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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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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설 1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김원봉 역사 인물 소설 출간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의열단’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 북로그컴퍼니에서 약산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인물 소설『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를 출간했다. 1919년 11월, 중국 길림에서 만들어진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등의 관공서 폭파와 일본고관 암살 등을 주로 행했다. 일본 경찰이 의열단이란 말만 들어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의열단의 활약과 명성은 드높았다. 그 의열단을 만든 이는 약산 김원봉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해방 후 이념의 대립과 친일 세력들의 득세 속에서 김원봉은 월북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보도 평가도 참 인색한 시절을 보냈다.
영화 [암살] [밀정], 드라마 [이몽]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약산 김원봉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 이야기
이 소설은 김원봉의 시각에서 자신의 활동을 회고하는 형식을 갖는다. 김원봉이 회고하며 말해주는 자신의 삶, 투쟁, 우리 민족의 항일 투쟁과 민족혼 그리고 독립. 의열단 단장으로서, 황포군관학교 장교로서, 조선의용대를 만든 사람으로서 임시정부 국무부장으로서의 김원봉을 삶을 쉽고 재미난 소설로 만나게 될 것이다.
김원봉과 조선 청년들,
중국땅에서 의열단을 창설하다
“자유는 우리가 쏟은 힘과 우리가 흘린 피로 이룬 혁명으로만 얻어지는 것이오.”
1919년 11월 9일, 중국 길림 파호문 밖 중국인 반씨 집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조선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밀양 사람 김원봉, 윤세주, 한봉근, 김상윤과 달성 사람 이종암, 함경도 사람 강세우 등이었다. 살을 에는 길림의 칼바람도 조국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독립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왜적을 암살하고 일제 시설을 파괴하면 조선 민중이 폭력 의거를 일으켜 일본을 타도하고 광복을 이루리라 믿었다. 의열투쟁은 총을 수천 자루 구하지 않아도, 사람을 수천수만 명 모으지 않아도 되는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무장독립운동이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의열단이 나아갈 강령과 공약을 정하고 난 아침, 김원봉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1919년 11월 10일 아침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게다. 우리는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양복을 쫙 빼입고 의열단 창단식을 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신사임을, 대의를 위해 목숨 던지는 의로운 사람임을 겉으로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의열투쟁은 신사라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폭탄을 던지고 왜적을 저격할 때마다, 조선 백성은 독립이 온다는 희망을 더욱 키울 것이고 독립 의지도 더욱 강하게 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열투쟁을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다. 의열투쟁으로 백성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목숨 하나 버리는 일은 영원한 안식을 얻는 완전한 구원이라는 내 말을 깊이 받아들여준 단원 모두가 무척이나 고맙다.”
영화 [암살] [밀정], 드라마 [이몽]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약산 김원봉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 이야기!!
1905년,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겼을 때 김원봉은 고작 여덟 살이었다. 외교권 박탈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져올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밀양 보통학교 시절 일장기를 몽땅 걷어다 변소에 빠뜨리는 등 저항을 행동에 옮기며 소년독립군의 면모를 갖춰갔다. 일본 군대보다 더 센 군대를 양성해야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중국에 있는 독일학교 덕화학당에 유학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의 열아홉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 길이 기나긴 망명길이 될 줄은 그도 몰랐다.
덕화학당, 금릉대학을 거쳐 두 달 몸담았던 신흥무관학교에서 의열투쟁만이 조국 독립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은 그는 동지들을 규합, 1919넌 11월 의열단을 창설한다. 의열단 이름만 듣고도 일본 경찰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의열단의 무력투쟁은 불꽃처럼 뜨겁고 활발했다. 조선총독부, 밀양경찰서, 부산경찰서, 종로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신은행 등 일제 기관을 가리지 않고 타격했다. 일본 육군대장 등을 비롯한 요인 암살 시도도 끊임없이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함께 만든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해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후 중국군 장교로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중국 민중 봉기에 조선 청년들을 이끌고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끊임없이 시도, 조선민족혁명당을 만들고 임시정부의 국무부장이 되어 한국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다.
1945년 해방이 되어 2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지만, 날선 이념 대립과 친일파의 득세, 우익청년단체의 끊임없는 테러와 암살 시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특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는 수모를 겪자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조국에서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이고 말로 다 못할 수모를 당하다니.”라고 탄식하며 이 나라와 민족, 자신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조국의 완전한 해방은 남한만의 정부 수립이 아닌 남과 북이 하나 된 단일대오를 이루는 것이라 여긴 그는 남한에서는 더 이상 통일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948년 월북을 감행하는데......
소설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는 단순히 김원봉과 의열단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 거사 후 목숨을 잃은 동지들에 대한 회한, 배신한 동지를 처단할 때의 갈등, 아내이자 동지인 박차정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아픔 등)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 소설로서의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또한 일제 강점부터 해방 전후까지 역사적 일들을 연도와 함께 자세하게 기술하고 김원봉과 의열단의 연보, 활동 내력 지도, 세상에 알려진 의열단 거사 등을 자세히 실어, 한국 근현대사 공부에 좋은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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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