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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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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비 반 펠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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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9.7 (130)
크리스마스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토바의 심장.

그 구멍이 메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p.368








일흔 살의 토바 설리번은 아쿠아리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이다. 그녀는 모든 관람객과 직원들이 떠나고 난 후 아쿠아리움에 남아 청소를 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손자국이 남은 수조를 깨끗하게 닦고, 바닥을 청소하는 일은 그녀에게 보람을 느끼게 한다.

나이가 많아도 활달하게 몸을 움직이며 뜨개질 클럽의 멤버들과도 종종 만나는 토바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존재한다. 30여 년 전에 18살 된 아들 에릭이 바다에 보트를 타고 나갔다가 자살한 정황 때문이었다. 토바는 오랫동안 아들이 죽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고, 이유조차 알 수 없었기에 괴로웠다. 몇 년 전에 남편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엔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그런 그녀가 평소처럼 아쿠아리움을 청소하고 있을 때 직원 휴게실에서 수조를 탈출한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를 발견한다. 커다란 문어가 수조 밖을 어떻게 빠져나온 건지 몰라 당황한 것도 잠시, 일단은 전선에 엉켜서 자신을 바라보는 문어를 구해주게 된다. 이후 마셀러스는 토바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듯 팔을 타고 올라왔다가 자신이 사는 수조로 사라진다.

이후 토바는 마셀러스가 엄청나게 똑똑하다는 걸 깨닫고 청소를 할 때마다 팔을 뻗어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중엔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 그리움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문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이곳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늘 인사를 하고 애정했지만, 이건 좀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말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나, 문어가 정말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p.105



인간들은 정말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바닥을 닦는 나이 든 여성은 내 게임에 속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내게 말을 한다.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p.111








소설의 시작은 특이하게도 문어의 시점이었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던 마셀러스는 4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문어의 수명이 거의 다 됐음을 말했다. 겨우 160일 정도만 남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잡혀 온 이후 평생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작은 수조에서 보내야만 했던 마셀러스에 대한 가여움으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후 토바가 등장해 아쿠아리움을 청소하는 일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마음속에 담아둔 그리움에 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을 떠나보냈고 이제는 남편도 없이 혼자 남은 그녀의 삶은 괴로울 것 같았지만, 토바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모범적이며 주변에 온기를 전달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등장했을 때부터 좋아지게 만들었다.

그걸 마셀러스 또한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 토바가 청소하는 모습을 눈여겨봤을 마셀러스는 평소처럼 탈출했다가 전선에 엉키는 바람에 들켜버리게 됐지만, 자신을 구해주고 아쿠아리움 관장 테리에게도 비밀을 지켜준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종이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상대에 대한 마음은 알아보기 마련이었다.



새롭게 시작된 우정 이야기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캐릭터가 등장했다. 서른 살의 캐머런 캐스모어는 제대로 된 일은 하지 않으며, 허구한 날 건설 현장에서 잘리는 남자다.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여서 여자친구의 명의로 된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오갈 데가 없는 캐머런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부부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눈치가 보인다.

사실 초반에 캐머런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 한심하게 여겨졌다. 왜 그렇게 방황을 하면서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고 되는 대로 막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캐머런이 9살 때 약물 중독자 엄마가 언니인 진 이모에게 자신을 맡기고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을 때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진 이모 덕분에 똑똑하고 제법 괜찮은 청년으로 자라날 수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가시처럼 남아 그를 괴롭히는 바람에 때때로 도망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다 진 이모에게서 엄마가 남긴 물건들이 담긴 상자를 받고 고민 끝에 열어보게 된 캐머런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빠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를 물건과 사진을 발견하고 대책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우리 그렇게 늙은 나이 아니야, 토바. 아직도 멋진 삶이 우리 앞에 몇 년은 더 남아 있다고. 어쩌면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고. 요즘 일흔 살은 옛날의 예순 살이나 다름없어!" p.438







소설이 시작하고 주요 캐릭터들과 각자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드러난 이후에 중요한 비밀을 알아채고 말았다. 마셀러스가 직접적으로 언급했을 때보다 훨씬 전에 말이다. 하지만 비밀을 그렇게 빨리 알아버렸다고 해서 소설의 재미가 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비밀이 밝혀질 것인지, 각 캐릭터가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지가 더욱 기대가 됐다.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은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의 정이 차곡차곡 쌓아올라가고, 또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따스함 가득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드러나게 되었다. 한참 전에 비밀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가 뭉클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내가 좋아할 이야기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딱 맞아떨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푹 빠지게 만든다. 거기에 똑똑한 문어 마셀러스가 중간중간 중요한 역할을 해준 덕분에 흐뭇하게 웃으며 볼 수 있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문어와 홀로 남은 할머니의 삶이 모두가 예감하는 쓸쓸함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 것 또한 정말 좋았다.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라 읽는 내내,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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