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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리얼'하지 않다…왜?" | - 장하준 - 책과 토론 2011-03-05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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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프레시안 www.pressian.com>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리얼'하지 않다…왜?"

[기고] 장하준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3)

기사입력 2011-01-24 오전 8:48:27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한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이 출간된 지 석달도 안돼 30만 부 가까이 팔리면서 한국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한나라당에서도 장 교수를 불러 특강을 들을 정도로 '장하준 바람'이 거세다.

시장주의를 넘어서
복지국가로 가자는 장 교수의 주장은 큰 틀에서 진보적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감안하건데 그의 주장에는 '빈 구멍'이 있다. 이에 대한 글을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보내왔다. <편집자>

1. 장하준의 제도경제학: "제도가 중요하다"

<23가지>의 첫머리를 장식한 thing1은 "자유시장이란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정치가 중요하다"라는 이야기였다. 이어 thing2에서는 "기업은 소유주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된다"라고 하여 "소유가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thing3은 뭘까. thing3은 "잘 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얼핏보면 thing1,2에 비해 비중이 한참 떨어지는 이야기 같고 엉뚱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오히려 thing3 부터 <23가지>가 진짜 재미있고 장하준 제도경제학의 진가가 나타난다. 독자들이 이 책에 푹 빠져들게 된 것도 여기부터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제부터 thing 한개씩이 아니라 여러 things를 넘나드는 읽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왜 "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는 걸까. 상식적으로 생산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장하준은 그게 아니라면서 통상적 상식을 뒤엎는다. 그의 답은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다양한 "제도들" 덕분이다. 달리 말해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thing3은 "길 따라 똑바로 운전하기 대 길로 뛰어드는 소, 달구지, 인력거 등을 피해서 곡예 운전하기" 등등 기상천예의 예들을 들면서 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뗄수 없게 만든다. 유사한 이야기는 thing 11, 15, 17 등으로 이어진다. thing11은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thing 15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고 말한다. 또 thing 17은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모두 보통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지만 특히 thing17 교육 상식 뒤집기는 엄청 파격적이다.

글로벌 경쟁시대는 곧 교육 경쟁시대다. 무엇보다 세계톱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미국 유학대열이 줄을 잇고 죽기 살기로 "열공"하고 엄청나게 '스펙쌓기' 경쟁을 하는데도 청년실업이 장난이 아니고, 다수 대학졸업생들은 '88세대'의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장하준 왈 이 문제는 구성원 개개인이 발버둥 쳐서 풀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문제는 개인과 나라 생산성을 연결 짓는 제도로 귀착된다. 즉"제도 빈곤"이 못살게 하고 제도 능력이 잘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도가 중요하다". <23가지>의 핵심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하준의 이 메시지는 제도경제학의 핵심 포인트를 훌륭하게 풀어 말한 것이다. 제도경제학 용어를 빌려 말해보라면 그 요점은 "성장 요소"( source of growth)과 "성장 요인"(cause of growth)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 요소는 자본, 교육, 기술혁신 등인데 반해, 성장요인은 이들 성장요소들을 전체적으로 묶어내는 제도적 틀 또는 제도형태다. 이때 성장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개별 성장 요소들을 성장 요인인 제도 틀 안에 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성장 잠재력은 유실(流失)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장하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2. 장하준의 더 나은 자본주의: " 부자- 더 부자 서민-거지 전략"을 넘어서

그러나 만약 <23가지>가 여기에 그쳤다면 ,이는 일반 '경제 시민'들에게 참신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 제도론적 성장론 이야기의 평범한 한 토막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매우 고무적인 일은 <23가지>가 단순한 제도론적 성장론을 뛰어넘어 진보적 제도론, 그리하여 더 나은 자본주의 대안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그 떡고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자유시장주의 "트리클다운"(trickle-down) 전략에 대항하여 성장과 분배 및 복지가 선순환하는 "보텀업"(bottom-up)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진보주의 정치경제학에서는 트리클 다운 전략 대 보텀업 전략을 흔히 "저진로"(low road) 전략 대 "고진로"(high road) 전략으로 바꾸어 부르곤 한다.

