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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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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는 하나의 본질의 두 모습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읽기와 쓰기를 동시에 배웠으며, 하나를 잃으면 다른 것도 잃어버리는 거라는 것은 상식처럼 여겨진다(사실은 그런 걸 별로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의 『마음의 눈』에서 첫 번째, 세 번째 글(“악보 읽기”와 “문필가들”)은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리버 색스는 뇌졸중과 같은 병의 여파로 읽기 능력은 사라졌음에도 쓰는 것은 할 수 있는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 사람은 피아니스트였고, 한 사람은 유명한 작가다. 악보를 읽지는 못하는 피아니스트, 글을 읽지 못하는 소설가. 얼마나 부조화이며, 얼마나 비극인가!


그러나, 그들은 기억에 의존해 연주를 할 수 있으며, 글을 쓸 수가 있다. 즉, 읽기와 쓰기는 하나의 꾸러미에 달린 서로 다른 능력만은 아닌 것이다. 사실상 내게는 새로운 깨달음과 같은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여기서 나아가 좀더 본질적인, 과학적 질문은 던지고 있다.

뇌에서 진화한 ‘읽기’와 ‘쓰기’의 능력 말이다.


다른 동물에는 없는 ‘읽기’와 ‘쓰기‘라는 능력을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의 공동발견자였던) 월리스 같으면 ’신의 선물‘로 치부해버릴 수밖에 없었지만(물론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윈은 그럴 수 없다 했고, 올리버 색스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읽기‘와 ’쓰기‘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인간에게 따로 생겨났다고도 하기가 힘든데, 그래서 스티븐 제이 굴드는 ’굴절 적응‘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고, 올리버 색스는 ’경험선택‘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있다. 즉, 읽기와 쓰기는 진화의 직접적인 적응은 아니지만, 뇌의 가소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목적으로 쓰이던 신경을 창조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 사실 나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존재라 생각하는 견해라 생각한다.


읽는 능력을 상실해버렸지만, 쓰는 능력은 여전히 가진 이들로부터 뇌의 가소성 문제를 이끌어낸 올리버 색스(물론 다른 이들의 연구 결과를 이용했지만)를 통해서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놀라운 비약을 이뤄냈는지를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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