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Reviews & etc
예능력
- 글쓴이
- 하지현 저
민음사
살다 보면 인간 관계의 튜닝에 있어서나, 혹은 주어진 과업의 수행에 있어서나 자신의 능력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을 적지 않게 맞이한다. 이런 고비가 생길 때마다 진지한 정공법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만 든다면, 대단한 능력자가 아니고서야 오히려 기존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가 쉬울 줄 안다.
그래서 대중은, 예전과는 달리 예능에 환호한다. 종전에는 그저 '코미디', '희극'으로만 불리던 것이, 어느새 공연, 무용, 영화, 연극 일체를 포함할 수도 있는 '예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방송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떠맡게까지 된 것이다. 방송이 시민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을 감안하면, 그 방송에서 다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예능, 곧 예전의 희극 연관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이제 예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분명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희극인은 이제 예전의 희극인이 아니다. 또 그들의 직능이란 상당한 수준으로 빠른 두뇌 회전과 고급의 순발력, 그리고 대중의 기호 그 핵심을 꿰뚫는 통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런 현대적 복권은 대단한 환영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현 선생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최고의 경력과 실력으로 정신과 전문의로 개업 중이며, 대중을 위한 귀한 저서도 여러 권 내신 분이다. 현대는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임을 감안할 때,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최고의 지성을 보유한 해당 분야의 정상급 지성인으로서, 이런 활발한 저술 활동을 보여 주심은 어쩌면 사회 봉사라 할 만큼 긍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이 자신만의 상아탑에 갇혀, 일반인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고답적인 언어만 되풀이한다면, 그건 보는 각도에 따라 직무 유기, 혹은 세상에 대한 불성실로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 이런 훌륭한 저자 하지현 선생이, 이제 새롭게 바뀐 세상에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동시에 난국 타개의 활력소까지 제공해 줄 수 있는 코미디 관련 프로그램과 그 종사자분들의 여러 행태와 업적을 통해, 세상 사는 방법의 한 화끈한 모범을 제시해 주신다고 하면, 이는 두 좋은 점이 한 권의 책에 모이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책은 기대를 받아 마땅하며, 그 달고 있는 제목 <예능력> 역시, 사회 생활깨나 하고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치어 사는 조직인들에게 "맞아, 과연!"하는 동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의 일독을 마친 내게, 과연 그 컨텐츠는 그만큼의 만족을 선사해 주었는가?
다 좋은 말씀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실천이 중요하며, 얼마나 좋은 말들을 적절한 센스로 잘 편집했는지도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하다. 명연사는 그 입에서 나오는 말도 중요하지만, 어조의 조절과 감정의 적당한 전달 능력 역시 그 필수 조건 중 하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히 열심히 사는 샐러리맨에게 좋은 영감과 자극을 준다. 그 점에 있어서 좋은 책이다.
그러나 과연 책은, 그 제목과 주제, 그리고 저자의 화려한 이력과 신뢰감으로부터 비롯한 기대를 보편적으로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았는가? 나는 유재석, 김병만, 기타 이 책에 그 이름이 열거된 예능인들의 재능과 자질에 대해, 우리 사회의 평균인이 보통 내리곤 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내리는 편이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교훈이, 그 주어나 주체가 이들 예능인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포맷으로 제시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새로 창출되거나 제고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 빼어난 예능인들이 성공한 이유는, 경직된 도덕이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웃음과 풍자라는 허물 없는 프레임 속에 자연스럽게 전달함에 성공한 덕이 크다. 그러나 이 책은, 예능인들의 미덕을 교조화, 우상화한다는 느낌 속에, 다소 억지스러운 끼워맞추기를 시도한다는 인상까지 준다. 한때 히딩크의 전술과 트레이닝이 큰 성공을 거두자, 모든 처세와 교훈은 히딩크에 다 갖다 붙이는 식으로, 부자연스러운 경영학 명제를 남발하던 경향도 있었다. 이 책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나, 연예인 따라배우기의 과격한 내러티브는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리는 바 있다. 좋은 말도 그 전달하는 방법에 따라 효과를 낼 수도,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예능인들 역시 실제 방송에선 그 전달의 묘를 잘 살려 성공한 사례임에 비춘다면, 이 책은 참 역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