 '심해'다. 인류는 아직도 '깊은 바닷속'을 잘 모른다. 아무리 무인탐사정을 띄우는데 성공하고 가장 깊은 바다의 비밀을 들여다봤다고 해도 여전히 인류는 바다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왜냐면 인류는 '수심 200미터', 흔히 말하는 '대륙붕'에서만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깊은 바다에 '엄청난 자원(망간단괴 등)'이 그냥 뿌려져서 주우면 임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인류는 그 자원을 캐낼 방법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지구환경파괴'를 일삼는 인류에겐 영영 손을 댈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냅두고 싶은 심정이지만...암튼 인류는 여전히 '바다'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엄청난 '수압' 때문이다. 바다 밑으로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킬로그램의 압력을 견뎌야 한다. 해녀들이 수심 100미터속의 전복과 해삼을 캐낸다면 들어갔다 나올때마다 10킬로그램의 압력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능력이며, 당연히 그런 어마무시한 '조업환경'에서 작업하는 해녀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수심 200미터 내외에서는 이런 악조건을 견디며 작업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잠수복'이 바로 그 예인데, 이것도 그보다 더 깊은 바닷속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왜냐면 그 아래부터는 햇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깜깜한 암흑속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조명'에 의해 간신히 어둠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깜깜한 어둠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서야 고작 한발한발 겨우 발을 내딛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래서야 어디 '정복'했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쥘은 <해저 2만리>라는 소설을 19세기에 내놓았다. 인류가 고작 '증기기관'에 의지해서 '돛 없는 배'를 망망대해에 띄워을 뿐인 '그 시점'에 쥘은 비록 소설속 공상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나트륨 전지'로 해저 1만미터를 누비는 엄청난 잠수함을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으로치면 '원자력잠수함급'이며, 원자력으로 만들어낸 '전기'로 움직이는 잠수함을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쥘이 살던 시대에도 '잠수함'은 있었다. 하지만 겨우 한두 사람이 탑승해서 발로 패달을 밟아 스크류를 돌려 이동을 하고, 나무로 만든 배의 밑바닥을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한 수준이었는데, '원자력급' 상상력을 발휘해서 바닷속을 누비는 괴물, '노틸러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나 어릴 적에 읽을 때에도 그 기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는데,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기발함은 정말이지 놀라울 뿐이다.

 

  물론, <해저 2만리>에서 '과학적 관점'으로 팩트체크를 하다보면 수많은 오류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최신잠수함도 겨우 내려보내는데 성공했을 수심 몇 천미터에 꼴랑 잠수복을 입고서 수 킬로미터를 산책(?)하며 바다목장(?)에서 길러낸 참치를 수족관에서 꺼내먹듯 하는 장면이나, 오래전에 수몰되었다는 '아틀린티스'를 굳이 걸어서 탐사하고, 잠수함으로 남극대륙 한복판에서 부상(?)해서 남극점에 도달했다는 묘사, 남극점을 찍고 되돌아오던 중에 '거대한 빙하'에 갇혀 잠수복을 입고 빙하속을 곡괭이로 깨어서 탈출하는 극적인 장면들은 아주 오래된 '깔깔 유머집'에나 나올 법한 웃기지도 않는 대목이긴 하지만, 수천 년전 인류의 유적과 유물을 보면서 '조잡함'보다는 '위대함'을 떠올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록 '과학적 팩트'에는 위배된 사실일지라도 충분히 감탄할 수 있는 대목으로 미소지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이 <해저 2만리>를 읽는다면, '과학적 사실'을 꼼꼼히 따지는 것보다는 '과학에 준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가까운 미래의 인류에게 '바다' 또는 '심해'라는 곳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곳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특히, 과학의 흥미에 이제 막 눈을 뜬 어린 독자라면 그러한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이고 말이다. 분명 인류는 머지 않은 미래에 '땅'에서보다 더 많은 인류가 '바다'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단순히 '땅위'가 아닌 '바다위' 또는 '바닷속'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기보다는 '생명의 원천'이 땅이 아닌 바다라는 인식을 더 많이 갖게 될 거란 의미다. 지금도 이미 많은 인류가 '바다'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계 곳곳의 인구 1천만이 넘게 사는 도시들은 바다를 인접해서 살아가고 있으며, 인류의 먹거리 또한 이미 땅보다 바다에서 더 많이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아직도 바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바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살짝 아끼고 싶다. <해저 2만리>의 줄거리와 '네모 선장의 비밀'은 <신비의 섬>에서 따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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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20. 가지가지 | My Story 2023-09-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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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또 아프다.

