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봅니다
봉주르, 뚜르
- 글쓴이
- 한윤섭 글/김진화 그림
문학동네
어려서 꿈꿔보는 여러가지들이 있었더랬다. 영화에서처럼 바나나케잌을 서로의 얼굴에 던져대며 노는 것. 자전거를 가져 보는 것. 병원에 입원해 보는 것(아프고 싶은 게 아니라 뭔가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그런 것), 외국생활을 해 보는 것. 모두 초등학교 시절 꿈꿨던 것들이다. 프랑스에서 살아 보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꿈꾸어 보는 일인데 봉주는 어린 나이에 외국, 그것도 프랑스에서 산단다. 내심 부러운 마음이 앞섰다.
프랑스 파리에서 살던 봉주네는 뚜르라는 조금 작은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된다. 봉주는 새로 이사한 집의 자신의 방이 썩 마음에 든다. 다락방구조, 누우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창. 짜식, 봉주야 너 참 부럽다. 내 맘은 봉주의 마음을 옮겨놓은 듯 함께 설레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한글로 된 낙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살아야 한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발견한 한글로 된 낙서. 그것만으로도 지나치기 힘든데 그냥 낙서라고 하기엔 비장한 문구가 봉주의 마음을 움켜쥔다. 봉주는 안중근의사를 떠올린다. 안중근의사까진 아니어도 나 역시 비장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봉주는 그 집에 한국 사람이 살았던 가를 알아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단다. 집주인 할아버지의 기억력을 의심하기까지 해 보지만 나중에 파리에서 놀러온 친구 준수와 알아보니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하다.
그렇게 낙서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으로 꽉 차 있는 봉주에게 새로 전학한 학교의 토시가 유난히 신경쓰인다. 나라 밖으로 나서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지만 아시아를 벗어나면 또 아시아인끼리 친근감이 드는 까닭에 봉주는 토시에게 반가운 마음을 내비쳤다가 무안을 당한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소개시간에 자꾸 딴지를 거는 토시가 얄밉다. 일본인이라서 더 그런걸까? 피해의식이라고 해도 그렇게 얄밉게 딴죽을 걸면 나라도 경쟁심이 불끈 솟아 오를 것만 같다.
그런데 아랍인 형들이 일하는 가게에서 우연히 전에 살았다는 사람들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단서. 그 단서를 찾아 간 곳에서 봉주가 만난 사람은 다름아닌 토시. 아, 어떻게 된 일이지? 의아해지는 봉주.
얼마전에 읽은 여행서에서 본 게 떠올랐다. 외국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국적을 이야기하면 다들 South 인지 North인지를 묻는단다. 그래서 여행하는 북한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본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나 역시 당연한걸 왜 물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북한은 체제가 자유롭지 못한 나라인데 당연한거 아니야?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봉주의 발표시간에 토시가 봉주에게 물었던 말, 북한 사람들은 가난해서 해외여행도 못하는줄 니가 어찌 아냐고. 그래 나도 봉주같은 마음이었다. 일본인인 너보다야 붙어있고 같은 나라사람인 봉주가 더 잘알지 니가 더 잘 알겠니? 동시에 내심 오히려 외국 사람이 더 잘 아는 경우도 물론 있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북한사람에 대한 것이야 늘 보고 듣는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사람은 뭘까? 나 역시 봉주처럼 북한을 북한이라고 생각하지 남한인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듯 조선인민민주공화국이라는 생각은 아니 그렇게 떠올리는 일은 좀체 드물었다. 북한은 북한이고 남한은 그냥 한국이었다. 어려서 받았던 수많은 반공교육속에 북한은 빨갱이었고 빨갱이는 탐욕스러운 붉은 돼지이거나 늑대였다. 어렸을 때 봤던 똘이장군만 봐도 그랬다. 점차 커가면서 돼지 늑대의 표현에서 붉은 완장을 차고 이북사투리를 하는 사람들이 빨갱인줄 알았다. 심지어 이북과는 먼 남도지방에서의 빨갱이들도 이북사투리를 쓰는 줄 알았더랬다.그 이미지가 파괴된 것은 중학교때 읽었던 태백산맥이었다. 빨갱이는 그냥 사람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TV에서는 가끔씩 북한의 생활을 보여준다고 통일전망대를 통해 북한의 생활사를 보여주거나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영화들을 보면 사상적인 문제때문인지 주로 노동과 관련된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 70,80년대의 우리나라 영화들과 무엇하나 다를게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솔직히 나 북한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안다기보다는 편협한 생각이 조금 덜한 편이라고 스스로 여겼더랬다. 최근에 나온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라는 도서에서 본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람의 정의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같은 민족? 같은 국적의 사람?
봉주가 엄마를 따라 벼룩시장에 가서 흥정하는 모습, 학교에서의 모습, 그리고 토시와 우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 봉주, 맘도 몸도 참 건강한 아이로구나. 정말이지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고 싶어지는 아이라고. 뚜르를 흐르는 강처럼 그 모든 것을 비춰주는 햇빛처럼 기분 좋았다. 그러나 이내 봉주와 토시가 친구가 되고 그 짧은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토시가 책상에 쓴 짧은 글이 그 어느 독립투사의 글 못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조선인민민주공화국 사람을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은 같은 언어를 쓰는 이 땅이 아니라 저 머나먼 타국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차별없는 태도로 무시없는 시선으로 대할 수 있는 곳은 이 땅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른이 아닌 봉주처럼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아니면 힘들것만 같다.
내가 열 두살 봉주였다면 무조건 어서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된다. 단순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복잡해 진다. 아니 내가 봉주를 너무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봉주처럼 토시와 친구가 될 수 있으면 되는 일 아닌가. 저 먼 옛날 고려시대만을 떠올리며 한민족이라 부르지 말고 지금의 북한의 사람들을 무시무시한 괴물도, 못사는 나라라 무시하는 마음도 아닌 단지 조금 다른 곳의 친구로 쉽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렇게 덜 낯설어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봉주와 토시의 우정이 계속 이어질 것을 의심치 않지만 두 사람이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거리낌없이 만나 해후하는, 그런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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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12
- 작성일
- 2010. 11. 10.
@유정맘
- 작성일
- 2010. 11. 10.
@유정맘
- 작성일
- 2010. 11. 13.
@유정맘
- 작성일
- 2010. 11. 10.
- 작성일
- 2010. 11. 10.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