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향
  1. My 리뷰
주간우수

이미지

도서명 표기
외딴방
글쓴이
신경숙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8 (144)
연향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16층이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말은 '자살하기 참 좋은 장소구나', 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때 밑으로 보면 아찔하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나곤 하지만, 위로 고개를 돌리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그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가슴이 뻥 뚫린다. 파란 하늘에 빛을 받아 빛나는 구름은 참 아름답다. 물론 하늘이야 밑에서 봐도 보이지만 여기는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난 조용히 침대에 누워 활짝 열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았다. 구름은 천천히 제자리에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흘러간다. 난 더워 죽겠다고 짜증도 내고, 아등바등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지만 구름은 내 말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그저 천천히 흘러가기만 한다. 그 구름은 알고 있을까? 천천히 지나가면서 내가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다 봤을까.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혹시 인간들의 행동을 빠짐없이 보기 위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신경숙의 외딴방. 이 책은 또 나를 심란하게 만든다.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어중간한 이 책이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불현듯 이 글을 쓰며 아파했을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잊혀졌던 일들이 생각났던 일이 있었다. 충분히 아팠고 힘들었는데 감쪽같이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에 와서 다시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마주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기까지 해야 한다면 너무나 힘들 것만 같다.  



외딴방, 어린 시절 힘들었던 때 그녀가 살았던 서른여덟 개의 방중 하나였다. 힘들었지만 학교도 다니고 대학을 갈 희망을 키웠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키웠다. 공순이로 살면서 부당한 처사도 당하지만 힘이 없어 반항 한번 못했다. 큰 오빠의 무거운 어깨를 보며 외사촌과의 우정을 키웠던 곳이었다. 그리고 희재 언니, 즐거움을 줬던 동시에 아픔을 줬던 사람. 희재 언니 때문에 그 외딴방에서 도망을 쳤지만 마음속에서 외딴방을 만들어야만 했던 작가.


 
어느 날 한 선배가 우리가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생겼다고 극장으로 끌고 갔다. 공짜영화라는 생각에 좋다고 하며 봤었던 영화, '전태일'.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를 지켜보며 극장을 나오는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중학교 때 키가 유난히 작았던 여자애, 그 애 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 나랑 어울리지 않았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진학을 산업체특별학급에 간다며 잘 살겠다고,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일도 하겠다며 이별인사를 했던 교탁 앞. 그때 난 잠깐의 호기심으로 그녀를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랑 친한 친구에게 고백하는 쪽지를 나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그 남자애. 그 일을 계기로 친하게 지냈었는데 고등학교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서 들은 그 남자애의 사망소식. 그 충격으로 한동안 멍하게 살았었다. 그런 일들이 이 책과 함께 떠올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추억들을 되새김질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신경숙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깊은 상념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며 다시 한번 구름을 본다. 창밖에 구름은 아직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나도 내 안에 힘든 일들을 생각해본다. 구름만이 알 듯한 그런 일들을. 그리고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해줄 날을 기약해본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연향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10.1.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0.1.15
  2. 작성일
    2010.1.13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0.1.13
  3. 작성일
    2009.2.1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09.2.15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3
    좋아요
    댓글
    206
    작성일
    2025.5.13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5
    좋아요
    댓글
    165
    작성일
    2025.5.1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4
    좋아요
    댓글
    192
    작성일
    2025.5.14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