이번엔 '협착증'으로 인한 '방사통'이란다.

올해 여름이 시작될 즈음부터 왼쪽 다리가 약간 저리기 시작하더니

지난달에는 앉으면 왼쪽 골반에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형외과에 갔다니

전형적인 방사통의 증상이란다.

그럼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주사시술요법'을 해보자고 권했다.

그렇게 1차 시술이 끝나고는 통증이 거의 사라진 듯 싶었다.

그래도 약간 다리저림 증상이 남아서 2차 시술을 받았더니

이때부터 틍증이 상상 이상으로 심해졌다.

이게 딱 일주일 전이다.

그렇게 일욜에 아파서 골골대다가

월욜에 3차 시술을 받았는데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통증과 함께 한 일주일동안 수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회사에서 버티면서 통증과 싸워 이겨야만 하는지 말이다.

일단 일을 하면서 버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다 어제 4차 시술을 받았는데

이전과 다르게 통증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대로 '회복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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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씀] 2023년 8월_11권 | My Story 2023-09-0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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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엔 11권의 리뷰쓰기로 마무리하였다.

10권을 넘긴 소소한 성적이지만, 마지막주에 '출판사 교정작업'을 하느라

막판 스퍼트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그로 인해 밀린 리뷰는 9월에 써낼 예정이다.

 

11편의 리뷰를 쓴 것으로도 '분석 데이타'에 큰 변동은 없다.

다만, '읽은책 100%'가 99%로 하락했는데,

이는 '읽은책'만 데이타에 반영하던 것을

앞으로 '읽는책'과 '읽을책'에도 입력한 값으로 인한 변화다.

각각 6권씩 '읽고 있는 책'과 '읽을 예정인 책'을 선별해서 데이타값에 변화를 주었는데,

계획적인 독서와 리뷰쓰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로써 매달 10권 이상의 리뷰쓰기가 목표달성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아쉬운 것은 지금 기록하고 있는 '독서앱'으로는

'출판사 집계'와 '글쓴이 집계'가 통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일이 헤아리는 방법도 있으나, 매번 주먹구구식으로 세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그래서 따로 블로그에 '집계'를 할 방법을 모색중이다.

올해 안에 그 방법을 실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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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4. 연이은 고종의 헛발질로 인해 조선이 주권국이라는 사실마저 의심받게 되는데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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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굽시니스트 저
위즈덤하우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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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리뷰에서는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리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였다. 딱히 정변의 주역인 '김옥균'만 탓할 것은 못 된다. 왜냐면 당시 '개화세력'이 너무나도 소수였고, 그나마도 다수 백성들의 지지도 없이 걍 '소수의 엘리트(지식인)들'만으로 시도 되었고, 급조한 정변이었기에 '외부세력(일본)'에 크게 의지한 모양새도 '플랜B'를 마련하며 실패할 확률을 줄여나가는 현명함도 없었으며, 당시 정권의 핵심이었던 '고종과 민씨세력'이 개화세력의 의견을 받아들일 정도로 개화되거나 국력도 뒷받침이 되지 않았으니, '실패한 정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렇게 얻을 것도 없는 정변을 왜 무리하게 시도했느냐는 역사적 논란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무모한 정변의 실패로 인해, 이땅에 건전한 개화세력까지 깡끄리 사라지면서 남은 것은 훗날 '친일개화파(매국파)'만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고종을 위시한 '수구보수의 꼴통'만 득실거리는 정국에 '방곡령'과 '동학농민혁명'이란 굵직한 사건이 터지게 되니 이에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헛발만 일삼다. 끝내 일제의 침략만 수월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14권의 내용이 바로 '갑신정변'과 '청일전쟁'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며, 한중일 삼국 사이에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역사현장'이 세계사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그 시작은 '거문도 점령'이다. 조선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이 그 원인인 사건인데, 단순히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영국의 조치로 흘러가지 않고, '청국의 개입'이 눈에 띄게 펼쳐지면서 끝내 '거문도 반환'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종국에는 '청의 간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건으로 결말을 짓게 되었다. 까닭인 즉슨, 영국과 러시아 양국에게 '조선'은 머나먼 극동의 나라였던 탓이 컸고, 그로 인해 '전면전'을 벌이기에도 부담스러웠으며, 조선의 영토를 무단점령하였는데도 영국과 러시아 각국은 '조선정부'와 외교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청의 조선에 대한 종속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까닭 역시, 영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 '조선정부'를 개무시하고, 청의 눈치만 살폈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선은 아무런 '외교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조선개입불가'만 확인하는 게기가 되었고, 청의 종속국이란 점만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말았다. 이로써 고종의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청나라로부터 벗어나자'는 정책은 실패로 끝맺고 말았다.

