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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20세기 서구 사회의 쓰레기통 안에는... | 2021- 2021-09-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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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립자

미셸 우엘벡 저/이세욱 역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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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물들의 디테일한 묘사가 압도적이다. 거기에 사강, 사르트르, 니체, 칸트, 아인슈타인 등 익숙한 이름들의 등장은 픽션 같지 않은 현실감까지 부여한다. 실종된 생물학자, 미셸 제르진스키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전개에 흠뻑 빠져 읽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셸 형제의 기원이 되는 조부모, 부모, 그리고 그들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숨 가쁘게 따라왔다. 재독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다는 얘기다.

 

브루노는 미셸과는 아버지가 다른 동복형제다. 그들은 어머니 자닌의 무분별한 성관계와 아버지의 무책임 때문에 일찌감치 ()조부모에게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형 브뤼노의 아버지는 세르주 클레망으로 만난 당시 의대생이던 아내 집안의 부에 힘입어 성형 클리닉으로 성공해 상당한 재력가가 되었지만 아내와 합의이혼 후 아들을 처가에 맡긴다. 그리고 동생인 미셸의 아버지는 마르크 제르진스키로 영화감독을 뒤로하고 다큐멘터리 촬영차 티베트에 갔다가 사망함으로써 미셸은 친조모에게 맡겨진다.

 

인물들의 캐릭터를 비교, 분석한 뒤 공감하게 되는 포인트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각의 인물들은 짝을 지어 서로 대립하는 듯 보인다. 자유분방하고 실존주의 시대를 경험하며 장 폴 사르트르와 비밥 춤을 추기까지 한 어머니 자닌은 브루노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이상을 위해서라면 직구밖에 모르는 친부 마르크는 아들 미셸과 닮았다. 남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셸은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학계에서는 꽤 많은 성취를 얻은 분자 생물학 연구원이다. 어떻든 형제는 상당히 다른 기질로 태어나 너무나도 상이한 삶의 두 전범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둘 다 부모의 유전적 영향권 안에서 각자의 개성대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등하다 할 수 있겠다.

 

미셸은 휴직하기 며칠 전 동료들과 송별회를 마친 뒤 귀가해 죽어 있던 카나리아와 빈 맥주병을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 투하 통로에 던진 그날 밤 거대한 쓰레기통이 나오는 기이한 꿈을 꾼다. 커피 필터, 토마토소스에 버무려진 라비올리, 잘려진 성기들 따위로 가득 찬 거대한 쓰레기통그러고 보니 바로 어제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편에서 토마토에 남성 최음제 성분이 있다고 강사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커피 필터는 여성의 자궁을, 토마토소스는 남성의 정력을, 잘린 성기는 그야말로 거세된 남성성을 비유하는 건 아닐까. 쓸모를 잃고 쓰레기가 돼버린 남성성 말이다. 이후의 전개를 감안하면 꽤 설득력 있는 추정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더 의미심장해지는 것 같다. 이 모든 게 소설의 복선인 것만 같아 오래 머물러 반복해 읽었던 문장을 발췌해 본다.  

죽은 새만큼이나 통통한 거대한 벌레들이 새의 부리처럼 생긴 주둥이를 내밀고서 새의 사체로 몰려들었다. 그러더니 새의 다리를 뽑고 내장을 갈기갈기 찢고 눈알을 파내고 있었다.” 얼핏 실종된 미셸을 추적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문장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눈치 챘어? 그럼 이제 잘 찾아봐.’라며 작가가 내게 준 암시 같다고나 할까.

 

“<남의 자유는 나의 자유를 무한히 확대한다.>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미하일 바쿠닌의 그 말이 캠프장의 표어인 모양이었다.”(131)

 

외조부모가 사망하자 11살이던 브뤼노는 기숙사에 가고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파리로 가 생활한다. 기숙사는 청소년기 동물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알파 수컷과 그 반대인 오메가 수컷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브뤼노는 추악한 폭력에서 벗어나 서투르게나마 성에 입문하게 된다. 이는 미국 사회의 와해된 성문화의 빠른 유입에 편승해 점차 성욕의 노예가 되기 전, 소년기의 참담한 실패이기도 하다. 정신 치료를 받던 중 의사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 역시 바로 그 경험과 연장선상에 있다. 브뤼노는 용두질하다 새끼 고양이에게 들켜 돌멩이를 던지게 되는데, 다음의 문장 역시 위의 복선과 맞닿아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고양이의 머리통이 개지고 약간의 골이 주위로 튀었습니다. 나는 돌들을 모아 고양이 시체를 덮어 주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와중에 그는 동생인 미셸과 아나벨 사이의 관계 진척을 위해 캠핑을 주도하기도 하고 어머니 자닌의 무모한 조언에 따라 자유연애 장소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여자들을 물색하는데 전력투구한다. (브루노의 이러한 행동은 중년에도 계속된다.)  여기서 맥주 깡통들과 버려진 콘돔들이 있는 쓰레기통이 또 등장한다.

