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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의 탄생
- 글쓴이
- 김명훈 저
비아북
최근 속초의 어느 병원에서 전문의를 채용하는데, 연봉 4억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뭐 며칠 뒤에 3명인가 지원했다는 후속 뉴스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과 함께 대치동의 모 초등학교에는 의대진학반이 벌써 만들어져 있다는 얘기도 함께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집단은 아마도 자타가 공인하는 상류 계급일 것이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세'라는 기준에서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연봉을 4억씩이나 준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겠지 뭐' 할 만큼 일반인 기준에서 보면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 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의사 집단에 속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금수저가 아닌 사람도 일단 의사만 되면 돈 많고 성공한 상류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나 역시 전문직이 되어야 돈도 잘 벌고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도 당하지 않고 흔히들 말하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찌어찌해서 소위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연봉 4억씩 받는 의사님까지는 되지 못했으나), 생각만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는 것 같고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다고는 해 두자) 생각만큼 내가 '성공'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글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류 계급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삶이라고 상상했던 그 삶을 내가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상류 계급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성공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전에도 그랬고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강하기는 하지만, 일단 상당히 풍족한 생활을 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남들 앞에서 내가 하는 일이나 내 생활을 당당히 (자랑질을 할 만큼) 말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본인의 영향력이나 인지도가 클수록 당연히 더 성공한 것일테고. 그런데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까 '성공'했다고 느끼지 않는 거겠지. '상류' 같은 것은 나에게 아예 적용될 단어도 아닐 것 같고.
만약 이런 진부하지만 일반적인 상류의 정의를 이 책의 저자가 듣는다면 혀를 끌끌 차겠지. 나도 상류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바로 책을 집었겠지.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품위와 책임감이 상류의 핵심이지, 돈과 권력은 상류의 핵심이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오랜 시간 살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사회를 비교하게 된 것 같다. 특히 일반인에게도 '돈'이 일상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공고히 자리잡은 한국 사회를 보면서 한심함, 분노와 동시에 많은 걱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저자가 보는 상류 계급의 조건은 '부와 권력은 가졌으나 내면은 황폐한 자들의 횡포에 주눅들지 않는 품위, 힘든 상황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자세, 눈앞의 이익과 현실을 넘어 사회적 영향을 생각하는 책임, 누가 뭐라 해도 자신만이 가진 기준을 지켜나가는 용기, 세상은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통찰'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거의 성인군자에 가까운 인물상이다. 하긴, 수많은 잠언과 고전들이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조건일 수도)
이러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상류에 대한 잘못된 열망으로 표현되고 있는 많은 현상들에 대해 저자는 지적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유의 언어를 홀대하면서 '워너비 가치관'에서 나온 기이한 언어 습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고유 문화나 언어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문화의 피상적 매너리즘만 열심히 흉내내는 것으로,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 캐슬, VIP'와 같은 단어들을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언어의 타락은 사고의 타락과 가치관의 타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우려에 대해서는 일견 동감할 부분이 있다. 한편, "서방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돈에 대한 철학은 민주주의 등 사회규범과 맞물려 깊은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구축"된 것이라, 한국의 이러한 싸구려 가치관, 워너비 가치관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취지로 기술이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방의 가치관, 특히 신자유주의 등에도 싸구려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상품 이름들을 만들어 낼 때 어떻게든 외국어에서 갖고 와서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보려는 언어 습관에 대해서는 동감하는 바이다.
미국에 오랜 시간 살았던 저자답게, 미국의 상류에 대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소개를 하고 있다. 돈은 진정한 상류가 되는데 기여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기는 하나(어쨌든 상류가 되기 위해 필요는 하다는 거네..;;), 돈이 곧 계급이라는 등식은 미국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을 보고 '신분 상승했다'라고 표현하면 미국에서는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고...;; 그래서 돈이나 재산을 과시하며 상류 행세하는 사람,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을 존경한다는 사람은 미국에서는 만나보기 힘들다고 책에서 쓰고 있다. 떵떵거리며 살 지는 몰라도 상류 대접은 받지 못한다는데... 다만, 이 책이 2016년에 출판되었고, 2016년 대선 후보였던 그가 실제로 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다음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계속하여 거론되고 있으며 무시할 수 없는 지지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말하는 미국인들의 '존경' 혹은 '상류의 대접'이라는 개념은 실제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 어느 정도의 온도차가 있는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책에서 여러번 반복되지만, 저자가 걱정하는 바는 한 나라의 국격이 나라를 이끄는 상층의 질에 의해 좌우되는데, 지금까지의 한국의 상층은 미국 상류의 물질적 풍요와 신분의 상징은 흉내내지만 진정한 상류의 삶에 내재하는 철학과 문화를 알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서양에서의 상류적 가치의 원천은 바로 감성인데, 안데르센 동화 중 하나인 '완두콩 공주'에서 공주가 몇 겹의 침대 메트리스 위에서도 알아차리는 그 작은 콩알 하나 같은 감성과 연민이 없는 사람들이 지금의 한국이 속한 천민 현대 자본주의에서 돈과 권력만을 탐닉한다는 것이다. 무한경쟁의 한국에서는 상류층 진입을 위해 엄청난 욕심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욕심이 없으면 도태되고, 양심이나 청렴성은 출세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많은 부분 동의가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뼈때리는 내용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중산층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었다. 