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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之我...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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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4. 중국 소설의 맛, 대륙의 스케일? 아님, 기묘한 느낌? | 2023년에 쓴 리뷰들 2023-09-2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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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잠중록 4

처처칭한 저/서미영 역
arte(아르테)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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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로맨스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따로 '역사공부'를 한 것은 처음이다. 드라마 <보보경심 려>를 보고서 소설 <보보경심>을 읽을 때도 청나라 옹정제의 치세 따위를 따로 챙겨보지 않을 정도로 무심한(?) 나였는데 말이다. 이 책의 배경이 '당나라 의종의 치세'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하도 '대당의 멸망'을 운운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좀 뒤적거리게 되었다. 그랬더니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서 관심이 갔더랬다. 신라 6두품 출신의 천재적 인물 '최치원'이 당나라에 유학했을 당시가 바로 의종시절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소설에서 최치원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곧이어 벌어질 '황소의 난' 때 최치원이 황소에게 격문을 보내 간담이 서늘하게 하였다고 하여 그의 문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니, 이 소설에서 '대당의 멸망'을 소재로 삼아 미스테리한추리극을 연출하는 것이 마냥 소설속의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일까? 그것까지 자세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의종의 넷째 아우 '기왕 이서백'은 실존인물이며 무능한 의종에 비해 뛰어난 왕재를 지녔다는 풍문의 주인공인 것은 사실인 듯 싶다. 물론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치밀한 지략가였는지도 확인불가인 탓에 '로맨스소설' 특유의 설정인 듯 싶다. 그런 고로 여주인공인 '황재하'도 허구의 인물일 것이다. 허나 냥야 왕가의 왕온은 실존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실재 역사속 인물들 중에서 골라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 주자진도 고귀한 신분으로 '시체 검안'에 특기를 지녔다는 설정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순 없을 것이다. 허나 이 모든 인물은 '사극로맨스미스터리추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기 위해 작가의 고심과 철저한 안배였을 것이다. 이를 테면 역사에도 도통하고 추리에도 능한 작가의 뛰어난 재능이 만들어낸 역작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여자작가'인 탓에 여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탁월한 점도 '로맨스소설'로 탄탄하게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감정굴곡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미스터리추리 소설'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로맨스 소설'로는 자격미달이었을테니 말이다. 암튼 이토록 기묘한 장르로 '대하소설' 못지 않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 작가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세 남녀의 밀고 당기는 달콤한 감정선이 '정치적 궁중암투'가 전하는 <역사 소설>의 무게감까지는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데, 여주인공이 추리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라서 '연애감정'을 한껏 끌어올렸다가 '시체해부'를 하면서 코를 움켜쥐는 장면이 연출될 때는 달달해진 장면에 기껏 몰입했던 독자로서 감정선이 와장창 무너지길 여러 차례 반복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의 속성상 어쩔 수 없이 '해피 엔딩'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나라가 망하고, 국운이 기울며, 여기저기 가까운 인물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피비린내를 연출하면서 '두 남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될 것이고, '한 여자를 두고서 두 남자가'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니..."그만 좀 죽이면 안 되겠니?" 라는 갑갑한 심정이 극에 달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대단원에 이르러서야 기왕과 황 수사관(?)의 사랑은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었다. <로맨스 소설>로써는 당연한 결말이니 스포일러일 수도 없는 팩트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이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가 충격적(!)으로 다가갈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충격적'이라는 표현이 이 소설에서는 아주 딱 걸맞는 수식어일 것이다.

 

  암튼, 이 소설은 '기이한 소설'이었다. 사극 중에서도 '당나라'를 소재로 한 것이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정치에는 무능하고 그저 놀기만 좋아했던 당나라 황제' 중에서도 으뜸가는 의종을 선택한 것도 신선(?)하기 그지 없었다. 흔히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다면 태종 이세민, 헌종과 양귀비, 그리고 측천무후를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물론 어지러운 시대상을 반영하여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는 딱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추리소설이라면 '기이한 살인사건'이 꼭 있어야 했을 테니 폭군보다는 '무능한 임금'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배경선택이었다. 또한 무능한 임금과 상반된 느낌의 뛰어난 인재였는데도 '황제'가 되지 못한 비운의 인물 '기왕 이서백'의 등장은 뭘 좀 아는 독자들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비운의 주인공이 <로맨스 소설>속 주인공으로 재해석되어 등장하였단 것으로도 독자들에게 환호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치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말이다.

 

  그렇다. 나는 이 소설에서 '조선의 마지막 희망'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환영받았던 비운의 왕세자 이영,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구르미 그린 달빛> 말이다. 이 소설이 '로맨틱코미디'를 사극버전으로 풀어낸 역작이었기에 <잠중록>도 그런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물론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원작소설에서는 <사극로맨스 소설>의 분위기에 더욱 충실했지만 '구중궁궐에 잠입한 여자내시'라는 설정 자체가 코믹, 그 잡채였다. 그래서 <잠중록>도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려 도망친 여주인공이 '기왕의 소환관'으로 잠입하는 것까지는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의문의 일가족 살인사건을 풀기도 전에 '기이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여주인공은 어느새 '수사관'이 되어 '시체검안'을 하는 검시관과 짝을 이뤄 추리수사극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장르의 전환은 이 소설이 처음이었기에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런 살인사건을 풀어내고 또 풀어내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대당의 멸망'에 감춰진 비밀이 하나씩 풀려나가고 두 남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대단원에 이르고보니, 이 소설만이 가진 '색다른 맛'이 무엇인지 겨우 감을 잡게 되었다. 하긴 <보보경심> 때에도 '타임슬립'을 한 역사천재 여주인공이 '역사속 인물'과 조우하며 벌이는 암투와 사랑을 보며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는데, 이 소설도 그에 못지 않았던 셈이다. 뭐, 이것이 '대륙의 스케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결정은 내리지 못하겠다. 이제 <외전>이 나왔으니, 그 책까지 섭렵한 뒤에 뭐라도 결정을 내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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