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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글쓴이
- 신경숙 저
문학동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16층이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말은 '자살하기 참 좋은 장소구나', 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때 밑으로 보면 아찔하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나곤 하지만, 위로 고개를 돌리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그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가슴이 뻥 뚫린다. 파란 하늘에 빛을 받아 빛나는 구름은 참 아름답다. 물론 하늘이야 밑에서 봐도 보이지만 여기는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난 조용히 침대에 누워 활짝 열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았다. 구름은 천천히 제자리에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흘러간다. 난 더워 죽겠다고 짜증도 내고, 아등바등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지만 구름은 내 말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그저 천천히 흘러가기만 한다. 그 구름은 알고 있을까? 천천히 지나가면서 내가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다 봤을까.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혹시 인간들의 행동을 빠짐없이 보기 위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신경숙의 외딴방. 이 책은 또 나를 심란하게 만든다.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어중간한 이 책이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불현듯 이 글을 쓰며 아파했을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잊혀졌던 일들이 생각났던 일이 있었다. 충분히 아팠고 힘들었는데 감쪽같이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에 와서 다시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마주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기까지 해야 한다면 너무나 힘들 것만 같다.
외딴방, 어린 시절 힘들었던 때 그녀가 살았던 서른여덟 개의 방중 하나였다. 힘들었지만 학교도 다니고 대학을 갈 희망을 키웠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키웠다. 공순이로 살면서 부당한 처사도 당하지만 힘이 없어 반항 한번 못했다. 큰 오빠의 무거운 어깨를 보며 외사촌과의 우정을 키웠던 곳이었다. 그리고 희재 언니, 즐거움을 줬던 동시에 아픔을 줬던 사람. 희재 언니 때문에 그 외딴방에서 도망을 쳤지만 마음속에서 외딴방을 만들어야만 했던 작가.
어느 날 한 선배가 우리가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생겼다고 극장으로 끌고 갔다. 공짜영화라는 생각에 좋다고 하며 봤었던 영화, '전태일'.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를 지켜보며 극장을 나오는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중학교 때 키가 유난히 작았던 여자애, 그 애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 나랑 어울리지 않았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진학을 산업체특별학급에 간다며 잘 살겠다고,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일도 하겠다며 이별인사를 했던 교탁 앞. 그때 난 잠깐의 호기심으로 그녀를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랑 친한 친구에게 고백하는 쪽지를 나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그 남자애. 그 일을 계기로 친하게 지냈었는데 고등학교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서 들은 그 남자애의 사망소식. 그 충격으로 한동안 멍하게 살았었다. 그런 일들이 이 책과 함께 떠올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추억들을 되새김질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신경숙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깊은 상념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며 다시 한번 구름을 본다. 창밖에 구름은 아직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나도 내 안에 힘든 일들을 생각해본다. 구름만이 알 듯한 그런 일들을. 그리고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해줄 날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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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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