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사랑 만화
올해의 미숙
- 글쓴이
- 정원 글그림
창비

『올해의 미숙』은 안흥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책이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였다. 다만 요즘은 독서와 리뷰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가볍게 읽을 책을 구하는 과정에 선택한 것이다. 정원 작가의 부드러운 그림체가 편안하게 느껴졌고, 단권으로 끝나는 작품이라 부담이 없을 듯해서이다. 그렇게 만난 책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82년생 김지영』을 읽는 기분이었다. 답답했다는 의미이다. 『82년생 김지영』은 2년 전에 우연히 읽었는데, 80년대생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먹먹한 느낌을 받았다. 작품 모두에 공감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이 남자인 나도 보고 들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장미숙이다. 가난한 시인의 두 자매 중에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의 이중고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가족들 모두 힘겹게 살다가 떠나기도 하고…….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어서 자매들이 모두 대학까지 졸업한 소설 속의 김지영보다 이 작품의 미숙이는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견디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짜증이 났다. 답답한 현실이 싫어서 작품 속에서라도 밝은 모습이 보고 싶어서……. 약간은 현실도피의 마음으로 펼친 책인데 이게 뭐란 말인가, 싶었다. 그래도 만화니까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는데, 읽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숨에 읽을 만큼 독자를 몰입시키는 작품이기는 했다. 특히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82년생 김지영』은 설마 그렇게까지야, 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으나, 이 작품은 너무도 사실적이라 더욱 애달펐다.
둘째, 이름에 대한 일화에 옛 동료의 추억이 떠올랐다. 학기 초에 상견례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은 자기의 이름이 너무 싫으니 이름을 부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동료의 이름은 조진아(가명)였다.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진아’라는 이름이 좀 흔하기는 하지만 예쁜 이름이 아닌가? 이름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 이유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동료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친구들은 성과 이름을 함께 불렀다고 한다. ‘조진아!’라고.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앞 음절이 뒤로 가는 연음법칙을 적용해서 읽어 보라. 심지어 짓궂은 남학생들은 이렇게 놀렸다고 한다.
“매일 조X나를 보니 기분 좋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이 말을 들으면서 느꼈을 분노를 생각하니,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개인적인 추억을 길게 쓴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도 이름으로 놀림을 당하기는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그녀를 ‘미숙아야’라고 불렀다. 중학시절 친구들이 고교에서 만나고 첫 마디가 ‘오, 미숙아! 너 미숙아지?’였다. 미숙이를 미숙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떠냐고? 원래 뜻은 ‘곱고 맑다(미숙 美淑)’는 예쁜 뜻이었겠지만, 사실은 ‘미숙아(未熟兒)’가 아니겠는가? 책의 뒤표지에 있는 카피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미숙아라고 불렀다. 그건 내 명찰이 되었다. 그 명찰이 떨어질 때까지 걸었다.”
미숙이의 학창시절 유일한 벗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재이와 친구가 된 것은 그녀만은 ‘미숙이’ 또는 미숙이야.’라고 불러줬기 때문이다.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재이와의 관계가 무너졌을 때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애달팠다.
셋째, 미숙이에게 그동안의 일들이 정말 먼 미래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직장을 잡은 미숙이가 집에서 독립할 때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다가 버림받은 반려견 진도를 데리고 나왔다. 진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정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어머니를 모시게 된 미숙이가 이제는 이름이 절미(인절미)로 바뀐 진도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장면이다. 거기에는 이런 지문이 있었다.
“그동안의 일들이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세월이 더 많이 흐른 뒤에는 그동안의 일들이 정말로 먼 미래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좋은 추억이 많이 쌓이면 답답하던 일들은 자연스럽게 먼 미래가 되지 않겠는가?
이 작품을 누구에게 권할까? 어렵지는 않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작품은 아니다. 은근한 매력에 빠져 마지막까지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쓴 리뷰의 마지막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김지영과 비슷한 세대의 여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큰 위로를 받았으리라고 본다. 어찌 여성뿐이겠는가? 그 여성들은 남성들의 어머니요, 누이요, 딸인 것을……. 고등학교 이상이라면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위 글에서 김지영을 장미숙으로 바꾸면 이 책에 그대로 적용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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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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