장하준의 더 나은 자본주의론, 또는 제도주의 고진로 전략은 간단히 말하면 thing3 더하기 thing13으로 구성된다. thing13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다. 장하준이 도마 위에 올린,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대중들은 거지처럼 떡고물이나 얻어먹게 하는 전략은 우리가 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으로, 세계전역에 널리 전파된 자유시장주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다.

미국 부시정부의 전략이 그랬고 한국 이명박 정부의 전략이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같은 입으로 '공정사회'운운하며 혹세무민하는가 하면 또 보편적 복지를 공짜 퍼주기, 인기영합주의(populism)라고 모함하고 있는데, 알고 보면 그 정체란 '부자- 더 부자, 서민-거지 되기'의 파당적 전략을 휘두르며 한 배를 타고 가려는 우리들을 '두 국민'으로 쪼개고 갈등을 조장, 심화시키고 나라를 '두 개의 대한민국'으로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하준은 오늘날 자유시장주의 전략이 붕괴이전 소련의 역사상 신경제정책(NEP)을 비판한 극좌파 공산주의 전략과 닮았다고 말한다. 부시와 이명박 씨가 스탈린과 아주 많이 닮았다니, 참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부자를 더 부자 되게 해서 대중은 거지처럼 얻어 먹게 하는 그 정책조차 실패로 끝났다. 사실 "부자-더 부자, 대중-거지"정책의 파탄은 미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시기에 입증됐다고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 국민들도 다시 눈을 떠 깨어났고 이 정부도 당황하고 급한 나머지 자기들 족보와는 무관한 "공정사회"를 입에 담게 된 게 아닌가.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재분배가 경제성장도 촉진시키는 이유는 뭘까. 장하준이 제시하는 이유는 많다. 가난할수록 소비성향이 높아 부자감세보다 경기활성화효과가 크다. 임금이 최저생계수준이상이라면 추가소득을 교육이나 건강투자해 노동생산성을 높인다. 그리고 소득분배가 평등하면 사회적 평화가 이뤄져 투자가 촉진된다는 "정치"경제적 이유도 있다. 나아가 thing13에 thing21을 더해보자. thing21은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즉 '복지국가 펌프'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들"에 따르면,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를 높이면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부자들은 투자의욕을 잃는다. 따라서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는다. 이에 대항하여 장하준은 말한다: 복지가 잘 갖추어지면 사람들은 변화에 개방적이고,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감수한다. 복지는 "노동자들을 위한 파산법"이다. 이 파산법을 갖추면 성장도 더 빨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장하준은 인간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존재인 것만은 아니고 다른 본성도 가진 도덕적 존재라는 말을 한다(thing5). 또 더 많은 소득이상의 '좋은 삶'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thing10). 심지어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일정수준이상 결과의 균등도 보장돼야 한다는 상당히 '과격한'이야기까지 한다.(thing20). 이는 그의 복지론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위와 같은 <23가지>의 복지국가론은, 저자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전 책 <사다리 걷어차기>의 논지와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사다리 걷어차기>를 잘 보면 대중의 민주적 요구를 이전에 선진국의 역사는 그러지 않았다는 식으로 답하면서 거부하는 논지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걷어차기>는 패권적 자유시장주의에 대한 발전론적 대응이면서 동시리스트식 경제적 민족주의의 대응이 얼마든지 보수주의와 결합될 수 있는 내용도 갖고 있다. (다음을 참조. 신정완,"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제적 주체화 전략에 대한 비판적 검토", <우리안의 보편성>,한울; 이병천, "경제성장의 역사와 자유시장 패권주의 비판",강원대 신문, 2004/ 6/ 7 ).

이와 반해서 <23가지>는 경제적 민족주의와 진보주의가 결합되는 논리구조를 보인다. 이처럼 "그들"에 대항하여 성장과 분배, 복지가 동행, 선순환하는 고진로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장하준의 경제학은 진보적, 평등주의 복지경제학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제도론에 유인(동기부여)문제를 집어넣을 뿐 아니라 임금을 단지 비용요소가 아니라 수요 요소로 봄으로써, 미시와 거시를 통합하는 진보적 제도경제학의 명품지식을 알기 쉽게 제공한다.

