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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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아는 사람
글쓴이
유진목 저
난다
평균
별점9.3 (16)
하리






  1.  





#하리그라피 #하리의서재

#오늘의책



유진목 시인이 지난 해 여름, 하노이에 다녀온 여행산문집이다.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하는데 제목이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니 그냥 사는거다. 동네책방 다다르다에서 사인본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해서 예약주문하고 기다려서 받아왔다.



시인이 지난 몇 년간 소송으로 힘들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지부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혀졌지만 당사자들의 고통은 누구 알까. 그 외에도 힘든 시간을 겪었던 시인을 보며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시를 쓰고 글을 쓰는 시인이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은 하노이에 다녀온 여행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분노에 휩싸이는 시간이, 매일 죽지 않고 살아있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그 순간들이, 스스로에게 당부한다는 글이 아프게 다가왔다.



??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도 되는 걸까? 길을 걷다 멈추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찰나를 만들고 나는 가만히 서서 순간 속에 머문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나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다. 여기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나는 아무도 아니다. 아무와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오직 나만이 나와 이야기 나눌 수 있다. p.48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한심하게 여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힘든 시간이 있다. 특히 요즘은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한 나를 보고 있다. 멀리 낯선 곳은 아니어도 나도 나와 이야기 나누며 나를 들여다봐야겠다.



?? 나는 혼자서 울고 밖으로 나갈 때는 웃는 사람이다. 밖에서도 울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날들을 지나왔다고 지금은 쓸 수 있다. 나는 밖으로 나갈 때 웃는다. 내가 우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한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내가 울었다는 것을 알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날들을 용케도 지나왔다고 지금은 쓰고 있다. 나는 혼자서 울고 밖으로 나갈 때는 웃는다. 내가 웃고 있으면 아무도 나의 살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누구도 나의 우울을 짐작하지 못한다.(p.55)



혼자서 울고 밖에선 웃으며 전혀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은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의 나와 함께 있을 때의 나는 다르다. 함께 어울리고 싶다가도 아무도 만나기 싫고, 한없이 다정해지고 싶다가도 못되고 미운 생각들로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한다.



?? 나는 그저 그늘이 아닌 밝은 곳에서 더 이상 화내지 말고 분노에 차 있지 말자고 사십도의 햇빛 아래 서서 다짐했다. 그나저나 사십도를 넘나드는 날씨는 나를 완전히 잡아먹은 분노를 태워 없애버리기에는 알맞은 것이었다. 사십도는 그렇고.... 사십사도의 날씨는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죽을까봐 걱정하다니?



그러니까 사십 사도의 날씨는 어떻게든 무사하고 싶은 날씨였다.(p.83)



사십사도의 태양 아래 죽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하면서 헛웃음이 나왔을 것만 같다. 사십사도를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무사하고 싶어지는 날씨라니! 하노이의 사십도를 햇빛 이래 다짐하듯 나의 어두운 마음도 날려버리기 위한 햇빛을 찾아야지.



특히 좋았던 장면이 있다. 이상하게 이 책을 읽는 내내 글이 아닌 장면처럼 눈앞에 하노이의 모습이 흘러갔다. 사원으로 가는 길을 보며 오토바이 뒤에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이런 젠장, 너무 아름다워라고 말하는 시인. 아름다운 것도 맛있는 것도 필요한 것도 없었던 사람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이 아름다워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 닌빈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닌빈은 나의 고통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여기에 두고 가면 돼.



넓은 땅이 내게 말해주었다,(p.127)



시인은 하노이에 고통을 버려두고 과거의 단단한 끈에서 풀려났다고, 지긋지긋한 과거를 끊어내기 위해 하노이에 왔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해주었다(p.134) 시인이 하노이에 세 번째로 가게 되었을 때 자신이 본 것을 다시 보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불행한 내가 본 것을 행복한 내가 다시 보기 위해 떠난 것이라고.(p.142) 얼마 전 피드에서 본 시인의 웃는 모습이 참 해사하고 편안해보였다. 그저 독자일뿐이지만 시인의 미소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그나저나 나에게 하노이는 어디일까. 강박처럼 행복해지자는 것도 싫지만 주저앉아 있을수만은 없지. 어디든 가자. 행복한 나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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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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