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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하종문] 끝나지 않은 과거, 불안한 미래 | Memento 2020-07-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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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

하종문 저
메디치미디어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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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과거(일본), 불안한 미래(중국), 그리고 위험속의 현실(한국)에서 "과거"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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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일본 국방장관 고노 타로의 집무실 사진이다. 그의 왼쪽에 보이는 한반도 지도가 눈에 띈다. 굳이 이 각도로 사진을 찍어야 했을까. 일본 열도가 아닌 한반도 지도를 노출했다는 점을 우연으로 넘겨야 할까. 김누리 교수는 그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동북아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이 지역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한반도는 분단의 현실, 중국은 중국몽으로 대변되는 패권주의로 다가서는 미래를 불안해 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과거는 무엇일까. 김누리 교수는 일본이 가진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일본의 현재 행보를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세계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은 전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군대를 가질 수 없고, 선전포고도 할 수 없는, 주권이 제한 된 나라다. 하지만 한 때,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했고, 미국과 전면전을 시도할 만큼 대단했던(?) 나라였다. 현재의 제약은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나보다. 전쟁이 가능한 나라, 일반국가를 지향하는 아베정권의 행보는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추구는 일본 평화헌법을 교모하게 피해나가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다. (미국의 승인이 있었겠지만...) 동맹국 등이 침략을 받는다면 선제적 안보를 위해 자위대를 해외로 파병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국들이 우려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아가 평화헌법 자체를 개정하고자 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을 이익선, 생명선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스럽다.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걱정하며 한반도를 이익선, 생명선으로 보았다. 자국의 안위를 넘어 야욕을 위해서 대한제국이나 류쿠 왕국은 시험대이자 지렛대에 불과했다. 나치 독일이 그랬듯, 강대국과 주변국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야금야금 위치를 확장해 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진다. 초기의 우리 입장에서는 특히 어의 없는 논리(한반도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과거의 일본 기록들에 기반 한)를 가진 정한론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정한론의 정교화가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화의 시작과 발전, 쇠락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제국은 전통적인 세계관 안에서만 현실을 진단했지만, 일본은 이미 한중일을 넘어서 세계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일본을 이기기 힘들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들이 일본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 정권의 국방장관 집무실에는 버젓이 자국의 지도가 아닌 한반도의 지도가 있다. 게다가 욱일기와 나란히 한반도가 보이니 한반도(한국과 북한)의 입장에서는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발톱을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째서 일본은 한반도를 집요하게 노리는 걸까. 궁금하다면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는 필수다. 일본의 논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일본의 시도는 분명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리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일본이 지금도 (과거 러시아와 같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의 의미를 유사하게 상정하고 있다면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다. 앞의 사진은 그것을 대변한다고 본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역시 우리와 지대한 관련이 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동아시아는 위험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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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의 이데올로그이자 제국주의 일본의 지주, 그것이 쇼인의 역사적 무게감이다. p.25

산업혁명 또는 자본주의 발전의 보완재로서 식민지 획득을 추구했던 서양 제국주의와 달리, 일본은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우월 의식이라는 계기와 동인을 출발부터 내재했다. 이는 아베 정권의 집요한 역사수정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p.40

존왕양이를 신봉했던 쇼인은 강제로 개국을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의 부조리를 이웃 나라의 정복이라는 침략론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p.42

쇼인의 관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은 원래 일본에 복속한 나라이므로 천황의 신하인 쇼군과 대등한 외(p.43)교를 할 수 있으며, 막부·쇼군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은 조선은 천황이 다스리는 일본보다 국격이 아래라는 논리다. 뒤이어 쇼인은 도일한 통신사가 쇼군 취임만 축하하고 천황 등극은 축하한 적 없다는 것을 언급하며 막부가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 통신사를 매개로 전쟁 대신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에도 시대의 조일 관계가 조선 정벌의 도화선으로 비틀리는 상황, 이를 이끈 것이 바로 쇼인의 제자들이었다. p.44

