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니 횡단보도 너머에 유시마 세이도[湯島 聖堂]가 보였다. 유시마 세이도[湯島 聖堂] ▶ 유시마 세이도[湯島 聖堂]: 1690년 도쿠가와 막부의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德川 綱吉, 1646~1709]가 하야시 라진[林 羅山, 1583~1657]이 세운, 시노부가오카성당[忍岡聖堂]을 현재의 자리에 옮긴 것이 유시마 세이도의 시작이다. 1797년 막부 직할 교육기관인 쇼헤이자카 학문소[昌平坂學問所] 혹은 쇼헤이코[昌平黌]로 전환되었다. 1874년 문부성이 설치되면서 쇼헤이자카 학문소는 막을 내렸고, 훗날 도쿄 대학의 원류가 되어 ‘일본 현대 교육의 발상지’로 불린다. 간토[關東] 대지진(1923)때 입덕문(入德門)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1935년 이토 츄타[伊東 忠太, 1867~1954]의 설계에 따라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되었다. 이곳은 2차 수신사(1880)에 참여한, 동래부(東萊府) 출신의 향리인 박상식(朴祥植, 1845~1882)이 남긴 <동도일사(東渡日史)>에서 오후에 10리쯤 돌아가 도서관에 갔더니 바로 성묘(聖廟)였다. 밖에서 들어가니 문이 셋 있는데 첫 번째는 서적관(書籍館)이고 두 번째는 입덕문(入德門)이고 세 번째는 행단(杏壇)인데 정전(正殿)에 대성전(大成殿)이라는 액자(額子)가 걸려 있었다. ~ 중략 ~ 메이지[明治] 이후 양서(洋書)를 조금 두었는데 그 수가 오히려 많으니 생도(生徒)가 모두 오랑캐로 변하고 유풍(儒風)은 거의 잠잠하다고 한다. [p. 64] 라고 묘사된 곳이다. 서문으로 들어왔기에 행단문이 먼저 보였다. 대성전까지 보고 내려가다가 입덕문까지 찾았는데, 서적관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였다. 찾아보니 서적관, 즉 쇼자쿠칸[書籍館]은 1872년에 설립된, 일본 최근대적 공공도서관의 효시로 평가받는 시설이지만, 여러 차례 이전 끝에 우에노 공원에 위치한 도쿄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품 등을 넘기고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안 보일 수밖에. 행단문(杏壇門) ▶ 행단문(杏壇門): 대성전 맞은편에 위치한 문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편액(扁額)의 ‘행단’은 도쿠가와 종가의 16대 종주인 도쿠가와 이에사토[德川 家達, 1863~1940]의 글씨라고 한다. 대성전(大成殿) 입덕문(入德門) 입덕문을 지나 좀 더 걸어내려오면, 1975년 대만 라이온스클럽에서 기증했다는,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인 4.57m의 공자상이 보인다. 2015년에 공자의 탄생지로 알려진 취푸[曲阜]시 니산(尼山)에 설치된 공자상의 높이가 72m라고 하니, 4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의 사이즈가 커진 만큼 공자상의 크기도 커졌나 보다. 공자상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仰之彌高]’에서 유래한, 유시마 세이도의 정문인 앙고문(仰高門)이 보인다. 아무래도 입장료가 없는 곳이라서 정문이 아닌 후문 쪽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앙고문(仰高門) 유시마 세이도의 고슈인 #도쿄, #東京, #유시마 세이도, #湯島 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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