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계 최대 인공섬 팜 주메이라, 눈에 띄는 건 ‘세 놓음’ 현수막
호화 저택들 불꺼진 곳 더 많아…빚 얻어 부동산개발 성장 ‘파탄’
지난 28일(현지시각) 저녁 6시, 공항을 나서니 사방이 공사판이다. 짓다 만 빌딩, 주택, 도로 어디 하나 가지런히 정리된 곳이 없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35분 떨어진 팜 주메이라는 바다 밑 터널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두바이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선전해온 야자수잎 모양의 팜 주메이라는 ‘세계 최대 인공섬’으로 널리 홍보됐다. 여기서 가장 먼저 기자를 반긴 건 “집 세놨습니다”란 큰 펼침막이었다.
주변의 화려한 저택들처럼 마당이 곧장 바다로 통하는 A11번지. 소유주인 독일인은 지난해 2200만디르함(약 74억8000만원)까지 올랐던 이 저택을 1500만디르함에 넘기겠다고 흥정했다. 두바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는 강창희(47)씨는 “1350만디르함까지는 깎을 수 있을 것”이라며 발길을 돌렸다.
팜 주메이라의 밤 풍경은 황량했다. 불이 켜져 있는 집은 다섯 채 가운데 두 채 남짓뿐이었다. 이곳은 지난주 590억달러의 채무지급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두바이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주력기업인 나킬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부동산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페르시아만 밖에서 꿔온 돈으로 크레인과 불도저를 굴려 사막에 ‘중동의 뉴욕’을 세우려던 두바이의 계획은 갑자기 멈춰섰다. 부동산 활황으로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15%의 고성장을 구가해온 두바이의 하늘로 솟구치던 수많은 건물들은 입주자가 없거나 공사가 중단돼 어둠 속 콘크리트 알몸으로 서 있다. 아부다비에서 대규모 주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선진엔지니어링의 김지웅 두바이지사장은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자극적인 부동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두바이가 빨리 성공할 수 있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외부 자금 유입이 끊기면서 쉽게 무너졌다”고 말했다. 인구가 132만명에 불과한 두바이는 외부에서 자본과 노동력의 유입이 끊기면 도시가 더는 성장하기 어려운 태생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팜 주메이라보다 큰 규모의 워터프런트, 더월드, 신공항 프로젝트 등이 이미 중단됐고, 올해 새롭게 발주된 부동산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다. 경제위기 이후 아랍에미리트에서 중단된 400여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대부분이 두바이에서 진행되던 것들이다.
자본 유입 중단은 부동산값 하락으로 이어지고, 다시 자본 유입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영국계 최대 부동산회사인 햄프턴의 장혜진씨는 “신규 자본 공급이 없어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은 그나마 생기를 되찾는 듯하던 부동산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두바이/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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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9년 11월 29일(일) 오후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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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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