쇼인의 제자가 추진했던 울릉도 개처 소동은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막번 체제 아래서 정한론 실행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기도가 언급한 막대한 비용도 고려 사안이었겠으나, 막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조일 관계를 규율하는 교린의 틀을 재확인했다. 막부는 개국에 맞춰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조선 침략은 고려하지 않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정한론이 존왕양이와 사상적인 뿌리를 공유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한론 실행은 결국 왕정복고의 현실화 곧 천황의 귀환이 이뤄진 뒤에야 가능했다. 동시에 위의 경과는 쇼인의 제자들이 계승하고 발(p.57)전시킨 새로운 정한론의 출현을 짐작케 한다. 조선 땅인 울릉도를 서양(영국)이 차지하면 일본의 안위가 위협 받는다는 지정학적 안보관, 이것이야말로 메이지유신 후에 조일수호조규 체결로 실체화되는 정한론의 요체였다. p.58

기도의 정한론에는 쓰시마번 또는 오시마와의 교류라는 측면 말고도 독자적인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신정부의 정략이고 다른 하나는 메이지유신의 대의명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략이란 무진전쟁이라는 내전의 수행 및 뒤처리와 정한론이 맞물린다는 부분을 가리키며, 왕정복고라는 정변은 원래부터 명분의 차원에서 정한론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p.75

기도의 논리는 쇼인의 논리와 흡사하다. 스승은 양이의 실현이 어려워지자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는 발전 전략으로 선회했고, 합리주의자로 정평이 난 제자는 내치와 결부해 권력 기반을 다지고자 조선 침략을 선택하고 실행에 힘을 쏟았다. 기도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정한론의) 뜻은 전적으로 내환을 압도하는 데 있었을 뿐이었다. p.82

명분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정한론과 왕정복고의 연계성이다. 신정부는 조선과의 관계 정비를 국교 수립이라는 함의뿐만 아니라 왕정복고라는 대의명분과 연결해 거론했다. 메이지유신에 이(p.83)르는 과정에서 도쿠가와 막번 체제의 권위 실추와 천황의 부상은 동전의 양면이었으며, 신화적 역사관을 근거로 조선을 하대하는 주장은 다양한 형태로 분출했다 이에 따라 천황 친정을 회복한 새 일본에게 조선과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에도 시대를 승계하는 교린의 조선 통신사를 폐지하고 조선의 복속을 가시화함으로써 황국 일본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정한론은 메이지유신의 정치적 변혁에 힘입어 비로소 사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책의 차원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p.84

사할린을 매개로 부침하던 일본, 러시아 영(p.100)토 분쟁은 일본의 지정학적 안보 인식과 결부되면서 정한론을 비롯해 조선과의 외교 쟁점을 논하는 소재로 곧잘 변용되곤 했다. 가령 1873년 신정부를 양분시킨 정한론 정변은 조선을 칠 것인가 러시아와 국경 교섭을 마무리해야 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각축전이기도 했다. 18755월 일본과 러시아는 각각 쿠릴열도와 사할린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8월에 도쿄에서 협정을 비준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다음 달에 강화도사건이 터졌다. 안보관과 국경 문제를 소재로 조선, 일본, 러시아 관계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에 체결에 이르기까지 국서 사건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조일 외교의 타개책과 긴밀히 연동돼 있었다. p.101

한 연구자는 19세기 후반 일본의 관점에서 조선, 류쿠, 타이완 문제는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로 곧바로 파급되는 연관 구조를 지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 점에서 타이완 출병은 류쿠 병합의 최대 분기점이 됐다. 청이 출병을 의거로 인정한 것은 류큐인이 일본인이(p.143)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1877년 초대 일본 공사로 부임한 하여장은 류큐가 망하면 조선에 화가 미치며 타이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의견을 이홍장과 총리아문에 전달했다. 현실은 그의 예언대로 이뤄졌다. p.144

쇼인이 통탄해 마지않던 페리의 내항은 23년의 세월이 지난 뒤 구로다 사절단에 의해 일대 역전극으로 탈바꿈했다. p.171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는 강화도조약 제1조의 연장선 위에 입안됐으며, 완성이었다. (p.199) ... 독립국, 그것은 조선의 운명과 연관해 사용할 때만 특수한 의미를 띤다. 청의 간섭 없이 일본이 자유롭게 침탈할 수 있는 국가, 그것이 독립국의 진의였다. p.201