3.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것 (1) : 민주적 참여, 노동참여 없는 복지국가?

<23가지> 대 <리얼 진보>, <진보집권 플랜>


만약 <23가지>가 단지 제도가 중요하다, 제도가 잘 갖춰져야 성장을 잘할 수 있다고만 말했더라면, 나는 아마 이 책을 읽다가 덮었을 것이고 쓸데없이 아까운 시간을 들여 이 책에 대해 가타부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3가지>는 이전 저작 <사다리 걷어차기>로부터 방향을 전환하여 "부자-더부자, 서민-거지되기"라는 저진로 전략에 대항하면서 성장과 분배,복지가 선순환하고 이를 통해 더불어 잘 사는 진보적 고진로 전략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진보적 제도경제학 틀을 가지고 '경제시민'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간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장하준의 여러 책들중에서 특히 이 책을 높이 사는 이유다. 지금까지 나는 장하준의 고진로 전략에 대해 많은 칭찬을 했다. 이제 균형을 잡기위해 그 빈틈에 대해 말해야 할 차례다.

나는 장하준에 복지국가로 가는 "동력"은 뭔가, 그리고 여전히 "어떤 복지국가인가" 라고 묻고 싶다. 지금 한국에는 복지국가와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예컨대 진보진당 상상연구소에서 기획한 <리얼진보>라든가,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이 있다. <23가지>를 이 두 권의 책과 비교해 보자.

장하준이 <23가지>를 내놓았다면, 상상연구소는 <19가지>를 제시했다. 상상연구소의 가지 수가 4가지 더 적다. 그러나 가지 수가 적다는 건 흠이 아니다. <리얼 진보>는 이렇게 말한다: 복지국가를 위시하여 20세기의 역사적인, 거대한 전환을 불러온 근원적 힘은 민주적, 진보적 대중운동이었다. 따라서 21세기에 세계와 한국에서 새 거대한 전환을 불러올 것도 바로 진보적 대중운동일 수밖에 없다. <23가지>에는 <리얼진보>가 말하는 "진보적 대중운동"이라는 이 알맹이가 빠져 있다. 다시 <진보 집권 플랜>을 보자. 여기서 조국은 진보 재구성의 핵심 어젠다로, 경제권력, 삼성권력을 어떻게 길들여야 할지, "나쁜 삼성"을 어떻게 "좋은 삼성"으로 만들어할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면서 장하준이 노조의 경영 참가를 빠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pp.52-56,p.121-4). 이 또한 장하준의 핵심 빈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23가지>에는 한국의 진보가 고투해온 핵심 지점에 대한 고민이 빈곤하다. 그래서 "리얼"하지 않다.

그렇지만 <23가지>와 <리얼진보>, <진보 집권플랜>을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도 있다. 여러 개별 정책들을 엮어 하나의 패키지로 내놓았을 때 성장과 분배, 복지, 생태가 선순환하는 일관성을 갖는 발전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 굴러가도록 개별 정책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제도적 원리는 있는지 하는 문제가 있다. 내가 보기에 <리얼 진보> <진보 집권플랜>에는 이 지점이 취약한 것 같다. 물론 "사회경제"(<리얼진보>)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진보집권플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진보재구성의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대안 모델플랜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리얼진보>도 <진보집권플랜>도 "2%부족"하게 보인다.

그런데 <23가지>를 읽으면 나름대로 발전 모델의 대강의 윤곽이 그려진다. <23>가지는 단지 가지 수만 많은 게 아니라 기업론과 산업론을 더 나은 자본주의의 핵심 기둥으로 세워놓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분배, 복지, 더 좋은 삶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23가지>의 강점이며, 경제 시민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물론 <23가지>도 기업-산업-금융-노동-복지-교육 등을 모두 관통하는 통합 패키지를 제시했다고는 볼 수 없다.

민주적 참여, 노동참여없는 복지국가?

요컨대 우리의 요점은 더 나은 자본주의로 가는 장하준의 고진로 전략에는 지금 여기서 거기로 갈수 있게 하는 동력, 아래로부터 힘, 또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지배 권력과 대중의 힘의 대치, 이들의 서로 부딪힘과 갈등, 그리고 이 갈등의 건설적 힘 속에서 생겨날 새 길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따라서 복지국가와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은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거기로 갈수 있을지가 "리얼"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장하준의 복지국가론은 "정치"경제적이지 않고, "역동적"이지도 않다.