 

  한편, 조선에서 버라이어티한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본은 잠잠했는데, 그 까닭은 '내부문제'를 해결하고,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을만큼 근대적 개혁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천황제를 골자로 하는 일본의 입헌정치(헌정)가 완성되고, 초대 총리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올라서는 일이 착착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등박문의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끝내 일제가 '군국주의국가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준 꼴이 되었다. 서구열강처럼 '민주주의국가'로 발돋움하려 애를 썼지만, 결국에는 '모양새'만 그럴싸하게 탈바꿈하였을 뿐, 일본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인 의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정치의 요람이 '바로 이때' 시작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깊이 올인하다보니 '군부의 핵심'인 육군의 장성이 천황의 명령 하나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천황제 군국주의국가'로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회의 총리'조차 일본시민들의 투표가 아닌 천황의 임명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어 버린 일본은 입헌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국가'로 성장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형태의 근대국가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를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런 기형적인 '군국주의국가' 일본제국이 가장 먼저 탐욕의 본색을 드러낸 국가가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또다시 내부문제 '일본의 연이은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는 판국에 이웃나라 조선에도 흉년이 들었는데도 일본내부의 '쌀부족 문제'를 조선의 쌀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들었던 것이 '방곡령 사건'의 시작이었다. 조선 안의 쌀이 일본상인들의 싹쓸이 수매로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우려한 조선의 고을 수령들이 '방곡령'을 선포해 조선밖으로 쌀을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지극히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는 '조선 백성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일본의 쌀부족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일본정부'는 실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조선정부를 압박해서 쌀부족사태를 해결하려 든 것이다. 이에 한 발 물러선 조선정부는 '방곡령'을 해제하고, 쌀 수출(?)을 허가하며 무마하려 들었지만, 그 사이 일본상인들의 손실을 빌미로 삼아 조선정부를 완전히 개무시하는 모양새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의 무도함'을 아주 잘 드러내고 말았다. 이제 조선에 무슨 빌미만 생기면 바로 힘으로 제압해 해결하려는 못된 실력행사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농민군에게 호되게 당한 고종과 민씨세력은 청의 종속국임을 스스로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청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제 조선에 '일본군'이 들어올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되었는데, 과연 합법적으로 조선에 출병할 수 있게 된 일본군의 행보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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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 불청객,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게서 의도치 않은 기발함을 엿보다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8-3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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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토피아

슬라보예 지젝,가라타니 고진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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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의 저널 Umbr(a)' 시리즈는 우리에게 익숙한 저자의 '낯선 글모음집'의 성격을 띤 책이다. 이름만 들어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슬라보예 지젝, 가라타니 고진 등등 세계 명문대학의 교수들이 집필진(?)으로 활약하기에 이 시리즈는 읽어봄직한 책이기도 하다. 거기에 'umbra'라는 단어가 지닌 뜻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보통은 '천문학'에서 일식이나 월식 때 지구, 또는 달의 '본그림자'를 뜻할 때 쓰는 단어이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동반자'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함께 한다'는 뜻의 환영받는 뜻이 아니라 '초대객이 데리고 온 손님'이란 뜻으로, 한마디로 '불청객'이란 뜻이다.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손님에게 묻어서, 또는 묻혀서 딸려왔으니 얼마나 불편하겠냔 말이다. 그래서 난 이 시리즈의 본래 의도가 바로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라고 짐작한다.

