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음악
1. ~p.112
2.
진희는 6살에 어머니가 자살한 후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다. 12살의 진희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듯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라는 두 가지의 시선으로 구분짓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집은 살림집 두 채와 가겟집 한 채로 되어있다. 외할어미가 주인집이고 다른 살림집엔 장군이네가 살면서 하숙을 쳐서 최선생님과 이선생님이 한 방에 머문다. 가겟집 네 칸 모두 세를 주었는데 양장점, 양복점, 미용실, 사진관이 있다. 이 세 채의 집은 마당의 우물을 중심으로 각자의 세상이 만나거나 흩어진다. 착하고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다고 어른들의 평을 받는 이 12살 진희의 눈에 보이는 어른들의 민낯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따뜻해 보이지도 않는다.
철없는 21살 이모의 시답지 않은 연애, 남편은 가장의 의무를 저버리고 아내만 오롯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양복점 재상이네, 결혼한지 1년 만에 과부가 된 장군이네 아주머니는 남 탓을 하고 흉보는 것을 잘한다. 진희는 장군이와는 동갑이지만 장군이 엄마가 여자라고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자 장군이를 똥통에 빠뜨림으로써 그를 순식간에 동네와 학교의 놀림거리로 전락시키는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 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 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거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 (p.13)
12살의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지켜보며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너무 일찍 깨닫는다. 게다가 진희는 자신의 엄마가 정신병으로 자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자신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으로 나누어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너무 빨리 애어른이 된 진희가 보는 세상은 순수할 수 없었고 모순된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어린 완서의 서선으로 본 어른들의 세상이 떠올라 다시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