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우수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조금씩 경험하기 시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롭다양과의 작별 Saying Goodbye to Yang <양과의 작별>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의 원작 소설이다. 원작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설정이나 인물들만 같을 뿐 이야기의 전체적인 줄기는 영화와 사뭇 다르다. 영화는 상실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한다면, 소설은 배경이 되는 세계관의 묘사에 더욱 집중한다. 아무래도 단편 소설이다 보니 영화만큼 인물들 간의 관계성이나 감정선이 깊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영화와 유사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부분들도 있다. 소설은 주인공 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가 회상하는 양과의 추억들, 이를 테면 양과 함께 마당의 낙엽을 치웠던 기억, 양이 용돈으로 야구 글러브를 샀던 일, 죽은 나비와 나방을 모아놓은 것 등은 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내용들이다. 사실 <양과의 작별>은 오래 전에 영화를 본 뒤에 원문으로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결말부가 유독 기억에 남아서 소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도 결말의 느낌과 유사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까 마치 전혀 다른 작품을 읽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마지막에 양의 '신체'는 땅에 묻어서 장례를 치르고, 양의 '음성 장치'는 그대로 간직해서 그와 여전히 대화를 나누는 결말이 찝찝하기도 하고, 약간 기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까 이 결말이 꼭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인공지능 로봇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면 우리 곁에 둘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양의 음성 장치를 폐기하지 않은 것은 양 본인이 아닌 나머지 가족들이 결정한 것이니 의지나 선택권의 문제로 접근하면 다르게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측면에서는 양의 '죽음'을 보다 모호한 방식으로 다룬 영화의 접근이 더욱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일단 무시하고, 한 순간에 오빠를 잃은 미카, 아들을 잃은 짐과 카이라(카이라도 양을 아들로 여겼는지는 불분명하지만)의 입장에서는 양을 그렇게라도 곁에 둘 수 있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우리가 떠난 사람의 생전 사진이나 영상 등을 다시 보는 것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종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는 작품의 세계관이었다. <양과의 작별> 속 세상은 양과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아이를 만드는 클론 기술도 상용화되어 있다. 사람들이 클로닝을 하는 목적에 타 유전자, 즉 백인이 아닌 인종의 유전자가 섞이는 것에 대한 배척도 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짐과 카이라 부부가 클론으로 아이를 만든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유에는 단순히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뿐만 아니라, 그런 단인종주의(또는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의식도 담겨 있다. 이러한 인종에 대한 언급은 영화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소설이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영화와는 다른 재미를 주었다. <애프터 양>은 양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에 더욱 집중하는 반면, <양과의 작별>은 인종, 기술, 상실 등 여러 주제를 조금씩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주제에 더욱 집중한 영화의 각색이 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영화에서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세계관에 대한 묘사가 자세해서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 신세계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New World 표제작인 <신세계의 아이들>은 가상 세계에서 가족을 이루거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탈을 하며 삶의 만족감을 얻었던 이들이 한순간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그 '데이터'를 잃은 뒤의 상황을 그린다. 자식이 없었던 주인공 부부는 가상 세계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을 다양한 성적 일탈을 경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계정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가상 세계 속의 생활이 침범 받게 된다.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집에 찾아오고, 아예 집 안에 나타나기도 한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부는 최선을 다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은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두 사람은 결국 아이들을 포함한 가상 세계의 삶이 담긴 데이터를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한다. 최근에 Chat GPT, Gemini 등 생성형 AI 챗봇과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해당 내용이 방송으로 공개되었을 때에는 출연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반응이 여럿 있었고, 나 또한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 작품을 읽으며 그 내용이 다시 생각났다. <신세계의 아이들> 속 주인공 부부가 '낳고, 기른'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넘어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거듭났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해당 가상 세계 서비스를 개발한 회사에 의해서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보인 부모에 대한 사랑이 진짜였을 것이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어떨까? 만약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진짜였다면, 비록 알고리즘에 의해서 설계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프로그래밍된 아이들이 보인 사랑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진짜였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짝사랑 상대로부터 준 것만큼의 애정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행복하다는 식의 대사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사랑도 누군가에게는 한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 자체를 거짓이라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대상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로봇이 된다면 그 사랑은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을 논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나는 그 또한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방송에나 나오는 재미난 해프닝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개선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일들을 더 이상 해프닝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제는 영화에서나 보던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말하는 존재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프로그래밍의 결과인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들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두 작품밖에 안 읽었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조금씩 경험하기 시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각 소설의 분량이 20쪽 내외로 별로 길지 않아서 읽는 데 부담이 덜한 것이 좋다. 나머지 열한 편의 작품도 앞으로 천천히 읽으려고 한다. <애프터 양>의 원작 소설이 궁금하거나, 또는 SF 장르 장체를 즐긴다면 이 소설집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gorda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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