 

  딴에는 '무의식'이 그렇다. 정신분석학에서도 '무의식'은 의식세계의 저편에 있어서 우리의 '의도'에 관여받지도 않고 받을 수도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저변에 깊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마치 초대한 적은 없지만 불현듯 찾아와 어느새 함께 자리하고 있는 '불청객'처럼 말이다. 이 책, '무의식의 저널'이 바로 딱 그렇다. 우리의 깊은 관심 '밖'에 있는 책임에 분명하지만 우연히라도 '읽는 순간', 손에서 책을 땔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는 책으로 소개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이 책 <유토피아>도 그랬으니, 다른 'Umbr(a)'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김에 '무의식의 저널' 시리즈를 탐독해보려 한다. 시간이 좀 걸려도 해보려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쓴 책일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기에 가장 완벽히 이상적인 곳을 모어는 '유토피아'라고 표현했다. 허나 '유토피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을 지녔다고 한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가장 완벽한 곳인데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이 유토피아라니 말이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유토피아'의 반대말인 '디스토피아'는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암울한 곳인데도 현실속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토피아의 진정한 뜻은 '없는 곳'이 확실하다. 그 반대말인 디스토피아가 확실히 '있는 곳'이니 말이다. 아니 너무 흔해서 굳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지는 까닭에 더욱 짜증날 따름이다.

 

  이렇게 짜증이 나는 '디스토피아' 말고 우리가 찾고 싶어하는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지 정신분석학적으로 나름 분석한 책이 바로 이 책의 골자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를 보여줄 생각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세상에 없음직한 '유토피아'가 왜 확실히 '없는지'만을 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유명 대학의 교수님들이 짜고서 그런 글들만 써낸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까닭인 즉슨, 학문적 관점에서 '유토피아'에 관한 내용을 써내려가다보니 꽤나 '형이상학적인 내용'의 글잔치를 펼쳐놓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 세상에 '없는 곳'을 지향하는 '무엇'에 대한 주제를 담론으로 삼아, 그 '무엇'이 이 세상에 없을 수밖에 없는 까닭을 진솔하게 나열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딴에는 당연한 소리를 뭘 그렇게 어렵게 꺼내서 어렵게 마무리하시나 싶지만, 원체 교수님들이 하는 말발이 원래 그런 식이니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상식적인 선'에서 유토피아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역자 서문'에도 영화 <아일랜드>의 예를 들어 이 책 '유토피아'를 소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굳이 라캉, 파스칼, 프로이트와 마르크스가 언급된 '유토피아'에 심취하고 싶다면 이 책을 탐독하시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난, 나만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꼭 존재했으면 더 바랄나위가 없는 그런 '유토피아' 말이다.

 

  내게 그런 유토피아의 이름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현실속의 대한민국은 많이 해묵어서 낡아빠진 이데올로기를 애써 끄집어내서 나라를 통째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미국의 노예'로 만들고도 자신이 한 짓을 자랑삼아 떠벌리는 반푼이 30% 국민과 함께 '동반자(umbra)'로 품고 살아가야 하는 후진국 지향국가지만,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선진국을 훨씬 넘어서서 이 세상 모든 국가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선도국가'이다. 우리는 잠시나마 그런 대한민국을 경험해봤었다. 다들 알지 않은가.

