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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글쓴이
김영하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8.8 (79)
오후기록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3부작을 읽는 중이다.



이번 책은 <읽다>. 작가가 그동안 읽고 영향을 받은 책, 그 중에서도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책을 통해 특별해졌다는 작가. 김영하 작가는 그동안 어떤 책을 읽었기에 그토록 독특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p.15~16)



 



읽지 않았어도 익숙하고 그러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고전은 당대의 다른 작품들과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꼽는 작품은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오이디푸스 왕>등 그리스 고전들이다.



미래의 인공지능 로봇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을 정도로 첨단 문명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2천년도 넘은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저자는 현대의 영화나 소설 뿐 아니라 세익스피어의 희곡, 근대 이후의 탐정소설이 모두 <오이디푸스왕><오디세이아>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작품에도 그리스 고전의 흔적이 있을까? 물론이다. 하루 동안 무너지는 <빛의 제국>의 중산층 남성이나 <살인자의 기억법>속 기억을 잃은 늙은 연쇄살인범은 모두 오만에 빠진 오이디푸스왕의 재해석이고 세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리어왕의 후예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만 여기던 작가의 작품 또한 새로워 보이지만 실은 오래된작품이었다는 고백은 놀라우면서도 그동안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을 하게 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것이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다.



...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이성은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의 의도를 가늠하고, 인물의 성격을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을 누군가와 비교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의 감성은 작가가 써놓은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탄복하기도 하고, 예리한 인물 묘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고난에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p.99)



 



책 읽기를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하지만 따지고 보면 소설읽기는 무용한 일이다. 재테크책이나 자기계발서처럼 당장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과학책이나 철학책처럼 지식을 직접 전수하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나는 소설이 좋다. 왜 읽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인생을 경험하는 게 재미있다고 답한다. 저자는 타고난 글쟁이라 말주변 없는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짚어낸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이며 좋은 독서란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이라고 말이다.



화폐의 가치로 모든 걸 계산하려는 세상에서 값을 따질 수 없는 감정적 경험. 무용해서 더 소중하다.



 



소설이 이렇게 엄연한 자연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독자는 이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자연이 히말라야의 봉우리나 아마존의 정글처럼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라면 어떨까? 독자들은 이런 책들과 어떤 투쟁을 벌이는 것이며, 그런 도전의 결실은 무엇일까? 이것은 내가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조나탕 리텔의 <착한 여신들>같은 작품을 읽으며 무수히 떠올린 질문들이었다. 이런 소설들을 읽는 것은 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의 긴장을 요구한다. 윤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인공과 그들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고,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감당하는 것도 힘들다.



(p.118~119)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자체가 싫다기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보는 게 안타깝고, 자극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참아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즐겨 읽기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는 작품들은 읽어내는 것조차 고통이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진 않았지만 다자이 오자무의 <인간 실격>은 완독은 했어도 한동안 참 힘들었다. 게다가 다른 독자들은 호평일색이라 나만 이상한가 싶어 고립감마저 느껴졌다.



상식적이지 않은 인물의 행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과 소설 속 참상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좀 의외다. 김영하의 소설이야말로 대부분 상식적이지 않은 인물들의 만행과 선량한 이들이 겪는 참상이 아니던가.



소설가는 왜 이런 작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독자는 왜 이런 이야기에 매료되는 걸까? 물론 앞에서 언급하는 작품들은 부도덕하고 사회통념과 어긋나는 주인공을 만나야 하는 건 괴롭지만 그것을 모두 이겨낼 만한 매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읽기 힘든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독자의 자아는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이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인물과 생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동의하지는 않아도 이런 인물과 사상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살아남는 고전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당대의 모습을 반영하면서도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그리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돌출된 이야기가 시간이 흐르며 다수의 공감을 사기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이 주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 작품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처럼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우리는 그저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이니까.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일지도 모른다.



(p.201)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책 속에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책을 읽는다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그냥 읽는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책이 있어서 읽고, 없으면 빌려서라도 읽고, 마음이 헛헛해서 읽는다. 그렇게 읽은 책에서 하나라도 배울 게 있었다면,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졌다면 독서의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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