생각해 보라. 한국 삼성전자의 경우 2007~2009년 평균 유효세율은 고작 10.48%다. 반면에 일본만 해도 소니는 43.87%, 토요타는 34.59%로 삼성전자보다 3~4배가 높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25.75%), 애플(29.26%)의 유효세율도 삼성전자의 3배나 된다. 삼성전자의 유효세율은 어지간한 중소기업 평균보다도 낮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아 투신자살한 노동자 측에 사과 한마디 없이 사태를 덮으려 하는 냉혈 "기업권력"이다.( "삼성 통째로 얻고도 고작 16억으로 퉁친 이재용이 타깃", "자식이 삼성 다닌다고, 그저 좋아만 했던 저는 죄인입니다", 2001/1/21, www.pressian.com ). 이런 삼성에 누가, 어떤 힘이 고양이 방울을 달 수 있을까.

둘째, 장하준의 고진로 전략이 갖고 있는 빈틈은 리얼하지 않다는 데만 있지 않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복지국가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의 복지국가는 소득 증대이상의 더 '좋은 삶'까지 생각하는 깊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빠진 게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연대와 참여민주의 두 바퀴로 가면서 양자가 상호 의존하는 "시민적" 복지국가의 원리가 빠졌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은 쉬운 길은 아니다. 두터운 불신의 덫을 걷고 보편적 복지를 모두의 "공공재"이게 하는 보편적 동의를 구성하고 무임승차를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도덕적 논리와 참여-협력의 제도형태를 가져야 한다. 완고한 기득권세력을 시민의 일원이 되게하는 과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모든 아이가 모두의 아이"(신필균, 복지국가 스웨덴, 후마니타스,2011)가 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적 계약"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보편복지국가라는 새 "계약"에서 복지연대를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지위, 그 권리 및 책임과 연결짓는 시민정치원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만만찮은 문제덩어리는 나중으로 돌리고, 여기서는 이와 관련되지만 좁혀서 장하준의 복지국가가 민주적 참여, 무엇보다 노동의 민주적 참여와 발언권을 보장하는 복지국가인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래서 그가 대중의 민주적 참여, 경제민주주의와 동행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비스마르크식의 위로부터 권위주의적 복지국가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복지국가로 가는 대중적 동력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데 어떻게 대중 참여적, 시민적 복지국가가 나올 수 있겠나. 또 새삼스fp <23가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장하준은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이해당사자의 이익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3가지> 전체에 걸쳐 노동을 한번도 <23가지> 무대에 단독 주제로 올려놓지 않는다. 그리고 장하준은 늘 그렇게 하듯이,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는, 정부 주도의 더 나은 자본주의-이는 사실상 동아시아 자본주의로 보인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노동 및 대중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협력, 그런 참여와 협력위에 서는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thing12, p.18). 요컨대 장하준은 아래로부터 사회동력과 참여적 협력이 아니라 거의 국가물신이라 할 정도로 너무 국가에 과부하를 걸어 놓는다.

4.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것(2): 제도ㆍ권력ㆍ갈등, 그리고 "시민적 정의"와 연대

