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리뷰섬에 살아온 사람들의 말과 시간이 스스로 시가 되었다섬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바람에 닳은 돌담과 비탈밭, 바다 위에 놓인 통발과 섬 어머님의 말씀이 시가 되었다. 시인은 섬을 낭만으로 칠하지도, 고독이라는 짙은 색으로 덧바르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바라보고, 오래 걷고, 오래 귀 기울였다. 그러자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말과 시간이 스스로 시가 되었다. 37년 만에 펴낸 강제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는데』에는 오랜 세월 섬을 걸어온 한 사람의 발자국이 포개져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섬의 삶을 대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사라져가는 말들이 머물 자리를 내어준다. 어촌계장의 당부도, 밭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혼잣말도, 낯선 이를 위해 돌을 치워놓는 섬 어머니의 마음도 그의 시 안에서는 하나의 온전한 목소리가 된다. 그 시어는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빛난다. 억양과 사투리를 지우지 않은 문장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것은 꾸며낸 서정이 아니라 삶이 오래 삭아 만들어낸 언어다. 시인은 그 말을 표준어의 질서로 옮겨 심지 않는다. 말이 태어난 자리의 온기와 숨결을 잃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받아 적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섬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섬의 말에 귀를 내어주는 일이 다. 우리는 흔히 섬을 아름다운 풍경이나 외로운 장소로 기억한다. 그러나 강제윤의 시에서 섬은 누군가의 생활이 이어지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다. 그곳에는 욕심을 줄이라고 타이르는 사람이 있고, 손님이 넘어질까 며칠 동안 길가의 돌을 치우는 사람이 있으며,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섬의 지혜는 자연을 이기는 데 있지 않다. “바람과 싸우지 않고 바람이 지나갈 샛길을 내어주는 돌담”처럼, 섬사람들은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자와 세상을 위한 통로를 남겨둔다. "담장은 있어도 대문이 없고, 경계를 나누되" 그 경계가 사람을 밀어내지는 않는다. 이 오래된 삶의 방식 앞에서 육지의 견고한 문과 높아진 담장은 오히려 낯설고 궁색해진다. 시인이 오랜 세월 섬을 찾은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날에도, 다시 자신을 용서하기로 한 날에도 그는 섬으로 갔”지만 섬은 그에게 상처를 잊게 하는 피난처라기보다, 상처 입은 자신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가 섬에서 받은 환대는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이를 위해 돌 하나를 치우고", 담을 돌아가라고 하지 않고 담을 “보듬고” 가라고 말하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보듬고 가씨오"라는 말은 이 시집 전체를 읽는 하나의 열쇠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섬을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돌담과 바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을 오래 보듬으며 걷는다. 그의 시가 따뜻한 것은 아름다운 말로 삶을 치장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고단한 생을 함부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민의 시선으로 내려다보지 않고, 그 삶이 품은 존엄과 지혜 앞에 가만히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시집의 세계가 섬이라는 좁은 공간에 머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섬은 우리의 시선을 더 먼 곳으로 데려간다. "길이 끝났다고 생각한 곳이 땅끝인 줄 알았는데 바닷길이 시작되고, 땅끝 너머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렇게 섬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시작인 셈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절실한 문장은 아마도 "섬에도 사람이 산다”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도 사람이 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에도 기쁨과 슬픔, 환대와 존엄이 있다. 시인은 섬을 통해 세계의 변방이라 불리는 모든 자리로 우리의 시선을 확장한다. 그리고 "평생 자신이 사는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노인마저 지구라는 별을 타고 여행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나그네요, 같은 별에 탑승한 여행자들”이라고. 강제윤의 시는 그가 살아온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자연과 맞서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지혜, 고단한 삶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길을 내어주는 마음, 사라질지 모르는 목소리에 오래 귀 기울이는 태도가 그의 시와 삶을 함께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는데』는 시집인 동시에, 오랜 세월 섬과 사람 곁을 걸어온 한 사람의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이 작은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 우리는 시인이 오랫동안 걸어온 수많은 섬길을 너무도 편안하게 걷는다. 그가 혼자 견뎠을 바람과 파도, 적막과 기다림을 몇 장의 시로 받아 읽는 일이 미안하고도 고맙다. 좋은 시를 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그 시를 오래 마음에 품고, 다른 이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인은 어느 섬길을 걷고 있을 것 같다. 어느 돌담 곁에 멈추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어느 섬 어머님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바다가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듯, 오늘은 문득 그 오래고 외로운 걸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fara
시선이 머문 문장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