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1. 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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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글쓴이
조지 손더스 저
어크로스
평균
별점8.9 (76)
ena

조지 손더스의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약간의 과장만 섞으면)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내 딴에는 (길지는 않지만) 꽤 정성 들여 감상평을 적었었다. “기록을 찾아내 얽어낸 수고로움도 그렇고, 유령의 목소리들을 엮어 놓은 세심함 모두 새로운 양식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고, 그런 형식과 내용이 모두 생()의 이편과 저편에 대한 질문을 하도록 한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다.”라고 요약한 것은 꽤나 객관성을 지키려고 애를 쓴 흔적이다. 오히려 오랜만에 죽음을 생각하며 다시 몸서리쳐졌다.”라는 중간의 느낌이 내 진짜 감상이었다.



 



그의 단편은 실험적이었다(1210에 실린). 익숙하지 않은 구성이었다는 것보다는 여러 편의 단편들이 다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 같다. 다른 단편소설들보다 읽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렸고, 읽고는 이게 뭐지?”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난해하다기보다는 좀 걸리적거리게 하면서 시간을 지체시켜 생각해보도록 한다고 해야 할까? 그 과정에 의미를 두는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여겼다(고 적혀 있다).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고도 적었다.



 



바르도의 링컨이나 1210의 작가 소개에는 모두 그가 시러큐스 대학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친다고 되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아니 예전부터 좀 궁금하긴 했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까?”). 읽고 쓰고 평하고, 다시 읽고 쓰고 평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될까? 무엇을 읽고(고전으로 알려진 소설만, 형편 없는 소설도?), 쓰는 건 얼마나 쓸까? 평가를 하는데 그것은 무엇에 대한 평가일까? 세계관? 기법? 구성? 문체?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펼치게 된 데에는 그의 소설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그런 궁금증도 한몫했다. 수백 명의 지원자 가운데 겨우 6명만 선발하는 시러큐스 대학 문예창작 석사 과정에서, 이미 뛰어난 역량을 가진 예비 작가들에게 조지 손더스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놀라운 것은(책을 펼치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텍스트로 선택한 게 19세기 러시아 소설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 레프 톨스토이, 니콜라이 고골. 이들의 작품 7편을 가지고, 읽고, 그 작품의 속살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혀 사실주의 소설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 조지 손더스가 사실주의의 정점에 있었던 러시아 소설가들의 소설을 텍스트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우면서도 시사적이다. 소설의 기본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일단은 그렇게 시작하든지, 혹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조지 손더스는 자신이 진행하는 소설 창작 강의의 일부를(혹은 그것을 확장 버전을) 글로 옮겨 놓았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견해에 동의를 한다면 그것으로 의미 있는 일이며,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므로 역시 의미 있다고 여긴다. 조지 손더스는 학생들로 하여금(확장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관하여, 즉 읽고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한 문장이 필요할 뿐이라고도 한다. 그게 있다면 그것을 고치는 과정만 거치면 된다. 물론 그 한 문장이 쉽지 않으며, 또 자신의 문장을 끝도 없이 고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그래서 아무나 작가가 되지 않는다. 물론 책 한 권 냈다고 작가라고 할 수도 없다).



 



대학 1, 2학년 즈음 미학 강의를 듣기 위해 수강 신청을 했었다. 첫 강의에서 예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들었다. 그것을 접하기 전과 접한 후 어떤 관계와의 거리가 달라졌다면 그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강의는 결국 듣지 않았다. 예술에 관해 그 정도 알면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면 강의였는지, 책이었는지 헷갈린다). 조지 손더스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소설이 마음의 상태에 점진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 그게 소설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일곱 편의 러시아 단편을 읽으며 그 얘기를 좀 길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소설이, 소설의 구성이, 소설의 표현이 그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과 나의 관계를, 거리를 변화시키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비오는 날 연못에서 수영”(이게 원제다. 그리고 이 제목은 톨스토이와 체호프가 함께 한 경험에서 따왔다)을 하듯 소설 속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아무 생각없이, 거침없이 훌훌 옷을 내던져도 어느샌가 세상과 나의 관계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소설가는 그렇게 써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소설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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