동학농민전쟁은 내전인 동시에 일본과 청이 개입한 실질적인 국제전의 측면까지 겸비했다. 30-40만 또는 3-5만의 죽음은 자발적인 변혁을 압살하려는 일본(청과 조선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의 학살극이었으며, 시모노세키에서 맺은 강화조약은 그들의 주검 위에서 체결되었다. p.206

일본의 근대국가 만들기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청일전쟁은 메이지유신, 아니 그 앞의 쇼인과 쇼카손주쿠에서 발원한 정한론을 완성하는 전쟁이었고, 승리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대일본제국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게 됐다. p.206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체계적인 안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일본이 처음 제기했다. 이후 청일 양국의 침탈이 가시화하는 현실 아래, 조선에서 박영효와 김옥균 등이 중립국을 향한 전망을 그려냈다. 20세기에 들어와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때 공식적으로 국외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이 묵살해 성사되지 못했다. 이렇듯 중립국 논의의 대두와 무산 모두에 일본이 깊숙이 관여했다. p.268

100년 전의 쇄국과 개국의 갈림길에서 조청일 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했듯이, 1950년대 후반의 한일 관계는 분단과 냉전이 가미된 한중일 관계의 지평 위에서 펼쳐졌다. 그 점을 되짚는 것이 이 책의 과제다. p.426

식민 지배 청산이 대동아공영권의 주창자인 A급 전범 용의자를 매개로(p.429) 모색되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역사 문제로 양국 관계가 꼬이는 원점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미국이야말로 과거 청산의 불철저와 한일협정 체결을 압박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p.430

식민 지배 청산이 분단 고착화로 연결되는 맥락, 이것이 기시가 초석을 놓은 전후 한일 관계의 또 다른 화근이었다. p.436

불행히도 한강의 기적은 군국주의자와 군사독재 정권의 검은 야합을 도약대로 삼아 이뤄지게 되었다. p.438

한국은(정확히는 한국의 보수는) “일본 우파의 체질을 알면서도 반공의 동지 또는 경제 원조의 산파역으로서 이것을 이용해 왔던 것이다. ‘한일 보수 유착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런 양국 보수파의 밀월 관계는 한국의 민주화 및 역사 문제의 쟁점화를 계기로 서서히 파열음을 일으키게 된다. 1990년대의 한일 관계는 식민 지배의 역사 청산을 둘러싸고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런 상황 아래서 일본 보수의 재결집이라는 중책을 떠맡게 된 것이 아베였다. p.445

아베는 보수 정치가 중 누구보다 강경한 역사수정주의자다. p.458

아베의 특징 중 하나는 좌익리버럴에 대한 적대감이 남달리 강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p.459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냉전 해체에 따라 경제의 세계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됐다. 급작스럽게 확장된 세계 시장의 유일한 경찰관으로 군림하게 된 미국은 일본에 동북아의 군사적 파트너로서의 역량 강화를 주문, 압박했다. 1990년대 이후 우리에게 익숙해진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는 이런 미국의 전략 설정과 연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위대의 위상 강화와 활동 범위 확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해서 추진됐고, 9.11 사건으로 촉발된 대테러 전쟁은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향해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p.460

한국으로서는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치열한 문제의식과 참신한 발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p.471

개헌이 성사돼 군사력 증진의 길이 열릴 때까지 한국의 최전방 기지 역할이 유지돼야 한다는 발상이다. p.480

150년 전 근대화 문턱에 섰을 때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남북 분단이나 중국의 대두, 미국의 존재감 등이 새로운 변수지만, 한중일 관계의 틀과 동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대의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해묵고도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바로 한반도 중립화다. p.483

중립은 고립이 아니고 소통이다. 평화와 공존을 발(p.483)신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일본의 보수는 왜 한국 중립화 논의를 친중(또는 친북) 정책으로 치부하는가? 중립화에는 현금의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염두에 두면서 19세기에서 발원하는 한중일 관계의 프로토콜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드는 어떤 사태도 원하지 않으며 훼방하려 한다. 남북의 화해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근대 이후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중립의 의미를 상상하고 현재화해 실현하려는 구체적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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