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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
- 글쓴이
- 임수현 저
인간사랑
눈부신 기술 진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은 경제나 산업, 혹은 IT 분야에서의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기에도 벅찹니다. 학교에서 아직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 중인 어린 학생들이라면 수능 대비하는 데에만도 벅차서 정신이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인문, 고전까지 읽을 여유가 과연 있을까요? 한국 최고의 명문대를 나오신 재원이자 인기 강사, 유튜버인 저자는 바쁜 우리들에게 고전 읽기를 오히려 권합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문 고전 읽기를 필수 과제로까지 꼽습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저자가 꼽은 것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①첫째, 고전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②둘째, 고전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③셋째, 고전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이 말은 책의 뒤표지에도 나오고, "들어가는 말" p16 이하에도 보다 자세히 풀어서 설명됩니다. 첫째 고전에는 세상의 작동 원리가 녹아 있고, 세상의 디테일은 수시로 바뀌어도 이런 "근본" 원리는 쉽게 바뀌지 않으니 오히려 고전을 통해서만이 이런 근본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고전에는 무수한 인간 군상의 속셈과 본성과 이해타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선명하게 풀어 놓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인생은 실전이라고들 하죠?"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이기도 합니다만 그를 떠나서도 사회 생활에서 무수히 마주치는 사람들, 사람들의 다양한 계산과 전략과 움직임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고전이 간파해 놓은 인간 속성과 책략과 행동 패턴에 대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하는 게 지식과 지혜이며, 타인에 대해 아는 게 공감과 소통의 능력이라면, 마지막 "자신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궁극의 목적과 관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얻으려 애쓰며, 그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분을 실천합니까? 속된 말로 출세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아실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설령 높은 직위에 오를 만큼 올랐다 해도, 돈을 벌 만큼 벌었다고 쳐도, 내 마음이 어딘가 불편하고 정서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모두 뜬구름과도 같은 것입니다. 출세건 돈벌이이건 모두 본인이 내심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인데, 결국 이 단계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평생을 헛되이 산 셈일 뿐입니다. 고전은 그 무엇보다.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공붓길입니다. 대(大)철학자 "테스형" 소크라테스가 괜히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게 아닙니다.
또한 이 책은 1) 바빠서 인문 고전 모두를 섭렵할 시간이 안 나는 직장인에게, 고전의 정수와 핵심만 최단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용만 앙상하게 요약된 게 아니라, 명석한 저자분의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설명이 있어서 이해가 더 잘 되고 읽어내려가는 게 재미있습니다. 설명이 재미있고 뚜렷한 줄기가 잡히기에 관련 서적이나 아예 고전 본책을 더 찾아 읽어 볼 동기가 생깁니다. 이 책에는 인명, 개념의 원어, 원저명 등이 괄호와 함께 일일이 병기가 되어서 심화 독서를 위한 길잡이가 잘 마련되었습니다. 2) 수능과 논술을 대비하려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인문, 철학 지문은 내용도 어렵고 분량이 방대하여 도저히 정해진 시간에 파악이 안 됩니다. 미리 그 내용이 내 머리에 파악이 되었다면 실전 시험에서 시간도 절약되고 더 여유 있게 문제를 공략할 수 있죠. 또 인문 교양 부문 지망자라면 이 책은 논술 대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논리적이고 정확한 설명을 이어가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면 개념 자체도 잘 이해될 뿐 아니라 이해된 내용을 이제 나의 언어로 바꿔 남에게 풀어낼 수 있는 바탕이 생기죠.
이 책에는 철학 서적 열 권, 문학 작품 열 권이 소개됩니다. 그저 제목과 저술 배경, 요지 등만 나오는 게 아니라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풍성하고 권위 있는 학적 배경을 지닌 이 저자분만의 명쾌하고 일관된 평석이 담겨 있기 때문에 책 읽는 재미와 보람이 뚜렷합니다. 열 권의 철학 서적은 우리가 철학 하면 떠올리기 쉬운 형이상학, 현상학 등의 어렵고 추상적인 분야 외에도, 정치학(사실 정치학이나 외교학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도덕학, 교육학 등 그보다는 소프트한 분야의 고전도 포함됩니다.
