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으면서
내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내가 책을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책을 읽는다고 했을 때, 책은 전공서적이나 논문을 제외한 것들이다.

역시
읽는다는 행위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터넷의 글들도 제외하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내가 읽는다고 하는 책들은 실용적인 의미를 거의 뺀 것들이다.

내가
오늘, 혹은 가까운 미래에 내 일용할 양식에 어떤 도움을 바라고 읽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읽는다.

나는
왜 읽는가?

2.

며칠
전, 아는 이가 술자리에서 싸구려 게임기를 보여줬다. 아들을
학원에 보내놓고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어서 샀다면서.

나는
그 시간에 가장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일이 책 읽는 거라 했다.

그는
난독증이라 했다. 난독증?

그는
일반적으로 말했을 때 꽤 괜찮을 대학을 나왔으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꾸준히 승진도 하고 있다. 근데 난독증?

여기서
난독증의 의미가 무얼까?

정말
난독증일 수도 있지만, 그를 알아온 20년 동안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글자
읽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책 읽는 게 싫다, 또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앞서 말한, 그런 책의 의미에서).

3.

그럼에도
책은, 혹은 책 읽기는 인류 역사에서 어마어마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여기서 책, 그리고 책 읽기는 실용적인 의미를 더 많이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목적을 가진 책 읽기도 그렇다.

가장
조용한 행위인(중세 이후에 묵독이란 게 발명(?)되면서부터
더욱더) 책 읽기이지만 가장 폭력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권력자들이 책을 파괴하거나 책 읽기를 금하거나, 혹은 제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읽기라는
행위는 언어와도 달리 정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

이
조용하면서도 파괴적인, 그리고 인간에게만 주어진 능력인 책 읽기, 독서에는
또 얼마나 다양하고도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는 것일까?

4.

알베르토
망구엘은 현란한 지식을 뽐낸다.

이
모두가 책과 책 읽기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아니다. 지식이란 거의 모두가 책에서 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5.

알베르토
망구엘 자신의 독서의 역사와 인류의 독서의 역사는 포개진다.

진흙서판에서
시작된 독서의 역사는 그대로 독자인 알베르토 망구엘과 나에게 재현되고 있다.

인류는
책과 함께 하며 때로는 유대감 속에서, 때로는 반목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책 읽기는
각인되어 있다. 분명하다.

6.

독서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