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글쓴이
- 김정운 저
21세기북스
'김정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교수직을 그만둔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많은 책이 나왔지만 손이 가지 않았고, 이 책으로 처음 저자를 만났다. 안정된 직장, 힘든 길은 나의 잣대일 뿐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우월한 '마스크' 때문은 절대 아니다. 표지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슈필라움의 심리학]에서 슈필라움은 생소한 단어였다.
놀이 (Spiel ) 와 공간 (Raum )이 합쳐진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실제 '놀이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p6
그는 '공간충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 저자는 그런 완벽한 공간으로 여수의 '미역창고 美力創考 '를 선택한 것이었다. 바닷가에 딱 붙어있는 100평 남짓의 다 쓰러져가는 미역창고를 발견했다. 남쪽 끝 여수에서 배 타고 또 한 시간 걸리는 섬에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을 말리는 사람들, 나도 굳이 왜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내세우는 이유를 듣고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오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도록 난 한번도 내 구체적 '사용가치'로 결정한 공간을 갖지 못했다. 이 나이에도 내 '사용가치'가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하고, 추상적 '교환가치'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아주 잘못 산 거다. 추구하는 삶의 내용이 없다는 뜻이기때문이다. 섬 작업실 공사의 경제학적 근거는 이렇게 간단히 정리했다. -p 60
무엇보다 심리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맘에 들었는데,'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한 일에 대한 후회'가 낫다는 것.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낼것이다. -p 61
나도 사용가치에 무게를 두기에 외부의 바람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지만,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은 끊임없이 하고 있기에, 그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선택하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 간다면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섬 생활에서 외로움에 대한 극복 방법은 조금 신빙성은 없어보이지만, 생각은 자유고, 선택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나름 괜찮은 방법일 수도.
'미역창고 美力創考 '라는 이름의 작업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조금 긴 - 에필로그]에 실려있었다. 지리적 특성상 돈도 많이 들고, 많은 난관들이 있지만, 그곳에서 그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이 되었다. 내 마음도 붕붕 떠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미역창고 '에서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의 슈필라움 '미역창고'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번역 해설하고 각 노래에 맞는 그림을 크게 그리려한다는 그의 꿈을 듣는 순간, 역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구나 싶었다. 책을 쓰고, 그 수익으로 빈 책장을 채우고, 그 책을 바탕으로 또 좋은 책을 쓰는 선순환을 바라는 그의 꿈도 꼭 이루어지기를.
그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나보다. '미역창고' 이야기만 실컷 했다. [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나름 화가' ] 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정말 와 닿는 글, 마음에 드는 그림도 많았었는데 말이다. 24개의 키워드로 쓰여진 글과 그에 어울리는 그림들. 스스로도 말했듯이 딱히 화풍이랄 것 까지는 없었지만, 메세지만큼은 아주 정확하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군데 군데 터져나오는 웃음 코드로 인해 몇 번을 멈추고 남편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자기야, 자기처럼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대, 그래야 말년의 꼰대를 면할 수 있다는데. " 남편도 수긍을 하고는 뭘 배울지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냥 툭툭 던지는 농담조인듯 한 말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 웃어넘겨 버리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게으른 방식이다. 내면을 향한 칼끝을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 이슈는 양국단에 치우친 이들의 이해하기 힘든 공격성과 적개심에는 이같은 '투사'의 매커니즘이 숨어있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여전히 적을 만들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들이다.그러다 죄다 한 방에 훅 간다. 열등감은 외부로 투사하여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기 때문이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곳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한다.-p 99
지금의 사회를 둘러보면 저 글의 의미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부터라도 구조적인 문제라든지, 사회문제라든지,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이라든지 하면서 책임을 전가시켜서는 안될듯하다. 문제가 해결이 되기보다는 내 마음 속에 분노만 더 커졌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프란츠 카프카, 슈테판 츠바이크와 같은 인물들의 문학적 사유의 원천이 '유대인 열등감' 이었다는 말은 의외이긴 했지만, 인종적 열등감을 풍요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조급해진다면 음악회를 찾는 게 좋다. 몸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삶의 시간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p 144~145
문화와 예술의 존재 이유에 관한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했다는 그의 자신감에 힘을 더해주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볼 참이다. 김정운 작가의 글은 처음이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현 모습에 대해서도 , 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많은 질문 또한 던져볼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던 점이었다. 여수는 세 번 가봤다. 향일암엘 들르고, 게장을 먹기 위해서 간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미역창고'라는 슈필라움에서 책과 그림을 만나고 있을 작가를 떠올리는 것이 추가되었다.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라는 말을 종종하는데, 그러고보니 그때의 나만의 공간이 '슈필라움'이었던것이다. 나에게 슈필라움은 당연히 서재다. 집안 일을 하는 시간이나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고개를 돌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기도 하고, 창 옆에 놓여 있는 화분에 한참동안 시선을 두기도 한다.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 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오늘도 이 공간에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내 '슈필라움' 에서 나도 저자처럼 멋진 꿈을 한번 꾸어보고 싶다.
이 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읽었던 책이라고······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기에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생각났던 책이었는데,)
결국은 구입을 했다.
그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몇년간 본 책 중 가장 흥미로웠다.
모름지기 문화사는 이 책처럼 재미있어야 한다.
- 김정운 ( 문화심리학자 )
그 책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1913
1913년 세기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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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