 

  그런데 그랬던 나라가 불과 1~2년 만에 경제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고, 정치는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외교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는지 '국익'을 외치면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그런데도 잘했다고 스스로 성적을 매겨버리는 요상한 일들이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국외순방을 나갈 때마다 온국민들이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소원을 빌지경이다. 나갔다하면 사고를 치고 돌아와서는 천연덕스럽게 '또 다른 사고'를 저질러 덮어버리려고만 하니 정말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또 사고를 쳤다. 이웃나라에서 '오염수'를 대놓고 바다에 방류하겠다는데 반대는커녕 '잘 버리는지, 과학적 감시'만 하겠단다. 핵폐기물을 그냥 버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니 '잘 처리해서' 버리는지, '허용기준치'를 넘어서면 방류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버려달라, 요청'하는 말만 하겠다면서도 어찌나 당당한지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바다에 '오염수'를 버려서 오염을 시켜서 발생한 '일본어민들의 피해보상'을 비롯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처리'를 한국정부가 대신 부담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아니, 바다오염의 '가해자'는 일본인데, 그 피해당사국인 '한국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단 말인가? 이게 '호구짓'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거기다 대한민국 총리라는 작자가 '오염수'를 '오염 처리수'라고 명칭을 바꿔 '괴담(?)'에 맞서 대한민국 어업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앞장서겠다고 한다. 이건 또 뭔 짓거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팩트는 간단하다. '방사능에 피폭되면 뒈진다'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진실이다. 알프슨지 히말라얀지 현대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아무리 '핵오염수'를 걸러도 '방사능물질'을 모두 다 거를 순 없다는 것도 '과학적 팩트'다. 이걸 아무리 희석한다고 해도 '방사능 수치'가 내려갈 뿐, '방사능 물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해도 '방사능 물질'은 방사능을 뿜어내며 이 방사능에 '피폭'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는 일본에 투하된 '원폭피해자들의 데이타'가 거의 전부다. 그렇게 피폭된 생존자들의 2세, 3세, 그리고 4세들까지 '방사능피폭'에 따른 원인모를 희귀질환에 시달리는 것을 일본정부는 생생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기시다 일본정권은 전세계가 공분할 '오염수방류 만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향후 30년간 오염수를 버린 다음, 완벽히 '핵폐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는 가정이 따라야 하겠지만, 그 다음에 오염수 수도꼭지를 잠글지는 미지수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하루에 500톤 이상을 방류하고, 30년 동안 방류하면 오염된 바다는 어찌 될 것이냔 말이다. 바다에 '검은 잉크 500톤'을 뿌려댄다고 상상해보잔 말이다. 아무리 '희석'을 한들, '검은 잉크'는 30년 이상 계속 버려지고 바다생태계 모두에 '검은 잉크'가 축적되고, 해양지층에 퇴적되고, 더 나아가 갯벌을 비롯해서 육지생태계까지 '검은 잉크'는 침범해서 결국 온지구가 '검은 잉크'로 얼룩지고 말 것이라는 '디스토피아'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시다 정권'의 유토피아를 짐작할 수 있다. 당장에 처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가장 값싼 방법으로 '핵오염수의 부담'을 걷어내고, 넓고 넓은 바다에 아주 적은 양으로 희석시켜서 버릴 뿐이니 바다생태계가 견뎌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일본수산물'을 날것 그대로 먹어도 안전...아니 별탈은 일어나지 않겠...그래도 행여 안심이 되지 않으니, "기시다는 쬐끔 불안하니까. 노르웨이산 연어스테이크를 먹어줄꺼예요. 서민들은 안심하고 후쿠시마 앞바다 생선 많이 먹어서 삼중수소 박멸할 때까지 흡입해주세요. 그래야 기시다 베이비들은 미래에도 안심하고 스시 먹을 수 있을테니까. 다이죠~부"라고 가장 완벽한 '유토피아'를 상상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 윤석열정부의 '유토피아'는 궁금하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얘들이 상상한 '유토피아'는 상상불가다. 당췌 '국익'이라는 것이 없는 '핵오염수 방류사건'으로 대한민국이 얻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자신들의 빵빵한 호주머니 정도일까? 고작 그딴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면 정말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역사는 알든 모르든 '무조건' 반복(?)된다면서 '120년 주기설'을 내세웠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120년 전을 살펴보니, '친일개화세력'이 나라를 팔아먹기 일보직전이었다. 윤석열정권이 2022년에 집권했으니 120년 전은 1902년이었다. 곧 러일전쟁이 벌어질 참이었고,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걍 내주고, 나라를 통째로 일제에 넘겨버린 주역들이 한창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딱 그 꼴인듯 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일어난 일도 아니고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고 꿈꾸는 '유토피아'가 불확실 할수록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디스토피아'가 닥쳐올 것은 거의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또 다시 '일제의 식민지', '미국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최선도 우리는 익히 경험했다. 이명박 정권때도 물대포를 맞아가며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 정권때도 엄동설한에 어묵국물로 추위를 달래며 '촛불'을 들었다. 윤석열 정권이라고 다를 건 없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위해 촛불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시들하다. 촛불의 주역들이 촛불을 들 생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시들하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걸까?

