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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 글쓴이
- 필립 휘블 저
흐름출판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누군가로부터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세시를 받는다. 앨리스가 호기심에 하얀 토끼를 따라서 토끼굴로 떨어져서 원더랜드에 갔듯이 네오도 호기심에 하얀 토끼를 따라갔다가 현실이라 믿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 머무를 파란약과 세상의 상식을 벗어나 진실을 따르는 빨간약을 선택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원더랜드는 앨리스가 살던 현실과는 다른 철학적 수수께끼와 생각할 거리가 가득한 장소이고, 네오는 빨간약은 진실과 자아를 성찰하게 해주는 도구다. 앨리스나 네오처럼 궁금증과 호기심이라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보면 그 끝에서 이상한 나라인 원더랜드를 만날 수도 있고,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에 닿을 수도 있으며 평소 알고 싶어하던 철학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앨리스와 네오가 하얀 토끼를 발견하고 그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하면 평소의 현실과 오래전부터 보아오던 일상을 다른 시선, 다른 각도로 보게 되며, 더 날카롭게 의심하고, 추론하고,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는 열가지 거창한 철학적 질문에 대해 때론 소설처럼 때로는 대화나 설명의 형식 등으로 풀어내며 쉽고 흥미롭게 다양한 철학적 이론들을 풀이해준다. 보통의 철학 입문서는 지루해서 조금 읽다보면 금새 흥미를 잃고 책을 덮게 되는데 여기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흥미로운 논쟁을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철학을 접할 수 있다.
느끼다, 말하다, 믿다, 꿈꾸다, 행동하다, 알다, 즐기다, 생각하다, 만지다, 살다 라는 열가지 명제로 각각의 명제를 담은 보편적인 철학적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신은 정말 존재할지, 꿈에도 기능이 있는지, 감정없이 살 수 있을지, 죽음에도 의미가 있을지, 아름다움은 왜 중요한지 같은 평소 한번쯤 생각해보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졌음직한 질문이라서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가며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 있다. 책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찬반이 격하게 갈리는 논쟁거리가 아니라 인간을 고찰하는 철학에서의 오래된 질문들이라서 책을 따라가다보면 말 그대로 깊은 철학적 사유를 가질 수 있고,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또 철학책이라고 딱딱한 철학 이론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철학과 교집합이 있는 다른 학문 분야의 연구 결과나 실험 사례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인문학적으로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믿다; 뇌 속의 신
개인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데 신이 없다는 무신론이거나 불가지론도 아니고 그냥 신이란 개념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관심도 흥미도 없고 무언가를 믿고 의지하겠다는 생각도 없어서 믿음 이전에 신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뇌 속엔 신이란 존재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데 그럼에도 신의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에서의 오래된 질문에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책에 따르면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믿는다면 하나의 신을 믿는지 여러 신을 믿는지의 일신론과 다신론, 일신론 내에서도 유신론, 이신론, 범신론 등 신을 믿는 방식도 여러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각각의 범위와 믿음의 경계가 다 달라서 신을 믿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범주에 들어가는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해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수많은 신이 있는데 저자는 모든 종교가 실질적으로는 똑같은 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섬긴다고 말한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모든 종교에도 보편성이 있는데 다만 같은 하나의 신이라 불리는 대상을 두고도 종교마다 해석은 각기 다르다. 결국 종교란 인간이 만들어낸 해석의 영역일 뿐인 것이다.
꿈꾸다; 수면이 보여주는 착란
꿈이란 참 재미있는 소재다. 흔히 꿈은 무의식을 보여준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프로이트의 이론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공부한 적이 없어도 이런 내용은 너무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서 지금은 거의 상식처럼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프로이트의 말에 따르면 꿈이란 반드시 무의식 속의 간절한 소원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섹스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즉, 꿈은 그게 어떤 내용이건간에 나의 섹스 판타지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꿈 연구에서는 이 프로이트의 이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된다고 한다. 꿈이 숨겨진 나의 강한 소원이나 욕망과 관련될 가능성은 드물고, 우리의 정신세계는 무의식과도 연관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꿈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꿈은 의식적이지만 활동적인 제어 능력이 강력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란 것이다. 현실과 다르게 프로이트의 이론이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는 모든 것에서 상직적인 의미를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란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허구라니, 정말 쇼킹이다. 꿈을 내가 의식적으로 제어하고 그 속에서 체험할 수 있다면 영화 인셉션이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 되는 셈인가?
행동하다; 의지의 자유
철학에선 의지의 자유와 행위의 자유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를 아무 제약없이 계속 관처할 수 있을 때 의지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고, 자신의 소원, 흥미, 성향 등에 따라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행위의 자유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게 행위의 자유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중 선택하는 것이 의지의 자유라고 하는데 여기서 자유의 가장 큰 적은 철학에서 말하는 결정론이다.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일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명제다.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게 흘러간다는 건데 보통 신이나 운명 같은 것으로 결정론을 설명한다. 결국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그런 선택지가 선택되도록 형성된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자유가 없다는 논리인데 이런 주장은 아무래도 좀 헛점이 많아 보인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질문 자체는 단순하고 오래된 질문이지만 생각할 거리는 굉장히 많은 주제들이다.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제법 꼼꼼하게 읽어야 이해가 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주제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거나, 나름의 의견이 있어도 그리 깊은 고찰을 통해 얻은 결론이 아니라서 책을 읽으며 몰랐던 의견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개인적인 생각에 반박도 당하면서 좁은 시야를 벗어나 여러가지 관점으로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어서 확실히 철학적 사고가 깊어지는 느낌이다. 한 번 읽은 것으로는 책 속의 내용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수는 없지만 지루하지 않게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골고루 접할 수 있어서 협소한 가치관에 갇히지 않고 생각의 틀을 넓힐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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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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