철학 서적 열 권을 엄선하시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만 문학 작품 역시 하늘의 별처럼 많은 그 걸작들 중에 이렇게 열 권을 뽑는다는 게 보통 힘들지 않습니다만 일단 정말로 누구나 읽어야 힐 필독서들 아닐까 하고 일개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열 편의 작품을 보면 시대별, 국가별, 주제별로 참 잘 안배된 선별 같습니다. 문학작품이니만큼 아무리 고전이라고 해도 일단 읽기에 좀 재미가 나야 하겠는데 이 열 편은 재미로만 읽어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5년 전 탄핵 사태 때 많은 이들이 "이게 나라냐?"라며 탄식했던 일을 저자는 상기시킵니다. 그 말의 이면에는 "나라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당위의 요구가 들어 있겠으며(혹은 그래야 하겠으며), 그저 불만과 탄식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그럼 무엇이 올바른 나라인지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그 내용을 채우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공부가 필요합니다(p34). 그런 공부의 첫걸음을 떼려면 이 책에 가장 먼저 소개된 플라톤의 <국가(론)> 같은 책을 읽고 아득한 예전 이 고전 철학자가 국가의 이상상에 대해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의 원어가 Kallipolis라고 책에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어로 Καλλο?(아름다운)와 우리가 잘 아는 (도시)국가 폴리스라는 두 단어들의 결합입니다. 짧은 소개이긴 하나 고전 <국가>의 본체적 내용이 모두 담겨 있는 데다 저자의 시원시원한 통찰까지 감상 가능한, 참으로 유익한 아티클이었습니다. 참고로, "이게 나라냐"라는 우려와 허탈감이 끝을 모르고 이어질 때 우리는 국가의 본질이 본디 깨어있는 시민이 통제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될 "괴물, 리바이어던(존 로크의 맥락에서)"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도 책 중반부(p97)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어떤 정치인은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라고도 했다지만, 이 말에의 찬반을 떠나 권력의 속성 자체가 원래 비정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난세가 시대의 영웅을 낳는다고 중세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 국가들의 항쟁과 명문가들의 각축 때문에 바람잘 날이 없었지만 대신 각처의 인재들이 세력가에 의해 널리 발탁되어 명성을 떨치거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마치 저때로부터 천 수백 년 전의 중국 제자백가 시대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중 책략가 혹은 정치사상가로서 큰 활약을 한 사람이 마키아벨리인데 저자는 그가 "역량과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군주론>을 썼다고 소개합니다. 물론 이 책은 로렌초 데 메디치에 대한 신앙고백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의 본질에 대한 그의 지론(p56)"이기도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묘파한 인간성과 정치의 본질은 대단히 부정적이고 때로 불쾌하기까지 하지만,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인격이나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인간사의 그런 부정적 본질 자체를 마키아벨리가 윤색이나 왜곡 없이 우리에게 그대로 밝혔을 뿐이라고 합니다. 정치도 외교도 이를 학문적으로 분석할 때는 "현실주의, 리얼리즘"의 시야에 크게 의지하기도 하는데 임수현 저자님의 전공이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외교학이기도 하며 한국 외교학의 권위자들이신 그 스승님들도 한스 모겐소 류의 현실주의 학파이신 분들(이나 그분의 제자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그저 철학 자체의 대명사로도 여겨지는 임마누엘 칸트의 이름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주장한 사람인지는 언뜻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분은 너무도 많은 업적과 주장을 남겼기에 한 마디로 요약한다는 자체가 무모한 시도이긴 합니다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대로 그의 3대 저작 중 <실천이성비판>의 내용을 둘러보다 보면 그의 심오한 세계에 대해 개략이나마 일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p145에는 그의 저술에서 한 대목이 인용되었는데 강제(Neigung), 의무(Pflicht), 구속(Zwang) 등의 개념이 어떻게 분화되고 구별되며 나아가 발전적으로 변모하는지 세심하게 다뤄진 명문입니다. 또 저자는 이를 인용하며 정확한 번역과 함께 핵심 개념어에는 일일이 독일어 원어를 다 병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원어를 알아야 나중에 깊이 있게 더 공부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기는 법입니다.
고 미셸 푸코는 이제 꽤 오래전에 전성기(?)가 지난 철학자로 여겨질 만한데도 대표작 <감시와 처벌>이 현재까지도 워낙 임팩트있게 환기될 만한 상황이 많이 벌어져서인지 정치 진영의 좌우를 막론하고 꾸준히 인용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을 설명하면서, 딱히 청와대나 백악관, 혹은 중남해 같은 곳에서 국민을 향해 들이대는 간교하고 집요한 감시와 통제의 눈초리뿐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도 아닌, 사기업(보험회사라든가), 단체, 교육기관, 심지어 1인 미디어나 개인조차도" 이런 권력의 위치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조종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이야말로 미셸 푸코가 저 고전에서 대중을 일깨우려고 했던 본지이며, "감시의 일상화"가 가장 우려되는 기본권 침해가 되어 버린 요즘, 우리 독자들이 더 높은 우선순위로 성찰하고 경계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짚어 준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세계사를 대표할 만한 문학 작품 10선을 놓고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돈키호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은 책(p15)"이란 오명이 있을 만큼, 심지어 이 보편적인 고전 명작 중에도 우리가 "이런 대목이 있었나?" 같은 의문이 절로 들 만큼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둘시네아의 본명이 알돈사 로렌소라는 점, 그의 기사도 행각을 포기하게 만든 하얀 달의 기사가 구체적으로 그에게 무슨 제안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세히 들려 줍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을 통해 "인생에 대해 겸손히 돌아보게 돕는" 세르반테스의 진짜 의도, 혹은 고전의 참된 의의에 대해 생각하게 이끕니다.
다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통해 위대한 빅토리아 치세기에 무서울 게 없이 세상 위에 군림하던 대영제국 수도 런던에서 일약 팔자를 고칠 듯했던 하층민 핍이 자기 주제를 깨닫는 과정에 대해 저자는 책 한 권을 실제로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들려 주고, 또 숨은 의미까지 짚어 가며 독자를 매혹합니다. 일개 치정극으로 읽힐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에, 당시 제정 러시아 사회의 어떤 모순과 위선이 그 지배 구조를 좀먹어갔는지에까지 저자는 천착하며, 또한 이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남녀의 애정사에 대해 그 핵심을 통찰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마 서양 문학을 모든 면에서 완성지었다 할 대작인데, 저자는 이 대작의 복잡다단한 구조 속에서 살인 미스테리의 줄거리를 요령껏 잘 뽑아내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한편, 일견 종교, 철학, 역사로 난해하게 구축된 듯한 작품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성 몇 가닥을 예리하게 추출하여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 안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비의를 이스터에그처럼 숨겨 놓았는지 증명하기도 합니다.
고전은 복잡하게 접근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운 고전을 쉽고 조리있게 풀어내는 건 명석하고 맑은 혜안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룬 똑똑하신 저자분이라서 이런 깔끔하고 재미있으며 유익한 책이 나올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 고전 중에서 문학과 철학 편을 다루셨으니 다음 저서에서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저자의 전공이신 외교학 그 현실주의 관점이 잘 반영된 유익한 저작이 나오면 어떨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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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