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 파블미션(舊)
회의의 기술
- 글쓴이
- 나가타 도요시 저
생각정리연구소
회의가 회의를 부르는 게 진정 아이러니입니다. 많은 경우, 회의는 이미 최고 윗선에서 결정된 바를 두고, 그저 민주적 의사과정을 가장해 요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rite에 가깝습니다. 물론 조직 성원들이 이런 절차를 통해 실행력을 다지고 결의를 굳힌다는 정도의, 아주 소극적인 의의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원들은 회의를 시간 낭비로 간주하며, 다만 최고경영자의 심기를 상하지 않게 하거나 팀원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집중 자세를 확인한다거나, 행여 사내정치에 활용할 자그마한 정보(윗선이나 중역들의 미묘한 기색 변화 탐색)를 얻는다든가, 다 마치고 난 뒤 뒷공론의 장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정도의 의의를 둘 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런 문제의 경우 아랫사람이 뭔가 레버리지를 가질 여지가 극히 적습니다. 회의 문화의 근본 개선을 위해선 임원진과 오너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나 일반 직원 선에서, 나의 회의 우리의 회의가 조금이라도 더 생산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혹은 회의에 참여하는 "나 자신"의 기여를 높이기 위해(최소한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매우 현장의 느낌이 살아 있는, 현장의 고민이 치열히 반영된, 진지한 사고의 결과물을 담았습니다. 이 역시 현장에서 직접 부대껴 보지 않은 분들은 맹숭맹숭한 지침의 나열로밖에 안 들립니다("무슨 소리지? 그래? 그런가 보지 뭐."). 조직의 일원으로 내가 부족한 점을 고치고, 여튼 주인 의식을 갖고 내 선에서라도 이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정도는 윗분들 기분을 안 거스르면서도 내 선에서 지적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질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누구나 신중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천에 일일이 옮기지는 않는 건데, 이 책에서 그 근거랄까 원군 노릇을 해 줄 동력, 혹은 권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 저자의 절절한 고민 그 산물로 쓰여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조직 생활을 열심히 해 본 독자가 가장 잘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상당수는, 결론 파트만 보면 "아 나도 이런 생각, 느낌이었어" 같은 공감을 충분히 보낼 만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저자처럼 그 결론에 대한 넉넉한 근거를 머리 속에 못 잡아내어서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연륜이 쌓여야 하고, 연륜에 걸맞은 경력, 직위를 쌓아야 그게 가능하죠(그런 분들이라고 또 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이 자기 역량을 발전시키고, 조직이 과거의 단계보다 뭔가 하나라도 나아지려면 젊은 참여자들이 이런 선배들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빨리 섭취, 내면화하고, 자신은 그 나이 그 자리에 올랐을 때 더 개선된 노하우를 생산해 내는 겁니다. 초일류 기업은 다 이런 단계를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무의미한 회의 방식, 그 유형을 여럿 지적, 정리한 챕터1의 내용은 사실 하급직원이면 열렬히 지지하고, 중간관리자급이라면 얼굴이 붉어질 만한 신랄한 비판입니다. 이 점은 현재 아래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이, 과장 부장 달고 나서 반드시 자신의 후배들에게는 같은 무의미한 고생을 안 시키게, 자기 선에서 잘라야 하는 폐단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미래의 일이겠으며, 심지어 부장이라 해도 현장에서 실천 못할 사항이 많죠. 여튼 현재의 과제만 날품팔이처럼 근근이 해결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미래의 관리자가 되어 있을 자신을 위해 열독해 놓아야 할 중요한 지적들입니다.
이 책의 가장 잘된 점은, 능률적인 회의를 위해 보조자료들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화이트보드와 스마트폰, 프로젝터 등은 기존의 방식에 얽매이고 존중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말입니다.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유기적으로 창의적으로 쓴다고 해서 그걸 나무랄 윗분은 아무도 없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좋아하고, 나이 든 세대들의 특징이 자기가 몰랐던 문자를 쓰면 싫어하지만, 자기가 몰랐던 기기 사용법을 보여 주면 바로 수그러들고 집중합니다. 뭐 과시하듯이 뽐내듯이 시연할 필요야 전혀 없지만 말입니다. 기기 아니라 간단한 시청각 도구의 (이전보다 유익한) 활용도, 자신들의 머리를 덜 쓰고 이해시켜 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어른들은 한 명도 없죠. 이런 보조도구의 활용은 "그거 괜찮네"라며 기특하게 볼 반응이 99%입니다. 욕 먹는 부하직원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어려운 말, 말, 말을 섞어 쓰는 타입입니다. 그런 말을 이해 못할 만큼 머리가 굳은 관리자들이 문제입니다만, 여튼 자기가 속한 환경의 성숙도를 봐 가며 재주를 피워야지 무작정 들이밀고 보는 눈치 없는 직원도 문제지요.
제가 감탄한 건, 본인은 최고 경영자이면서도, 아랫사람들 급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에서는, 철없는 부하들을 어떻게 하면 일급 직원 인재로 키워 줄 지, 마치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해량하고 책을 쓴 듯 그 편제가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겁니다. 형 만한 아우 없다고, 책을 이렇게 독자 위주로 써 나가듯 윗사람을 모시면 못 오를 자리가 없을 듯합니다. 오를 데까지 다 오른 입장에선 그동안 바친 수고가 억울해서라도 이제 "꼰대 행세"만 남을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본인 회사에서 실제 아랫사람을 어찌 다루시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쓰시는 걸로 보아 여튼 세대 간의 악습 플로우에서 이런 깨인 분이 한 번 정도는 끊어 주고 가야 조직의 진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그건 분명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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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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