 

“<나는 나무들 사이로 자동차의 전조등을 바라보고 있다. 이게 바로 내 인생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텐트에 돌아와 위스키를 한 잔 마신 다음, <쾌락은 하나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스윙 매거진을 훑어보면서 천천히 용두질을 했다.” (135)

 

브뤼노가 욕망을 좇는 쾌락의 사자라면 미셸은 정확히 그 반대다. “간명하고 사건이 별로 없는 세계에 살면서 분자 생물학 연구원으로 발탁된 이래 주어진 일에만 매진하는 유형. 데프레슈앵이 스카우트하기 위해 파리 11대학을 찾았을 때 미셸은 박사 학위 논문을 끝내 가던 중이었고, 그 연구 일환으로 했던 실험이 있었다. 동일한 칼슘 원자로부터 연속적으로 방출된 두 광자의 운동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그럼 이제, 본서의 제목 소립자를 떠올릴 차례다. 위 실험으로 제기된 두 개의 가설 중 하나는,소립자는 서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든 간에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립자들이 관측 문제와 무관하게 내재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연구자 대부분은 이 두 번째 가설 쪽으로 기울었다.

 

과연 소아 성애자 교사와 생물학자가 주는 메시지는 뭘까. 20세기는 여러모로 폭주하는 사회였다. 섹스, 폭력, 살인 세대라 지칭될 정도로. 거기에 과학의 눈부신 발달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회전하던 시대였다. 갑작스럽게 쇄도하는 문명의 이기 앞에서 절제력을 상실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 미쳐가던 시대. 혁명과 반혁명, 우파와 좌파가 극렬하게 싸우며 나와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시대. 그런 면에서 보면 브뤼노와 미셸 형제는 어느 편에도 속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쾌락에 투신하는 브뤼노조차도. 그에게는 자신만의 중심이 있지 않았다. 세파에 휩쓸려 목표 없이 그저 욕망에만 충실한 폭주 세대이면서 동시에 주변인(이방인)일 뿐. 미셸은 또 어떤가. 그는 학자로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지만 인간으로서, 남자로서의 삶에 대한 지향은 제거된 사람이었다. 그것이 어떤 알력에 의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것. 다수가 말하는 무미건조한 삶, 즉 현재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 이외의 것들엔 철벽을 치는 사람이었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쓰레기통20세기를 통칭하는 대명사가 아니었을까. 온갖 잡종(문명, 풍속, 과학 발달 등)으로 뒤섞인 시대()를 은유하는. 이로써 소립자는 내재적 속성이나 다른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기준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그러한 세계에 예고 없이 배속된 미셸과 브뤼노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브뤼노나 미셸 중 누가 더 선하고 악하다든가 누구의 삶이 더 낫다는 식의 이분법적 감상을 남기기엔 무언가가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완독하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은 이유가 생각났다. 서양의 성 풍속은 놀라울 정도로 과감했다. 많은 분량의 섹스와 자위, 잔인한 살인 현장 묘사 등이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그땐 그랬다. 그 수위는 중반부에 가서 슬슬 거북해지더니 금세 읽기를 포기하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또 하나, 엽기적 살인과 같은 잔혹한 모방 범죄, 혹은 악의 정당화를 지향하는 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우려가 다분해 보인다. 도저히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눈살이 찌푸려지고도 남을 만한 작품이다.

 

“30개국 언어로 번역된 소립자는 미셸과 브뤼노 두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성 풍속의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서구의 자멸>을 면밀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작가가 이 작품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고, 더블린 문학상까지 받았다니 한편으론 서구 사회와의 높은 벽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킬 문제작으로 출간 자체가 거부됐을 것 같다. 실제로 작가는 한국(또는 일본)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적고 있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서상 큰 괴리감을 갖게 된 이유가.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독서 초반, 실종된 미셸을 생각하며 단서 하나라도 더 찾으려 했던 탐정의 마음가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분명 이 책은 자극적이고 기괴하고 엽기적이다. 완독하는데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재독했고, 한 번 더 읽을 작정이다. 몇 번이고 중고로 팔아버릴까 했던 책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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