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읽기의 즐거움
자아 연출의 사회학
- 글쓴이
- 어빙 고프먼 저
현암사
고프먼은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인간행동을 무대에서 관객을 대상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들을 만난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인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부르디외가 설명한 것처럼 프랑스의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을 은근슬쩍 들어내면서 자신이 사회적 엘리트로서 품위있는 사람이란 것을 강조하려 한다. (진짜 품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들은 일상 속 타자와의 관계에서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고 그것을 연출하려 애를 쓰는 것이다. 특정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아연출이라고 하면 속임수룰 쓰는 것(cheating)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특정한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에 적합한 자아 연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서비스직 노동자가 고객에게 감정노동을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자아연출이고, 그들딴에는 노동력을 판매하여 살아가는 방식이다. 자아연출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이지 치팅이 아니다.
고프만은 무대 비유를 가지고 개인들의 벌이는 자아연출들을 개념화했다. 자아가 작동하는 앞무대가 있고 앞무대에서 청중에게 자신의 자아를 연기한다. 청중이 없는 뒷무대에서는 또다른 자아가 나타난다. 청중이 없기에 굳이 자신의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사회학적 접근이 아닐까 싶었다. 사회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 답하기는 어렵다. 사회학이 균일한 주제와 정체성을 가진 학문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너무 이질적인 관점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학이 비판 대상으로 삼아온 경제학이나 심리학과 대조하면 사회학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제학은 비용 대비 편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원자화된 인간을 전제한다. 반면 심리학은 개인의 행동을 정서 상태로 환원해서 설명한다. 두 학문은 대립되는 가정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은 개인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이다. 반면 사회학은 사회, 구조적 맥락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한다. 사회구조적 맥락이 무엇이냐고 하면 개인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관계도 그것 중 하나일 수 있다. 만약 내가 연구자 집단을 주로 만난다면, 그것은 연구영역이라는 구조적 위치에 내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나의 많은 행동들도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고프먼의 시각은 사회학의 시선을 대변한다. 개인의 자아연출은 원자화된 인간으로서 편익극대화를 추구하며 발생하지도 않고, 개인이 보유한 자아도 독자적인 심리적 상태로 환원되지 않는다. 개인은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늘 타자와 '관계적'인 자아를 보유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들의 행동(자아연출)은 누구(청중)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회과학에서 사실상 가장 많이 인용이 된 Granovetter의 사회적 배태성 논의와도 맞물리는 점이 있다. 그의 대표 논문인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AJS, 1973)는 2023년 1월 말 기준 6만번 넘게 인용되었다.
Mark Granovetter는 노동시장에서 채용이 수요와 공급이 가격과 인적자본이라는 경제적 신호가 아닌 개인 간 사회적 관계(strong tie vs weak tie)에 따라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Granovetter의 기여는 사회 네트워크에 따른 인간 행동의 차이를 보여주는 연구들로 이어졌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경제적 행동은 사회적 맥락에 배태되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계를 강조하는 Granovetter의 관점이나 그 관점을 토대로 성장한 사회연결망이론은 고프만의 관점과 유사하다. 계보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Granovetter 논의 이전에 고프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1950년대 책이기 때문에 현대의 독자 기준으로는 개념서술이 지나치게 병렬적이고 난잡한 느낌이 없지는 않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도 헷갈릴 때도 있다. 하지만 고전에서 현대 사회과학의 영향력 있는 접근들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발견해내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관점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