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송기원

사이언스북스/2018.10.15.

sanbaram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AI의 발전으로 인간의 최고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인간이 기계 알파고에 밀리면서 위기의식이 깊어지고 있다. 더불어 생명과학의 발달로 분자생물학을 넘어 합성 생물학이 발달하여 새로운 종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불안은 고조 되고 있다.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는 첨단 생물학 분야의 미래 문제를 짚어보는 책이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생화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생화학 및 분자 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의과 대학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1996년부터 연세대학교 생명 시스템 대학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생명>,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한다>(공저), <과학은 논쟁이다>(공저), <의학과 문학>(공저) 등 다수가 있다.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는 프레시안에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을 바탕으로 합성 생물학, 유전자 가위, 세포 치료로 주제를 중심으로 8부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나눌 수 있는 분야들이 아니라고 한다.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고리의 핵심에는 유전체를 의도대로 편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인 CRISPR가 있다. 최첨단 생물학 분야인 합성 생물학, 유전자 가위와 같은 최첨단 생명 과학의 지식을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생소한 분야의 학문이지만 일반인들이 포스트 게놈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성찰하고 질문해야 할 과학 기술은 생명 과학 기술이라고 한다. 위험하다면 폐기하거나 동결해 버릴 수 있는 핵 기술과 달리 생명 과학 기술은 그 대상에 우리 자신이 포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 기술(NGS)의 발달로 합성된 DNA 염기서열의 정확도도 쉽게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는 가격은 100만 원을 약간 웃도는 정도이고, 유전체 중 실제로 발현되는 유전자 검색은 80만 원정도면 쉽게 가능하다.(p.27)” 이런 바탕에는 합성 생물학의 발달이 있다. 합성 생물학자가 자신이 의도한 생명체를 만들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전체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정보 기술과 나노 수준의 화학적 미세 조작 기술 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합성 생물학은 생명 공학, 정보공학, 나노 기술 등이 결합한 대표적인 융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근대 생명 과학의 뿌리가 되는 생물학 분야의 중요한 두 가지 발견이 있었다. 첫 번째 발견은 찰스 로버트 다윈의 진화론이다. 두 번째 발견은 그레고어 멘델의 유전 법칙이다.(p.34)” 이 두 가지 분야의 발달로 시작된 생물학은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의 규명을 넘어 새로운 생물의 합성에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생물학에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은 노버트 워너라는 공학자였다. 생명체를 기능 모듈이 모인 시스템으로 보는 그들의 실용적 접근은 ‘생명체를 DNA라는 소프트웨어가 담긴 유전자 회로로 구성된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 정보를 조합해 모듈을 설계하고 이것을 다시 시스템적으로 통합해 가장 효율적인 생산 설비인 생명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자연적인 교배를 통해서는 서로 유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동떨어진 종 사이에 인간의 필요대로 유전자를 교환하고 발현시키는 생명체의 변형이 가능해진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이렇게 다른 종의 유전자를 넣어 유전 정보를 변형한 생명체를 트랜스제닉이라고 부른다.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GMO 혹은 LMO가 모두 트랜스제닉이라는 것이다.

“2012년부터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CRISPR(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생명 과학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로 파생되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화두다.(p.101)” CRISPR 유전자 가위가 임의의 DNA 서열에도 작동하며 인간세포 등 진핵 세포에서도 작동한다는 이 두 가지 발견은 CRISPR 기술이 새로운 유전자 가위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인류는 마침내 효율성과 특이성이 떨어져 유전체에 사용하기 어려웠던 기존 유전자 가위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를 얻은 것이다.

“CRISPR-Cas9 유전자 가위는 다양한 세균의 세포 내에 있는 CRISPR 유전자 사이에 자르고자 하는 DNA의 염기 서열과 동일한 21개의 염기 서열의 DNA를 삽입한 후, 이 유전자와 DNA를 자르는 효소인 Cas9에 대한 유전자를 함께 발현시키는 간단한 시스템이다. 발현된 CRISPR 유전자 DNA는 유전체에서 CRISPR 에 삽입된 21개 DNA 염기 서열과 동일한 부분을 찾아가 정확하게 DNA를 절단하므로 특이성이 탁월한 유전자 가위이다.(p.114)” CRISPR 는 21개의 염기서열을 인식한다.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21개의 염기 서열이 정확하게 위치할 가능성은 염기가 4종이므로 4의 21제곱분의 1, 즉 대략 4조 4000만분의 1이다. 유전체 내에서 21개 염기서열이 동일한 경우라 나타나려면 4조 4000만 개의 염기 서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간 유전체의 염기쌍 30억 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수이다. 그러므로 CRISPR 가 인간 유전체에서 의도치 않은 다른 부분을 절단할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거의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CRISPR 가위를 유전체에 적용할 때 비특이적인 절단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다른 유전자 가위 기술과 비교 불가능하게 낮아진다.

