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애들은
[문구/GIFT] 로지텍코리아 K380 블루투스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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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블롴 놀이를 하며 열심히 책을 베끼고 있는데,
“와아~와~”
“빠르다”
아내와 딸아이가 뒤에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짜쓱들~ 도중에 오타가 날지언정 나의 키보드 연발 속도는 빠르다.
연결고리를 찾으려 해도 전혀 없는 나는, 줄을 잘 서서인지 군복무를 의무병으로 했었다. 그것도 정말 편하게. 군 병원. (아직 확정 보직을 받지 않은) 계급이 낮을 때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고생하다가 당시 단기사병-방위-이 있던 환자이발소에 확정 보직을 받았다. 일병을 갓 달고서부터 내 근무처에서는 내가 최고참이 되었다. 현역병과 단기사병은 계급 차이를 두지 않았고 서로 존칭을 했다. 난 단기사병으로부터 무식한 이발기술(모양보다는 짧게 빠르게 쳐내는)을 습득했지만 매주 한 번 방문하는 근처 이발봉사단 아저씨들의 프로 손놀림을 보고 비달 사순이 되었다. 사병부터 심지어 중 대령 투스타 장군님 머리까지. 거동이 불편했던 VIP 병실 장군님은 이발할 때면 아래로 똥을 쌌다. 난 똥내를 맡으며 이발을 해야 했다. 하고 나면 수행원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 급기야 환자가 아닌 (밖에 나가기 싫은) 여자간호 장교들 머리까지 처리해주고 피자와 담배를 벌었다. 군에서 머리가 단정치 못함은 큰일이 되었고 그 처리를 나와 후임병이 했기에 우리는 거의 모두에게 대접받았다. 중환자들 방문이발을 하는 날이면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 뿌듯한 마음과 보다 나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 편하게 머리를 받칠 수 있는 도구도 만들었다. 단기병이 있을 때의 환자이발소와 내가 있고부터의 환자이발소는 확실히 달랐다. 난 최대한 군림하는 이발소가 아니라 편하고 서비스받는 이발소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저분한 환자에게는 강제성도 띄었다. 이런 나의 환자이발소를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다. 훈련도 없고, 여름엔 추웠고, 겨울엔 더웠다. 음악이 있었고, 책이 있었고, 음식이 넘쳐났던 군대생활.
말년에 너무 심심해서 행정병 졸병으로부터 컴퓨터를 끌고 와 틈만 나면 타자 연습을 했다. 나중엔 커서가 따라오지 못 하는 속도까지 되었다. 그때의 속도가 아직도 조금 남아 있나보다.
블루투스 키보드 리뷰를 하며 별 사설을 다 쓴다. 나의 키보드 속도를 보고 딸아이가 엄마에게 졸랐는지 아내는 카톡으로 이 키보드를 링크 걸었다. “령이가 이걸 사달래. 같은 상품이 예스가 제일 싸.”
전자제품인데 보호 뽁뽁이도 없이 상자 안에 이리저리 놀도록 배달되었다. (이건 문제다) 그렇다고 제품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블루투스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몰라서 우리 가족은 노려만 봤다. 1주일이 지나, 우리 중 가장 정보로통신기술이 좋은 아내가 아이의 테블릿 PC와 연결시켰다.
이 일은 오늘로부터 약 3달 전의 일이다. 그런데, 오늘 아이 방에서 키보드는 온데간데없다. 서랍 속에 처박혀 있다. 아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타이핑할 일이 있다고. 아무리 좋은 물건도 쓰는 사람이 제대로 써야 한다. 아직 우리 아이가 사용하기엔 이것은 그냥 좋아 보였던 ㅡ 칠 줄 모르는 피아노를 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욕망의 표현밖에 안 되는 물건이다'를 블친 <사랑>님의 갈굼으로 수정함^^). 색도 표면도 보드라운 최첨단 물건이 처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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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