챕터 제목부터 '쓸모 있는 바보들, 중산층'이다. 야만적 부류가 지배하는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중산층 덕분인데, 중산층이 끼어들면 야만적 문화에도 평균적 가치라는 당위성이 부여될 수 있고, 중산층의 집합적 구매력이 이들 야만적 지배층 위주로 굴러가는 경제를 받들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중산층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연료이자 중화제로 가장 다루기 쉬운 계급이라고 책에서 표현하고 있다. 상위 1%의 기업을 열심히 관리하는 것은 유능한 중산층 인재들이라는 부분을 읽었을 때, 내 주변에서 밤낮 없이 일하고, 시키는 일 잘 해서 인정받아 연봉 올리고, 그 연봉들을 비교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책에서 인용하는 '교양과 무질서'에서 말하는 중산층은 "이기적이고 물질적이면서도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계급"으로, 잘 먹여 살찌운 가축과 같다는 비유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울타리 안의 소는 사악한 주인이 자신을 사육하여 챙기는 이익을 알지 못하고, 일단 잘 먹고 살찌게만 해 주면 울타리를 애써 도망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자기 할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잘못된 사회를 변화하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중산층. 이들이 갖는 제1의 생활 신조인 '묵묵히 먹고 살기'는 사실 사회의 관성이 유지되도록 방조하는 힘을 갖고 있어서, 기업과 조직을 위해 일상생활에 성실히 전념하는 중산층 덕분에 부조리한 사회 현상이 잘 유지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중산층이란 실질적 경제적 처지보다는 심리적 혹은 사고 체계에 따른 구분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상류의 여유와 배짱이 없어서 자신에게 씌워진 고정관념의 틀과 미시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중산층. 혹시 지금 가진 것마저도 지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 끊임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돈을 계속 벌어도 경제적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제대로 편히 쉬지도 못하고 경제 활동의 노예로 산다면, 그는 다름 아닌 중산층. 억대의 연봉을 받는 임원이라도, 성공적 이미지를 연출해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비즈니스맨의 패션 연출법 (바지는 구두 밑단에서 몇 센티 위여야 하고 수트 단추는 몇 개가 달린 옷을 입어야 하며 등등)'과 같은 강의를 노트 필기하며 진지하게 듣는다면 그 사람도 그냥 중산층. 항상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므로 자신감이 없고, 자기 계발서 따위에서 성공의 비결을 찾으려는 진지함을 갖고 있고,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삶에서 오는 불안감에 눌려 있다가 기회가 오면 지위를 과시하고 싶어 항상 열등감과 우월감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면, 그건 여지 없이 중산층.
사실 예전에 비해서는 위에서 얘기한 중산층의 삶을, 기업의 노예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근무시간 조정도 많은 부분 내 마음대로 하고 있고, 이래라 저래라 잘했다 못했다 하며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없다. 그런데 돈이 적고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다시 이직을 생각하는, 예전같은 멋지고 큰 조직의 노예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한편, 저자가 지적한 중산층의 삶과 사고방식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라면 모두들 다니는 회사 때려치우고 자영업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조직 내에서 자유롭게 꿈을 펼치는 샐러리맨이 아니면 결국 다 노예인데, 이 많은 노예들이 자기만의 비지니스를 하겠다고 시장에 나오는 것도 무서운 일 아닌가...
어쨌든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산층 계급의 정신 상태인 것 같다. 감투, 족보, 상패 같은 권위와 지위를 갈망하고, 무시 당할까 봐 차려입고 나가고, 신용카드 등급, 학벌 등 특권이나 명예의 외형적 상징에 민감한 나약한 정신 상태... 그러므로 중산층에게는 내면보다는 외형이 중요한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또다시 야만적 계급이 만들어 놓은 각종 재화를 왕성하게 사 준다. 과시 소비는 유한계급의 행태지만 속물화된 중산층이 이를 충직하게 답습하기 때문에, 유한계급이 만들어 놓은 이 체제는 공고하게 돌아간다. 이러한 주장을 들었을 때, 왜 내가 누군가의 도구나 부품이 되어야 해? 왜 내가 이용당해야 해? 하는 분노가 즉각 일어났다. 하지만, 그 다음은? 혼자 농사 짓고 웬만하면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것이 정답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많이 있고, 그들의 논리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는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아마도 진정한 상류가 되기 위해 조금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진정한 상류란 다분한 노력과 탐구력을 지니고 독창적 기질로 인간성에 도달하는 자이며, 사회가 만든 계급 체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어느 계층에도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상류'라는 단어 자체와 상충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으므로 저자는 상류를 '계급'보다는 '부류'라는 개념으로 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면이 상류인 사람은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나는 자유롭고 너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 하는 너그러움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기 때문에 피고용인이나 노예에게 적용되는 '은퇴'라는 단어의 적용을 받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신분의 징표나 대문짝만하게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이나 가방을 경멸한다고 한다. 관심의 폭이 넓고 탐미적인 성격이지만 유행과 대중문화에는 관심이 없으며, 텔레비전은 애초에 관심도 없지만 베스트셀러 정도는 얼마나 내용이 진부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끔씩 들춰보는 정도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상류'라면, 결국 돈과 권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조건들만 만족해도 '상류'가 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오늘이라도 당장 '상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들면서도, 이렇게 빈껍데기 졸부와 귀족들을 냉정히 비판하면서 감성과 지성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한 다음에 무엇이 남을지는 조금 의문이 들기는 한다. 내 마음의 충만함? 자기 만족? 혼자서 세상의 문제와 근심을 다 떠안고 고매한 사람으로 남는다 한들, 본인 인생만 괴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불쑥 든다. 아직도 철 없는 나의 설익은 걱정이기를 바란다.
껍데기만 상류인 기득권층에게 "그들이 주도하는 비루한 서열의식, 얄팍한 보상체계, 삐뚤어진 역사관과 지성"에 대해 많은 진짜 상류들이 계속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이 2016년임을 감안할 때,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지적했던 문제들이 가시적으로 개선된 바는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자가 말한 저항은 앞으로 계속해서 진행형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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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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