“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은 우리 밥상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일부 학자와 언론은 21세기의 밥상이 ‘유전자 가위’로 만들어진 식재료로 뒤덮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 채소의 종자에 유전자 가위 기술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p.157)” 맥주를 만드는 효모에서 특정 유전자를 CRISPR 유전자 가위로 제거해 맥주의 맛을 높이는 방법이 이미 사용되고 있으며, 갈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사과와 피트산 함량을 낮춘 옥수수도 개발되었다. 곡물의 껍질에 주로 많이 들어 있는 피트산은 순기능도 있으나 체내에서 칼슘, 철분, 마그네슘과 같은 필수 미네랄과 잘 결합해 이 물질들을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이게 너무 심한 경우 체내에서 필수 미네랄 이용성 저하 및 단백질 흡수저하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피트산을 만드는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발현이 잘 안 되도록 바꾸는 것이다.

“유전자 가위를 질병 치료에 응용하는 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수많은 체세포에 CRISPR-Cas9을 넣어 줘야 하고 그것들이모두 제대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세포의 유전체 정보를 바꾸는 경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 세포에 적용하는 것이다.(p.144)” 우리가 이미 성체가 된 후에 발병한 특정 세포에 유전자 치료를 적용해도 그 효과는 그 세포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세포의 유전체 정보를 바꾸는 유전자 치료는 수정란이나 아주 초기 배아 세포에 적용해야만 영구적이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 앞으로 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인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표적 유전자에 정확하게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효율을 증대시키고 유전체의 원하지 않는 부분에 무작위로 변이가 생성되는 것을 막는 이 두 가지 기술적 극복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유전 정보인 유전체 전체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유전자의 개수가 예상외로 적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복잡한 생명체이기에 과학자들은 인간 유전자의 수가 다른 생명체에 비해 훨씬 많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 수는 많아야 2만 5000개 정도로 밝혀졌다. 맥주나 빵을 만들 때 넣는 이스트(효모)라는 단세포 생명체의 유전자가 6,200개 정도이고, 지렁이의 유전자가 2만 개 정도임을 상기해 보면 정말 턱없이 적은 유전자 개수이다.(p.167)” 그런데 유전체 전체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사람의 유전체 내 DNA 염기 서열의 양은 이스트의 220배, 지렁이의 30배 이상 많다. 우리 주변의 소나 개처럼 우리와 친숙한 다른 척추동물들도 유전체의 크기에 비해 유전자 수가 적다. 따라서 1개의 유전자가 한가지의 생체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발생 단계와 발현되는 장기나 세포의 종류에 따라, 또 외부의 다양한 자극에 따라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는 인간의 발생부터 탄생, 성장, 노화 과정에서 매우 다양한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나 현재 하나의 유전자가 가지는 여러 기능에 대한 지식은 매우 한정적이다. 또 한 유전자의 DNA 변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도 일천하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윤리적 이유를 떠나서도 유전병 치료를 위해 인간 배아 유전체에 인간이 손을 대는 행위를 논의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p.172)” 세균의 세계에서 CRISPR가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에 대한 우리의 정보가 얼마나 적은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CRISPR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일천한 지식으로 그것의 응용과 유용성에만 매달리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저자는 우려를 나타낸다.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면역 세포는 면역 T 세포이다. 인체에 암이 발생하면 암 발생 부위에는 적은 수이지만 암세포와 대항해 싸우는 데 특화된 T 세포가 생겨나게 되는데, 환자의 암 조직으로부터 이 특화된 T 세포를 분리해 인터루킨-2 등 사이토카인 처리를 해서 그 숫자를 늘리도록 배양한 후 다시 환자에게 투여하는 방법이 치료법으로 개발되었다.(p.213)” 최근에는 이미 분화되어 기능이 한정되어 있고 면역 거부 반응이 없는 자기 몸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줄기 세포의 성질을 갖도록 변화시킨 후 다시 몸에 주입하는 ‘역분화 줄기 세포’를 줄기 세포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 정보 전체를 이르는 유전체 혹은 게놈이라는 단어에 익숙할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각각에는 DNA 형태로 유전체 정보가 담겨 있다. ‘인간 유전체 계획’ 결과 인간 유전체의 DNA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고 2만 5000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102)” 그러나 합성 생물학 연구의 대중화가 갖는 문제는 바이러스나 세군의 변형 같은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연구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를 알거나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의 제도권 연구소나 대학 밖에 있는 DIY 연구자들이 생명 공학의 혁신을 사져오겠다고 하는 연구가 전 인류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합성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최근의 발전방향을 알 수 있게 안내해주는 책이라 생각되어 읽기를 적극 권한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