그런데 장하준의 위와 같은 빈틈은 그의 제도론 일반으로 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할 때, 일반적으로 그 제도가 권위주의적, 공학적 제도인지,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는 참여적 제도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제도의 구성에는 권위주의적 길도 있고, 참여적 길도 있다. 예컨대 올리버 윌리엄슨 같은 사람은 2009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자유시장주의를 비판하지만, 권위주의적,위계적 제도론을 펴는 대표적인 학자다. 물론 장하준의 평등주의 제도복지론은 성장, 분배, 복지의 선순환에 대해 말해 윌리엄슨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다시 말해 제도를 정치적으로 구성하고 운영하는 이해당사자 주체들의 평등한 참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장하준의 제도론이 제도와 복지에 대한 테크노크라트적, 공학자(engineers)적 견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의 평등주의에 기본적 불평등은 없는지 묻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제도와 복지에 대한 참여정치적 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장하준의 제도론에 빠진 또 다른 지점이 있다. 그것은 권력과 갈등, 역사의 차원이다. 이는 우리가 제도에 대한 정치적, 역사적 관점에 설 때 반드시 따라 나오는 필수적 지점들이다. 그런데 장하준의 제도경제학에는 이 지점들이 빠져 있고, 그래서 또 다른 측면에서 "탈정치적" 정치경제학이 된 게 아닌가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경제적 진보의 길에서 협력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학이든 철학이든 단지 협력만 이야기하는 제도론은 권위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제도론이 되기 쉽다. 협력과 갈등을 같이 말하고 제도를 협력과 갈등의 혼합물로 파악할 때,또 제도의 구조와 역동적 진화를 같이 말할 때만 "정치"경제적,역사적 제도주의가 성립된다. 권력과 갈등이 없는 제도, "정치"경제란 없고, 제도와 "정치"경제란 질서이자 갈등이고 구조이자 역동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제도주의 "정치"경제란 주체적 정치적 행위자가 있는 것이고 이들이 동등하게 참여하여 더불어 살 자신들의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 제도주의 정치경제란 권력과 지배가 있고 이에 대한 저항이 있고 갈등이 있다. 갈등이 없는 제도, 갈등이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나는 "갈등이 정의다"라고 까지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단지 갈등만 있는 게 아니라 갈등의 조절, 통합이 있다. 우리는 조절과 통합 속에서 불안정, 균열을 내장한 채 작동하는 그런 제도의 능력과 질, 역동적 진화 문제와 대면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도는 늘 지배권력과 대항 권력 간에 '제도화된 타협'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다시 또 단지 타협만 있는 게 아니다. 타협과 통합은 다르다. 타협해서 갈라먹고 아래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 위로 올라가야 한다. 통합이란 구성원에 등등한 참여를 보장하고 그 참여 속에서 대립하는 힘들의 다툼이 더 나은 제도구성과 공동체를 향해 해법을 찾는 것이다. 대립물의 통일은 통일이전보다 더 높은 균형에 도달해야하며, 더 높은 공동의 부를 창조하고 "좋은 삶"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단지 원리만이 아니라 더 높은 균형, 높은 길(high road)의 현실적 제도형태를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민적 정의"(civic justice)와 "연대"의 정치경제학, 정의와 연대가 동행하는 "시민경제"론의 핵심이다.

5. 장하준과 스티글리츠

마지막으로, 스티글리츠가 제창하는 발전-제도 경제학의 가르침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이번 글을 맺으려 한다. 케인즈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현대 제도주의 경제학의 프론티어에 서 있으며 "세계은행의 내부반란자"이기도 한 이 석학은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사회전반의 민주적 전환으로, 그래서 아예 그 안에 민주적 참여, 다시 말해 투명성, 개방성, 참여 발언이 다 들어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 Joseph Stiglitz and the World Bank The Rebel Within- Edited with a commentary by Ha-Joon Chang ,Anthem press, 2001).

그리하여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기계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양자의 선순환을 역설한다. 뿐만 아니라 스티글리츠는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계급갈등이 만연해 공멸로 떨어지는 사회랑, 노동자의 참여 발언위에 이들이 공동의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질적으로 다른 사회인지에 대해 언급한다. 노동하는 인간-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이 주변화되고 그들의 발언권이 "배제"된 사회하고, 그들에 대한 존중이 있으며 그들을 "포용"(inclusion)하는 사회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힘주어 말한다.

스티글리츠는 "경제민주주의"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적 구성부분이고 경제효율성보다도 더 근본적 가치라고 본다. 그러면서 기업수준, 지역수준, 나라 수준, 그리고 글로벌 수준 ,이 모두에 노동의 강력한 참여권과 대표권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민주주의와 민주적 경제발전의 열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장하준은 스티글리츠 책의 서문까지 쓴 사람인데, 왜 <23가지>에서 스티글리츠의 이 귀중한 발전관은 빠트렸을까? 혹시 내가 <23>가지를 잘못 읽은 것일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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