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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무언가를 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차피 통장을 가득 채울 수 없다면 차라리 다 써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산다. 정작 채워져야 할 계좌는 텅텅 비어가고 내 몸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내 방은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침대에 앉아 방을 둘러보았다. 한때는 정말 유용할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이 먼지가 수북히 쌓인 채 자신의 존재가치에 의구심을 품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간다.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 어떻게 이 많은 걸 다 샀지?' 


가성비, 특가할인, 최저가순 쇼핑 이 세 친구 덕분이다.

이 세 친구는 굳이 권투로 비유하자면 잽과 같다. (권투를 전혀 배워본 적이 없지만) 잽은 가볍게 주먹을 날리며 상대방을 견제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잽도 자꾸 맞다보면 분명히 아프다. 내 계좌도 마찬가지. 가성비 잽을 하도 맞다보니 당연히 아플 수 밖에. 그렇게 물건들은 쌓여갈 수밖에.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다만 그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처음엔 가격 때문에 가성비 쇼핑을 선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빈도가 한없이 늘어나 지출의 총량은 같아진다. 게다가 대개 저렴하게 산 물건은 그 값을 한다. 마치 자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듯이 순식간에 문제가 생긴다. (물론 내 쇼핑능력이 한없이 부족한 것일수도) 


문득 한 친구가 떠오른다. 내 작은 방에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한 친구.

첫인상은 압도적이었다. 초특가할인이라는 멋드러진 명함을 내밀며 나를 유혹하던 검정 나O키 에어맥O. 또래 친구들에 비해 훨씬 잘생겼는데 심지어 가격은 반 이상 저렴했다. 운명이었다. 저렴하고 괜찮은 주식 종목을 발견한 기분으로 나O키 신발의 매수 버튼을 눌렀다. 가격과 사이즈만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신어보지도 않았다. 마치 주가만 보고 기업의 가치를 확인하지 않은 것처럼.


작은 방에 앉아 상자 위에 신발을 올려놓고 이쪽저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터뜨린다. 사진 다 찍었으니 이제 경기장으로 입장할 시간. 나의 소중한 왼발이 들어간다. "선수 입좌앙!" 

스윽.. 폭신.. 툭!  '잉??? 뭐지?'


오늘 경기를 위해 몇 개월을 몸관리했는데 경기시작도 전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느낌이랄까? 아직 발이 다 들어가지 않았는데 벌써 경기가 끝나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매장직원의 '환불 교환 불가' 목소리가 갑자기 생생하게 머릿 속을 떠돈다. '10,, 9,, 8,,'


질 수 없다. 억지로 발을 집어 넣고 신발끈을 최대한 느슨하게 푼다. 괜찮다고 위로하며 몸을 세워본다. 불편하다. 심지어 아프다. 충분히 내공이 쌓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강력한 어퍼컷을 아주 손쉽게 맞았다. 그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비틀비틀 몸을 세웠다. 다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신다 보면 늘어날거야' 한 방

'깔창을 빼면 조금 넓어질거야' 두 방.

'신발을 최대한 얇은걸 신어'세 방.


그렇게 7라운드까지 버텼다. 신발이 늘어나긴 커녕 발이 아작이 났다. 뒷꿈치는 상처투성이에 원래 함께 생활하던 티눈은 더 심해졌다. 결국 나는 수건을 던지고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이 친구말고도 신발을 살 때 어퍼컷을 맞은 적이 많다. 나는 평발의 반대격에 속하는 요족이다. 발 중앙부가 높게 솟아있어 편안한 신발을 신지 않으면 쉽게 발이 피로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저렴한 신발만 보면 욕심을 부렸다. 그리고 그렇게 들인 신발은 전부 신발장 속 장식품이 되었다. (사실 장식이라기엔 신발장이 불투명하다는 점이 문제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몇 번의 똑같은 패배를 경험하며 그래도 요령이 늘었다. 체급이 작다고 얕보지 않기, 중요한 경기에선 잽만 날리기보다 어퍼컷 한 번 제대로 날려보기.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작고 가벼운 추억들도 좋지만  때론 임팩트 있는 한방을 날려 삶에 활기를 되찾아줄 필요가 있다. 먼지 쌓인 가성비 물품과 같은 일상보다 가끔은 매번 떠올리며 힘을 얻는 기분 좋은 경험을 자신에게 선물해주자. 


나는 지금 비싸고 이쁘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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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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