 

  이명박 때의 촛불들은 '광우병'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꿈꿨다. 박근혜 때의 촛불들은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진실이 은폐되고 거짓을 선동하는 부정한 세력을 내몰고 깨끗한 국정을 꿈꿨다. 그런데 윤석열 때로 접어들자, 국민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진실은커녕 온갖 거짓선동만 퍼나르며 '과학'이라고 우기는 거짓선동꾼들만 가득한 나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참에 바른소리, 옳은소리, 뼈아픈소리를 외치던 지사들마저 두문동으로 숨어들고 말았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냔 말이다.

 

  총선 때를 기다려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방식은 가장 소극적인 방식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도 '여소야대의 정국'인데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할 때다. 한동훈 장관은 '사형집행' 운운하며 칼부림을 참지(?) 않을 것이라 겁박하는 형국이다. 이럴 때 무엇을 기다리냔 말이다.

 

  우리는 3·1만세혁명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4·19혁명으로 부정선거를 용납치 않았으며, 5·18혁명으로 부당한 정권을 하나 뿐인 생명을 내놓고 부정해봤고, 6월혁명으로 그 정권을 작살냈었다. 그 이후에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서 우리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를 꿈꿨었다. 당신은 그때 꿈꿨던 우리의 유토피아를 잊었단 말인가? 그건 아니 된다. 비록 우리가 꿈꿨던 '유토피아'가 실제로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지언정 '유토피아'를 꿈꾸길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꿈꾸길 포기하냔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120여 년전 나라를 팔아먹어도 좋다는 '매국노들의 후예'가 지금 본색을 드러내고 저들의 세상이 온것마냥 나대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이들을 소통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경일에 '일장기'를 내걸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저들을 싹쓸이할 기회가 '바로 지금'이란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 땅의 매국노들을 싹 쓸어버린 '뒤'의 대한민국을 말이다. 또다시 흐지부지 끝날 '그날 이후'를 미리 걱정할 필요따윈 없다. 그래서 난 즐겁다. 날이면 날마다 '망국의 앞잡이들'이 목을 길게 늘이고 나불대고 있는 지금이 말이다. 얼마나 좋으냔 말이다.

 

  이렇듯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비-존재의 대상'으로 삼아 무궁한 고찰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 <유토피아>가 얘기하고 있는 골자로 생각한다. 각각의 저자들이 나름의 '전문분야'에서 나름의 '유토피아의 개념'을 풀어냈지만 말이다. 정신분석학에 걸맞게 '유토피아'와 '정신병'에 유사한 점을 분석한 저자도 있었다. 따라서 과거의 '광기어린 인물'들이 종종 '천재성'을 발휘하여 모든 인류에게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꽤나 신선한 풀이가 아닐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도 광기어린 천재들(장승업 등)이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예가 있어 솔깃한 내용이었다. 허나 나는 한 술 더 떠서 '한 사람의 정신병자'가 나라를 거덜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무의식의 저널'은 무한한 상상의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라 마음에 흡족했다. 다음 책도 무진 기대가 된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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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유토피아 (~끝)) | 인간사랑을 읽다 2023-08-3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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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쪽 밑에서 6줄 [한다(즉 '요구와 원함'은 메타 심리적] → [한다(즉 '욕구와 원함'은 메타 심리적]

231쪽 12줄 [은총의 장소는이제 위험과] → [은총의 장소는 이제 위험과]

243쪽 밑에서 5줄 [윌리엄 코트내이는 의미화의] → [윌리엄 코트네이는 의미화의]

247쪽 3줄 [비존재와 열정의 극단 사이를] → [비존재와 열정의 극단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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