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리뷰어클럽 [나]조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 글쓴이
- 박은봉 저
책과함께
평소에 대중 역사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박은봉 저자의 비블리오그래피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도 없었다. 알고 있던 정도라면, <한국사 100장면>, <세계사 100장면> 처럼, 쉽고도 흥미를 유발하는 포맷으로 역사 초심자들에게 특히 매력 있는 대중서를 많이 저술하여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저자라는 것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지금 기준으로 신간이 아니라, 그가 세상에 자신만의 컬러를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요즘 말로 <리즈 시절>에 쓴 처녀작의 개정판 내지 결정판에 가까운
책이라는 사실도, 책의 타이틀 페이지를 넘겨 서문을 접하고서야 나는 처음 알았다(나아가, 그 초판이 박은봉씨의 작품인지 미처
알지도 못한 채, 학교 도서관에서 내가 이미 완독했던 바로 그 책이었음도 본문을 펼치고서야 비로서 깨달았다. 세월의
무상함이란!). 마치 유시민씨에게, 세상에 자신을 처음 알린 대중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각별한 의미를 지니듯,
혹은 진중권씨에게 <미학 오디세이>가 잊지 못할 이정표가 되듯, 이 책 역시 박은봉씨에게 대체 불가능한 추억,
<데뷔골>의 의미를 지니기에,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revised edition을 낼 결심을 갖게 하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서문에는 단지 이런 의례적인 사정 외에도, 눈길을 끄는 색다른 사연이 더 실려 있었다. 박은봉씨는 젊은 시절 저술에 앞서(혹은 거의 비슷한 시점에) 라디오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 자신을 처음으로 브랜딩한 케이스였다는 것인데, 요즘 주가를 한창 올리는 카이스트 교수 정재승씨도 MBC 라디오의 <안녕하세요, 신동호입니다>같은 프로그램에서 (저술가 데뷔 무렵부터)고정 패널로 출연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찾기 힘든 특이한 경우임이 분명하다. 이 점 역시 이 책을 직접 읽고서야 처음 알게 된 점이다.
박은봉씨 역시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의 출연으로 커리어의 시작을 장식했는데, 앞서 언급한 신동호씨 진행 프로그램이 출근시간대를
점유한 것과는 대조된다. 그는 가수 신성우씨라든가, 아나운서 김지은씨(현재 문화방송의 최고참 격인 최율미씨 등과 거의 동기로
짐작), 방송인 김현주씨(64년생 방송인이고, 연기자 경력도 뚜렷하지만, SBS 토지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78년생 그분과는
동명이인이다. 이분은 심야시간대가 아닌, 출근시간대에서 라디오방송을 진행하였다) 같은 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당시로는
드물다 싶게, 역사의 대중화라는 의미 있는 기능을 수행했던 셈이다. 그 시절 라디오깨나 즐겨 들었던 내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도통
모르는 것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혀 놓았듯, 이 책은 이십여 년 전에 나온 초판을 개정한 책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익히 알려져서 더 이상 정보가치가 뚜렷하지 못한 챕터는 빼고, 대신 저간의 연구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되거나 높이 평가하게 된 사실들을 새로 수록했다고 한다. 초판은 1994년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세계사 뒷야기>라는 제목이었는데, 당시 내가 (박은봉 저자의 책인 줄 모른 채로) 재미있게 읽었던 <코카콜라 병을 병을 처음 도안한 청년 루드><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청바지의 기원>같은 장이 빠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완전히 새롭게 삽입된 에피소드가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아마 이십여 년 전에 나처럼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 중 다들 공통적으로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바로 대만과 중공(대륙을 실효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두 청춘이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벌여, 결국 당시 양안의 최고책임자인 조자양(자오쯔양, 옛날 책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식 독음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과 장경국(장징궈. 초대 총통 장제스의 아들이자 리덩후이에 앞서 총통을 역임한 인물이다)으로부터 혼인 승인을 받아낸 세기의 로맨스를 다룬 장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책을 가장 돋보이게 한 컨텐츠였던 만큼 개정판에서도 살아남은 건 당연하다 하겠으나, 20년 동안 사정이 크게 변한 점을 좀 반영할 수도 있었을 테고, 그 후일담이 넉넉히 보강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함이 아쉬웠다.
이 페이지를 보면, 하단에 장순화와 악수하는 정치인 이종찬의 사진을 싣고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
라고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초판이 나온 1994년과 지금 사이에는 그간 엄청난 격변이 이루어져, 당시 집권당의
그저그런 중견이었던 이종찬씨는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장이라는 요직을 차지하는 등 커리어의 큰 변동을 겪기도 했다.
이 페이지에 보면 '도뤠이 생'이라는 인물이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처음 번역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아는 홍난파가 맞으나, 본문에서 '도뤠이 생(生)'으로 적은 것은 큰 잘못이다.
난파는 자신을 평소 '도뤠미(도레미. do-re-mi) 생' 으로 지칭했으며, 이는 음악학도로서의 정체성을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한 별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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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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