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쓰고 읽다
- 글쓴이
- 고종석 저
알마
1.
우선 제목부터 좀 이상하다.
우리, 아니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읽고 쓰다’가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맞을
것 같은데, 제목이 ‘쓰고 읽다’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고 있지 않으며
본문도 별로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쓰’자가 길게 늘여져 있는 걸 보면서 이 책의 중심은 아무래도 ‘쓴다’는 행위에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을 해 볼 뿐이다. 그러니까 책읽기에
관한 많은 책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표식 정도?
그리고 이 제목을 보면서 김윤식을 생각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참 전의 글에서 ‘읽다’와 ‘쓰다’의 주어로 김윤식을
지목한 이가 바로 고종석이다. 그리고 본문에도 그 김윤식에 관해서 쓰고 있는 글이 있다. 김윤식에 관한 추문에 대한 비판은 없다. 다른 글에서라면 모를까, 글을 읽고, 쓴다는 걸 쓴 글에서 그런 것까지 들출 필요는 없을
듯하긴 하다.
2.
고종석은 절필(絶筆)을 선언(?)했었다. 5,6년 전의 일일 것이다. 그 때 내 느낌은, 왜? 그런 것이었다. 좀
난데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더
이상에 쓸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데, 그게 과연 이유가 될까 싶었다. 고종석이라는 글쟁이의 글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뭇 사람들은 저 글쟁이가 더 쓸 글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갖지
않을 텐데, 스스로 그렇게 가두는 다짐(선언이라는 표현이
아무래도 아닌 듯 싶어)이 과연 어떤 반향이라도 가질까 싶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고종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들… 절필이라는 게 그리
심각한 선언, 혹은 다짐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부터 이런 글을 써왔던 것이다.
3.
그가 읽을 만한 주간지와 일간지로 꼽은 사사IN과 경향신문에 쓴 글을 모았다. 그가 싣는 매체라 그렇게 꼽은 것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과 글들을 보건대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도 이 주간지와 신문에 꽤 높은 평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주간지와 신문에 올려진 글이라는 얘기는 그 글의 성격을 나름대로 규정짓는다. 그의 판단에 따라면, 또한 나의 판단에 따르면 적어도 반공 논리나 신자유주의 질서를 옹호하는 그런 글들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고종석의 이 글들이, 이 글들이 실린 매체의 성격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주간지와 신문의 기사가 아주 획일화된 논조가 아닌 것도 그 이유이며, 또한 여기의 글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4.
여기에 실린 글들은 고종석이 어떤 인물인지를 상당히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유주의자이며(전체주의를 반대하며, 또한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 국제주의자이며(국수주의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도 반대한다), 반마르크스주의자이다(그는 용케도 마르크스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 이유를 포퍼 와 롤스의
예방주사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영남패권주의를 매우 반대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책은,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이다. 바로 영남패권주의를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글에서 이 책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그
가치의 실천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 영남패권주의는 새누리당, 혹은
박근혜로 이어지는 그 줄기의 것만이 아니다. 물론 다른 장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노무현에게도 그 혐의가 주어지며, 당연히 문재인에게도 더 큰 혐의가(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그는 문재인을 찍을 수 밖에 없었으며, 박근혜의
당선에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었다. 어이없음과 함께), 그리고
정동영에게도 그 죄목이 빗겨가지 않는다.
5.
이 책에 실린 정치 상황은 모두 과거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반도 남쪽의 정치 상황은 물론이고, 태평양 건너 큰 나라의 정치 상황까지도. 둘 다, 아니 어느 한쪽이라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여기의 글들의
논조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마디의 덧붙임 없이 그대로 실었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최선의 상식이었다는 판단일 것이다. 지금 보았을
때 잘못된 판단도 그대로 의미가 있다. 읽어보면 그게 의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지 못하면 이 글을 읽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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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